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들기 전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 몰라서 손해 보는 당신의 잘못된 보험가입
조재길 지음 / 참돌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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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는 것 뻔한데 매달 고정지출금은 눈에 보이고 그러다보니 여유롭게 무언가 쓰기보다는 매월 쫓기듯 통장정리를 해보게 되는 것이 직장인들의 삶이다. 그래서 보험은 언제나 맨 뒷전으로 밀려버리기 일쑤였는데 안들자니 찝찝하고 들자니 여유롭지 못하고 해서 내게 보험은 필요악 같은 존재였다. 언제나.

 

하지만 얼마전 20대 초반의 직장동료가 갑자기 사고로 입원을 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나이가 어려 보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못했던 그녀에겐 달랑 실비보험이 전부. 그래서 무급으로 회사를 쉬면서도 겨우 입원비만 부담되지 않았을뿐 쉬는 동안 바늘방석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돌아온지 몇주 되지 않아 또 다시 병원행을 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암 혹은 폐결핵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아놓은 상태란다. 어린 나이에 어쩌다가 이런 일들이 자꾸 겹치는지 안되고 또 안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 이쯤 되면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것도 있는지라 보험이 절실해지기 마련인데, 남의 일이 아니라 당장 내게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것이 병마요, 사고인지라 기존의 보험은 잘 선택되어져 있는지 또 새로운 보험으로 갈아타야하는 것은 아닌지 귀와 눈이 솔깃해져 버렸다. 그래서 [보험 들기전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손에들고 소읽었을망정 외양간 고쳐보자는 심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귀가 트이고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라는 옛말도 너무 오래되어 낡아진 것인지 책은 페이지페이지마다에서 모르면 손해보고 살게 된다는 것을 뼈져리게 지적해주고 있었다. 돈쓰고 바보되는 삶. 그런 삶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 약관보기조차 귀찮아했던 지난날들을 뒤로하면서 반성과 후회대신 새로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애벌읽기를 끝낸 책을 재벌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비과세 보험부터 교육보험, 연금보험에 이르기까지 왜 똑똑하게 따져봐야하는지에 대해 알려주면서도 책은 가르치거나 강요하지 않아 좋았다. 선택할 수 있도록 많은 정보를 주면서도 필요성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보험 관련 서적들이 독자에게 멘토화 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그들이 얼마를 버는지에 대한 언급은 필요치 않아 생략하기로 하고 나는 독자로서 그리고 필요성을 느낀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내게 필요한 것들을 다시 읽고 또 다시 읽으면서 꼼꼼히 따져보기 시작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유익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주말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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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와 철학자들 클래식 보물창고 16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율희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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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와 철학자라....

이처럼 안어울리는 조합이 또 있을까. 말괄량이라 하면 유쾌한 이미지지만 제멋대로이고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 여자아이를 뜻하며 제일 먼저 떠올려지는 건 어쩔 수 없이 "삐삐"다. 그런 반명 철학자라고 하면 고뇌와 사색의 대가들이면서 쉬운 말도 어렵게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그들에게는 인생의 고비고비가 화두이며 학문일텐데...이런 단어의 조합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소설을 읽기 전에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소설은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그 스콧 피츠제럴드가 아닌가. 난감했다. 대략-.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읽으면서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으므로 다음에 찾게 된 작품은 좀 쉽게 읽혀질 것들을 골라봤는데 그 첫번째가 바로 8편의 단편이 수록된 [말괄량이와 철학자들]이었다.

 

일제시대에서 해방기 사이. 자유연애와 신여성이 등장하고 많은 사상들이 걸러지지 않은 채 마구마구 쏟아져 나와 혼돈을 주었던 우리네 그 시기처럼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속에는 그래서 득도 있고 실도 있다. 말괄량이로 대두되는 신여성 플래퍼의 당돌함이 도발적으로 느껴지는 까닭도 그 배경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그래서 사색과 고뇌가 한층 더 우울함의 색채를 풍기는 것도 그 이유 속에 담겨져 있다.

 

재즈의 선율이 클래식과 다르고 팝과 다르지만 그 질척함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배경을 이해하고 나면 이 작품 속 이야기나 등장인물들의 매력도 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시대는 이 시대로, 인물은 인물대로 그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짧은 길이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어떤 장편 속 인물들보다 애정을 담뿍 쏟으며 읽어낼 수 있었다.

 

비록 탐한 시간은 짧았다. 하지만 잠시 그 시간을 살아본 듯, 그들 속에 어우려져 그 배경 속에 녹아난 느낌으로 읽을 수 있어 좋았던 소설이 바로 [말괄량이와 철학자]들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내야했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플래퍼처럼?마샤처럼?버니스처럼? 아마 살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겠지만 상상해보고 싶어질만큼 매력적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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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수업 -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창작 매뉴얼
최옥정 지음 / 푸른영토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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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면 같은 읽을거리라도 발효식품 같은 책이 있는가 하면, 레토르트 식품 같은 책도 있고 인스턴트 같이 읽혀지는 책도 있다. 그 중 최옥정교수의 [소설수업]은 발효식품 같은 책이었다. 처음엔 작법서인줄 알고 읽기 시작했지만 플룻의 3단 논법, 감정의 정리법, 갈등요소에 대한 직격탄격의 가르침은 없었다. 작법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작법서보다 작법을 위한 적절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지침서였고 창작을 위한 사람들을 위한 매뉴얼북이었다. 흔해빠진 작법서들 속에서 공통적으로 눈에 띄던 요소들만 보던 내겐 새로움이었고 참신함이었으며 메모할 것들이 수두룩한 즐거운 놀이북이기도 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정말 아이같은 마음으로 눈을 크게 뜨고 눈동자를 굴려가며 읽어댔다.

 

- 다른 모든 직업을 제쳐놓을 만큼 절실하게 작가가 되고 싶은가?

- 글쓰기에 1만 시간을 투자할 의지와 의욕이 나에게 있는가?

- 작가로서 자리 잡을 때까지 겪어야 하는 고독과 가난을 견딜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져볼 수 있도록 되묻는 저자의 물음은 메아리가 되어 내 가슴을 두드렸고 "열 번 시작하지 말고 한 번 시작해서 완성하고 다시 또 새로운 소설에 도전하라"는 가르침은 그래서 두툼한 손으로 등두드려주는 위안이 되어 남았다. 어떻게 써야되는지 막막할 때엔 작법서를 보면된다. 하지만 쓰고자 하는 마음의 초심을 잃어버렸다면, 이대로 좋은가? 되묻고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어진다. 내게도 도움이 되었으므로 분명 그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군데군데 인용된 글 속에서도 좋은 표현들을 찾아보며 군침을 흘려댔다. 가령 "연필이 하는 말을 따라다녔다"라는 표현이나 "관계를 부수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적절하면서도 탐나는 표현이었다. 나는 책상앞에 앉아서도 찾아내지 못했던 그 표현들을 어느 누군가는 찾아내 그의 글 속에 담아냈기 때문에 무한한 부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물은 99도에서 끓지 않듯이 언젠가는 누군가가 부러워할 표현들을 나 역시 찾아내게 되지 않을까. 그 믿음을 각성시켜주는 멘토링한 말들이 글로 담겨 이 책 한 권에 수록되어져 있었다.

 

작가란 무릇 많이 관찰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야한다고 했던가. 글쟁이로 살기 위해, 글밥을 먹기 위해, 그 일이 아니면 안된다는 처절함을 각성했기에 나는 오늘도 책상에 앉아 메모해둔 것들을 뒤적이며 옆에 둔 [소설수업]을 지긋이 응시하고 있다. 어느 순간 또 멈추게 되거나 회의의 순간이 오면 가차없이 이 책을 펼쳐들 요량으로. 그 순간순간 당근이 되고, 채찍이 되어줄 이 책은 이미 내겐 소리없는 멘토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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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내려놓음 - 소요유逍遙遊에 담긴 비움의 철학
융팡 지음, 윤덕노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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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 욕심의 노예가 되면 사는 것 자체가 피곤해진다

       욕심을 버리면 인생이 즐겁다

 

 

이 한 문장의 발견만으로도 나는 이 책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믿는다. 좋은 인연이 비단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기에 적절한 시기에 마주친 좋은 문장은 내게 약이되고 삶의 지표가 되고 좋은 친구로 남았다. 언제나 그랬다. [장자의 내려놓음]은 이 한문장 뿐만 아니라 의지가 되는 여러 문장들로 내 눈을 즐겁게 하고 심장을 튼튼하게 만든 내 마음의 양식서다. 메모한 페이지만 메모노트에 3장이 넘고 친구에게 좋은 구절을 카톡으로 날려준 것이 일주일째다.

 

밤 꼴딱 새우며 읽어댔지만 사실 진도는 그리 많이 나가질 못했다. 읽다가 메모하고 사색에 빠지느라 제진도만큼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마 누가 책은 빨리 읽는 것이라고 재촉댄 것도 아니기에 나는 순풍에 돛단듯 세월아~ 내월아~하면서 여유롭게 읽어댔다. 그래서 하루 한 페이지를 읽어도 배부르고 두 페이지를 읽어도 행복했다. 읽는 내내.

 

책은 가르침을 남기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책은 읽기 불편하다. 그런 의미에서 [장자의 내려놓음]은 장자의 사상을 정리하거나 해석해놓은 것이 아니라 그저 이런 좋은 말들이 있었네~라고 귀에 흘려주어 내것화 화는데 거부감 없이 쉬이 읽을 수 있었다.

 

P37  "지인"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신인"은 공을 자랑하지 않으며

        "성인"은 자신의 이름조차 드러내지 않는다

 

라고 했던가. 이 부류안에 들게 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눈앞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하거나 남에게 손해를 주려 일부러 계산을 놓고 살지는 않았기에 반드시 고수해온 원칙을 제외하곤 이기겠다는 호전적인 자세를 낮추며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할 지향점들을 다시 자가 점검할 수 있어 좋았다.

 

현명하게 사는 길은 어렵다. 하지만 생각치 않고 바르지 않게 사는 일은 양심이 괴롭다. 그래서 좀 어려워도 맘 편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쪽을 택하고 싶어졌다. 책을 읽고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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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정 사랑에 살다
최정미 지음 / 끌레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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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가 있다.

신분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며 선택의 방식도 다른 두 남자가...

이들이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데, 한 남자는 그 여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버렸으며 종국엔 자신의 생명까지도 갖다 바쳤다. 하지만 또 다른 남자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삶으로 데려와 나라를 뒤흔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녀를 버렸다.

 

조선의 왕 숙종과 청국의 거상 치수의 사랑법은 이렇게 달랐다. 한 여인을 사이에 두고도.

 

여인의 이름은 장옥정. 헨리 8세가 사랑했던 천일의 여인 앤불린처럼 6년을 사랑받았던 희대의 요부, 장희빈이 바로 그녀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만을 전하듯 우리는 장희빈의 한 면만을 봐왔다. 딱히 다르게 봐보려고해도 그 편견의 늪이 깊어 역사는 그녀의 긍정적인 면을 바로 봐주지 못했다. 그런 그녀를 한 드라마에서 직업의식이 투철하고 옷을 잘 짓는 여인의 모습으로 재조명해냈다. 하지만 원작을 읽으면서 나는 패셔니스타 왕을 보필하는 패션 디자이너 장옥정의 모습보다는 한 남자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 목숨까지 툭툭 털어내어놓은 여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과유불급. 과연 넘치면 모자람만 같지 못하다지만 이제껏 그녀의 이름 뒤에 붙여졌던 꼬리표들은 사랑이 과해서 투기에 넘치는 여인의 그것이었다면, 소설 속 그녀는 넘치지 않을만큼의 사랑을 지녔던 것이 달랐던 것이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드라마 원작이라서 읽기 시작했다. 그 원작자가 충무로에서 시나리오를 쓰는 이라 드라마 대본까지 손수 집필한다길래 원작 소설과 비교해가며 읽어보고 싶었고 약간은 의아한 캐스팅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기에 더 궁금해졌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드라마야 어찌되었든 간에 원작만으로도 그 읽기의 재미는 충만했으며 한 여인의 삶의 흐름을 이해해보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소설책이었다.

 

다르게 보기. 세상을 살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한 면만 보고 그를 다 이해했다고 치부하기엔 인생은 너무나 입체적이다. 이제껏 우리는 너무나 평면적인 이해만을 하며 살아왔지 않았나~?싶어졌다. 그래서 역사속 소설이건 현실 속 이웃이건 간에 입체적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이해하려는 욕심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라고 생각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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