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의 진실 - 조선 경제를 뒤흔든 화폐의 타락사
박준수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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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연암의 소설 속에서 보아왔던 매점매석이 서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나 [쩐의 전쟁]에서 보여준 돈의 흐름도 속에서도 우리는 돈 자체 보다는 그가 지닌 가치에 대해 쫓고 있었다면 [악화의 진실] 에선 당백전 자체부터도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당백전 한 닢. 고리짝적 동전 하나가 소설의 발단이 될 수 있다니, 놀랍기도 하지만 당백전 속에 담긴 인간의 욕망과 그 속에 스며들어버린 그들의 삶은 굵은 선이 되어 소설의 줄기를 형성해냈다. "화폐의 타락"이라는 무거운 주제 속에서 그 숨은 비밀을 밝혀내는 것도 재미의 요소였지만 당백전 발행으로 급변하는 조선 사회의 사회생활을 엿볼 기회는 그리 흔치 않은 일일 것이다. 주로 왕조에 그에 따른 인물들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이 이루어지는 사극 속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돈의 역사와 함께 흐르는 인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읽은 페이지가 쌓여가면서 스토리 속 이야기들이 옥수수알마냥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작가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면서 써내려갔을지 눈 앞에 고스란히 보였다. 역사적 고증없이 역사소설에 발을 담갔으랴 만은 그래도 이토록 문장문장에서 공을 들였을 흔적들이 찾아지는 책을 읽게 되는 것이 몇년만인지 모르겠다. 

소설의 소재가 된 당백전은 분명 실패한 화폐전이다. 상평통보 같은 양화에 비해 악화로 결정되어 발행한지 채 1년도 되지 못한 시점에서 발행이 중단되는 비운도 겪었다. 게다가 화폐로써의 가치가 떨어지자 놋그릇을 만드는 재료로 전락하기에 이르른다. 그로인해 누가 손해를 보고 피해를 본 것일까. 두말할 나위없이 가장 타격을 받은 층은 양반이 아닌 서민들이었다. 화폐로서 지불교환 능력을 상실한 당백전을 폐하면서 통용마저 금하다보니 백성들의 손에 쥐어진 그 화폐는 어느 순간 구리 조각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십원짜리 동전이 변할때도 1원짜리가 사라질때도 5만원권 신권이 나타났을때도 우리는 그저 새로운 화폐개혁이 일어나나 보다 정도만으로 구경하고 있지 않았던가. 과거 당백전의 폐혜를 읽어나가면서 나 스스로도 사회 전반, 경제 전반의 변화에 너무 무심하지 않았었나 싶어졌다. 변화에는 분명 좋든 나쁘든 결과가 뒤따르는 법인데, 현재의 화폐 변화를 뒤따른 그 변화에는 눈을 가린 채 그저 물 흐르는 대로 비떨어지는 대로 좋은 것만 보고 살았던 것은 아닌가 싶어져서 반성의 물고를 트고 있다. 

[화폐의 진실]은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복습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 과거의 일이 답습되어 우리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을지 모를 수 많은 징조를 가벼이 여기지 않도록 하는 것. 그저 동전 하나에 불과한 돈에 관한 역사소설로 읽힐수도 있겠지만 좀 더 파고들면서 읽게 되면 우리는 이 소설의 어마어마한 무게에 눌릴지도 모르겠다. 

화폐의 타락사를 살펴보았지만 그 화폐의 타락이 누구의 타락을 가지고 왔는지도 눈여겨봐야할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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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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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5년.
인도인 남자친구가 집안 살림과 함께 어느날 아침 사라져 버린 사건을 겪다.
이런 황당 시츄에이션을 겪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남들이 안 겪는 특이한 사건을 겪게 되는 것은 경험상 행운일까. 불행일까. 

결국 열 다섯 봄에 등진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는 일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표현이 엄마의 집에 "실례"를 했다가 아닐지. 10년 만에 들어가는 집의 감흥은 그다지 달콤해보이지 않았다. 애인과 전재산을 몽땅 함께 잃어버린 주인공이 엄마의 집에 들어가 살면서 소통의 도구로 문자를 골랐다는 것도 평범한 일이 아니었지만 이런 딸에게 맞춰 종이에 답장을 써두는 엄마도 정상적이진 않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고 말았다. 

엄마의 창고를 빌려 달팽이 식당을 개업하고나서는 손님들과의 대화도 필담노트를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연의 손님들이 식당을 거쳐갔다. 그 사이 평생 그리워한 첫사랑의 남자의 부인이 되었던 엄마는 겨우 몇주만에 저세상으로 가 버렸고 딸은 필담용 노트를 관 속에 넣는다. 이건 또 어떤 의미가 있는 행동일까. 엄마와의 이어지는 소통? 엄마와의 화해? 

딸은 왜 엄마와 아웅다웅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책 속 모녀도 엄마의 죽음 뒤에 발견된 편지를 통해 서로의 얽혀있던 실타래를 풀어내고 있었다. 제일 좋아하는 대상이면서도 가까이 있으면 서로 상처입히고 마는 존재. [애자]에서 잘 풀어냈던 모녀관계의 엉겅퀴가 이 곳에서도 발견되었다. 

"계속 하렴"이 담긴 엄마의 유언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매일매일도 그녀에겐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달팽이 식당은 잔잔하면서도 에쿠니 가오리나 요시모토 바나나와는 또 다른 인간소통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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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1 - 소설 안중근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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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을 읽기 전에 나는 표지에서부터 가슴저린 슬픔을 느껴야 했다. 
새끼 손가락과 길이가 같은 넷째 손가락. 그 손가락의 분단처럼 여전히 분단되어 있는 조국의 미래를 알지 못한 채 그는 젊은 생을 조국을 위해 바쳐야 했다. 

그저 눈 감고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견딘 민초들도 있다. 그 기회를 틈타 조국을 팔고 이웃을 팔아 부자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민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불태워버린 청년도 있다. 우리의 역사 속엔 다양한 선조들의 모습이 있다. 조국을 팔아 자신의 배를 채운 이들을 제외하곤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손가락질 할 권리는 없다. 우리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우리도 어떤 선택을 했을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동지를 팔고 민족을 팔아 여전히 큰 소리 치며 제 뱃살 찌우기에 여념없는 그들의 면상에는 침을 뱉어도 좋을 것이다. 

그런 비겁한 선택을 한 사람들에 비해 30년 6개월 남짓 살다간 한 투사의 삶은 애닯고도 숭고했다. 30년. 10대에 읽으면 참 많이 산 세월같겠고, 20대에 읽으면 적당히 산 세월 같겠지만 30대가 지나서 읽게 되면 너무나 짧은 세월을 살다간 삶의 길이. 안중근의 삶은 딱 그랬다. 

동학에 뜻을 두고 민투에 뜻을 두었던 부친의 아들이지만 그는 아비가 천주교도가 되는 것에 불신과 의혹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세례를 받으면서 그는 그런 마음을 버렸다. 도마 안중근. 무슨 한자로 된 호이거니 생각했던 그의 이름 앞 또 다른 이름은 바로 세례명이었던 것이다. 토마스 안중근 즉 도마 안중근이었다. 

1권은 도마의 삶을 천천히 걸어가듯 답보하고 있는데, 그 끝은 대구에서 일으킨 국채보상운동 에서 멈춰진다. 민족의 수탈이 자행되는 일제강점기 사에 대해 우리는 역사시간에 속속들이 배울 시간이 충분치 않다. 하지만 이렇듯 훌륭한 작가들의 선 굵은 역사 소설 속에서 그 시절을 눈으로 읽으며 수업시간과 연계해서 떠올려지는 단어들을 확인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 찾아보는 학습을 하면서 역사는 조금씩 덧입혀지기도 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사람의 아들],[ 젊은 날의 초상]을 집필해온 이문열의 선 굵은 필체를 통해 우리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우리 심장 속 넷째 손가락의 주인공 도마 안중근의 삶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심심하면 장난질하듯 공론화 하려고 애쓰는 일본의 만행 앞에 우리는 그의 넷째 손가락을 다시금 떠올리며 도마의 정신과 의지를 잊지 않았음을 깨달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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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콜드 머시 톰슨 시리즈 1
파트리샤 브릭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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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일 라잇] 이후 비슷한 류의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띈다. 물론 트와일라잇 이전에도 흡혈귀에 늑대인간을 소재로 한 소설들은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대립이라든가 잔혹성 내지는 공포물에 가까웠던 그들이 어느 순간부터 매력적인 종족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트와일라잇이 멋진 선을 그은 것만은 분명하다. 

트와일라잇에 비해 다소 재미가 떨어졌던 아류작들을 뒤로 하고 요즘 드라마로 보고 있는 뱀파이어 다이어리외에 비슷한 소설을 한 권 또 찾아냈다. 이번에는 늑대인간이었다. 

"머시 톰슨 시리즈"는 본 편과 스핀오프 시리즈, 프리퀼 코믹스까지 모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했다고 했다. 분명 그들이 열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소 거칠게만 그려졌던 늑대인간들의 다른 모습을 기대하면서 글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따. 

놀랍게도 주인공은 여자이며, 클래식카 정비공인 메르세데스다. 그녀는 늑대도 인간도 아닌 워커였는데, 어린 시절부터 코요테로 변신이 가능했으며 늑대인간들의 손에 길러졌다. 로마의 창조신화도 아니면서 늑대에 길러진 여자라니....그리고 그녀의 주변을 둘러싼 늑대 인간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북미지역 최고의 알파인 아담 하웁트만을 비롯해서 서열 2위의 새뮤얼, 괴짜 뱀파이어 스테판, 마녀 엘리자페타, 외로운 늑대 워렌, 불쌍한 소년 맥까지. 이 이야기는 1권이라는 소개가 없어도 충분히 완결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며 끝을 내고 있다. 얼마나 거대한 이야기가 더 덧붙여질지 미지수지만 트와일라잇 속 퀼릿 늑대부족이나 언더월드 속 늑대인간들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의 한 요소가 아닐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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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벌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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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무리 아름다워도 이런 저주를 받게 된다면,
절세미인의 칭호는 루펜속으로 던져버리고 싶어지지 않을까. 여왕벌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닌데 그녀는 여왕벌이었다. 접근하는 모든 남자를 죽게 만들 운명이었으며 그녀의 아름다움이 그들을 죽음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외딴 섬 월금도의 도모코는 외할머니와 가정교사와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는 그 옛날 자신처럼 홀로 자란 아름다운 어머니의 손에 살해되었고 어머니도 병들어 죽어버렸다. 그런 어머니의 유언은 18세가 되면 서류상만 혼인관계였던 양아버지 긴조가 있는 도쿄로 가서 살라는 것이었는데, 그 18세가 되던 해에 도모코 주변은 피로 물들어 버린다. 

정말 저주일까. 세상의 그 어떤 피조물보다 아름답게 묘사된 도모코.  양딸을 위해 세 명의 사윗감 후보들을 불러 모은 긴조. 어딘지 불안정해보이는 긴조의 친아들과 예전엔 도모코 집안의 하녀였던 긴조의 아내. 수상하게 계속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젊은 남자와 늙은 남자. 이 모든 것이 미스터리한 가운데 긴다이치 코스케는 사건을 하나하나 실타래 풀듯 풀어나간다. 

19년 전 아버지를 어머니가 살해한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싶어했던 도모코 앞에 밝혀진 진실은 너무나 참혹한 것이었고, 인간의 끝없는 희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 바로 [여왕벌]이다. 이 작품은 생각보다 유명한 작품인 듯 했다.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두 번이나 영화화되었고 다섯 번이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그 인기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듯 했다. 그만큼 매력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어진다. 사실 그동안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에 비해 좀 이질적인 느낌이 섞여 있긴 하지만 여왕벌은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숨도 쉴 틈없이 재미있게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끝까지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긴다이치 코스케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진실을 향해있어 집중하게 만든다.

모든 남자들을 죽게 할 운명이라는 도모코. 결국 그 운명은 그녀의 아름다움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추악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작품을 끝까지 읽은 사람들이라면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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