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축제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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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때때로 인간 역시 호기심에 집착하곤 한다.   [염소의 축제]라는 의미성이 부여된 제목의 소설을 읽다보니, 문득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엇다. 35년 동안 편지 한 통 보내지 않았던 우라니아의 귀향. 그녀는 왜 그동안 소원했을까. 또 이제와서 무엇때문에 눈돌린 땅을 밟게 되었으며 숨겨진 그녀의 과거는 무엇이었을까.  

 돌아온 여자들의 버리고 간 과거가 밝혀지는 이야기는 더이상 색다른 소재가 아니다. 이미 90년대 중국작가 경요의 유명한 작품 "비련초"를 통해서도 그 재미가 입증된바 있다. 그녀들의 사연은 언제나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으며 도리어 돌아옴으로써 과거와 화해하게 되는 해피엔딩식 결말로 이어져 우리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염소의 축제]에서 돌아온 여자는 우라니아다. 일주일의 휴가기간을 그토록 거부하며 살아온 땅을 방문하는 것으로 소비하고 있다. 14살에 떠났던 그녀는 이제 "카브랄 박사"로 불리는 49살이지만 상처는 나이테를 두르지 않았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제 1권력자가 되어 32년간 독재정치를 펼친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 트루히요에게 친 아버지의 손으로 직접 받쳐졌던 우라니아에게 아버지는 온몸으로 미워하게 된 대상이다. 아껴준 만큼, 가까웟던 만큼 상처또한 돌이킬 수 없을만큼 컸고, 가족에게 배신당한 일은 독재자에게 당한 육체적 고문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내고 말았다.  

 1인 지하 만인의 위에서 군림하던 아버지 아구스틴 카브랄 장관은 어째서 끔찍이도 사랑하던 딸을 염소처럼 발정난 독재자에게 들이밀었던 것일까. 가장 소중히 여기던 보물인 딸을 바쳐야할 만큼 권력은 끊지 못할 마약같은 것이었을까. 저버린 부정에 대한 원망과 반항으로 우라니아는 뇌출혈로 쓰러져 불구자의 세월을 사는 84살의 아버지를 외면하며 살아왔다.  

 소설은 한 사람이 아닌 우라니아, 암살자들, 트루히요의 세 사람의 입으로 현실을 바라보게 만든다. 하지만 노련한 작가의 필체는 변명이 섞일 틈을 주지 않는다. 절대 권력 아래 한 국가가 마치 불법 종교집단 교주의 손에 놀아나는 것 같이 굴려져 3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때 "사람들은 왜 독재자에게 맞서지 않는가?"라는 화두를 던지게 만들었다.  

 조용히 움직이는 사람들과 시끄럽게 이동하는 권력의 본질.  

문학으로 저항과 반역을 추구한 20c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위대한 상징이 된 [염소의 축제]는 인간에 대한 잔혹성과 추악함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어 조용히 분노하게 만든다.  

재미로 감동을 전하는 소설이 있다.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통해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소설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처럼 분노하게 만들고 움직이게 만드는 소설이 있다. 그 어떤 경우에도 각각의 매력과 재미는 존재한다. 하지만 2010년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를 읽었을때 만큼이나 분노게이지를 상승시키는 [염소의 축제]는 독재자의 마지막 나날에 대한 악몽같은 이야기로 기억되기 보다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여성들의 상처에 관한 이야기로 각인 되어 버렸다.  

 독재정권 아래, 그 무엇도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했던 그 모든 수단들이 평화체제 아래에서는 봄날 아지랭이처럼 새록새록 피어난다는 사실은 상처준 이들이 결코 알지 못할 진실이다. 36년 페루 출생의 작가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에게 2010년 노벨문학상이 주어지면서 "권력 구조의 지도를 그려내고 개인의 저항, 반역, 좌절을 통렬한 이미지로 포착해냈다"는 칭찬이 덕붙여진 이유를 읽고 나서야 깨닫는다.  

사실 유명하고 무거운 상의 수상작은 잘 찾아 읽지 않는 편인데, 대중성에 그 뜻을 두기보다는 작품성에 기초해 어려운 화두를 던져놓고 그 결말을 독자에게 숙제로 남기는 행태가 맘에 들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염소의 축제]는 우리의 역사와 닮아 있는 구석도 있고 맞서거나 피하는 방법이 아닌 순응하고 매달리는 방법을 택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담겨 있어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몰락의 순간. 바라보는 시선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독자의 시선은 어디쯤에 머물러야 하는 것일까. 올바른 자리보다는 마음이 이끄는 자리가 어디쯤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 작품이기에 소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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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넘버 포 1 - 로리언에서 온 그와의 운명적 만남 로리언레거시 시리즈 1
피타커스 로어 지음, 이수영 옮김 / 세계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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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많은 것을 착각하며 살아왔다. 지구멸망설, 외계인의 침공 등이 소재가 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나는 왜 그런 착각들을 하고 살았던 것일까.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이클 베이의 격찬을 받았다는 [아이 엠 넘버 포]를 읽으며 머리카락을 세게 몇가닥 쥐어 뜯는다.

 

[v]나 [우주전쟁], 심지어 [x - 파일]을 보면서도 외계인의 겉모습은 어떨까. 그들은 우리에게 우호적일까 만 생각해봤지 그들이 가진 사연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바가 없었다. 사실 ET를 제외한 외계인들은 지구인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으며 그들은 우리보다 우월한 문명을 들이대며 숫제 지구인을 미개문명 취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 엠 넘버 포는 조금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초사이언인인 슈퍼맨처럼 넘버포는 아이상태에서 지구로 보내졌다. 다만 홀로 캡슐에 태워진 것이 아니라 헨리(브랜든)라는 보호자와 함께 도착했고 그는 혼자가 아니라 아홉명 중 하나였다는 점이 슈퍼맨과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가드라 불리는 능력자인 그는 로리언 행성의 두 종류 인종 중 하나이며 지구에서도 그 능력을 계속 키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평균 200살 정도의 넉넉한 삶을 보장받은 그들이지만 가까운 행성인 모가도어인들에 의해 행성이 침략당했고 종족보존을 위해 아홉명이 지구로 보내졌지만 추적자들은 아이들을 살려두지 않을 계획이었다.

 

문제는 순서였다. 꼭 순서대로 죽여야 하며 순서가 뒤바뀐 죽음은 불가능하게 보호프로그램화 되어 있는 가운데 이미 앞선 셋이 죽었다. 이제 넘버 포의 순서가 다가온 어느날 오하이오주에 숨어 있던 넘버포는 외계의 힘 레거시를 갈고 닦던 중 습격을 받는다.

 

불/바람/번개 같은 자연의 힘을 마음대로 부리고 손에서 빛을 내뿜고 염력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인 레거시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친구들의 도움으로 구사일생 목숨은 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보호자인 세판, 헨리를 잃었다. 그리고 넘버 식스와 만났다.

 

죽음은 순서대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가드들이 모이게 되면 보호막은 해제되고 포와 식스의 만남으로 이제 룰은 깨어졌다. 누구든 순서에 상관없이 죽을 수 있다. 이제 여섯이 남았다. 다음은 누구일까.

 

데스티네이션의 SF화처럼 마음졸이며 봐야할 이 소설의 영상은 2월 영화의 개봉으로 확인할 수 있겠지만 분명 근사할 것이다. 무엇을 기대했든 상상이상이 아닐까. 우리 중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았으며 누구보다 특별하고 지구상에 없었던 인물의 이야기니까.

 

식스,샘,버니와 함께 마을을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종결되지만 원작소설이 끝나지 않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단지 여섯이 남겨졌기 때문이 아니다. 두근거림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근두근 쿵쿵....오랜 세월에 걸쳐 스타워즈 시리즈를 기다렸듯...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듯 기대를 가지고 보게 될 시리즈가 시작된 것이다. FIRST....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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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 하 미소년 시리즈 (미야베 월드)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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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와 가장 닮아 있어 좋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랬다. 미야베 미유키의 연작소설 [하루살이]는 전편 [얼간이]와 더불어 가장 인생과 닮아 있어 좋았다.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데는 범죄도 일어나고 오해도 빚게 되고 미움과 시기심, 질투,연민, 사랑, 집착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로인해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헤이시로와 유미노스케가 풀어나가고 있긴 하지만 이들은 탐정이 아니다. 따라서 김전일이나 코난처럼 "범인은 이 안에-. 사건은 완벽히 끝났다."라고 말할 수 없다.

 

A의 이야기가 풀어지고 내일은 B의 이야기가 진행되어도 A의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똑똑한 소설의 전개방식 속에서 나는 삶을 배워나가고 있다. 또한 어제는 나의 이야기지만 오늘은 또 누군가에게 힘든 하루겠구나...라는 이해도 함께.

 

타고난 재주는 그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그래도 밥벌이가 될만한 재주를 타고난 자는 그것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라는 성찰은 이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제 죽을 줄 알면서도 그림그리기를 포기하지 못했던 도둑의 일행이나 머리속에 도서관을 차린 듯 많은 기억을 담게 되는 어느 똑똑한 아이의 이야기, 경국지색처럼 아름다운 미색을 가졌으나 때때로 오줌싸개인 어린 사내 아이,아들을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 버려진 줄 알았으나 죽었다하고 죽은 줄 알았으나 살았다가 겨우 만나게 되자 제 눈 앞에서 시체로 발견된 어머니의 아들도 [하루살이]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재주가 사람을 살리거나 죽이기도 하지만 읽다보면 집착과 미움이 누군가를 죽이거나 살리기도 했다. 사람찾기 시스템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라 죽었다하고 감춰진 사람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기도 했으며 반대로 사람하나 감추는 것은 일도 아닌 시대이기도 했다. 소설의 배경은 그러했다.

 

그래서 부자상인 소에몬은 본처의 눈을 피해 살해당할뻔했던 후처를 어린 아들과도 이별시키고 멀리 "귀신이 아이를 잡아가는 집"에 은둔하게 만든다. 또한 자신의 큰 아들이 바람핀 본처의 아들이며 둘째 아들이 자신의 핏줄임을 알면서도 입다물고 있고, 사랑하는 후처의 아들에게 어머니의 생사를 알리지 않은 채 저 멀리서 살아가는 것을 보고만 있다.

 

그런 사키치가 잡혀갔다. 세상에선 이미 죽었다고 밝혀진 자신의 친어미 아오이를 죽인 범인이 되어....사키치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헤이시로와 유미노스케가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각각의 사연이 소개되었던 규베,오케이,오로쿠등이 등장한다.

 

결국 이 이야기의 결말을 위해 그들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던 것일까. 죽은 아오이에게 은혜를 입었던 오로쿠. 마지막에 실린 "하루살이"에서 잠깐 등장하지만 오로쿠는 마님이 죽은 다음에야 그녀의 사연을 전해 듣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고마움과 더불어 아들과 헤어져 가슴 아프게 살았던 마님의 과거가 불쌍해진다.

 

일일이 서술되지 않아도 오로쿠의 사연을 아는 독자는 그녀의 마음이 되어 아오이를 바라보게 된다.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을 얻게 만드는 것. 미미여사가 [하루살이]를 통해 이루어낸 가장 큰 효과가 아닐까.

 

타인의 일을 함부로 떠드는 것은 그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 각각의 사연을 알게 되면 우리는 누구도 타인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 할 수 없게 된다.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은 이토록 많은 차이가 있고 또한 무서운 일이다. 마지막 "하루살이"를 읽으며 애잔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이전에 작가가 깔아놓은 사연의 밑밥때문임을 읽는 순간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 와서야....겨우...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물을 읽으면서도 상상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먼저였기에 다른 것들은 그저 묻혀서 진행되어버렸다. 자연스럽게.

 

흔히 옛 사람들은 순진했을 것이다. 단순했을 것이다. 한다. 하지만 그 순박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살던 시절에도 범죄가 있었고 소문도 있었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고 타인에 대해 알게 되면 이전의 독설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이해와 더불어 함께 눈물짓게 된다는 것도 변함이 없다.

 

결국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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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 상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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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시대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도망자가 등장했지만 [얼간이]를 느릿느릿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은 태평한 무사 헤이시로와 아름답지만 아직은 어린 유미노스케 때문이었다.

 

아이가 없어 아내쪽 친척 아이인 유미노스케의 입양계획을 고려중인 헤이시로는 겉으로 보기엔 얼간이 무사처럼 보이지만 생각이 바르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인물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에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먼저 쥐락펴락하진 않으며 자연스럽게 흘러가면서 해결될 수 있도록 약간 돕거나 눈감아주며 살고 있다.

 

모든 것이 빠르고 잔인한 수법이 하루가 멀다하고 등장하는 가운데 이런 느린 이야기를 재미있게 느끼게 만드는 미야베 미유키야말로 글신이 아닐까 감탄하게 만드는 소설이 [얼간이]였다. 그들의 이야기가 조용히 그렇게 끝나는가 싶더니 연작으로 다음권이 나와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더 놀라운 내용을 담고서.

 

[하루살이]는 평범해 보이는 제목 아래에 얼간이의 연작소설이라는 재미를 밑바탕에 깔고 시작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선택함에 주저하지 않았다. 셜록과 왓슨의 똑똑한 콤비외에도 세상에는 들어주다보니 해결되었다는 헤이시로 콤비도 존재한다는 사실. 이 색다른 콤비의 조합은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밝혀내려고 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을 살피고 그들 사이에서 인과관계를 찾아낸다. 이것이 인간적으로 다가와 시대를 잊게 만들고 지역을 잊게 만든다.

 

소설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상상의 영상과 읽기가 동시에 진행되곤 하는데 하루살이는 그 어느 소설보다 자유롭게 상상하게 만들었다.

 

한때 친밀하게 지내던 존재가 어떤 이유로든 떠나가는 일, 그걸 못견뎌 하는 것도 결국은 욕심. 그래도 그런 욕심 없이는 사람이 살아갈 수 없다.

 

고 말하는 이유를 소설을 읽으면 깨닫게 된다.

 

이 시대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인간의 욕심은 자신뿐만 아니라 반드시 타인의 삶에 해를 가하게 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 역시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임을 책을 통해 배운다.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라...어찌보면 참 쉽고, 어찌보면 너무 복잡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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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프레데리크 에브라르.루이 벨 지음, 정기헌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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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기르지 않았다면 내게 이 책의 감동은 절반쯤 되었을 것이다. 때때로 경험이라는 것은 이토록 멋진 공감을 선물한다. 살아있는 동안에.

 

[고양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는 특이한 장르의 이야기다. 수필처럼 일기처럼 편안한 일상을 담아내는 이야기 속에는 고양이를 이렇게 길러라는 식의 가르침도 없고 우리 고양이는 이렇다 라는 자랑질도 없다. 평생을 고양이를 기르기를 희망했던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결국엔 손자, 손녀들이 생길정도로 삶을 진행하는 동안 그들 곁을 스쳐지나간 무수히 많은 고양이들에 대해 추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고양이 추억담 스토리랄까.

 

프랑스, 어느 숲속 넓은 외딴집에...배우인 남편과 소설가인 아내...그리고 고양이들이 모여 살고 있다.

 

그들이 함께 하는 삶은 아름답다. 길들이려고 애쓰거나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고 자유를 허락하는 자연스러운 삶을 받아들이며 공존하기 때문이다. 보뇌르, 샤르봉, 티베르, 예예, 칼린, 샹티에, 쥘, 타프나드, 펠라르동,세브놀 은 행복과 위안을 함께 나누며 살아왔다.

 

사실 [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애니멀커뮤니케이터 하이디가 아닌 이상 이들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다. 하지만 느끼고 이해하는 일은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하다보면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시간이 존재하게 되고 그 시간 안에서 서로의 표정, 음의 높낮이, 행동으로 느낌을 이해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자연의 일은 이처럼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하지만 책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매일 방문하는 집배원과 악수하는 티베르, 변함없는 우정을 나누어 줄 눈빛으로 쳐다보던 아르지롤, 말썽쟁이이지만 사랑할 수 밖에 없던 보뇌르, 가정부와 대화하는 샹티에, 사고로 꼬리를 잃었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은 세브놀....모두 사랑스런 고양이의 이름이다. 고양이에 관한 의학상식이 실린 것도 아니고 많은 종류의 고양이 사진이 빼곡히 차 있는 것도 아닌 글자와 추억만 가득한 이 책에 빠져 정신없이 읽은 이유도 이들에게 있다.

 

우리는 매일 고양이에게 새로운 것을 배운다.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방법, 명상의 즐거움, 자유를 향한 갈망, 그리고 충실함....뿐만 아니라 인생을 아름답게 보내는 순간순간의 적절한 선택도 배워나간다.

 

고양이들은 글을 쓰는 사람과 책을 읽는 사람이 자신의 친구인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비록 책을 읽으면 책장 사이를 엉덩이로 깔고 앉아 독서를 방해하고 노트북에 들어누워 타자를 칠 수 없게 만드는 고양이와 살고 있지만 나는 저자의 그 말이 진실임을 알고 있다. 나의 고양이도 매일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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