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달, 제주 - 월별로 골라 떠나는 제주 여행
양희주 지음 / 조선앤북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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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멀리서 보면 아름답다"

 

정말일까. 푸른 섬 제주는 그 따뜻한 온기 때문에라도 꼭 살아보고 싶은 땅이다. 육지에 사는 내게 섬은 언제든 훌쩍 떠나 돌아오지 않아도 좋을  곳 같아서 아주 어린시절부터 동경해오던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껴두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여권을 챙겨 먼 나라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면서 가까운 곳 제주는 쉽게 발걸음하지 못했다. 혹여 누군가가 다녀왔다고 하거나 누군가가 가서 살 땅을 사 두었다는 소식을 전해오면 "부럽네"라고 말했을 뿐.

 

얼마전 시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친구에게 카톡문자를 보낼 적이 있다. 이렇게.

"뚜껑은 열어봐야 알 수 있고 사람은 겪어봐야 알 수 있노라"고. 살아보니 그랬다. 나이 서른을 넘으면서 내 나이 세는 법을 잊어버렸듯 나는 흐르는 삶이 아닌 멈추어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매년 깨닫게 되는 "어른으로서의 성장점" 같은 것은 있어서 가끔 누군가에게 조언아닌 조언을 해줄만큼은 성숙된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긴 한가보다 싶다. 그런 내가 여전히 떠나, 발 디디고 싶은 제주이기에 [열두달, 제주]라는 책이 보이자마자 얼른 손에 거머쥐었는데, 생각보다 꽤 두꺼워 며칠을 나누어 읽으며 즐거워했고, 페이지마다의 내용이 내가 원하던 것이라 신나서 읽으며 메모한 페이지 장수가 10장이 넘는다. 꽤나 양질의 여행서인데, 여행을 목적으로 한 내가 읽어서 여행서이지 일상을 살고 있는 누군가가 보았다면 '삶의 지침서' 내지는 '우리동네 맛집,멋집,즐거운 장소'가 소개된 가이드북 정도로 읽히지 않았을까. 사람은 이렇듯 제 입장에 따라 책 한 권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남자는 봄여름가을겨울을 함께 나봐야하고 계절이 지나도록 사귀어 봐야한다는 책의 어느 구절을 보며 오랜 친구 한 녀석이 떠올려졌다. 여자친구가 또 바뀌었다는 말에 대뜸 "이제 그만 정착하지!"라고 그랬더니 봄~겨울까지 모든 계절동안 지켜봐야 그 사람의 진면목을 조금쯤은 알 수 있는데 그러는 동안 맘에 드는 여자가 없었노라 라고. 그 녀석은 4계절동안 변함없는 여자를 원했던 것일까. 아님 4계절동안 똑같지 않아 재미난 팔색조 같은 여자를 원했던 것일까. 여전히 고르고 있는 녀석이라 그 해답을 아직은 알지 못하겠다. 녀석과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이 또 있구나 감탄하면서 나는 꼼꼼히 읽던 프롤로그를 지나쳐 6월로 껑충 뛰어 6월의 제주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사실 5월의 제주 여행을 꿈꾸어 보았는데, 좋아하는 수국이 6월에 가득하다는 책의 소개로 인해 6월부터 구경하기 시작했던 것. 떠나보지 않아 몰랐던 제주 여행의 팁은 이렇듯 책을 쓴 저자의 충고로 다시 채워진다.

 

이렇듯 이 책은 순서를 따로 정하지 않고 보아도 좋을 책이다. 추리소설처럼 뒷부분부터 본다고 스포가 될 걱정도 없고 듬성듬성본다고 해서 딱히 해가 될 일도 없다. 다만 시간 날때마다 펼쳐들고 자주자주 눈에 익혀서 나만의 여행코스를 짜 보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본다. 나는 현재의 제주도, 과거의 제주에도 관심이 참 많다. 생멸치를 '멜'이라고 부르는 그 어태도 좋고 걷기 싫어하지만 3대 계곡이라는 탐라계곡을 걸어보고 싶어지기도 하다. 제주니까.

 

그저 편하게 다녀오고픈 장소가 아니라 사람겪듯 겪어보고 계절 지나듯 오래 깊이 사귀어보고 싶은 땅이 바로 제주니까. 그 녹담만설에 올라 설문대할망이 내려보았을직한 그 높이를 나 역시 내려다보며 수많은 상상을 해보고 싶게 만든다. 열두달, 제주는 그 모습이 모두 달라 참 좋다. 여행서로 시작했지만 그 언젠가는 잠시잠깐만이라도 제주의 주민이 되어 이 책을 동네탐방용으로 사용해 보고 싶은 열망을 들끓게 만든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머리는 즐겁고 가슴은 뜨거웠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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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에 대한 변명 - 이야기꾼 김희재가 전하는 세월을 대비하는 몸.마음 준비서
김희재 지음 / 리더스북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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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마돈나처럼 늙어가도 좋을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핫아이콘이니까. 섹시하고 자신감있고 멋진 여성을 대표하며 명성과 부와 행복을 함께 거머쥐고 산다.

 

오드리 헵번처럼 나이 들어가도 좋을 것이다. 개인적인 공허함과 쓸쓸함을 그리고 지난날 아버지의 나치활동으로 인해 상처받았을 사람과 세상을 향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마음과 시간을 보태는 일.

 

아리카와 마유미처럼 30대,40대를 보내도 좋겠지!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말에 발목잡혀 남이 보기 좋은 삶을 살기보다는 그 적령기에 대한 부담감을 벗어던지고 나의 기준으로 삶을 살아내는 용기. 그리하여 20대에도 하고 싶은 것을 했고 30대에도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40대 역시 하고 싶은 일들을 위해 눈뜨는 아침을 맞는 그녀.

 

어느 쪽도 멋지게 느껴진다. 꼭 브랜드 커피를 마시고 명품을 소유해야 우아하고 품격있어 보이는 일이 아님을 나는 이제 알만큼은 세상을 살아왔다. 자, 어느 쪽일까. '나도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쪽은-. 이야기꾼들의 생각은 어떨까. 영상시나리오과 교수이자 올댓스토리의 대표이사인 김희재 이사는 <실미도>,<한반도>를 집필했다. 그런 그녀는 나이듦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까. 어린시절 폐결핵으로 인해 끊임없이 한 쪽 귀에서 고름이 흘러나와 고통스러운 치료기간을 보내야했던 기억으로 인해 병원을 아주 싫어하게 되었다고 회고하는 그녀는 숨쉬는 것조차 힘들게 느껴지던 어느날 동네 허름한 한의원에서 또 다른 치료를 받게 된다.

 

p 7  그렇게 애쓰면서 혼자 우산 펴고 살지 않아도 된다

 

는 말 한마디였다. 하루를 마흔의 시간처럼 살았다는 그녀의 말이 내 마음도 울리고 있다. 얼마나 힘든 고통의 나날들이었을지 겪어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그 한마디.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은 공평하지 않아도, 그 시간이 남기는 흔적만큼은 공평한 것처럼  내게도 그녀에게도 그간 겪어온 세월의 흔적이 몸에 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 딱 누군가의 이야기라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뽀글머리가 더 편한 중년의 주부, 남성성보다는 여성성이 더 앞서는 나이가 되어버린 가장의 눈물샘, 젊을 때는 나도 이러지 않았다고 외치는 노인들, 그들 모두의 일상이 담겨 있다. 때로는 구질구질하게 때로는 평범하게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슬픈 이 이야기들은 젊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세월을, 늙어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마음은 시려도 시선은 따뜻하게 만든다. 이해할 수 없는 어제를 이해하게 만드는 오늘. 이 책과 함께 나는 나이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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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왕의 꽃 2 블랙 라벨 클럽 9
이수연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태블릿 pc가 있고 엘리베이터 탑승으로 위,아래층을 오간다. 뭐 특별할 것 없는 모습이다. 대한민국 어딜가나 이 정도는 있으니까. 그.러.나, 이 배경이 귀신들이 바글바글 살고 있는 귀성의 모습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귀신들의 왕이 태블릿 pc로 업무를 보고, 죽은 자들 중 극악무도한 이들이 사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데 두레박 엘리베이터를 타고 간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세상에서처럼 엘리베이터 외 비상계단도 존재한다. 이 이야기 어떻게 상상하면 좋을까.

 

판타지가 다른 종족간의 이야기를 펼치거나 마술처럼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져온 것처럼 몇년간 한국형 판타지도 한국의 정서를 담았다고는 하지만 일상과는 동떨어진 배경들이 많이 그려지곤했다. 몸 속을 탐험한다든지, 무속 신앙을 활용하거나 서양의 판타지처럼 마술, 뱀파이어,여러 신화를 착용해왔다. 하지만 <귀왕의 꽃>은 남달랐다. 도깨비는 몇몇 책 속에서 본 일이 있지만 캐릭터들이 숫제 한류다. 민화 속 설화 속에서 들어봤음직한 한국형 귀신들이 가득가득한데도 전혀 무섭지는 않다. 로맨틱코미디의 형식으로 읽혀져서 그러하리라.

 

여주인공은 발랄하다. 18세의 어린나이도 나이지만 용감하고 씩씩하다. 캔디형의 도화는 주어진 운명 앞에서도 페르세포네처럼 원래의 세상으로 보내달라고 졸라대지 않고 여기저기 탐험다니고 무조건 믿어주고 돕는다. 약간은 싱겁고 재미없는 캐릭터가 될 법했는데, 아르미안의 네 딸들의 에일레스처럼 어둡고 침침하지만 아름다운 남자, 귀왕이 그 가벼운 무게를 누른다. 그래서 무게 중심이 맞아졌다. 뿐만 아니라 어느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는 감초 역할을 맡은 이들이 꽃미남들이다. 아비 덕분에 낙하산처럼 상제가 되어 천방지축 사고뭉치로 전락한 옥황상제, 의리를 지키려 했으나 도리를 다해야해서 난감한 염라대왕, 도화의 두 오빠도 훈남들인데, 누이의 복수를 위해 세월을 갈아왔다는 태유까지. 퓨전 사극 속에서 보아왔던 꽃미남들이 가득한 <귀왕의 꽃>. 드라마화 되어도 훈훈하지 않을까.

 

나는 예영의 환생인가? 아니면 예영인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던 도화는 귀성에서 할머니와 마주했다. 아주 어려지고 예뻐진 모습의 할머니를. 귀왕으로부터 저주받아 매년 인신공양을 해야했던 저주받은 인간가문 "금"가에서 바쳐진 아이들을 천상도, 지옥도 아닌 도원향이라는 새로운 세계 속에서 안전하게 보살펴왔던 귀왕. 이 사실을 몰랐던 금가에서는 숫제 죽여서 아이들을 바쳐왔는데 그 사실을 안 도화의 할머니 역시 죽임을 당해 도화원에 와 있었던 것. 그녀가 예영의 메시지를 손녀 도화에게 전하기 위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야기는 끊겨 있다.

 

이상하다 싶었더니, 역시나 3권이 출간 예정이란다. 할머니는 도화에게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도화는 정말 예영인지.....!3권을 읽게 되면 나머지 이야기들이 밝혀지겠지만 1, 2권 만으로도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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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왕의 꽃 1 블랙 라벨 클럽 9
이수연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출생의 비밀 부모가 바뀌고 집안이 바뀌는 것으로는 너무 식상하게 느껴지는 시대다. 자신도 몰랐던 비밀이라면 모름지기 이정도 스케일은 되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금씨 가문의 도화는 오빠가 둘이다. 부모님 타계 이후, 큰 오빠가 가문의 수장이 되었다. 이 정도 줄거리 속에는 별다른 갈등요소가 없다. 그래서 이야기는 더 진해진다.

 

옛날 옛날...

할머니 무릎 베고 들었던 그 이야기 속에는 귀왕 백야가 등장한다. 귀신이 세상의 주인이었을 시절, 낮처럼 밝았으나 밤처럼 어두웠던 시기, 하늘과의 약속을 지킨 귀왕은 인간들을 흉포에 울부짖고 말았다. 도깨비 방망이를 훔쳐내서 도깨비를 죽이고 귀신들의 안식처를 없애고 자신들의 터전을 위해 귀신들의 다른 삶을 인정하지 않는 몰인정한 인간들의 만행에. 그 날뛰던 귀왕을 잠재우기 위해 사람들은 인신공의를 하기 시작했고, 저주 받은 금씨 가문의 딸 도화는 어느덧 제물의 나이인 18세가 되어 자랐다. 그리고 어느날 통통 뛰면서 나타난 장난꾸러기 야광귀에게 한쪽 신발을 빼앗기면서 귀왕과 만나게 된다. 운명. 그들의 운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존재와의 로맨스는 금기로 인해 더 애틋하고 달달해지는데 과거 '트와일라잇' 속에서는 뱀파이어와 인간이, 애니메이션 '늑대아이'에서는 늑대와 인간이. '별에서 온 그대'는 외계인과 인간이...이렇듯 상상을 초월하는 운명적 만남이 우리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고 설레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귀왕의 꽃>에서는 밤의 꼬리에서 태어나 고귀한 왕이 된 귀왕 백야와 저주받은 인간가문에서 태어난 발랄한 도화의 사랑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들 외 철딱서니 없는 옥황상제와 징그러울 것 같으면서도 초미모를 지녔을 법한 이무기 세 자매, 고지식하지만 충성심이 대단한 이문, 귀여운 단짝 아귀와 동동이까지. 살아있는 캐릭터들이 장면장면을 마구마구 상상하게 만들어서 읽는 내내 즐거운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리고 가장 좋은 점은 아주 쉽게 쓰여졌다. 술술 읽히고 막힘없이 책장이 넘어간다.

 

우리 나라에 어떤 귀신들이 살았는지, 창조신화는 어떠한 내용이었는지 사전지식이 전혀 없어도 주석 없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다. 설화와 전설이 만나면서 어떤 시너지 효과를 냈는지, 한국형 판타지가 또 하나의 한류 바람을 일으킬 준비 중인지 아닌지 독자인 우리가 판단할 수 있게 만드는 스토리 라인으로 짜여져 있어 나는 <귀왕의 꽃>에 무한 기대를 하고 있다. 단 1권만 읽었으면서도.

 

2권에서는 그 결말이 어떻게 종결지어질지 사뭇 궁금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어떤 결말이든 맘에 들 것만 같은 기대심리로 2권을 펼쳐들고 있다. 딱 한 장만 읽었는데 멈춤 없이 읽고 싶을만큼 즐거워졌다. 2권을 읽고 나면, 또 어떤 마음이 동해~서평을 올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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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부자들 - 나답게, 폼 나게 살아온 열 두 조르바를 만나다
조우석 지음 / 중앙M&B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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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조르비즘이라는 신조어가 낯설지도 모르겠다. 30년간 신문사에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저력 있는 저널리스트인 인터뷰어 조우석은 조르바를 잡스과로 분류하고 있다. 항상 목말라하고 자신이 찾아낸 일에 몰두하고 집중하면서 자신의 목소리에 충실했던 사람들. 그런 이들을 조르바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속에는 총 12명의 조르바과 인간형이 소개되고 있다. 이 열두 명 모두의 공통점이라면 고요한 삶의 태도라고 언급하면서 이들이야말로 가짜 위안이 범람하는 요즘 세상에 등장한 열 두 사도라고 일컫고 있다. 서문에서 이쯤 밝히면 너무 거대한 것이 아닐까? 책을 읽기 전에 언뜻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이만큼이나 극찬해놓은 열두 명이 과연 누구누구인지 궁금해졌다. 몇명이나 알고 있을까? 나는-.

 

국민소리꾼 장사익.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그는 전국민속경연대회 대통령상을 받은 사람이었다. 노래가 아닌 태평소 연주자로. 그러다가 '효재처럼'의 그 효재의 남편인 피아니스트 임동창의 주선으로 노래를 부르게 되어 나이 마흔다섯에 가수로 데뷔했단다. 여기까지만해도 놀라운데 그 내공은 과거 그의 고생스러운 행적과 맞닿아 있었다. '순대 속 같은 세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힘들었던 과거터널을 거쳐온 그는 삼봉마을 7남매 중 맏이로 세상에 나왔다. 상고 졸업 후 가구회사, 무역 회사, 독서실 운영, 카센터 사무장까지 총 15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 살았단다. 그래서였을까. 우리가락만 불러댈 것 같은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파바로티의 곡을 불러 목청을 가다듬는단다. 이쯤되면 이 사람, 이럴 것이다! 라는 일반적인 편견이나 감은 없어지고만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기 때문에.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지만 외모만으로는 단연 장사익과 버금갈만큼 오리무중인 사람이 전방위 예술가 현태준이다. 전혀 이 인물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보다가 손가락이 멈추어진 것은 0.1t인 이 거대한 체구의 남자가 캐릭터 문구, 생활용품아 가득한 공간 안에서 두꺼운 검은 뿔테를 낀 채 무언가를 보며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근엄하기로 치면 '두목님'이라 불려도 좋을 외모지만 그가 수집하는 것들은 의외로 아기자기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뼛속까지 어린왕자라고 했다. 오늘이 있기까지 세상의 시선을 얼마나 넘어왔을지 안봐도 보이는 구석이다. 아줌마들 중 안티가 많다고 과감하게 밝히는 그는 어딘지 모르게 약간은 오덕후의 느낌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마흔을 훌쩍 넘어선 나이. 체면을 차리기보다 자신답게 살기를 선택한 그는 여전히 '소년 감성'으로 살고 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던 두 남자와 달리 시인 문정희는 대중 앞에 서 있다. '한국의 사강'으로 불릴만큼 천재적인 면모를 세상에 드러내며 살아왔지만 '고독해져야 시를 쓸 수 있다고 '역설한다.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 부모슬하를 떠나 공부하러 더 큰 도시로 나오면서 고독과 슬픔을 이해했다고 한다. 무언가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상황을 문학으로 승화 시킨 그녀에게 '시'는 '업' 이었을까.

 

또 한 사람. 대중과 호흡하며 사는 남자가 있다. 그런데 이 남자를 부르는 말들도 정말 독특하다. 미술계에서는 '기인'이라 부르고 건축계는 '졸부'라고 부르며 현대미술계에서는 '파워 컬렉터'로 지칭되는 (주)아라리오 그룹의 회장인 김창일. 이미 20대 청년시절부터 지방 버스터미널 임대사업을 시작했을만큼 비즈니스감각이 탁월했던 그는 10년만에 천안 터미널 전체의 주인으로 급부상했다. 사실 그는 학창 시절 이미 주식으로 큰 돈을 만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당시 아파트 한 채가 1000만원이 채 안되던 시절이었는데 2500만원을 손에 쥐고 있었으니 그의 배팅실력은 그 시절부터 이미 타고난 것이었나 싶어진다. 마치 영국 버진그룹의 대표처럼 여기저기 재미난 것들에 관심을 두고 있으니 과연 김창일 회장은 '기인'으로 불릴만하다 싶어진다. 이쯤되면.

 

한대수한대수할때도 나는 그가 정확하게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했다. 세대가 달라서일까. 대한민국 근.현대 인물에 대해 무지해서 일까. 그런 그를 오늘 똑바로 알게 된 것은 이 책을 펼치고 나서부터였다. 핵물리학자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열 살 때 미국 유학을 떠났으니 유복하게 태어난 것임은 틀림이 없는데 수의학을 전공하다 돌연 포크 가수의 삶을 살게 된 까닭은 대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을까. 핵물리학자인 아버지가 돌연 실종되고 10년이나 지난 후 찾았을땐 기억이 모두 지워진 채 백인여자와 살고 있더란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아버지가 사라지고 어머니도 재혼해버려 어린 대수는 연세대를 공동설립한 할아버지의 손에서 키워졌는데 남다른 외로움이 뼛속부터 잠재되어 있다가 음악으로 폭팔했던 것이 아닐까.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해본다. 앞서 문정희 시인이 '고독해져야 시를 쓸 수 있다'로 말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책이란 게 그렇잖아요. 누구에겐 명작이지만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고요." 차분하고 조용하게 말했을 배우 김미숙은 엘레강스하면서도 아름답게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거리를 두고 살면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현명함. 그녀의 현명함을 닮고 싶어졌다. 오늘은 문득.

 

반대로 리무진을 타고 다니던 대표가 돌연 시인으로 살겠다해서 충격을 준 일이 있다. 시인 류근. 알고보니 그는 김광석의 노랫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쓴 사람이었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하룻밤 새 노랫말을 쓰던 대학생은 어느새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그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사나? 했더니 어느날 벼락치듯 그 생활을 청산하고 둥지같은 투박한 시의 고향으로 되돌아왔다. 어쩌면 그는 이외수 작가의 추천사에서 언급된 것처럼 "이 척박한 땅에 살아남은 개 같은 시인(?)"일지도 모른다. 파격적인 추천사지만 그답다 싶다. 자칭 독자와 직거래 하는 시인이라고 웃음 섞인 농을 던지는 그는 말그대로 평론가들과  어떻게 소통할까 연구하며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글쟁이가 아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살아숨쉬는 활어같이 느껴진다. 휴대폰 벨소리 사업으로 대박났지만 그는 돌아왔다. 활어처럼 연어처럼.

 

열두 명의 인물 중 일곱명의 이야기만 서평에 남기기로 했다. 나머지 인물들에 대한 메모는 다이어리에 고스란히 옮겨져 있다. 서평을 읽고 "이 사람에게 이 책은 이러이러했구나"하면 되지. 책을 몽땅 소개해서 책 읽을 필요를 없애버리는 일은 하지 않으려는 생각 때문이다.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느낌은 다르다. 같은 사람을 만나도 내게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지 남에게 어떤 사람인지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나란 사람, 그런 사람이기에 정경화/김홍탁/김아타/정목/김열규 의 인터뷰도 화선지에 먹을 뿌려놓은듯 스며드는 속도가 녹록치 않다. 거뭇거뭇하지만 깊숙이 파고든다는 얘기다.

 

저자가 기억하는 (故)최윤의 선생의 행복한 푸념처럼 "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끝도 없이 나타나는 거죠? 세상에 감동 아닌 사람이 없어요"라는 푸념을 나도 입에 달고 살게 되었으면....좋겠다!! 싶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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