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스스로를 지켜온 유일한 힘. 그것이 과연 무었일까. 토우가 언급되었기에 아마 비밀결사대라도 나오는 것일까? 상상했었으나 그것은 참으로 유치한 상상이었을 뿐이었다. 왜세의 압력에서 우리 민족을 지켜온 역사적 증물은 바로 팔만대장경이었는데, 우리는 종국에 그를 잘 지켜내지 못한 듯 하다. 한국 금융시장의 위기에서 조국을 구하기 위해 여러사람이 한국의 서울에서 뭉치게 되었으나 그들은 금융 위기를 막아내면서 또 다른 문제점을 찾아낸다. 바로 역사의 수레 밑에서. 기독교로 한민족의 종교와 문화가 짓밟혔다고 생각하고 교황청에 파티마의 제3 예언을 공개하라고 요구한 사도광탄. 그는 여러 종교를 공부하며 떠돌아다니는 기인이었다. 소설 등장인물 중 가장 매력적인 광탄을 연기할 인물을 떠올려보니 배우 소지섭의 카리스마가 떠올려졌는데, 나이가 마흔을 훌쩍 넘긴...이라는 부분에서 엉뚱하게도 전혀 다른 인물인 작가 이외수 선생이 매치되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기인의 면모. 물론 광탄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지만 이런 캐릭터 매치도 참 재미있을 법 하다는 엉뚱한 상상을 잠시 해 본다. 일제의 만행은 비단 일제강점기 속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홀로코스트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독일과 달리 그들은 여전히 뻔뻔함을 일삼고 있는 것도 모자라 그 밴댕이 같은 마음 씀씀이를 국제사회에 버젓이 드러내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몇몇 몰지각한 인물들의 만행이라고 믿고 싶다. 대다수는 아무것도 모르고 선동되는 쪽이라고 믿고 싶지만 그 선동되는 힘이 한 국가의 힘이라면 그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쪽이라 걱정이 되긴 마찬가지다. 우리의 역사 가르침의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역사 정치 경제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 일본의 교과서 개정은 미래에 대한 무서운 신호탄임을 일상에 묻혀사는 우리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렇듯 한 작가의 책을 읽게 될 그 순간만 위기의식을 잠시 느낄 뿐인다.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이 책이주는 경각심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중이다. 소설 속 가상의 현실들이 예언서처럼 우리 앞에 나타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볍게 보고 있는 것들이 언제나 우리의 발목을 잡아왔던 것처럼. 작가 김진명의 차기작을 기다리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에 빠져 본다.
피리부는 사나이라도 나타나는 것일까. [아이들 없는 세상]은 그 제목만으로도 삭막함이 묻어났다. 무엇 때문에 아이들이 사라져버린 것일까. 눈먼자들의 도시,절망의 구에서처럼 무언가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만든 아이들 없는 세상은 생각보다 짧은 이야기였다. 삽화를 제외하면 페이지는 한 장 반 가량. 짧은 단편 모음집이라고 해도 한 편이 이토록 짧아도 되는 것일까. 맨날 싸우기만 한 어른들이 싫어 단체로 사라진 아이들. 교황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호소하고 대통령이 아이스크림을 주겠다고 텔레비전에 나와서 속삭여도 나타나지 않았던 아이들. 그러던 어느날 저녁 어른들이 충분히 깨달았을테니 돌아가기로 결심한 아이들이 나타난 다음날 세상은 온통 반가움 투성이었다.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 주인공인 누군가가 없는 이 짧은 동화는 아이들의 마음이 물씬 묻어나서 웃음짓게 만든다. 삽화 또한 색색의 화려함과 단순함이 마치 천재 아동의 그것인것처럼 보인다. 세상에 이토록 짧은 단편들이 모여도 되는 것일까.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처럼 정말 짧디짧은 단편 20편이 이 한 권에 수록되어 있다. 이것이 필립 클로델 식인가보다. 프랑스 지성을 대표하는 소설가라는 필립의 책을 나는 처음 접해보았다. 여러 이야기를 썼고 시나리오까지 써서 직접 연출을 하고 있는 이 다재다양한 작가는 어른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일 수 있는 것들을 아이들 입장에서 잘 써내려가고 있었다. 비록 [얼굴빨개지는 아이]처럼 하나의 이야기로 우리를 사로잡진 못했지만, [영앙만점 어린이 음식백과]처럼 교훈적인 내용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의 동화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이나 어른이 함께 읽기에 적당한 책처럼 보인다. 마치 우리곁에 봄빛이 다가오듯 따뜻해지는 짧은 글들, 어른이 아이의 손을 빌려 쓴 것 같은 그 천진난만함이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온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삽화였는데, 구체화된 그림 위로 칠해진 색깔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이 칠한 것처럼 삐뚤삐뚤하고 칸 밖으로 튀어나가 있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친근감이 가는 그림들이었으니 제목과 딱 어울리는 그림들이 아닐까 싶다. 필립 클로델의 무공해 빛 동화. 아이도 엄마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동화같은 소설 한편을 요즘같은 계절에 읽어놓는다면 우리의 동심도 광합성 하듯 영양분이 보충되지 않을까.
에데베 문학상 수상작이자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소설가 데뷔작인 [안개의 왕자]는 표지부터가 심상치 않다. 유령인듯 귀신인듯 한 수염있는 남자가 인화가 잘못된 사진 속에 머물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음산한 분위기 때문에 책을 읽기 전부터 호기심이 일었다. 과연 어떤 두려움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 하려는 것일까. 대체 안개의 왕자는 어떤 사람일까. 연작시리즈 중 하나라고 해서 이어지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작가의 3작품이 안개와 관련있는 내용이다보니 안개시리즈로 묶여진 듯 했다. 아이를 담보로 한 악마와의 거래 라는 소갯글을 보면서 다른 소설 속 악마들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악마와 거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소재인 듯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거래를 통해서 인간과 접촉했고, 거래는 반드시 악마가 이기는 걸로 귀결되어지곤 했다. 이상하게도 악마라고 하면 반칙의 제왕들처럼 보이는데, 그런 그들이 인간과의 거래라는 공식을 철썩같이 지키는 면은 마치 우등생이 교칙을 지키는 것과 비슷해서 웃음이 났다. 전혀 지킬 것 같지 않은 그들이 지키는 한 가지 원칙이라... 책 속의 악마는 어떤 인물인지, 그리고 왜 동화책의 제목처럼 안개의 왕자라고 달콤하게 불리는지 궁금해져서 책장을 넘기는 손가라가에 힘을 주어 가속도를 붙여댔다. 안개의 왕자. 그는 늘 자신이 이기는 거래의 주인공이었다. 영혼의 사채업을 시행하듯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거래에 걸게 만들면서 원하는 것을 취해갔다. 어쩌면 꽤 매력적일 이 캐릭터는 하지만 중심에 서지 못했다. 안개의 왕자는 전면에 나오지 않은 채 소설은 시종일관 한 가족을 향해 앵글을 고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버 가족은 이사왔다. 새 동네는 시골 동네였지만 가족이 평화롭게 살기 좋아 보였고, 시계수리공인 아버지의 직업도 꾸준히 이어 갈 수 있을 만한 곳이었다. 1943년 6월 그렇게 가족은 이사를 결정했고 조그만 바닷가 마을로 왔다. 막스가 열세 살이 되던 해였다. 부모님 외에 위로는 알리시아 누나가 아래로는 이리나라는 여동생이 있는 막스는 마을에서 롤랑이라는 친구를 사귀게 된다. 롤랑은 등대지기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막스가 이사온 집은 할아버지의 친구 부부가 살던 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식구들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저 너머 안개에 휩싸인 어떤 묘지 같은 것을 발견한 막스는 어느날 아버지가 집에서 찾아낸 전주인의 기록영화를 보고 그 묘지가 찍힌 것임을 알아챈다. 묘하게도 막스가 본 모습과는 조금씩 다른 영상을 보며 막스는 두려움이 일기 시작했다. 한편 롤랑과 알리시아 사이에 로맨스의 기운이 흐르는 가운데 롤랑 할아버지를 통해 침몰된 오르페우스호의 전설과 안개왕자 그리고 전주인인 플레이슈만 부부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 세사람. 그러나 그들의 아들 제이콥이 죽은 것이 아니라 롤랑이 바로 부부의 아들 제이콥임이 밝혀지면서 진정한 공포가 시작되고 있었다. 거래의 끝과 정해진 운명의 잔인함. 그리고 남겨진 그들이 기억하는 진실은 어느 것 하나 반길만한 것이 없다. 만약 영화화된다면 안개의 왕자인 닥터 케인 역은 누가 맡으면 좋을까 하고 헐리웃 배우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음습하게 그려지기 보다는 [캐러비안의 해적]처럼 영상화된다면 어울릴 것 같은 [안개의 왕자]는 마지막을 제외하고는 참 재미난 작품이었다.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것~!! 희생을 담보로 하긴 했지만 정해진 운명이라는 사실은 사람으로 하여금 참 힘빠지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겠다 . 작가가 이런 말을 남겼다. 스물 셋이 되어서도, 마흔 셋이 되어서도, 심지어 여든 셋이 되어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을 써봐야겠다는 마음이었다고-. 작가의 그 마음에 공감을 하면서 작가의 책들을 그런 마음을 실어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