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으면 그려집니다. 월령의 숲처럼 아름답게 우거진 숲 저 너머에 사는 신비로운 생명체들의 모습이. 투명하리만치 깨끗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된 그 싱싱한 생명력이... 그 한 가운데 아주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그 물 아래엔 투명한 사람들이 담겨 있는, 소설 페이지 그대로의 모습들을.... 보통 좋은 대본은 읽는 순간 장면들이 영화처럼 스쳐지나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서 그 페이지마다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시각화되는 것은 특별한 일일 것입니다. [유리로 변해가는 슬픈 소녀 아이다]는 그랬습니다. 읽는 순간 특히, 아이다가 서서히 유리로 변해가는 순간은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보이고 또 보였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조금씩 변해있는 몸체, 투명한 유리발, 아이다의 슬픈 표정. 그 무엇하나 놓치면서 봐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다 맥클레어드는 정말 무엇때문에 세인트하우다랜드에 오게 된 것일까요. 이런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면 과연 올 수 있었을까요? 물론 생에 단 한번의 사랑 마이다스를 만날 수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아이다가 섬에서 만난 최초의 괴이한 남자 헨리 푸와는 그 열쇠를 가지고 있는 듯 했지만 결과를 뒤바꿀 순 없었습니다. 헨리가 사랑한 여자의 아들인 마이다스도 사랑하는 여인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사랑을 지키지 못했고 홀로인 채 타인과의 교류를 거부하며 살아가는 닫혀 있는 삶의 주인공들입니다. 아이다 역시 그들을 바꿀만큼의 발랄함을 가지진 못했습니다. 어쩌면 등장인물들이 모두 닫혀 있는 인물들이기에 세인트하우다 랜드라는 섬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든 항상 당신과 함께 할래요" 라던 아이다의 말처럼 끝까지 함께한 운명이었지만 마지막 이별 장면은 애틋하기보다는 안타까우면서도 무서워집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남자주인공이 죽고 홀로 구출되었던 로즈가 죽은 그의 손을 놓으며 물 속으로 사라지는 그와 굿바이를 하던 장면처럼, 마이다스도 유리로 변한 그녀의 손을 놓으며 구명보트에 의해 구해지는 순간은 묘하게도 오버랩됩니다. 그리고 오열하는 남자의 울음소리는 귓가를 맴돌게 됩니다. 바꿀 수 있는 건 바꾸고 바꿀 수 없는 건 받아들여라 는 명언이 있긴 하지만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그 말은 적용되지 않을 듯 싶습니다. 마이다스의 마음에 묻혀버린 아이다를 그는 과연 잊을 수 있을지.....커피를 한 잔 마셔야겠습니다. 그들의 슬픈 사랑을 가슴에 잔잔히 묻혀버릴 시간을 벌기 위해서....
책을 읽기도 전에 표지 일러스트에 매료되는 것은 매우 오래간만이었다. 장 자끄 상뻬의 개구지지만 귀여운 표지를 보고 넋을 잃었던 것처럼.... 하지만 [시미가의 붕괴]는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었다. 어딘지 모르게 삐딱해보이지만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그런 그림이었다. 그래서 눈길이 갔다. 표지가 헤드라인화되어 있는 것 같아서... 이 책은 내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처음부터 기대감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녹아간다/시미가의 붕괴/죽음과 밀실/하얀 아침/주사위, 데굴데굴/오니기리, 꾹꾹/나비/나의 자리/ 옛날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 까지 총9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이 책엔 저자의 말이나 번역자의 말이 전혀 실려 있지 않다. 그것 또한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 서론도 모자라 책을 쓰면서...라는 끝페이지까지 저자의 글이 장식이 되고, 그 다음에 번역자의 번역후기가 실려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 페이지들을 몽땅 없애버린 듯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미가 반감된 부분은 전혀 없지만. 9편의 단편 중에 가장 눈길이 가던 이야기는 제일 먼저 시작되던 이야기였다. [녹아간다]는 좀 독특한 이야기였다. 짧은 단편 드라마가 되어도 좋을만큼의 이야기였다. 방에 틀어박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타입인 미사키는 올봄부터 건강식품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변두리에 아파트를 얻고 독립했다. 하지만 독립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야기 상대가 없어서 쓸쓸했던 것이다. 회사에서 친하게 지낼만한 동료도 없다. 점장 이하 네 명이 남자, 여자는 다섯 명인데 다들 서른이 너머 미사키와는 나이차이가 좀 졌다. 그 곳에서 미사키는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 주문을 기입하는 일을 한다. 게다가 괴롭히는 상사까지 포진해 있다. 그런 미사키에게 탈출구가 되어 준 것은 어느날 편의점에서 고른 만화잡지였다. 미사키 가스미. 자신과 같은 성의 작가는 "초상화"를 그려놓은 듯 자신의 직장동료들을 똑같이 만화 속에 그려놓았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미사키의 비밀스러운 작업은... 누군가와 소통없이 외롭게 혼자 사는 여자의 독백은 위험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오려진 종이캐릭터들이 가득한 방안에서 혼자 웃으며 말하는 미사키의 모습은 무섭기까지 했다. 짧지만 아주 강렬한 단편이었다.
아무도 과거를 지배할 수는 없다. 이 말은 사실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기도 하고, 이미 결정해 버린 것이기도 하기에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다. 간혹 영웅영화 속에서 과거가 바뀌기는 하는데, 그렇다면 그 결과 또한 바뀌어 버리므로 현재의 과거가 바뀌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과거는 결코 뒤바꿀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옳든 그르든 걸어온 길을 똑바로 가고자 한 사람들이 있다. 템플기사단의 사람들과 아다이오쪽 성의 교단 목자들. 그들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다만 한 쪽은 지키려는 쪽이고 다른 쪽은 빼앗으려는 쪽이었을 뿐. 무엇이 이들의 삶을 그토록 질기게 교차시키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수의였다. 아주 오래전에 삶을 마감한 한 사람을 감쌌던 수의. 그리스어로 "만딜리온"이라 불리는 예수의 수의는 서기 944년 에데사에서 만딜리온은 사라졌다. 역사 속에서 사라진 만딜리온을 찾아 유서 깊은 기독교 교단은 그 명맥을 현재까지 유지해 오고 있었다. 사실 수의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빚에 쪼들리던 보두앵 황제로 부터 템플 기사단이 구입한 것이었다. 사실 수의는 두 벌이었다. 진짜 수의 한 벌과 그 수의를 잘 보관하기 위해 똑같은 천으로 감쌌던 원단. 다시 펼쳤을 때엔 기적이 깃들여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똑같은 천에 새겨진 똑같은 문양과 혈흔. 기적은 그렇게 두 개의 수의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어느 것이 진본인지 밝혀낼 필요가 없었다. 둘 다 진본이니까. 기적이 만들어 낸. 그리고 템플기사단은 스코틀랜드를 제외하고는 다들 해체된 상태었다. 소수의 인원만이 남아 비밀을 지키며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아주 부유하게. 기자 아나는 역사적 사실을 쫓아 가고 있었다. 1314년 3월 19일 노트르담 광장의 화형대 앞에 있었던 것 같은 악몽을 되새기면서. 그녀는 결국 비밀을 가장 먼저 알아내게 되었고. 모든 비밀을 털어놓는 이브 신부와 함께 묘지 안에서 생매장 되어 버렸다. 역사학자 소피는 사건을 쫓아 가고 있었다. 혀를 잘리고 열 손가락의 지문을 태워버린 채 나타나는 사람들의 정체를 쫓아 진실을 파헤쳐 내고 있었다. 결국 아나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되지만 그녀가 알게 된 진실은 세상에 알려질 수 없었다. 다만 토리노 성당에서 발생했던 숱한 사건들이 현재의 일이 아니며 과거로부터 진행되어 온 일이라는 진실이 밝혀졌을 뿐이었다. 살아남은 소피가 더 행복할지, 죽었지만 진실을 알게 된 아나가 행복할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수의를 둘러싼 피비린내 진동할 수많은 사건들은 신이 원했던 것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의 욕심이 만들어낸 과거 그리고 현재가 담겨 있는 [성수의 결사단]이 두 권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다행이었다. 2권이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말했다. 화가는 모든 그림을 검은 색으로 칠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자연 속의 모든 것이 빛에 노출될 때를 제외하면 검기 때문이라고... 4의 규칙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생각처럼 시작된다. 모든 것이 검은 색인 일색 중에 빛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책을 한참 읽어도 그 규칙이나 비밀에 대해서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작가가 비춰주는 빛의 사각 안에서만 우리는 모든 것들 중 하나를 볼 뿐이다. 하지만 단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계속 언급되는 책 한 권. 바로 <히프네로토마키아>가 있었다. 세 명의 남자가 <히프네로토마키아>의 연구에 몰입했다. 빈센트 태프트와 리처드 커리 그리고 패트릭 설리반이었다. 세 사람 모두 이 책에 매료되어 있었지만 내용을 바라보는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패트릭은 한 여자를 향한 한 남자의 사랑에 대한 찬사로 본 반면 빈센트는 수학적 논문으로 보고 있었다. 리처드는 책의 수수께끼에 집중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패트릭은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리처드는 유명한 화랑 주인이 되었으며 빈센트는 유명한 사학자가 되었다. 그렇게 종결된 과거는 이 책의 시작점일 뿐이었다. 패트릭이 죽고, 그의 아들 토머스는 프린스턴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처럼 그도 <히프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의 마수에 걸려들고 말았다. 서양 초기 인쇄물 중 가장 귀한 한 권의 책이면서도 매우 난해한 이 책은 프란체스코 콜론나가 쓴 책이었다. 분명 토마스의 시점에서 시작되었지만 중요한 사람들은 역시 과거의 세 남자였다. 아버지를 비롯한 빈센트와 리처드. 누구의 해석이 맞는 것인지. 그리고 그 책의 해석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 것인지...그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것보다 읽는 내내 재미는 그 책 한 권 속에 들어 있었다.
꽤 특이한 책이 손에 들어왔다. 99라니... 1Q84만큼이나 아리쏭해졌다. 대체 저 99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인지 무언가의 갯수를 의미하는 것인지 모호해졌다. 그리고 책을 펼치는 순간 숫자에 대한 궁금증도 곧 사라졌다. 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 사진이란 비밀을 담아내는 비밀이다. 라는 다이앤 아버스의 말이 인용되어 있었다. 비밀을 담아내는 비밀이라니...사진은 추억을 간직하고 시간을 스크랩하며 누군가를 위한 그리움의 매개체가 아니었던가. 그런 사진이 비밀을 담아낸다니. 사실 카메라의 셧터가 "찰칵"하고 소리를 내는 순간 이미 그 순간의 비밀은 사라지는 것이다. 남겨진다는 것은 밝혀진다는 것이니까. 그런데도 작가는 비밀엄수를 부탁하듯 읊조리고 있었다. 무엇이 비밀을 요구할만큼 특별한 일인 것인지...작가의 타 작품에 비해 99는 매우 실험적이 작품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것이 사진작가 강영호가 보여주는 흡인력 있는 퍼포먼스들은 작품을 더욱 음습하며 괴기스럽게 만들어 놓고 있었다. 작가와 사진작가의 상상력은 맞닿아 있으면서도 또한 따로 떼놓고도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개별성이 존재했다. [99]는 예술적 동거의 기록이었다. 첫장부터 심상치 않기는 했다. 강영호의 "신중하지 않은 뿔"의 표현은 놀라웠다. 팀버튼의 영화에서나 발견될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흡사 불에 탄듯한 인간형상으로 괴기스럽고 흉물스러웠지만. 제이킹은 지킬박사처럼 "신중하지 않은 뿔"이라는 하이드의 인격을 가지고 있었다. 상상 사진관 주인 강영호는 그를 카페 "습작"에서 만났다. 서른 즈음의 그는 처음엔 깔끔한 차림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곧 본모습이 드러난다. 연쇄살인마. 드라큘라 성을 설계하는 건축가에게 그만한 이력은 최고인 것일까. 드디어 제이킬이 죽고 드라큘라성은 대한민국 건축대전에서 대상을 받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사라진 건축가를 대신해 건축주인 "나"가 상을 대신 받지만 그 앞에 또 하나의 인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주 익숙한 인물이... 소설은 시작부터 끝까지 보여주기 위함인지, 상상하라고 던져둔 것인지 모를만큼 강렬한 무언가를 뿜어낸다. 역동적이다라는 표현과는 걸맞지 않지만 강한 임팩트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재미있다. 아니다 를 논할 수 없는 특이한 작품. 소설인지 사진집인지 모를 모호한 소설 하나. 드디어 읽기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