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티나 데이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정환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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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에서 단연 최고라는 찬사가 붙은 [플래티나 데이터]는 제목만으로는 그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다만 아날로그적이지 않은 그 제목탓에 무언가 미래적인 상황속에서 얻어질 재미를 기대하게 만들 뿐이다.

 

오래전 톰 크루즈가 주연이었던 영화 중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앞으로 발생할 범죄를 미리 알려 그 범죄를 막는 내용이 담긴 영화였다. 기계의 발달은 예언력을 높여 범죄율을 낮추고 좀 더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는 듯 보였으나 잘못 해석된 미래로 인해 주인공인 톰 크루즈는 쫓기게 되는 그런 내용이었다. [플래티나 데이터]도 비슷한 내용이었는데, DNA 정보를 방대하게 갖춘 국가가 그 정보를 바탕으로 빠르고 쉽게 범인을 검거하게 되는 이야기를 바탕에 두고 있다.

 

DNA와 일치하는 데이터를 위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의 데이터를 수집하던 중 의문의 살인사건이 시작되고 그 과정에서 모종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이 밝혀진다. 국민 대다수가 제출한 샘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시스템 속에 정작 존재해야할 권력층의 DNA는 빠져 있다. 그들은 검색결과 NOT FOUND 즉 플래티나 데이터화 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국민들만이 감시체제의 대상이 되고 만다는 설정은 어쩐지 현실감이 가득하게 느껴져 소름 끼치게 만들고 어쩌면 이 모든 산업의 발전은 대다수의 국민이 아닌 소수의 권력층만의 이익도모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소설이 바로 플래시나 데이터였다.

 

범죄 방지를 목적으로 한다지만 결국 그 범죄 방지의 효과는 플래시나 데이터화 되어있는 인물들을 위한 것이었고 예나지금이나 평범한 사람들은 이용도구로밖에 인식되지 않아 서글픔을 느끼게 만든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연쇄살인범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보다 어린 날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이중인격으로 살게된 천재 가구라 류헤이의 삶에 더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천재성으로도 해결하지 못했던 외롭고 쓸쓸한 인생이 보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똑똑하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었으며 편리한 세상의 주민이 된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국민의 반대따위엔 아랑곳없이 통과되어 버리는 법안은 소설 속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속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에 나는 언젠가 가까운 미래에 이러한 순간이 꼭 올것만 같아 두려워지고 있다. 2011년 최고 화제작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이렇듯 설레임보다는 두려움을 남기며 다가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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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커 -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고은규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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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중앙장편소설 -트렁커] 는 톡톡 튀는 재미로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를 설레게 만든다. 약간 까칠스러운면이 없지 않아 있는 불친절한 온두씨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고 멋지게만 보이던 남자, 름을 상처가 있는 따뜻함 남자로 탈바꿈 시키는 것을 "인간에 대한 이해"로 종결시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정말이지 우리는 아는 만큼 이해하는 동물인가보다. 상대방을 향해 keep out상태인 온두가 과거 까만아이였다는 사실과 가족동반자살을 꽤했던 부모의 살아남은 자식이 되어 "들피집"에서 성장했던 불운한 유년기를 통해 왜 트렁커가 되었는지 이해하고도 남았다.

 

또 육남매중 넷째로 성장했으나 그 과정에서 군인 아버지의 폭력과 급기야 자식의 손가락을 잘라 변기에 넣고 물내려버리는 비정한 아버지와 아들의 뒤늦은 화해를 보면서도 우리는 아들 "름"이 왜 트렁크에서 잠들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타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수근거리는 것을 멈추기에 딱 좋은 소설인 [트렁커]는 1억원이라는 고료가 아깝지 않을만큼 박수쳐주고 싶은 작품이었고 읽는 내내 그 유쾌한 문장들이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게 눈과 손을 붙드는 이야기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

 

슬트모, 슬리핑 트렁커 모임은 왜 가입자의 추천으로만 가입할 수 있는지, 전국에 얼마나 되는 규모인지, 그냥 트렁크에서 잠들면 되지 왜 꼭 가입해야한다며 "름"이 "온두"를 붙들고 늘어졌는지 따위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애인도 팔고, 친구도 팔고, 트렁크 속으로 들어간 그들을 따뜻하고 안전하게 보호해줄 공간이라면 트렁크든 관이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아, 물론 주변에서 아침마다 트렁크에서 잠을 깨 나오는 이웃이 있다면 수근거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의 트렁커는 꽤나 신기한 장면일테니, 하지만 비틀린 듯 탁탁 말을 뱉어내는 온두는 그냥 그대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아가씨였고 나는 어느새 그녀의 팬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함께하며 마지막에 거실에서 눈 뜨는 것을 앞으로의 희망적 발전으로 바라보건 이후 함께 트렁크에서 나오건 간에 그들이 이토록 사랑스러운 까닭은 상처를 유머로 승화시킬 줄 아는 그들의 재치와 과거 가장 힘든 순간 트렁크를 함께 나누었던 과거 이야기까지 보태져 훈훈하게 만드는데 있다.

 

처음 자동차 트렁크에서 잠잔다는 설정을 읽으며 "관에서 깨는 느낌"이 아닐까. 싶었는데 어느새 트렁크는 세상과 단단히 단절되어 나는 지켜주는 나만의 작은 공간이자 보호터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슬슬 트렁크에 중독되어갈 무렵 소설은 고맙게도 끝이 났다. 하지만 이제부턴 달리는 자동차 뒷 트렁크를 볼때마다 "저기라면 좀 편하지 않을까"싶어지는 상상에 시달릴 것만 같다.

 

까만 아이는 이제 행복해졌다. 네번째 소년도 이제 행복해졌다. 그들은 함께 있어 치유되는 사이가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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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점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56
미우라 아야코 지음, 최현 옮김 / 범우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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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마음 속에나 빙점을 가지고 있다"     -요오꼬

 

 

 

30대의 엄마에 대한 기억은 늘 [빙점]과 함께였다. 한글판부터 한자가 많이 섞였던 책, 세로줄로 내리적힌 일본판까지....엄마의 서가에 꽂힌 빙점의 여러모습을 보면서 좋아하는 책은 번역별/출판사별로 구매할 수도 있구나....라고 어린이 시절 생각했다.

 

 

그때의 엄마처럼 나도 좋아하는 작품은 번역이 다르거나 출판사가 다르면 무조껀 사모으는 습관이 들어 있다. 딱히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엄마의 딸인 내겐.

 

엄마의 나이가 되어 읽게 된 [빙점]은 여러면에서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어린 나이에 읽게 되었다면 줄거리만 따라가거나 캐릭터 하나만을 놓고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인생의 굴곡을 알아가는 나이엔 작품의 나이테까지도 헤아려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30~40대가 소설쓰기 적정기라고 말한 어느 소설가의 충고는 적절했다고 보여진다.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가 여전한 물건을 "명품"이라 부르듯 명작은 시간의 흐름에도 변함이 없다. 1964년 아사히 신문창간 85주년 기념 수상작인 [빙점]은 미우라 아야꼬에 의해 쓰여졌다. 730편 중 당선작으로 뽑혀 1천만엔의 주인공이 되기에 지금 보아도 부족함이 없는 작품은 말 그대로 명작이다. 폐전 후 국가의 기민적인 교육정책에 실망하고 교사를 사직한 후 폐결핵으로 인해 13년간이나 투병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고스란히 작품으로 녹여 쓴 작가는 겉으로는 온화해보이는 한 가정을 파괴하면서 "누구의 마음속에나 가지고 있는 빙점"을 세상에 녹여보인다.

 

 

 

 

"엄마를 귀찮게 하면 아빠에게 이를거야."       -루리꼬

 

 

아사히가와시의 교외 가꾸라읍, 쓰지구찌 병원장 저택에는 쓰지구찌 게이조오와 부인 나쓰에, 아들 도오루, 딸 루리코가 살고 있다. "내과의 귀신"쓰가와 교수의 귀한 딸로 태어나 아이같은 면이 있는 나쓰에에게 반해 있던 안과의사 무라이 야쓰오는 1946년 7월 21일 가미가와 신사제 날 그녀를 찾아와 마음을 전한다. 그 장면을 목격하고 뛰쳐나간 루리꼬가 교살된 채 발견되자 행복했던 집은 삽시간에 불행한 집으로 변해 버리고....

 

 

딸 루리꼬의 죽음이 아내와 무라이의 불륜으로 인해 생겼다 생각한 게이조오는 친구 다까기를 통해 범인의 딸을 입양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애지중지 요오꼬를 기르던 나쓰에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남모를 학대가 시작되는데, 요오꼬는 그럴수록 더 바르게 자라나간다. 이상한 일이지만 요오꼬는 떼쟁이도 아니었고 여느 아이처럼 아이스럽기 보다는 어른스러움을 넘어서 성인스러운 사람으로 성장해버린다. 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는 자기자신에 대한 사랑은 저버린 인물처럼...원죄가 있다한들 그녀의 것이 아닐진데 요오꼬는 너무나 타인에 맞추어가며 성장하고 이런 그녀를 곁에서 바라보던 오빠 도오루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버리는데....

 

 

 

"자신이 못되는 건 다 자기탓이야. 물론 환경이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 말하면 자기에게 책임이 있는거야."             -요오꼬

 

 

비열하고 질투심이 강한 아버지와 부정한 엄마 그리고 살인범의 딸인 여동생에 대한 비밀을 알아버린 도오루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모를 괴롭게 만드는 동안 자신이 업둥이라는 소문을 들어버린 요오꼬는 자립심 강한 아이로 커나간다. 완전해보이지만 부식하고 있는 가정의 시간도 흘러 어느새 도오루와 요오꼬의 결혼 이야기가 나올 시점에 이르러 도오루의 친구 기다하라 구니오의 등장은 삼각관계를 야기시키면서 문제를 풀어나갈 제3자의 역할을 기대하게 만든다.

 

 

부부간의 불신과 아내의 불륜에 대한 가장의 복수, 남편에 대한 증오와 어린 마음으로 자라 성인이 된 여자의 우울증 등 두 사람이 시작한 서로에 대한 미움은 네 사람이 다 상처받는 일로 번져나가고 바르게 살고자 했던 한 사람을 자살로 몰아버리게 된다.

 

 

 

"울기를 바라는 사람 앞에서 울면 지게 됩니다."        -요오꼬

 

 

자기 딸을 죽인 범인의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일까? 를 오랜시간 생각하게 만들고, 사랑한다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역시 장시간 고민하게 만든 소설 [빙점].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마음이 비뚤어지지는 않을거야. 그만한 일로 사람을 원망하여 내 마음을 더럽히고 싶지는 않아."라고 생각하던 요오꼬의 자살시도를 계기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모든 갈등은 눈녹듯이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살인범 사이시 쓰지오의 딸이 아님이 밝혀지는 순간.

 

인간의 마음이란 이토록 어리석은 것일까. 웃는 얼굴을 하면 마음이 진정되고 곧 마음까지도 따라 웃게 된다고 생각해서 울고 싶어지면 얼른 방긋 웃어보이는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갈만큼 이 아이가 잘못했던 것은 없었는데........

 

 

소설 속에서 게이조오는 아들 도오루가 5세때 "적이란 가장 사이좋게 지내야 할 사람" 이라고 말해주지만 그 역시 나약한 인간일 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결국 게이조오도 나쓰에,도오루, 다까기, 무라이까지 흔들리는 인간이며 갈등하는 인간일 수 밖에 없음을 작품은 극명히 증명해내고 있었다. 읽는내내 답답하리만치 안쓰러웠던 요오꼬. 그냥 떠나버렸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그녀가 깨어나게 되는 세상은 이전과 다를 수 있을까.

 

진실을 알게 된 모두가 상냥해졌다해도 상처받은 그녀의 세월이 보상될 수 있을까. 마지막에 그녀가 죽어버림으로써 모두의 마음에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남기는 쪽이 더 원죄스럽진 않았을까....결말에 대한 다양한 상상들을 해보며 가장 추악한 것이 인간의 마음 속에 얼마만큼이나 자리잡아야 나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까 고민되기 시작했다.

 

 

"싫다고 생각하는 쪽이 잘못일 수 있어. 사람이란 그다지 영리하지 못해서 친절한 사람이 조금만 잘못해도 곧 싫어지지"      -다쓰꼬

 

 

오래된 소설이지만 [빙점] 속에서 숨겨지지 않는 가장 인간다운 추억함을 발견해냈다. 욕망과 질투, 불륜이 아닌 불신과 의심, 해하려는 마음이 합쳐진 또 다른 모습의 추악함. 헐리우드 노감독의 한탄처럼 역시 우리는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것만 같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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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들이 떴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0
양호문 지음 / 비룡소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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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픽션상 수상작의 공통점은 발랄하다는 점이다. 성장기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는 반대로 독자의 눈엔 그들을 이해하는 시선을 갖게 만든다. 문제아인 그들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우리에게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꼴찌들이 떴다]는 [파랑치타가 달려간다],[하이킹 걸즈],[번데기 프로젝트]등을 읽고 맨 마지막으로 읽게 된 작품이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 어른이 되어도 뭐 별 볼일 있겠냐!"는 그들 앞에 딱히 뭐라 더 좋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거짓말은 해주고 싶지 않은 어른이기에 그저 그들의 좌충우돌 충동기를 한쪽 눈 감듯 모른 척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절대 기죽지 않는 심성은 대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이맘때의 나도 이랬을까. 최강 꼴지라하지만 이들은 결코 인생에서의 꼴찌들은 아니었다. 언제나 무언가를 찾고 움직이는 그들의 역동성은 그들을 결코 꼴찌라는 자리에 그저 내버려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비주류로 몰린 남학생들이 보낸 여름 한철 이야기...라는 어느 소설가의 작품설명이 줄거리를 가장 잘 축약해 놓은 것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시작도 하기 전에 비주류로 몰린다는 그 문장이 참 가슴 따갑게 만든다.

 

어느 개그맨의 외침처럼 세상은 어쩌면 "일등만 좋아하는 더러운 세상"일지도 모르지만 그 세상을 만들어가는 건 대다수의 1등 외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이 시기이의 아이들이 미리 알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꼭 1등만을 고집하지 않아도 세상은 살만하더라...라고 이제는 이야기해주고 싶어지지만 소설은 어느새 유쾌하게 끝나버렸다.

 

유난히 문학이 자신에게 냉정했노라 며 회고하는 저자의 수상을 뒤늦게나마 축하하면서 블루픽션상의 유쾌함이 오랫동안 계속되기를 기대해본다. 다른 수상작에서는 없는 이름 그대로 색다름이 묻어나는 작품들이기에 매년 기대를 가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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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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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처럼

어려운 데가 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자살이 되물림 된다는 것. 그 시초는 할머니였다. 아버지의 어머니였던 그녀는 복엇국을 먹고 자살했다. 아홉살 아들이 보는 앞에서. 그리고 그녀의 딸인 고모 역시 어느날 죽어버렸다. 아버지까지...게다가 그녀는 이제 죽음 앞에 있다.

 

여자에 이어 남자도 그런 이상한 대물림을 봐야했다.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려 온 아버지, "어서와"라고 전화해놓고 십오분을 못기다리고 창밖으로 뛰어내려버린 형. 이 환경 속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사지도 않을 집을 매일 보러 마실 나가는 어머니. 남자의 집은 그런 상태다.

 

사로잡힌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죽음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두려움은 후차적인 문제이며 놓여지지 않는 당면과제 같은 것일까.

 

모든 이야기는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작의 이야기여서 그녀는 친구 "사임"의 몸으로 [숨]을 완성해냈다. 그리고 여전히 살아남아 전시회를 열고 남자를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일까. 소설은 끝났지만 나는 남겨진 그들의 이야기는 좀 더 달콤했으면 좋겠다 싶어졌다. 살아가기 위해서.

 

물론 자살이 되물림 되는 집안의 두 남녀의 만남에 빛나는 밝음을 기대하는 것이 유치한 일일지는 모르겠지만 남겨진 그들에겐 이유가 충분하게 보였다.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소설의 사건을 따라가지 못하고 그들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이 부여된 것처럼 그 길을 따라 갔더니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이해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멀미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아닌 그들의 마음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그 끝엔 작가의 멋진 글이 남겨져 있었다.

 

글을 쓰는 일이 이미 소명이 되어버렸다고 느꼈다면 더 큰 것을 바라서는 안된다고 여긴다....라는.단 한번 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이기에 너무 일찍 말하고 싶지 않았다는 그녀의 맺음말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녀의 이야기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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