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기 전 원작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사실 원작을 먼저 읽든 후에 읽든 상관없는 일이겠으나 어떤 것은 원작을 먼저 읽어 머릿속에 상상의 건축을 세워두고 싶어지는 것이 있고 또 어떤 것은 영화나 드라마를 먼저 보아 고정적인 인물의 영상을 머릿속에 새겨놓고 원작에서 그 재미를 쫓고 싶어지는 것도 있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은 영상의 흔적으로 상상의 세계에 입문하고 싶어 드라마를 본 후 원작을 집어든 케이스라고 하겠다. 잘금 4인방. 그들이 머무는 성균관은 조선의 유학자를 생산(?)했던 유학의 산실이 아니라 로맨틱한 학당으로 변해 있었는데, 바로 잘금 4인방의 활약 때문이었다. 그간 딱딱하고 아저씨 스러운 모습이라 상상했던 성균관이 이토록 스릴감 넘치면서도 흥미로운 곳이 된 데는 주인공 윤희 덕분이니 그녀에게 고마워해야할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아름다운 그대에게]에서처럼 금녀의 집에 남장 여자가 들어가 사는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 소재지만 캐릭터들이 전달하는 아기자기한 맛은 [성균환 유생들의 나날]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금녀의 반궁에 입성한 윤희와 그녀로 인해 탕평화 되어가는 노론의 이선준과 소론의 문재신을 바라보는 것이 이토록 설레는 구경거리가 될 줄은 몰랐는데, 나 역시 어느 새 여림 구용화의 시선이 되어 그들을 바라보게 된 것일까. 등장 인물 중 가장 독자와 시청자의 입장에 선 인물이 여림이기에 여림에게도 특별한 애정을 나누며.... 다음에 도착할 2권을 즐겁게 기다리고 있다.
몇달전 일본인 저자의 핸드메이드 북을 구경한 적이 있다. 그녀의 핸드메이드 장르는 문구였는데, 문구의 여왕이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문구를 좋아하는 내게 그 책은 선물이었다. 그런데 오늘 또 한 권의 핸드메이드 책을 손에 넣었다. 그것도 다이어리라는 이름과 함께. 일기와 함께 꾸준히 정리하고 있던 다이어리를 지난 달엔 좀 소원하게 기재했다. 무엇이 바빴는지 예쁘게 꾸며졌을 법한 한 달이 공달로 지나가 버린 것이다. 그런 내게 핸드메이드 다이어리라는 제목의 책은 마치 질책처럼 다가와서 구경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역시 선물은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법! 핸드메이드 다이어리는 다이어리를 수작업으로 만드는 내용의 책이 아니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만드는 수공예품들이 가득했는데 고양이 조끼, 고양이 물고기 인형, 바스켓 핀쿠션까지...빨간 도트 땡땡이의 앙증스러움이 묻어나고...엄마와 아이가 함께 해서인지 다정함까지 묻혀져 있었다. 완성품들엔. 티셔츠, 운동화 등등 아이와 함께 그리고 만들면서 딸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니는 엄마의 모습은 내게 가장 이상적인 모녀관계로 보여졌는데, 딸 민소가 살고 있는 동화속 같은 집은 일러스트레이터인 엄마의 감각으로 꾸며진 세상에 하나뿐인 공간이었다. 그래서 민소가 부러워졌다. 특히 인형이 가득담긴 주머니 놀이옷은 어른인 나도 만들어서 컬렉션 인형들을 캥거루처럼 담아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특이한 옷이었고 인어공주처럼 만들어진 고양이 인형은 본을 떠서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돈이 있으면 좋은 것을 사 줄 수 있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과 추억은 억만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기에 이 책이 더 따뜻하고 다정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싶어진다.
드라마가 재미있고 원작이 재미있다. 물론 드라마와 원작은 차이가 있다. 어느쪽이 더 재미있다고 말할 필요도 없다. 같은 뿌리지만 다른 재미를 구사하고 있으니까.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은 [성균관 스캔들]이 시작하기 전부터 그 인기가 대단했었다. 그래서 더 드라마를 본 후 원작을 읽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작을 읽어나가면서 대본과 다른점도 찾아내고 더 잘 잡혀 있는 캐릭터들의 감질맛 나는 대사나 상황들도 원작 속에서는 또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는지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1권에서 세상에는 멋진 남자는 있어도 착한 남자는 없다고 했던가...내 눈에 그들 꽃돌이들은 멋지면서도 착한 남자들이었다. 시류에 고민할 줄 알고 벗을 아낄 줄 알며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현실에는 없을 법한 그들의 멋진 모습에 더 열광하게 되는 까닭도 바로 그때문이 아닐까 싶어진다. 가랑과 대물의 혼인으로 끝나는가 싶더니 그들의 혼인날 무슨 일이 일어나길래 이야기는 그들을 또 규장각으로 모으는 것일까. 그들이 규장각 각신이 되어 알콩달콩하게 벌일 에피소드들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이젠 김윤식이 윤희임을 아는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그녀의 공공연한 비밀은 계속해서 지켜질 것인지...... 드라마를 기다리면서 한편으론 책의 그 다음권이 도착하기를 애타게 기다려 본다.
실패한 삶을 사셨습니까? 당신의 죽음만큼은 성공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라니. 무엇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기를 그토록 고대했던 것일까. 미야베 미유키의 책 표지와 같은 모습의 표지 그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대대로 자살용품만을 판매해왔다는 상점을 소재로 한 독특성 때문이었을까. 십오만 명이 자살 시도를 하는 가운데 무려 십삼만팔천명이 실패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죽지 않는다면 전액 환불~!!!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판매마케팅을 구사하고 있는 가족은 아주 특이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타인의 자살에 대해 진심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는가 하면 아들에게 "안녕히 가세요"가 아니라 "명복을 빕니다"라고 인사하는 법이 옳다고 가르치는 이상한 부모. 게다가 자장가 대신 자살 이야기를 잠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엄마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블랙 유머는 이런 모습에서 스물스물 기어나오고 있었는데, 대대로 이어온 가업인 자살가게에 알랑이 태어나면서부터 집안에는 이질적인 느낌이 생겨버렸다. 도대체 자살가게에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이 아이는 그림조차도 햇살 가득한 밝은 그림을 그리고 바람과 놀고 구름과 이야기하며 오가는 손님에게 미소와 인사를 잊지 않는다. 열한 살 알랑의 그 점이 부모를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자살가게를 대물림하여 이어가며 알랑을 제외한 식구들 또한 염세적이고 죽음에 가까워져 있었는데 알랑은 손님들 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행복과 미래에 대한 신념으로 가득차게 만들어 놓고 마지막에 생명줄을 놓아 버렸다. 행복한 마음으로. 임무 완수라며. 그래서 [자살가게]는 끝까지 진행되는 반전으로 인해 엽기발랄함의 끈을 놓지 않는다. 애초에 자살가게라는 장소를 생각해낸 것 자체 부터가 작가의 엉뚱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자살용품 판매의 가업을 잇다니..기요틴의 창시자 기요틴 가문조차 감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이야기가 아닌가. 장 퇼레는 죽음에 대한 기묘한 접근으로 인해 더 역설적인 웃음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 읽는 내내 쓸쓸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끊이 없이 웃게 만드는 유머의 참신성이 페이지 마다 가득차 있다.
일년 중 6개월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다는 부러운 삶의 주인공 미꼬씨. 그녀는 왜 베트남으로 향했던 것일까. 그보다 그녀는 어떻게 베트남 여행에서 살아남았던 것일까. 그 궁금증을 해갈하기 위해 여행 작가 김기연의 베트남 여행기에 코를 파묻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지랄 맞고 시건방진 여행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그녀의 여행기. 그 속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풍경도, 사람도, 베트남도 아니었다. 바로 미꼬씨였다. 사진찍고 글을 썼을 미코씨의 여행이 가장 먼저 떠올려지고 웃음이 묻어나게 된다. 환전하면 두둑해진다는 베트남에서 그녀는 죙일 사기를 당하며 다닌다. 숙소에서도 개미가 버글버글하고 버스 요임조차 사기당한다. 그녀는 사기 잘 당하게 생긴 얼굴인 것일까. 성격인 것일까. 각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언제나 즐겁다. 그래서 그녀의 여행기를 구경하는 내내 즐거운 마음이었다. 지루했다던 워터퍼펫마저도 구경해 보고 싶게 만드는 그녀의 여행기. 브라질에 이어 베트남이 두 번째 커피 생산국이라는 전혀 몰랐던 정보도 흘려주는 여행기. "죽어라 살을 태워도 희멀건 피부의 서양 여자와 햇볕을 피해 온 몸을 휘감고 다녀도 시꺼먼 베트남 여자 중 누가 더 가여운 걸까?"라고 질문을 던지는 미꼬의 여행기. 여행이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었다고 조우하는 그녀의 여행기 속엔 미꼬 그녀의 소통방식이 존재한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여행을 다니며 풍경과 인물들과 소통하는 그녀. 여행자체가 삶의 소통구처럼 보이기까지 한 그녀의 여행 속에는 분명 일상탈출과는 다른 그 어떤 소명의식이 엿보인다. 어느날 갑자기 뜻하지 않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떠나니 만나고, 놓으니 얻게 되며 사람에 대한 집착을 놓으니 사람이 다가오고, 사랑을 놓으니 사랑이 찾아온다..... 세상은 그래서 살만하다... 고 멋지게 말하는 그녀. 여행이 그녀를 시인으로 만드는 것일까. 나도 그녀처럼 일년의 6개월은 해외에서 보내고 싶다....아, 운명...!!!운명도 꿈꾸면 이루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