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도 아니고 막내도 아닌 어중간한 작가 도라희. 일명 또라이 작가로 불리던 그녀의 인생은 언제나 "머피의 법칙"으로 돌아가고 있다. 출연중인 아이돌 MC와 싸워서 방송사고내고, 비오는 날 이웃을 변태로 오인하고, 길고양이 구하려다가 119 에 태워지고....그녀의 파란 만장한 인생은 언제나 "욱"하는 성질머리에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인격이 보태서 생기는 현상이었다. 그 도라희 작가가 공중파 또라이에서 케이블의 도보물이 되기까지 산전수전공중전의 사건들이 겹치고 겹치게 되었는데 그 모두가 인연법에 의해 생성된 것들이었다. 도작가 인생 최대의 두 웬수 마리와 최장호 기자. 이 둘과 엮이면서 인생은 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바닥을 치면 이제 올라올 길만 남았다고 했던가. 영원한 웬수는 없다고 어제의 재수탱이가 오늘의 복덩이가 되어 도작가를 찾아왔다. 사연을 살피다가 도움을 주게 된 일이 자신의 특종으로 터져 PD의 도보물 작가가 되었고, 전국적으로 얼굴 팔리게 만들었던 기자 최장호는 어느새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 있었다. 끝이 좋으면 모두 좋은 것이라고 했던가. 훈훈한 해피엔딩과 더불어 카메라 불이 꺼지면 시작되는 진짜이야기는 화려한 이면의 생활들을 담으면서도 그 특유의 유쾌함을 잃지 않아 가볍게 읽으면서 즐거워할 수 있었다. 현업 방송작가가 쓴 만큼 어느 만큼의 진실이 보태어졌는지 알길은 없지만 얼마만큼의 진실이 포함되어 있든 불편함보다는 이해의 눈길로 바라보게 만든다. 연애도 못하고 그러니 당장 시집갈 일도 없고, 지금 하는 일이 지겹고 이대로 사는 건 싫은 나이 스물 아홉. 그녀의 스물아홉 여름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공짜 비행기 티켓도 생기고, 아군도 많아지고, 직장줄도 든든한 동앗줄로 구비되어 있고 남친도 찰싹 붙어 있다. 지금 그녀만큼 행복한 여인이 있을까. 시작하면서 그러지 말았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라고 고백했던 그녀의 스토리는 어느새 해피엔딩의 물결을 타고 서른을 맞이하고 있다. 오프 더 레코드. 칙릿의 짜릿함과 버라이어티의 생동감이 더해져 마치 살아 꿈틀대는 싱싱한 물고리처럼 우리에게 펄쩍 뛰어든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편지를 보내 고통을 짐을 내려놓는다면, 길은 여행하기가 더 수월해지고 이 세상은 살기에 더 나은 곳이 될 것입니다...-59쪽
모두가 힘든 시기였지만 사실 지금보다 더 나은 시절이기도 해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친절했으니 더 좋은 때였지요.-89쪽
저희가 선생님이 선택하신 75가구에 포함되지 않는다 해도 선생님이 다른 이들을 도와주시니 다행이라 여길 겁니다.-209쪽
그는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헤매지 않았고 술을 마시지도 담배를 피우지도 가정부와 키스한 일도 없었습니다. 또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보험금은 지급이 거절되었습니다. 보험사 측은 그는 산 적이 없기에 죽지도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267쪽
이번주 "해피선데이"는 남자의 자격보다 1박 2일이 더 감동적이었다. 타국에서 여러가지로 힘들었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고국의 고향집을 찍은 VTR은 눈물바다를 만들게 하더니 결국 가족들이 등장한 부분에서는 펑펑 울어 화면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시청했던 시청자들 대부분이 진한 감동의 여운으로 눈가를 붉혔을 것으로 짐작한다. 절대 울지 않던 강인한 MC 강호동조차도 수도꼭지마냥 울게 만든 것. 바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핏줄에 대한 정이 아닐까.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한 권의 책 속에서 또 다른 깊이를 감동을 발견했다. [MR.버돗의 선물]은 미국 천만 독자를 울린 감동실화라고 했다. 져자가 외할아버지의 낡은 가방 속에서 발견해낸 종이 뭉치들을 추적한 결과 외할아버지 샘 스톤이 바로 버돗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1933년 12월 18일에 실린 작은 광고 하나. 화이트 칼라 남성분들을 위한 배려!....내일 먹을 빵을 걱정하고 있을 75가구에게 5달러씩 보내주겠다는 내용의 광고였다. 시절이 수상하고 사기꾼이 활개를 치던 그때 어떤 사람들은 흘려보낸반면 또 다른 절박한 이들은 편지를 보냈고 그들은 약속한 금액을 선물받았다. 5달러. 작은 돈처럼 느껴지는 이 돈의 가치가 당시에는 100달러 정도라니 대공황의 불경기를 잠시 짐작해볼만 했다. 고기 450g에 11센트, 빵 한 덩이 7센트이던 시절 5달러의 선심은 산타크로스와 맞먹는 선물이었을 것이다. 어른들을 위한 선물. 우리의 현재도 달라지진 않았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가장들이 가족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고 출근바람으로 나와 거리를 배회하는 현실을 담은 드라마는 몇년전부터 꾸준히 내보여지고 있다. 대공황 당시, 갑자기 일터를 잃은 가장들이 가족들에게는 말하지 못한 채 전전 긍긍하던 도중 버돗의 도움은 가족을 위한 선물은 물론 화이트칼라 가장들에게는 자존감을 지킬 특별함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처음에는 왜 화이트칼라만을 대상으로 했을까. 궁금했었다. 당시 직업의 귀천을 떠나 힘들어하던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에 화이트칼라라는 조건은 궁금증을 유발하게 만들었다. 물론 샘의 과거를 통해 그 의문은 곧 풀어졌지만... 샘은 자수성가한 인물이었다. 고생끝에 처음 사게 된 양복도 못된 점원들 때문에 사기당할만큼 가진 돈이 없었던 그는 결국 성공했지만 폭삭 망하게 된다. 결국 다시 재기에 성공한 그가 자신의 지난날처럼 성공했다가 추락한 가장들을 위해 내어놓은 돈이 바로 익명성을 띈 버돗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배고픔이 전부인 시절, 쓸쓸한 캔턴의 크리스마스를 지켜보면서 익명의 기부자가 되기로 한 샘은 1933년 12월의 어느날 버돗을 탄생 시켰다. 세 딸 바버라, 버지니아, 돗시의 이름에서 각각 따서 만든 버돗이라는 인물이 세상을 향해 내민 착한 손은 75년간의 비밀에도 불구하고 결국 밝혀졌다. 당장의 먹거리가 필요했고, 신발이 필요했으며 가족을 살릴 힘이 필요한 이웃들을 살린 5달러의 기적은 단 한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미국 최고의 부자도 아니었고 본토 미국 태생도 아닌 과거 핍박받던 루마니아 유태인이었던 남자 샘. 그의 이야기가 감동적인 까닭은 익명의 기부자여서가 아니다. 가장 필요한 순간 가장 절실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존경이나 유명세를 위한 것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을 위한 배려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기부금을 받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기부금을 받은 후손들의 이야기까지 추적해 현재 그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가지 요소가 책의 감동을 전세계에 전하고 있었다. 또한 말로하기 쉬운 세상에서 손으로 행한 작은 소중함을 전달받은 저자야말로 선조로부터 가장 큰 유산을 건내받은 복많은 사람이 아닌가 싶어진다. 드라마 "위대한 유산"에서처럼.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졌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설국]은 이렇게 시작된다. 눈이 안개처럼 몰아쳐 내리는 책의 겉표지를 보며 제일 먼저 떠올려진 것은 이 단 한문장이었다. 설국. 겨울의 일본은 그 자체가 설국처럼 느껴진다. 작품 때문이 아니라 눈때문에. 왠만해서는 눈을 볼 수 없는 지역에서 태어났기에 나는 눈이 내려 쌓이는 것을 본 적이 얼마 되지 않는다.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추위를 싫어하는 성격이나 추위에 잘 견디지 못하는 체질인 내겐 안성맞춤인 지역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눈쌓인 정경을 보게 되면 부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 부러움을 한껏 담아 [일본.겨울.여행]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료칸이 있고 눈꽃 속에 촛불을 켜 아름다운 밤풍경을 만들어내는 오타루 눈빛거리 축제가 있고, 눈에 묻힌 거리, 눈쌓인 층층의 계단, 스위스처럼 펼쳐지는 눈덮인 산악지대가 있는 일본의 겨울 풍경. 줄곳 도시로 각인되던 모습들이 교체되면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섬이지만 땅같고 밉다가 곱다가 하는 우리의 이웃나라 일본은 그동안 여러 여행책자를 통해 바라보게 만들던 세련됨을 벗어버리고 친근감과 함께 옆으로 성큼 다가앉았다. "노인의 얼굴을 한 소년"장인이 만든 고케시 인형. 그 똑같아 보이는 얼굴 안에 전통이 있고, 장인 정신이 스며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사람이 아닌 자연 환경을 통해서도 장인정신을 엿보게 만들고 있는데, 각종 마을의 눈꽃축제가 그러했다. 계속되어오는 그 축제는 마을마다의 특색이 있어, 한국인 자원봉사자들이 가득한 어느 마을의 축제나 눈 위에 알알이 보석처럼 크리스마스 트리 전구를 박아 아름다움에 취하게 만든 눈축제는 많은 볼거리보다는 그 자체를 즐기게 만든다. 추위를 싫어하는 나조차 구경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솜씨들이었다. 20대 감성에 젖어 보았던 [러브레터]나 얼마전 다시 읽은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 한류 열풍에 한몫을 하고 있는 [아이리스],[설국]의 무대인 곳들이 소개되면서 겨울 밤을 좀 더 촉촉하게 젖게 만드는 책은 마치 눈이 만든 마법을 뿌려대는 것만 같다. 읽는 내내 추위를 잊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풀어보는 어린아이마냥 신나서 구경하게 만들어 버렸으니... 비와 지진을 피해 눈과 만날 수 있는 다가오는 새로운 겨울에는 어쩌면 일본에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홀딱 반해버렸으니...
빠르게 산다는 것에서 벗어나는 길은 느리게 사는 일일까.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여전히 그 속도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일텐데...속도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것이 빠르게 산다는 것의 반대말인 것 같기 때문이다. 누구나 부유하길 꿈꾸는 세상에서 속도도 방향도 중요하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현재 내가 디딘 땅의 존재에 한없이 감사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람. 홀로 거두어 먹는 밭에서는 이웃 노인들의 권유에도 꿋꿋이 농약없이 버티어내고 사료를 걱정하면서도 개들을 품에 안고 가족처럼 놓질 못한다. 또한 그는 개가 어느날 물어죽일뻔한 새끼밴 염소를 살려 염소식구까지 끌어안는다. 자신이 놓는 순간 개는 보신탕집으로 염소는 건강식품집으로 팔려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강제윤 시인. 그는 홀로 사는 남자다. 아니 함께 사는 사람이 없는 남자다. 왜냐하면 개들도 있고, 이웃 할머니들도 있고, 염소들도 있지만 단지 그의 집에 함께 거주하는 사람을 들이지 않을 까닭이다. 이 홀로 사는 남자는 농사를 짓고 동물을 돌보고 몸에 노동을 익히며 "자발적 가난"으로 들어섰다. 부다처럼 수도자도 아닌데 자발적 가난으로 들어선 그의 인생이 기이하기만 하다. 그의 삶 앞에선 도시의 삶도, 성공의 삶도 그 빛을 발하지 못한다. 조용하면서도 평온한 삶이 주는 고요한 행복감은 그들의 삶에서는 발견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삶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삶과 비교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게 느껴진다. 시인은 소통하면서도 자유롭게 사는 삶을 터득했기에 소통없이 그저 자연으로 회귀했던 작가의 삶보다 더 풍족해보였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자발적 가난의 삶을 이어가고 있을 시인의 따뜻한 하루가 계속 전해지길 기대해본다. 책이든, 어느 매체를 통해서든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