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하라 이치에 심취한 요즘 나는 그의 새로운 작품을 하나 더 찾아냈다. [행방불행자]. 처음부터 이야기는 쉬우면서도 오리무중 상태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한 가족이 몽땅 사라지는 괴이한 일을 모티브로 하여 집요하게 그 진실이 파헤쳐지는 것이 오리하라 이치 다웠다. 게다가 그 충격적인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트릭을 너머 작가가 펼치는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가면 작은 구멍에서 점점 더 큰 구멍에 다가가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늪. 실제로 배경이 되는 집의 근처에 늪이 존재하고 있지만 늪이라는 단어만큼 이 소설이 잘 표현된 단어를 찾아볼 수 있을까.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오이하라 이치의 화려한 트릭은 계속되는 가운데 읽다가 미로에 빠진 듯 단서를 읽어버리면 고장난 네이베이션을 가진 사람처럼 글의 한 가운데서 멈추어 버려야 했다. 오리무중. 딱 좋을 표현이었다. 사실 이야기의 스토리로 보자면 참 간단한 이야기였다. 하스다시 구로누마의 다키자와가에 4사람이 어느날 실종되었다. 요시자와 일가 4명도 사라지고...그렇다보니 살인의 추억처럼 연쇄살인내지는 연쇄실종사건처럼 보여지는 일가실종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어가 버렸다. 또한 근처 늪을 뒤져 보았지만 늪으라는 것이 원래 삼키는 것은 있어도 뱉어내는 것은 없는지라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마을의 일가는 몇년 째 실종 상태다. 요시코 81세, 류타로 55세, 미에코 48세, 나쓰미 25세 등등 사라진 다키자와 가의 실종사건은 전방에 배치해 둔 채 소설가인 주인공이 전철 속에서 여장남자에게 치한으로 몰리는 사건이 겹쳐진다.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여장남자에게 접근했다가 그 생활면에서 묘한 구석을 발견하게 되고 마치 스토커처럼 따라붙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그러다가 공격당하기도 하고 스토커로 몰리기도 하지만 결국 일가족 실종사건과의 교차점을 찾아내는데.... 행방불명자는 참 묘한 소설이다. 그 진위를 알 수 없을만큼 계속 뒤집힌다.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면서 처음에는 단순해보였던 실타래가 점점 엉켜지면서 결국 풀 수 없을만큼 복잡해지는 것처럼 엉킹 실타래 같은 복잡성으로 머릿속이 얽혀버린다. 그래서 결론에 이르기 전까지 안심할 수 없고 결론에 이르러서야 숨을 참게 된다.... [행방불명자]를 읽으면서 나는 오리무중상태로 빠져들어 버렸다...오랜만에-.
이승기, 신민아 주연 인기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의사선생이 비형랑인 것으로 보여지면서 길달과 비형랑의 이야기는 인터넷 검색순위에 오르고 있었다. [삼국 유사]에도 등장하는 도깨비 길달과 반만 사람인 비형랑의 이야기. 그 이야기가 아이들이 읽는 판타지 소설로 꾸며졌다는 소문을 듣고 [고슴도치 대작전]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1500년 전 비형랑이 목숨을 바쳐 봉인한 다섯 개의 고 항아리 중 두 번째 고 항아리가 열리면서 시작되는데, 무엇 때문에 비형랑은 고 항아리를 봉인했는지가 궁금증의 시작이었다. 또한 고 항아리 속 고약한 벌레가 세상을 어떻게 물들이며 비형랑의 후예들이 이를 어떻게 제압할까 또한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비형랑의 후예들이 해리포터는 아니었으니까. 제 1권의 제목이 [고의 부활을 막아라]지만 벌써 고 중 하나는 봉인이 해제 되었다. 해리포터나 이누야사가 있다면 단번에 해치워버렸을지도 모르지만 길달은 아이들을 모은다. 모두 비형랑의 후예들로 자신도 모르는 힘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파란색 고슴도치를 가진 과학천재 가이, 주황 고슴도치를 가진 먹성좋은 우솔, 빨간 고슴도치를 가진 말썽 대장 나루, 길고양이였던 나예, 노란 고슴도치를 가진 깍쟁이 하늬, 보라 고슴도치를 가진 벌레를 사랑하는 소녀 수리에 초록 고슴도치의 주인인 소심한 도담이까지... 아이들은 하나같이 고슴도치를 가진 채 고에 맞선다. 아이들이 등장하는 판타지는 순수성과 함께 익살스러움이 더해져 언제나 재미있다. 동화와는 또 다르게 누군가의 도움이 아닌 스스로 쟁취하고 싸워이기는 이야기로 전개되어 주인공과 동화되게 만든다. 절대 열어서는 안될 고 항아리 속의 고....고는 과연 어떤 사건들을 만들어낼까?
708호에서 괴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컴퓨터가 켜지며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 키우고 싶니?" 라니...길게 찢어진 샛노란 두 눈이 나타나 아이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수십 개의 다리들이 아이를 잡고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눈 앞에서 바라봤다면 정말 끔찍했을 이 장면은 다행스럽게도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 고슴도치 대작전 ] 의 두번째 이야기는 이렇게 다시 등장한 고가 아이를 삼키면서 시작된다. 인터넷이 초고속 세상을 열면서 부모들의 근심이 더 커졌다. 아이들을 통제할 수 없는 분야가 늘어나 버렸으니까. 그렇다보니 타임코디니 뭐니해서 통신업체에서는 부모가 컴퓨터 이용시간을 제약할 수 있는 상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그것도 절반의 효용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엔 pc방도 넘쳐나고, 맞벌이 부부들도 넘쳐나니 아이들이 하고자 한다면 막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고슴도치 대작전 두번째 이야기 "하늘이 무너지던 날"은 컴퓨터 속에서 블랙홀처럼 아이들을 빨려들게 만드는 젤리 괴물이 등장한다. 젤리 괴물에 대항해 길달과 비형랑의 7아이들은 각자의 능력을 펼치는데, 악의 세력 고는 역시 대다수의 악당들처럼 세계명망이 목적이다. 이제 아이들은 학교와 친구들을 구하는 동시에 나아가서는 세상을 구해야 하는 큰 임무를 부여받았다. 내 나이 열 두 살엔 이런 판타지가 없었는데....열 두살로 다시 돌아간 마음으로 신나게 읽고 있다. 읽고 있는 지금, 나는 열 두살이다...
비형달이 목숨 바쳐 봉인한 고의 항아리는 5개였다. 2개가 풀렸으니 이젠 3개가 남은 셈인데....이 3개의 봉인이 다 풀리는 그날이 판타지의 끝일까. 비형달의 영혼을 가진 아이들을 그때까지는 만날 수 있는 것일까. 빗자루가 휘휘 날아다니고 말하는 유령들이 범람하는 마법학교는 아니지만 길달이 찾아낸 7명의 아이들은 각각이 다 사랑스럽다. 요맘때 아이들의 풋풋한 모습이 담겨 더 매력적인 [고슴도치 대작전]은 그 다정한 제목만큼이나 아이들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 줄 듯 해서 더 대견스럽게 느껴지는 책이다. 판타지라고는 하지만 동화같은 상상력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소설을 통해 처음에는 비형랑과 길달의 이야기를 구경하고자 했으나 읽는 내내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행동, 아이들의 마음, 아이들의 모습이 눈과 머릿속에 차례차례 담겨갔다. 그래서 동화처럼, 판타지처럼 소설은 나를 열두살의 그때로 되돌려 놓은 듯 싶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센과 치히로의 모험을 발표하면서 "나의 열두살을, 당신의 열두살을..."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나는 [고슴도치 대작전]을 통해 읽는 내내 열 두살로 살았다. 그 눈높이가 가장 이야기를 이해하기 신나는 나이였기 때문이다. 고의 부활이 끝난 것이 아니기에 나는 예고도 없는 다음권을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다. 평범한 인간들의 내면에도 괴물이 한 두 마리쯤 숨어 있다고 하는 것처럼 고는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내고 부풀린 것이 아닌가 싶어져 한편으론 씁쓸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악의 세력 고가 있기에 비형랑의 아이들도 각각 의지가 될 친구들을 얻었기에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이 이야기 속에서도 발견되는 것만 같다. 나는 이제 다시 다른 고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더 신나게... 길달과 비형랑의 아이들과 함께 할 모험의 시작을 위하여...
미야베 미유키는 사회고발적 성향이 짙은 작가다. 그러면서도 미스터리함과 강한 흡인력으로 몰고하는 힘이 대단한데, 여성작가라는 타이틀을 빼고 작가라는 타이틀을 그대로 들이미는 불도저같은 작가이기도 하다. 한국 내에서도 팬층이 두꺼운 미미여사의 단편들을 오랜만에 읽고 말았다. 새벽잠을 포기한 채. [인질 카논]은 도시 속에서 벌어지는 7개의 미스터리는 미야베 미유키의 단편의 맛을 제대로 살려내고 있다. 그 중 첫번째 이야기인 인질 카논은 제목만으로는 아리송하던 이야기들이 읽으면서 묘하게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사건의 주변인물이 된 소시민이 궁금해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하는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찾아버려서는 아닐까 싶어졌다. 편의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인질이 된 이쓰코. 하지만 소심한 듯 범인으로 지목된 청년이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경찰측에 내뱉지도 못한다. 하지만 강한 의심과 호기심으로 편의점 주변을 탐색하던 도중 범인은 엉뚱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고야 만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한 이쓰코는 시간이 흘러 자신의 추리가 맞았음을 알게 되고 범인으로 지목된 남자는 진짜 범인에 의해 살해된 사실을 알게 된다. 살해된 남자에 대한 애틋함과 무서웠던 장소인 그 편의점에 발길을 딱 끊은 이쓰코. 하지만 이 무시무시함과 애틋함도 매일매일 이어지는 바쁜 일상 속에 묻혀 버리고, 그렇게 오늘이 어제로 사라져 가듯 도시의 삶에 다시 묻혀가는 이쓰코. 그녀의 이런 삶이 우리의 삶과 그닥 다르지 않아 공감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함께 실린 다른 단편들도 미야베 미유키 다운 맛이 져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