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학교 수선재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반듯하지 않은 인생, 고마워요] 중 한 이야기가 가장 뚜렷하게 기억속에 자리잡는다. 33편의 꽤 많은 굴곡진 사연들이 소개되지만 정작 한 이야기 앞에서 모든 이야기가 멈추어졌다. 같은 영화를 봐도 나에게 감동을 전달하고 인상 깊은 대목이 사람마다 다 다른 것처럼 내겐 이 이야기가 가장 소중하게 와 닿았나보다. 가방 끈이 길어 배움이 길었고 이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다보니 이 또한 배움이라 배움의 연장선이 길어 평생이 배움의 길에서 헤어날 줄을 모른다는 그녀는 이제서야 자신의 일이 얼마나 귀한 소임임을 깨달아 가는 중이라고 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이전엔 미처 몰랐던 사회의 이면을 아이들을 통해 알게 되면서 존재의 귀중성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가난 탓에 영양 부족으로 시력손상을 입은 아이, 새 엄마에게 항문을 불로 지져진 아이, 아빠가 프라이팬으로 손을 지진 아이, 다섯 손가락이 없어 늘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디던 아이에 이르기까지 10여년의 세월동안 자신을 스쳐지나간 아이들을 대하면서 처음에는 이해를 못해 짜증과 화남으로, 사연을 알고 난 뒤엔 미안함과 안타까움과 애잔함으로 보살피게 되었다는 그녀의 사연. 그러고 보면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가져야하는 특별한 사명감 뿐만 아니라 남을 이해하고 배려해야한다는 자체가 누군가에 대해 알지 못하면 쉽게 이행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멀티플랙스가 도입되기 이전, 극장의 매표소가 고객과 막으로 단절되어 있을 때 매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가 목격한 광경이 있다. 마이크를 통해 전해지던 직원의 짜증스러움이 줄 저 뒷편에 서있던 내게까지 쩌렁쩌렁하게 전해져 동행에게 줄을 부탁하고 잠시 앞으로 이동했더니 매표구 유리틈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고 손짓을 하고 있는 한 가족이 보였다. 직원은 계속 "손짓하지 말고 말을 하시라구요. 몇시표 몇장요?"라며 하이톤으로 짜증을 내고 있었고 보아하니 가족은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인듯 싶었다. 나서려는 찰라 나보다 앞선 누군가가 메모지와 볼펜을 꺼내 건네고 그제서야 매표구 앞은 조용해졌다. 배려없던 직원의 짜증스러움에만 기분이 상했을 뿐, 누구하나도 그 긴 줄에 서 있으면서 가족을 탓하진 못했다. 살다보면, 참 불친절한 세상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불친절한 세상에서 오아시스처럼 발견되는 배려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있다. 그래서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메모지와 볼펜을 건네던 누군가의 친절처럼 초등학교 교사의 고백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어른들의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한다. 최초로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마땅할 집단인 가족안에서조차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그녀와 함께 나누게 되면서 평범한 이웃들의 감사한 인생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고 눈물이 되고 때론 웃음이 되었다. 지나고보면 고맙지 않은 인생은 없는 것 같다!
코리아 갓 탤런트의 지역예선을 보던 중 두 귀를 의심하는 장면이 나타났다. 3살때 고아원에 들어가 5살부터 혼자 살아왔다는 한 젊은이가 부르는 노래가 선물한 감동의 깊이 때문에 눈물이 절로 터져나왔다. 정작 그는 담담했는데, 심사위원들과 시청자들의 두 눈은 고장난 것처럼 터져버렸다. 주르륵. 꿈은 이렇게 외롭고 쓸쓸한 인생에게도 무언가 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전달하는가보다.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역시 그런 작품이었다. 공부도 잘하는 그들이 야구도 잘했다는 식의 잘난척 스토리도 아니고 공부만 잘하는 그들이 야구를 잘하고 싶어 고군분투하는 외인구단형 스토리 라인도 아니었다. 야구를 좋아해서 뭉쳤던 예전 멤버들이 각자의 삶에 타협하고 적응하며 살아가다가 그들 중 유일하게 모든 것을 접고 꿈을 위해 살았던 한 남자의 삶에 감동받는 이야기다. 화자이자 주인공은 예전 서울대 야구부의 멤버였던 35세 지웅이다. 아내와 이혼하고 10억짜리 집을 나와 월세 70에서 버티며 글을 쓰는 그는 인생이 급 우울해진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가 있었다. 실직에 여자에 남다른 고집까지...이혼사유 3종세트가 골고루 갖추어진 남자 재영에게 사랑하는 여자와 가정을 꾸리는 일도 뒤로한 채 2군 야구선수로 살아가는 태성의 삶은 현실성이 없는 한심한 인사의 삶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1군처럼 관람료를 내고 보는 경기의 주인공도 아니었고 100만원의 월급으로 자기 자신의 몸하나도 추스리기 힘든 삶을 살아가지만 마지막 라운드에 오른 태성을 향한 사람들의 응원은 재영을 감동받게 만들었다. 1군 평균 관중수는 1400명, 2군 경기는 10명이라는 책 속 통계는 가히 우리 국민들이 야구를 좋아하는 국민들이 맞나? 의심하게 만드는 수치이기도 했다. 사실 야구에 관심이 없이 살아와서인지 야구장에 한 번도 간 일이 없고, 야구 경기를 제대로 본 일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를 빼놓고서도 이야기는 충분히 인간적이며 매력적이어서 계속 읽게 만들었다. 14년간이나 한 남자를 기다려온 여자와 자신의 가난한 삶에 그녀를 끼워맞추기 싫어 외면해왔지만 미안했던 남자의 순정이 담겨 있고, 어제는 실수투성이였지만 오늘은 무언가 제자리찾기를 하기 위해 한 걸음떼기를 시작한 남자의 첫 발걸음이 담겨 있는 소설이 바로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이어서 야구를 몰라도 읽기엔 부담이 없는 것이 사싱이었다. 서울대를 졸업했든 서울대가 어디있는지도 모르든지 간에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꾸며 살아간다. 그 꿈이 미래를 향한 것이든, 당장 내일 이루어지길 원하는 기적이든 간에. 나는 그 중 몇몇 사람들이 꿈꾸던 내일을 구경했다. 다만 그들이 한 때 서울대 출신이며, 야구를 사랑했던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 뿐 그들과 우리는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질적이지 않고 동질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히나로 불리는 인기 이러스트레이터인 히나코가 서른이 훌쩍 넘어 돌아온 고향은 여전했다. 슈퍼에도 동사무소에도 심지어 길거리에서까지 동창들이 만나지는 작은 마을, 야쿠무라. 과거 거북이의 성격을 닮았다고 여겨지던 그녀지만 이젠 도쿄에서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 되어 마을에 나타나자 모두들 반가워하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단 한 사람. 절친이었던 사요리만 제외하고. 마을의 무당가였던 사요리는 엄마의 대를 잇지 못하고 죽었다고 했다. 즐겨 찾던 산 속에서 죽은 듯 했는데, 신의 골짜기가 불리는 그 장소는 죽은 사람들의 장소라고 말해지던 곳이었다. 시코쿠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코쿠의 야쿠무라는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사는 마을로 여겨지는 곳이었고 그 사이의 맥을 잇는 사람들이 바로 무당가인 히우라가 여인들이었다. 대가 끊긴 히우라가의 대를 잇기 위해 사요리의 엄마인 데루코는 영혼의 부활의식을 행하고, 오랜시간 식물인간 상태던 아버지는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마지막 순간 데루코를 저지하기 위해 마을로 돌아왔다. 그 사이, 학창시절에 여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던 후미야 역시 이혼하고 홀로되어 마을로 내려와 있어서 히나코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는데, 중3때 죽은 사요리 역시 후미야를 남몰래 좋아하고 있음을 우연히 알게 된 히나코는 왠지 찜찜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사요리가 주변을 맴돌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 히나코와 후미야는 신의 골짜기로 향하고 그곳에서 사요리와 마주치게 되는데.... 이야기는 괴기스럽다기보다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학공식을 풀듯 풀어가는 재미로 읽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이전에는 반도 마사코의 소설을 읽은 바 없으나 이 한 권으로도 그 이미지는 강인해서 작가가 어떤 류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있는지 절실히 알게 만든다. 정말 죽은 자와 산 자가 공존할 수 있는 땅이 있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우리는 보고 싶은 것 외의 것을 볼 투시력을 선물받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므로 다행스럽게도 그 진위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마을이 있다면 왠지 으스스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으 편견일까. 죽은 사람은 갖고 싶어하면 안되냐?는 사요리의 물음에 대한 적절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소설읽기를 끝내버렸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살아있는 인간으로서는 쉽게 내리지 못할 대답으로 남겨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