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때 알아야 할 59가지
로버트 H. 필립 외 지음, 정윤미 옮김 / 프롬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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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는 한 가지 법칙밖에 없다. 사랑을 다 보여주지 말라.


학교다닐때 여자애들이 좀 재수없어 했던 아이 주변에 남자들이 포진하고 있을때 그녀는 더 미움을 많이 샀다. 그 애를 싫어했던 이유는 여자끼리 있을 때와 남자들과 섞여 있을때 확연히 달라지는 태도 때문이었는데, 그런 이중적인 태도가 여자 친구들에게 미움을 사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 하지 않고 그 애는 남자들을 갈아치우며 화려한 연애행각을 벌이곤 했다. 그때 좀 더 현명했더라면 그 애를 욕하는 무리에 끼여있기 보다는 곁에 다가가 그 행동을 배우거나 눈여겨 보았을텐데....그랬다면 연애의 달인이 되어 있지 않을까....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지만 적어도 이 것만큼은 알아야 해!!라는 것이 [사랑할 때 알아야 할 59가지]에 수록되어 있는 듯 했다. 처음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이별의 순간은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 책은 더할나위 없이 후회와 반성의 순간을 맛보게 만들 것이다. 보통 옛 어른들의 말씀이나 속담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속담 중에서도 틀린 속담 하나쯤은 발견해 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을......!! 소 잃고도 분명 외양간은 고쳐져야 한다. 그래야 다음 소를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 잃고 외양간은 빨리 고쳐라...식으로 현대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지는 속담이 바로 이것이었다. 


아무리 사랑해도 거리를 유지할 것!


사랑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과거의 잘못과 상처에 얽매여 있기 보다는 어서 털고 일어나 다음 사랑을 위해 준비하는 일이 현명한 일일텐데, 이때 토마스 맥나이트가 강조하는 단 한 문장은 절대 사랑을 다 보여주지 말라~!!는 것이다. 사랑하게 되면 처음에는 줄다리기를 하다가도 내 사람이다 싶어지면 마음의 빗장이 그만 풀려버리게 된다. 하지만 여자와 달리 남자는 정말 잡은 물고기에겐 밥을 주지 않는 법~!!그 순간부터 이별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음을 똑똑한 여자자라면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따끔하게 충고한다. 

사랑에 빠지기는 쉽지만 사랑을 지켜나가는 일은 힘든 일이다. 그래서 갖고 싶은 사랑을 가지기 위해서는 사랑 멘토링이 필요하다. 몇년 전 재미있게 보았던 [데이트 코치]가 웃으면서도 절실하게 느껴졌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창시절의 그녀와 같은 몇몇을 제외하곤 보통을 여자들은 사랑을 지키는데 자신이 서툴다고 느낀다. 그래서 헤어지기도 하고 실연에 힘들어 하기도 하면서 다른 사랑을 찾아 나선다. 연애의 주체가 되어 줄을 풀었다 당겼다 하는 주체가 되지 못한 채.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그 어떤 변명이나 후회를 뒤로하고 기꺼이 변화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하도록 생각을 바꾸어준 맥타이트와 필립의 조언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책에서 배웠습니다..."식으로 끝나면 곤란하겠지만, 59가지의 목차만 읽어보아도 우리가 평소에 무엇을 잘못해왔는지, 어느 부분을 채워나가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게 만든다. 책의 고마움은 물고기를 잡아주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잡는 방법을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데 있다. 

사랑하며, 사랑받으며 사는 일은 참 간단해 보이는데, 실제로 연애를 해보면 그렇지가 않다. 하지만 현명한 파수꾼이 되어 내 사랑을 지켜나가는 일. 그 일은 인생의 그 어떤 목표보다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물론 그 목표만을 위한 삶을 살아서는 안되는 이유도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그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내는 것~!!그것을 목표로 하며 오늘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책의 현명한 조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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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 Turn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이재오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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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 15분. 
같은 시간. 같은 하루. 반복적인 하루가 계속되면 우리는 어제의 후회를 줄일 수 있을까. 아니면 도리어 무료해져버릴까. 운명을 바꾸기 위해 반복되는 하루를 이용하는 경우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 많이 봐왔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그랬고, 수퍼내추럴에서도 봐왔던 에피소드라 낯설지 않았다. 게다가 아주 오래된 영화 속에서도 라디오 소리에 눈을 뜨는 반복적인 하루를 사는 어느 남자의 이야기를 본 바가 있다. 이토록 낯설지 않은 소재로 그토록 희안한 글만을 써온 기타무라 가오루는 어떻게 표현할까. 


시간의 반복 속에서 나를 만나다

"시간과 사람의 3부작 중 하나인 [턴]은 작가 자신도 특별한 작품이라 칭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짧은 제목의 소설에 호기심이 일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반복적인 시간 속에서 만나지는 것은 나라는 존재인지, 그 시간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 이 모든 것들이 호기심으로 다가와 책을 가까이 하게 만든다.

보안원인 엄마와 함께 사는 마키는 판화가이며 스물아홉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다음부터 매일 같은 시각으로 되돌아오는 기이한 현상을 겪고 있다. 혼수상태인 "나"와 시간의 반복을 겪고 있는 "나"로 나누어버린 그날 아침의 그 사고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머무름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꽤 여러번 놓았다가 다시 잡기를 반복해야 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자꾸만 책을 놓게 만들었고 결국 여러번의 다시잡음끝에 책을 다 읽어낼 수 있었는데 왜 그래야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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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3세 만화로 읽는 셰익스피어 시리즈 4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주혜 옮김, 패트릭 워런 그림 / 좋은생각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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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불꽃]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철공소집 둘째딸 윤나영은 필요에 의해 스스로를 악하게 몰아가는 여인이다.  같은 환경 속에서도 선택에 따라 인간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은 나영 자매의 다른 삶이 잘 보여준다. 결국 행복은 많이 가진 자의 것도 사회적으로 명예로운 자의 것도 아닌 듯 했다. 특히 나영의 시가 식구들을 보면 가정에 돌아와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이익을 위해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유지해야 하는 모습들이 보여진다.

그 속에서도 불행해하기 보다 욕망을 위해 점점 더 손길을 뻗는 그들이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리처드 3세]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처드 3세.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어려서부터 즐겨 읽던 것들이 지겨울 만큼 익숙하게 느껴졌는데도 나는 리처드 3세라는 작품을 알지 못했다. 결국 이야기의 탐독에도 틀이 있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고 혹시나 모를 다른 작품들까지 찾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출생년도에서부터 최후 유언장까지 숨겨진 이야기가 많은 이 이야기꾼이 바라본 리처드 3세의 욕망의 화신이었다.  노트르담의 종지기처럼 곱사등에 악마같은 흉측한 얼굴의 사내는 그 누구보다 강한 성공의지를 가지고 태어났는데, 영악하고 술수에 강했던 그는 피바다를 지나 대영제국의 왕관을 머리에 얹게 된다. 하지만 영웅이나 황제의 근엄함 따위는 어울리지 않을 악마의 자식같은 음울함이 처음부터 끝까지 강하게 묘사되어 있고 그림컷의 면면마다 그가 나타날때면 스크린톤이 한톤 정도는 더 무겁게 입혀진 듯한 착각이 일곤했다. 

평범한 인간들의 내면에도 괴물이 한 두 마리쯤은 숨어 있다는데, 숫제 하이드 같은 이 사내의 검은 속내는 그 자신조차도 판가름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진다. 글로스터 공작이었던 리처드는 형과 조카들,신하들,심지어는 억지로 얻은 아내까지 숙청하는데 망설임이 없었으며 그의 야심에 반하는 인물들을 차례차례 제거하여 12년에 왕이 되었지만 세조처럼 찬탈왕위를 지키는데는 미흡했는지 그 역시 후일 헨리 7세가 되는 리치먼드에게 제거당한다.

마침내 케퓰러와 몬타규의 화해가 이루어지듯 오랜 세월 "장미전쟁"이라 불리는 싸움을 해온 랭커스터가와 요크가 사이의 장미전쟁이 엘리자베스와 헨리7세의 결혼으로 마침내 그 유명한 튜더 왕조의 시작점을 열게 된다. 어딘지 그림이 참 익숙하다 느껴지는 패트릭 워런의 그림 속 리처드 3세는 너무나 무섭게 그려져 전설의 고향보다 더 무섭게 느껴졌는데, 인물에 대한 기본 지식없이 살펴본 [리처드 3세]는 그 빠른 전개로 인해 생략된 부분이 많아 먼저 공부하고 보았다면 좋았을 것을....이라는 약간의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너무나 훌륭해서 셰익스피어 원작이라는 타이틀을 굳이 붙이지 않고서도 충분히 어필될 스토리 라인이었으며 고전을 뛰어넘어 새로운 감각으로 야만의 시대를 구경하는 기분을 만끽하게 만든다. 1471년.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전쟁 속에서 리처드 3세는 그 짧은 기간의 왕좌가 만족스러웠을까. 왕이 된 그에게 남겨진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시대의 악당 한 명과 마주하고 있다. 여전히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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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콜라 쇼콜라
김민서 지음 / 노블마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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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들어도 달콤해지는 소설이 있다. [쇼콜라쇼콜라]는 칙릿도 아니고 남녀의 근사한 로맨스도 아니면서 여성독자들을 끌어당기는 달콤함이 담긴 소설이었다.

 

너무나 다른 두 여자. 그것도 태어나면서부터 늘 비교당해왔던 두 사람.

 

미스 엄친딸인 단희는 너무 맑은 물이라 타인과의 소통이 어려워늘 왕따를 당해야했고 미스 오지랖인 아린은 학벌,직업, 남친에 이르기까지 엄마의 자랑이 되지 못한 채 껍데기뿐인 20대를 살고 있었다.

 

백단희와 도아린은 이제 한 집에 산다. 서로가 가진 것에 더 높은 점수를 주며 살았던 그들이 한 지붕 아래 산다는 것은 묘하게 이질적이면서도 또한 묘하게 기대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보태게 만들고 있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사회 속에서건 가정 속에서건 언제나 타인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면서 점점 변해가는데 정반대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온 단희와 아린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어 상대를 변하게 만들게 될지가 읽는 내내 궁금했었다. 추리소설을 야금야금 읽어가듯 조금만 더 읽으면 조금만 더 보면 나오겠지 싶어지는 조바심때문에 소설 한 권을 순식간에 후딱 읽어 버렸는데, 역시 소설은 제목만큼이나 달콤한 엔딩으로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아린의 2층에 사는 무시무시하게 뚱뚱한 여인의 사연을 듣는 날 그녀의 입으로 내뱉어진 대사가 진정 작가가 내뱉고 싶은 말이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그 대사를 나는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어느 인생에나 탈출구는 있는 법이야. 찾으려는 의지가 있느냐, 언제 찾느냐가 문제지.."라던.

 

다른 소설에서 나왔다면 교과서적인 교훈이 될 법한 문장이 쇼콜라 속에선 달콤함 속에 숨겨진 짜릿함처럼 단물과 함께 배여 흘러나오고 있었다.

 

인생이 그러하듯 모든 것이 지난 후 그들은 모두 행복해지고 있었다. 그들이 삶을 다 산 것이 아니니 모두가 행복해졌다는 식의 해피엔딩 멘트를 남기기 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고 싶은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행복해지고 있었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표현 같았다.

 

그들 앞에 나타났던 것은 터닝 포인트도 티핑포인트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정답 없는 인생에서 이제 인생을 정답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찾게 되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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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여자들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유리 옮김 / 북하우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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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가의 붕괴]를 읽으면서 이 작가 꽤 괴짜스러운데가 있구나 라고 느꼈지만 [이야기꾼 여자들]을 읽으면서 그 생각은 굳혀졌다. 


....부잣집 도련님인 "그"는 시간이 많았지만 돌아다니는 것을 싫어해 책을 읽게 된 사람이었다. 책만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던지 아라비아의 왕을 흉내내면 젊은 이야기꾼 여자들을 모집해 재미난 이야기를 직접 듣고자 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는 전국에서 모인 이야기꾼 여자들이 내뱉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져 있다. 시작부터가 괴짜스러운 소설은 처음 등장하는 [초록 벌레]를 읽으면서 머릿속에 작은 등이 하나 켜지는 것처럼 번쩍거리게 만든다. 초록색 갑충을 먹고 낳은 아이는 무슨 색의 옷을 입게 되더라도 초록빛으로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다. 어떻게 더 전개되거나 사건을 일으키는 일도 없이 딱 고까지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자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짧게 하지만 어이없이 끝나버리는 그녀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몽환적이거나 판타지적일뿐 소설처럼 기,승,전,결이 없이 그냥 이야기를 들려주고 끝나는 형식이었다. 

남편이 아내몰래 아내와 똑같이 만든 마네킹을 아내처럼 여기고 사는 [내가 아니야]라는 이야기도 그러했고, 스이코의 일족이라며 고백해온 남자 미즈가 머리에 물을 담고 산다면서 물을 가득 채운 욕조에서 잠든다는 이상한 이야기 [스이코]도 평범의 도를 넘어선 것은 마찬가지였다. 

중학생 소녀부터 할머니까지 오는 여자마다 족족 비밀스럽지만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를 털어놓고 홀연히 사라진다. 신비한 경험담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상해서 이 새로운 형식의 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중이다. 

작가의 다음 소설 [턴]을 읽기 전에 다시금 호흡을 가다듬어본다. 이젠 놀라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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