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내 곁에 - Closer to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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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21>에 소개된 이 영화의 소개 중 일부분은 이렇다. "<내 사랑 내 곁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특별한 메시지 또한 담지 않은 영화다. 그렇다고 그가 과거와 완전히 결별했냐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세련미있게 가공되지 않은 감정의 직접적인 분출, 세상의 순정함에 대한 믿음, 영화적 스타일보다는 배우 연기의 극대화 등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해야 할 것 같다. 박진표 감독의 작품들은 그간 직설적이지만 약간 촌스러운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노년 부부의 사랑이야기, 농촌 총각과 다방 처녀의 비극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랑, 유괴된 아이를 구출하기 위한 부모의 사투...이러한 약간은 신파가 섞일 수 있는 이야기 속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건 캐릭터에 대한 세심한 묘사와 그 묘사를 완성시켜주는 배우들의 힘이었다. 그리고 이번의 이야기 역시 스트레이트하지만, 역시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다. 루게릭병 환자와 그를 사랑하는 아내의 이야기.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정도 이야기이고 보면, 신파로 흐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기 보다는, 이 영화의 요건은 어떻게 하면 신파가 되지 않게 할 것인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영화야말로 캐릭터에 대한 개연성 있는 구축이 어느 정도는 필수적이어야 할 것으로 보였다. 그래야만 눈물이 흘러도 그것이 관객에게 어떤 개운하지 않은 뒷맛을 남기지 않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박진표 감독의 이번 영화는 그런 부분에서 조금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시작 부분의 몇몇 장면들은 당황스러웠다. 급속도로 사랑에 빠져드는 이지수(하지원)와 백종우(김명민)는 몇몇 물음들을 제기할 틈도 없게 만든다. 다음과 같은 물음들. 이지수는 백종우를 왜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가. 여기에 박진표 감독은 대답한다. "종우가 지수의 손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손이라고 해주잖나. 나는 지수가 거기서 확 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이 비현실적이라고 한다면 그런 사랑을 안 해본 사람이겠지.(웃음)- <씨네 21> 인터뷰 중에서" 글쎄. 영화를 본 한 관객의 대답이라면 수긍하겠지만, 이 영화를 직접 만든 입장에서의 대답으로는 불충분(불성실)하다. 아니 단지 이 부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의 영향도 있지만, 이지수 캐릭터는 평면적으로, 지나칠정도로 착하게만 보이는 측면이 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여성 캐릭터가 감독의 입장에서는 보고 싶었는지 몰라도, 이야기의 측면에서라면 매력적이지 못하다. 더구나 평면적으로 그려진다면 말이다. 

물론 이 이지수라는 사람이 원래 천성 자체가 착하고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천사 같은 캐릭터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그 캐릭터를 어느정도 그렇게 '보이도록' 설명하는 장면들이 있어야 한다. 설명 없이 시작하는 초반부부터 이미 짜여진 틀 속에서 이지수 캐릭터는 답답하게 정해진 동선으로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틀 속에서 끝내 헤어나오지 못하고 영화는 마감된다. 다른 한편으로 보았을 때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을 것이라면 이지수가 굳이 장례지도사로 나와야 했던 이유 또한 잘 알지 못하겠다. 삶과 죽음과의 대비, 타인을 고이 떠나보내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자신의 가족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아이러니, 죽어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조금씩 죽음에 가까이 가는 백종우가 이지수에게 느껴야하는 감정들...아마도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라면 미안한 말이지만 일본 영화 <굿'바이>에서 훨씬 맛깔스럽게 잘 풀어냈다. 주인공 캐릭터를 아주 잘 성장시키면서 말이다. 성장하고 변화하지 않는 캐릭터가 그려내는 이지수의 장례지도사라는 설정은 단지 어떤 생계수단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예를 들어 중간에 이지수가 노인들에게 얻어맞는 장면 같은 것들. 이 장면에서도 생계를 꾸려나가려는 억척스러움만 느껴질뿐 그 이상의 '무엇'이 느껴지지 않는다).

감독은 말한다. "주인공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가 내 영화에선 굉장히 중요한 설정이 된다. (중략)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게 아니니까. 안락사나 존엄사에 관한 문제를 애초엔 좀더 하려고 했다. 시나리오에도 있고 찍기도 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방해되는 느낌이 있었다. 편집과정에서 들어낸 것이다. - <씨네 21> 인터뷰 중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몇몇 이야기들이 잘리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두 캐릭터를 조금 더 구체화시키는 좋은 계기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두 캐릭터의 사랑이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다고 했을 때, 그것을 말하기 위해서라도 두 캐릭터의 조금 더 명확한 형상화가 필요했다. 왠지 박진표 감독은 오로지 '사랑'만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금 웃긴 말이지만, '사랑'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다. 두 캐릭터가 '사랑'을 하는거지. 사랑하는 과정이 힘을 받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왜 서로를 사랑하는가, 무엇을 이겨내고, 혹은 무엇을 극복하고 이들이 사랑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낫다. 주구장창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관객들이 그 사랑에 감동하는 것은 아니다.

감독이 이렇게 곁가지를 쳐내는 와중에서 잘려 나갔을 몇몇 이야기들이 그래서 아쉽다. 그것은 한편으로 보았을 때 중반 이후로는 오로지 이 영화를 지탱하는 동력이 김명민이 몸으로 하는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더 그렇다. 6인 병실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이야기들, 이지수의 아버지(강신일)와 관련된 이야기들에 조금 더 살이 붙었으면, 김명민의 점점 쇠약해져가는 몸만을 안타깝게 바라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몇몇 빛나는 장면들도 있지만, 덕분에 조연들 캐릭터도 조금은 생명력을 잃어버린다. 병문안 온 친구들에게 침을 뱉는 표독스러운 모습을 보이다가 갑자기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즉 돌변한다고 느껴지는) 착해지는 젊은 여자 환자(가인)도 그렇거니와, 왠지 숨겨진 많은 이야기를 담아 놓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저 지나가는 조연에 불과한, 장애가 있는 다리로 어렵게 살아가는 이지수의 아버지('지뢰마을'을 언급하는 감독의 인터뷰로 볼 때 아마도 이 다리는 지뢰사고로 인해서일 것이다. 이 부분이 잘 설명되었으면 초반부 마을에 들어가는 장면에 나왔던 시위대의 풍경이나, 법 공부에 집착하는 백종우의 모습이 조금은 더 잘 이해되었을 것이다) 같은 캐릭터들은 그저 고정된 주변의 풍경에 머물고 만다.

아무튼 중반 이후로는 영화가 전체적으로 힘이 떨어진 와중에 김명민의 몸과 몇몇 인상적인 장면들만이 영화를 지탱해 나간다. 여러 매체들에서 언급되었지만, 김명민의 몸은 형상 그 자체로서 연기를 하고 있고, 그랬기 때문에 몇몇 가능한 감정들을 전달한다. 예를 들어 김명민이 알몸으로 수술대에 눕혀지고 나서 이어지는 "불편한 데 없으시죠?"와 같은 대사들. 그 짧은 장면만으로도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김명민이 만든 '몸으로서의 형상화'의 힘이다. 그 밖에도 기억나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짧은 순간에 깨어난 아내의 모습을 놓치고, 망연자실하게 복도 구석에 쭈그려앉은 남자(임하룡)의 모습이라든가 백종우의 뺨에 붙은 모기씬 같은 것들. 그 이후에 이어지는 몇몇 장면들에서 다시 모기의 앵앵거리는 소리로 돌아오는 이 장면은, 여러가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보는 사람에게 판타지를 제공하는 것이 결국 영화가 할 일이라는 것과 그 만큼의 무게로 반대쪽에서 다시 저울을 가라앉히는 절망감의 무거움. 그 환상과 잔인함의 대비- 그것을 제공하는 영화라는 것의 이 아름다운 잔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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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 영화는 몇몇 질문들을 하게 만든다. 그중 가장 큰 질문은 '이 영화는 과연 무엇을 전달하려 하는 걸까'다. 삶과 죽음에 대해, 죽어가는 자신을 바라보아야 하는 이 루게릭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그 초점이 아니라, 그 속에서의 남녀 주인공이 벌이는 사랑, 그나마도 설명도 제대로 안해주는 사랑이 그 초점이라면 이 영화의 주무대가 굳이 병실일 이유가 있을까. 단지 어쩌면 그 무대가 병실이 되어야 할 이유는 그 곳에서의 사랑이 다른 어떤 사랑보다도 우리의 심금을 울리기 때문에...가 아니었을까. 다큐멘터리 <사랑>에서 우리를 가장 많이 울렸던 이야기가 병실에서의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왠지 이 영화는 이런 쓰잘데기 없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더불어, 영화의 어떤 윤리성에 대해서까지 생각을 미치게 한다. 예를 들어 루게릭 환자는 이 영화를 좋아할까, 우리가 우는 사이에 그들도 울었을까, 우리의 울음들의 어떤 부분은 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일까..와 같은 질문들.

아니 바보 같은 질문들은 하지 말자. 박진표 감독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했으므로 사랑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위에 몇 번 '헌신적'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누군가가 상대방에게 헌신적이라면, 그 반대편에서는 이기적인 모습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왠지 이 영화에서의 백종우의 모습은 허진호 감독의 영화 <행복>에서의 황정민 캐릭터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물론 많이 다르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황정민 캐릭터를 박진표 식대로 해석한 것이 이 백종우의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한다. 예전에 <행복>에 대해 별로 안 좋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는데, 왠지 이 영화를 보고 나니 <행복>이 땡긴다. 그 영화가 왠지 상당히 괜찮았었던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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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시스터즈 키퍼 - My Sister's Kee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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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에 대한 안이한 해답이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죽음을(그리고 삶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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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시스터즈 키퍼 - My Sister's Kee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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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에 걸린 환자와 그녀를 둘러싼 가족들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는 조금이라도 안이하게 생각하면, 너무 신파가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아니, 차라리 신파가 되어 눈물이라도 쏟게 만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보다 더 최악의 케이스는 눈물도 못 뽑아내고, 관객들을 졸게 만드는 것이다. 다행히, 이 영화는 어느 정도 눈물은 뽑아낸다. 그러나 그 눈물을 뽑아내는 방식이 이 영화는 다른 영화들과 사뭇 다르다. 그것이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이다.

대부분 이런 류의 이야기들은, 점점 쇠약해지고, 기력을 잃어가는 환자의 모습에도, 조금의 희망에 모든 것을 걸고 어떻게든 끝까지 그(녀)를 지켜내려는 가족들의 안타까운 사투가 극적인 대비를 이루며 눈물을 이끌어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이 이야기는 왠지 죽어가는 케이트(소피아 바실리바)에게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언니 케이트를 살리기 위해 태어난 동생 안나(아비게일 브레슬린)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듯 하다가, 그 초점이 엄마(카메론 디아즈)에게로, 다시 아빠에게로, 그리고 케이트의 오빠에게로 차례로 넘어간다. 그리고 케이트를 둘러싸고 가족들이 벌이고 있는 조금은 다른 의미의 사투가 조금씩 드러난다. 백혈병으로 고통받으며, 10대 시절을 거의 병상에 누워 보냈던 케이트의 고통은 물론이려니와, 케이트에게 여러 생체조직들을 주어야 하는 안나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고통, 케이트를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했던(둘째 딸마저도 말이다) 엄마의 고통, 그리고 난독증이 있는 자신의 문제를 크게 드러내지 못하고 감추어야 했던 오빠의 고통. 그리고 여기에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는 여판사의 이야기나, 기꺼이 변호를 맡아주었으나 어딘지모르게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한 변호사의 이야기까지 겹치며,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다채로운 이야기가 변주된다. 그래서 이러한 다양한 이야기가 조금씩 엮어들어가는 도중에 관객들은 서서히 이들의 입장들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마도, 눈물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들 중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은 없다는 것, 모두다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고통과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는 것, 그들 중의 누가 더 고통받고 있다고, 혹은 어떠한 것이 옳다고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등등 말이다. 즉 이 눈물은 어떠한 것에 쉽게 손을 들어줄 수 없는 딜레마의 눈물로부터 출발한다.

물론 이 영화에도 조금은 아쉬운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다.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며 멋드러지게 출발했던 이 영화는, 중반을 넘어가며 여러 문제들을 너무 쉽게 봉합하는 듯이 보인다. 그것은 이 모든 것들이 가족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만이 유일한 해답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았을 때 그럼으로써 이야기의 힘이 떨어지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즉 이 영화는 초반부에 여러 많은 문제들- 즉 한 아이가 어떤 치명적인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아이를 낳아 유전적인 도움을 받으려는 데에서 벌어지는 윤리적인 문제, 회복될 수 없는 병임에도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을 계속하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문제(그리고 여기에 뒤따를 수 있는 안락사와 존엄사 같은 문제들), 자신의 몸의 권리를 찾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법률적인 문제, 환자를 둘러싼 가족 내부의 미묘한 갈등의 문제 등등- 을 제시하고는 그것을 하나의 해답으로서 모두 설명하려 한다. 물론 닉 카사베츠 감독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그런 문제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가족들간의 사랑의 힘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위한 헌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의 문제들이 꽤나 멋드러졌기(혹은 흥미로웠기, 혹은 이런 이야기들에서 크게 부각된 적이 없었던, 그러나 언젠가는 이야기해야만 하는 문제였기) 때문에, 이 당연해 보이는 대답에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시한부 삶을 다루는 또 하나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그것은 아마도 영화의 새로움이라기 보다는 원작의 새로움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서점에서 잠깐 넘겨다본 이 영화의 원작인 조디 피콜트의 <마이 시스터즈 키퍼: 쌍둥이 별>은 각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서술하는 형식을 띠고 있어서 꽤나 흥미로웠다. 뭐 어쨌든 간에, 마지막 마무리의 상투성 혹은 불성실해보이는 해답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 정도라면 그래도 기꺼이 눈물을 쏟아내 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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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9-28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내사랑내곁에'와 비교해볼 만한 것 같아요.

맥거핀 2009-09-29 02:34   좋아요 0 | URL
아..개인적으로 '내사랑 내곁에'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내사랑 내곁에'와 굳이 비교하자면 이 영화에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네요.^^;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9월3주


 

추석을 앞둔 9월의 극장가는 늘상 그랬듯이 라인업이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다. <국가대표>와 <해운대>가 여전히 여러 관들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애자>나 <이태원 살인사건>, 혹은 팀 버튼 감독의 입김이 미친 신작 <9> 등이 눈에 띄지만, 왠지 '이거다' 싶은 작품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가을에는 좋은 날씨 때문에 사람들이 극장에 앉아있지 않고, 모두들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좋은 작품들이 개봉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속설 때문일까. 아니면 조금 있다가 추석 연휴 때 개봉을 하려는 생각 때문일까. 

<해운대>와 <이태원 살인사건>는 이미 보았고, <애자>나 <국가대표>는 괜히 눈물 뽑게 될 것 같아서 좀 그렇고, 팀 버튼 식의 애니메이션은 취향이 아니고, 그렇다고 깔려 있는 할리우드산 로맨틱 코미디들이 딱히 땡기지도 않는다. 이 와중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어제(18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80년대 일본뉴웨이브 특별전'이 눈에 들어온다. 여러 감독들의 작품들이 소개되지만, 아무래도 관심이 가는 건 이름이 낯익은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나 최양일 감독의 작품들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항상 하드보일드한 남자들의 세계를 보여주며, 일본 사회를 비판하는, 혹은 꼭 일본 사회가 아니더라도 사회의 어떤 극악한 고리들을 능수능란하게 펼쳐보였던 최양일 감독의 작품들이 눈에 띈다. 이번 영화제에서 소개되는 것은 1985년작 <친구여, 조용히 잠들라>와 1989년작 <A사인 데이즈>인데, 영화에 대한 소개를 읽어보았을 때 좀 더 관심이 가는 쪽은 <친구여, 조용히 잠들라>다. 영화에 대한 소개는 다음과 같다. (자세한 시간표는 http://www.cinematheque.seoul.kr/ 를 참고)

오키나와의 작은 항구마을. 40대 초반의 의사 신도는 옛 친구 사카구치가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멀리서 찾아온다. 작은 호텔을 경영하던 사카구치는 마을을 재개발하려는 거대 건설회사의 매수에 응하지 않고 버티다가 함정에 빠져 수감된 것. 신도는 친구를 구해내기 위해 시모야마 건설의 일당과, 회사로부터 뇌물을 받은 토쿠다 형사와 일전을 벌인다. 처절한 사투 끝에 마침내 사카구치가 석방되지만, 이들 앞에는 비극적인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기타카타 겐조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최양일의 세 번째 영화. 거대자본에 매수된 경찰에 의해 체포된 친구를 구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최대한으로 추구한 작품이다. 통념적인 도덕률로 정의되지 않는 고독한 인물 묘사와 비극적인 세계관에서는 필름누아르적인 영향 역시 엿보인다. 이후 만들어진 하드보일드 영화들에 일종의 모델이 될 만큼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80년대 하드보일드 영화의 최고 걸작.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아카이브 필름 데이터베이스) 

- 예습이 필요해 -  

 

최양일 감독의 한일합작영화이자, 어지러운 영화 <수>만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최양일 감독의 영화들에 구미가 당기지 않겠지만, 꽤 많은 호평을 받았던 <개달리다>나 <피와 뼈>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장기가 복잡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와중에서 어떤 캐릭터를 잡아내어, 그들에게 관객들이 자신의 감정을 쉽게 투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회를 바라보던 색다른 시선을 제공하는 것임에 어느정도는 동의할 것이다.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은 때로는 매우 마초적이고, 때로는 정말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들을 저지르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일종의 도덕적 관념으로만 그들을 판단할 수 없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삶 또한 다른 어떤 것들에 의해 일그러지고 길들여졌음을 관객들에게 이해시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간단하게 말해서 그의 영화들에는 때로 엄청난 '괴물'들이 나오지만, 그 '괴물'들은 어떤 돌연변이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불행한 존재들임을 감독은 그리고 있는 것이다. 즉 아마도 최양일 감독이 주목하는 것은 그 캐릭터의 '흉포성'이 아니라 그 흉포한 캐릭터를 만든 이 사회의 '흉포성'일 것이다. 

<개달리다>: 신주쿠 경찰서의 생활 안전과에 근무하는 형사 나카야마는, 한국인 정보원 히데요시(수길)와 결탁하여 신주쿠를 근거로 활동하는 야쿠자 집단 '애호 조직'에 경찰 단속 정보를 흘려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지만, 범죄의 수사 역시 게을리 하지 않는 기묘한 정신 구조를 갖고 있다. 그리고 나카야마 연인이자 히데요시가 동경하는 상해 출신의 창녀 모모. 이들 세 사람은 신주쿠의 가부키쵸에서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누구도 믿지 않고 돈에만 집착하는 모모는 나카야마 몰래 히데요시와 손잡고 암달러상, 매춘, 밀입국 알선, 비밀 도박장 운영하는 사실이 '애호 조직'의 두목 곤다에게 발각되어 곤궁에 처하게 된다. 한편, 마약 단속에 나선 나카야마는 외국인 마약상에게서 빼앗은 마약을 후배 경찰 사쿠마와 자신의 팔에 주사하고 흥분된 상태에서 술집 여자 삐끼를 강간, 가게를 엉망으로 파괴한다.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포주를 향해 나카야마는 냉정하게 대답한다. "강도, 사기, 공갈, 폭행, 상해죄로 전원 체포". (네이버 펌) 

<피와 뼈>: 오사카의 김.준.평. 1923년. 한 청년이 제주도에서 일본 오사카로 향하는 배 위에 오른다. 청년의 이름은 김준평. 그는 굳게 믿고 있었다. 일본에서의 새로운 삶이 그에게 풍요와 희망, 인간다운 삶을 가져다 주리란 것을... 하지만 주변 상황은 그를 ‘괴물’로 만들어 갔다. 무엇이 이 순진했던 청년을 모두가 두려워 하는 존재로 만들었는가?

 오사카에 정착해 공장에 취직한 준평은 그 앞에 나타난 여인 김영희에게 반해 그녀와 강제로 결혼하기에 이른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희망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강인한 체력과 타고난 근성으로 어묵 공장을 성공시키는 준평. 그러나 마치 그의 왕국을 지배하는 것처럼 끝없는 착취와 폭력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냉혹하기 그지없다. 이즈음 자신을 준평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면서 나타난 청년, 다케시가 준평의 집안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다. 겁도 없이 준평에게 폭력으로 맞서는 다케시는 주변을 점점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가는데.. (네이버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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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살인사건 - The Case of Itaewon Homic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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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건의 무거움이 영화에 대한 판단을 어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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