은행나무 아래, 행단

   杏壇(행단)

 

 

향교나 서원에 가면 십중팔구는 수백 년 이상 된 은행나무가 있다. 그런데 왜 향교와 서원에 은행나무가 있는지 그 내력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장자』(莊子)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가 여기저기를 떠돌던 중 검은 장막을 친 듯한 숲을 지나다가 행단에서 휴식을 취했다. 제자들은 책을 읽고, 공자는 노래를 부르면서 거문고를 연주했다.”(‘검은 장막을 뜻하는 치유’(緇帷)를 지명으로 보기도 한다.) 여기서 행단이란 단어가 나온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공자가 천하주유를 끝내고 고향 곡부(曲阜)로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은행나무 아래에서 강학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곡부에 있는 공자의 사당인 공묘(孔廟)에는 행단 자리를 기리는 비석이 모셔져 있다. 이후 행단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강학의 장소를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향교와 서원에 은행나무를 심은 것도 공자의 가르침을 되새기기 위한 것이다.

 

장자』(莊子) 「어부(漁父)

 

 

* 〈행단도〉

 

 

 

 

 

중국사의 오늘 :

1984730

중국 최초의 고원철로인 청장(靑藏) 철로 제1기 공정 서녕(西寧) - 격이목(格爾木) 구간이 개통되었다(전체 길이 86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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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은 다른 사람에 앞서고, 말은 다른 사람에 뒤쳐져라.

   行必先人, 言必後人(행필선인, 언필후인)

 

관련 구절을 함께 소개하면 이렇다. “군자는 두루 많이 알되 힘써 지켜야 하고, 말은 신중하게 하되 굳세게 행동해야 한다. 행동은 다른 사람에 앞서고, 말은 다른 사람에 뒤쳐져야 한다.말과 행동의 함수 관계에 대한 의미 있는 지적이다. 말보다 행동이 앞선다는 것은 일의 실천에 꼭 필요한 자세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이 둘의 적절한 조화와 조정이 필요할 것 같다. 행동으로 옮기기가 힘들 때는 말을 먼저 앞세워 그 말에 대한 책임으로 행동이 뒤따라오게 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때로는 행동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뒷감당이 안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옛 성인들 말씀의 요지는 군자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 ’()수신’(守信)이라는 것이다. 믿음이 곧 사람의 말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그리고 그 말을 지켜 내야만 제대로 된 사람, 즉 군자가 되는 것이다. 지행합일(知行合一), 언행일치(言行一致)도 같은 맥락이다.

 

증자전서(曾子全書) 수업(守業)

 

 

 

 

 

중국사의 오늘 :

713729(당 현종 개원 원년 7월 갑자)

태평공주와 그 일당이 현종을 폐위시키려다 발각되었다. 일당들은 죽임을 당하고 태평공주는 집에서 죽임을 당했다. 태평공주는 측천무후의 딸이자 예종의 누이로 황제 자리에 욕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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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녀석, 가르칠 만하구나.

   孺子可敎(유자가교)

 

서한삼걸(西漢三傑)의 한 사람인 장량(張良)은 젊은 날 진 시황을 암살하기 위해 가산을 털어 창해역사(倉海力士)를 기용하여 진 시황을 저격했으나 실패했다. 이 때문에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 도망자 처지가 되었는데 어느 날 다리를 건너다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일부러 신을 다리 아래로 던진 다음 장량에게 주워 오게 했다. 장량은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신을 주워 왔다. 노인은 주워 온 김에 신기라고 했다. 장량은 무릎을 꿇고 신을 신겨 주었다. 노인은 웃으면서 그 자리를 떠나다가 다시 돌아와 젊은 녀석, 가르칠 만하구나라고 말한 뒤 닷새 뒤 새벽에 여기서 만나자고 했다. 이렇게 해서 장량은 신비한 노인으로부터 태공병법』(太公兵法)이라는 책략서를 얻어 깊이 공부하여 유방의 참모가 될 수 있었다. ‘유자가교에서 유자젊은이’, ‘어린 놈등을 가리키는 민간의 구어이다. ‘유자가교는 훗날 젊은 사람이 뭔가 큰일을 해낼 수 있음을 가리키는 사자성어로 자리 잡았다.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

 

* 장량

 

 

 

 

 

 

중국사의 오늘 :

636728(당 태종 정관 106월 기묘)

당 태종의 황후 장손씨(長孫氏)가 세상을 떠났다.(향년 36, 601년 생) 장손 황후는 임종 전에 외척을 멀리하고 방현령(房玄齡)을 중용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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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와 팔

   股肱(고굉)

 

전설 시대 제왕 때부터 군주를 보필하는 신하들을 가리켜 고굉이목’(股肱耳目)이라 했다. 글자대로 다리와 팔, 눈과 귀란 뜻이다. 당나라 때 학자 공영달(孔穎達)은 이에 대해 군주는 원수(元首)이고, 신하는 고굉이목(股肱耳目)으로 대체로 한 몸이다라는 주석을 달았다. 이렇게 해서 고굉은 군주를 보필하는 유능하고 힘 있는 대신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요컨대 리더에게는 튼튼한 팔다리와 같은 인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런 팔다리에 문제가 발생하면 조직은 물론 나라까지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사마천은 사기(史記) 악서(樂書)에서 고굉과 같은 신하가 불량하면 모든 일이 엉망이 된다고 지적했다. ‘고굉지신’(股肱之臣)이란 용어도 훗날 파생되었다. 또 이와는 전혀 다르게 사기』 계포난포열전(季布欒布列傳)에 보면 하동 지역은 나의 팔다리와 같은 곳이다라 하여 고굉이 지리적 위치상 중요한 곳을 비유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상서(尙書) 익직(益稷)

 

 

 

 

 

중국사의 오늘 :

1953727

조선정전협정이 체결되었다. 19506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이 이날 정전협정으로 휴전에 들어갔다. 북한과 중국에서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과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원 팽덕회(彭德懷)가 연합군 총사령부의 미국 대표와 판문점에서 협정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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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거리

   朋黨(붕당)

 

법가 사상의 집대성으로 불리는 한비자(韓非子)는 불멸의 제왕학이라 불릴 만하다. 그중 유도(有度)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인재를 기용하는데 명성만을 기준으로 삼으면 신하의 마음이 군주로부터 멀어지며, 아래에서 패를 지어 사사로운 욕심을 꾀한다. 관리를 기용할 때도 붕당 위주로 한다면 백성들은 친교에나 힘을 쓰지 법의 따라 기용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한비자는 그 결과 이런 패거리(붕당)가 안팎으로 많아지면 중대한 과오를 저질러도 그 죄를 감싸고 감추어 줄 자도 많아져 나라가 망한다고 지적했다. 한때 우리 국사학계 일부에서 일제 강점기 때 식민 사학자들이 사용하던 부정적 의미의 당쟁(黨爭)이란 말 대신 붕당 정치라는 용어를 쓰자고 주장한 적이 있다. 하지만 보다시피 자기 패거리들의 사욕만 추구하는 집단이 바로 붕당이다. 당쟁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용어이다. 지금 우리 정치가 한비자가 지적한 망국의 근원이 되는 붕당 정치는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한비자(韓非子) 유도(有度)

 

 

  한비자

 

 

 

 

 

 

중국사의 오늘 :

291726(진 혜제 원강 원년 6월 을축)

() 황후가 초왕 사마위(司馬瑋)를 죽이면서 진나라는 극렬한 내분에 휩싸이며 수습하기 힘든 국면에 놓인다. 301년 급기야 ‘8왕의 난으로 확대되어 306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진정되었다. 하지만 사회는 새로운 전란에 휩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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