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대로 되겠지. 케세라~세라~를 외치며 빈둥대는 갈색곰 리락쿠마. 곤도우 아키의 게으름뱅이 쿠마군은 오늘도 변함없이 빈둥빈둥~생활하고 있다. 일본판 귀차니즘인 마이붐 신드롬을 일으킨 이 심플하게 생긴 곰군은 갈색피부에 동그란 귀, 세상에서 제일 칠칠치 못한 녀석이지만 쿠마와 함께 하는 하루는 빨리빨리를 외치는 우리의 하루를 잊게 만들고 여유롭게 만든다. 그와 함께라면 걱정없이 스트레스 없이 한 세상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푸근함을 가져다 주는 곰은 첫장부터 꾸르륵꾸르륵거리는 배고픈 곰의 모습으로 나타나 웃음을 멈추지 못하게 만든다. 싱글여성인 가오루의 집에 어느날부터 얹혀가는 곰돌이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가슴에 빨간 단추가 달린 아기 리락쿠마도 함께여서 가오루가 없는 낮동안 칭얼대는 아기 리락쿠마도 달래가며 돌본다. 게을러보이지만 제 몫은 확실히 하고 있는 곰군. 곰옷을 세탁해서 빨랫줄에 너는 이상한 모습도 보여주고 살다보면 이런날 저런날도 다 있다며 병아리를 위로하는 모습에선 세상 다 산 노인의 포스도 느껴지고 한 손은 꿀단지에 넣은 채 "조금 불편하지만 불행하진 않아"라고 태평스레 말하는 쿠마. 아이마냥 병에 걸린 쿠마 곁에서 "왜 항상 너만 받는 거야?"(병에 너만 걸리는 거지?)라며 병걸려 쉬는 것까지 부러워하는 병아리 한마리까지 웃음을 보탠다. 그들에게 병이란 아프고 싫은 것이 아니라 신이 내린 휴식인가보다. 아, 보다보니 정말 가끔은 리락쿠마가 되어 살고 싶어진다. 간절하게.....!!!
[뉴욕, 매혹당할 확률 104%]를 읽으며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지?라며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유쾌하고 엉뚱발랄한 스튜어디스 출신의 그녀는 멋지게 살고 있으면서도 까다롭지 않았고 평범하면서도 다 갖추고 있는 여자여서 부럽지만 얄밉지는 않은 그런 캐릭터였다. 스튜어디스가 되었으나 실수로 손님을 포크사 시킬뻔 한 후 스스로 비행을 멈추었고 뉴욕에서 살게 되었으나 영어는 잘 못한다고 말하는 그녀. 그런 그녀의 실수담과 일상담은 웃음의 도가니 그 자체였고, 빈둥대는 곰 리락쿠마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한 내 앞에 정말 리락쿠마처럼 살고 있는 그녀의 일상은 부러움 그 자체였던 것이다. 원래 모든 일에 책임 같은 거 안지는 성격이라는 그녀가 "원래 남자복이 없어서...."결혼 안하겠다는 폭탄 선언을 하자 그녀의 엄마는 "나라고 니 아빠랑 섹스하고 싶어 결혼했겠냐"라며 강력응수를 두는 장면은 그엄마의 그딸이라는 옛말이 딱맞아떨어지는 장면이었다. 아, 이런 엄마와 딸도 있구나.....!!!역시 평범하지 않은 그녀 곁의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평범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서 한 후배의 말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데, 그 후배는 그녀에게 "언니, 난 재벌 2세라면 어떤 사이코 변태라도 같이 잘 수 있어요"라고 말했단다. 세상에.........말하는 후배나 책에 담는 그녀나.........평범한 사람들과는 어딘지 다른 색감의 사람들....!!! 평범한 일상의 배신스러운 반전이 있어 구경하기 즐거운 그녀의 여행은 꽃미남이 없어 투덜거린 도쿄에서 뉴질랜드에 이르기까지 늘 가출을 꿈꾸는 여자의 일탈을 담고 있었다. 예나지금이나 만만한 모양으로 생겼다고 스스로의 얼굴을 표현하는 탄산고양이 그녀. 만화가가 되었다가 디자이너가 되었다가 지금은 가출 비스무리한 여행을 다녀왔을 그녀가 오늘 또 어디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아, 리락쿠마나 그녀처럼 살 수 있다면 인생은 얼마나 신나는 일 투성이일까.
책의 후미에 이런 말이 덧붙여져 있었다. 아내와 크게 싸워 이혼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이 책은 출판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그의 말을 듣고 편집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그럼 [나는 이렇게 살다가 이혼했다]라고 제목 붙여도 좋으니 출판될 거라고. 두 사람의 말을 읽으며 웃게 된 까닭은 책의 전반에 묻어나던 웃음의 조각이 마지막까지 붙어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39세의 이혼남 히다카 히로시는 프리랜서 작가다. 언제부턴가 한국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는데 지인의 소개로 동갑내기 한국 여인을 만나면서 그 꿈이 현실이 되었다. 은주. 그녀의 이름은 은주다. 이상적인 아내로 한국 여성을 꿈꿔왔던 그는 아내와 함께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일본으로 건너가는데 결혼식의 시작과 동시에 문화적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에겐 당연한 일인 폐백과 자동차 뒤에 달린 깡통들. 그때까진 재미있게 보였던 문화적 차이는 생활로 들어가 다름으로 다가왔을때 그들은 모두 당황하기 시작했다. 서른 아홉이라는 신부의 나이를 성숙되었을 좋은 나이로 받아들여준 시아버지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두려움이 있던 시어머니와 함께하며 시작된 일본생활. 서른 아홉 해를 한국 풍습을 익히며 살아온 아내는 이불 빨래에서부터 청소법에 이르기까지 이방인이 되었다. 설거지법까지 다르다니...가깝고도 먼 나라가 일본이 맞긴 맞나보다. 하지만 그는 아내가 아닌 자신의 시선에서 양국을 비교하고 합리적인 쪽을 칭찬하고 있다. 일본에서 산 시간과 한국에서 산 시간을 통틀어. 깜짝 놀랄만큼 맘에 들었다는 한국의 전세제도를 비롯해서 그에게 한국은 하대의 국가가 아니라 대등하면서도 다르기에 관심이 가는 국가인 듯 했다. 순하지만 고집센 일본 남편과 유별나지만 마음 여린 한국인 아내는 여전히 함께 살고 있을까. 그것이 궁금해진다.
이식된 심장이 다른 성격을 가져온다고 입증된 바는 아직까지는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종종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서 심장 이식을 받은 사람들이 이전과는 다른 성격을 드러내며 결국 이식된 심장의 주인처럼 군다라는 소재로 사연이 엮어져 소개되는 것을 본 일은 많다. 정말 다른 느낌이 들까. 버려지는 것과 얻어지는 것은 다를 것이다. 매번 주기별로 탈락되는 각질이나 정기적으로 깎아야하는 손톱발톱은 버려지는 것들이라 이물감보다는 시원한 감이 있지만 장기이식처럼 남의 것을 내 것으로 접붙이는 것은 내 것과는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다리가 부러져 철심을 박게 되거나 성형수술로 실리콘을 넣게 되거나 심장 이식을 하게 되면 내 몸과 다른 그 무언가가 느껴질 것만 같다.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이해되는 가운데 [안녕하세요 나는 당신입니다]를 읽게 되었지만 소설은 생각만큼 처절하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극성맞은 엄마로 인해 피겨 스케이트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열 여덟의 반항적인 이건은 1.25센티미터가 만들어낸 불행으로 인해 죽었다. 천재적인 재능으로 피겨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던 이건. 스스로도 상식으로 알고 있는 위대한 피겨 스케이트 선수 뒤의 극성스러운 엄마에게 간혹 "심한 사람에게 심하게 말하는 건 당연해요"라고 응수하던 딸이긴 했지만 그녀는 삐뚤어졌거나 비행청소년은 아니었다. 그저 자유스러운 10대를 누리고 싶어한 평범한 여학생일 뿐이었다. 노환의 할아버지를 병문안 다니던 이건이 우연히 사인하게된 장기기증서로 인해 그녀의 심장은 죽은 뒤 열 여섯의 아멜리아에게 주어지고 오랫동안 심장때문에 병원에 누워 있던 아멜리아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석달 안에 생을 마감해야했던 그녀에게 새 삶이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새로 단 심장은 어딘지 모르게 자꾸만 이물감이 들고, 성격도 예전과 달리 엄마를 향해 반항적이고 욱하는 말들이 튀어나오는 것 때문에 스스로도 많이 당황스럽다. 그래서 비밀이긴 하지만 자신에게 심장을 기증한 사람과 그 가족에 대해 알고 싶어진 아멜리아. 결국 남자친구와 함께 이건의 집으로 향하고 그 곳에서 이건의 가족들과 만나면서 비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새 삶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멜리아의 가족도, 이건의 가족도. 이건 역시 하늘에서 할머니와 만나게 되고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게 된 삶을 받아들이고 행복해진다. 소설은 고통이 아닌 소설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환상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찢어지는 고통이나 슬픔의 시간을 축소시키고 받아들임으로써 행복해지는 시간에만 머무르고 있다. 그래서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로 완성된다. 세포 기억 이론을 이식 수혜자 전원이 경험하는 일은 아니기에 맞다 아니다를 논할 순 없겠지만 소설은 울혈성 심부전증을 앓고 있던 아멜리아가 경험한 짧은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 만날 순 없지만 마주친 두 소녀의 특별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글들을 읽다보면 언제 어느 신문에선가 보았던 사건을 담아놓은 듯한 사회고발적 내용들이 눈에 띄여 섬찟할때가 있다. [지구인]을 처음 읽게 된 날도 그랬다. "완전범죄야 말로 내가 꿈꿔오던 이상이며 환상이다"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읽을때처럼 섬찟하면서도 오싹해지는 무언가가 전달되어 왔다. 작가가 특별히 마음에 부담을 안고 있다고 고백한 소설인 [지구인]은 1974년 "이종대","문도석"이 벌인 갱사건을 신문에서 접하고 구상하게 되었다는 작가 최인호의 작품이다. 이종대는 도주,문도석은 자살한 상황에서 자신의 가족을 인질로 삼고 경찰과 대치중인 이종대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아니 사실은 이종대의 배다른 동생 이종세의 현재로부터 이야기는 출발하고 있다. 이종세는 월남전후 이만길로 살고 있는 인물로서 형 때문에 자신의 본명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으며 형보다는 자신의 가족을 지키는 것이 더 우선인 남자다. 아버지와 형을 살리기 위해 인민군에게 담임선생님이 숨어 있는 장소를 제 손으로 알려 밀고자가 된 어린 소년 종세는 정읍이 지긋지긋해져 서커스에 합류하며 가족곁을 떠났다. 반면 형 종대는 구로동 갱사건, 국민은행 아현지점 갱사건, 이정수 살해, 아내 황은경과 자녀들 살해 등등으로 현재 경찰과 대치중이지만 스스로도 자살을 계획하고 있다. 이런 종대의 회상점은 그가 미군부대를 탈영하게 된 사연을 보여주면서 시작되는데, 자신이 처음 범한 여인 영국이 결국 몸파는 여인이 되어 미군에게 매맞으며 사는 것을 보고 그녀를 찾아가기 시작하지만 성병에 걸리고 매맞다가 버려질 운명을 구제하고자 맘먹은 순간 영숙의 남편 마이클을 때리고 도주하게 된다. 함께 탈영한 근식이 금광에서 죽자 초인으로 살기로 결심한 종대는 떠나온 세계속 자신의 삶을 버리고 다른 삶을 꿈꾼다. 그랬던 그가 어째서 세월이 지난 후 살인범이 되고만 것일까. 1권에서는 전혀 살인범이 될 여지가 없어보이는 남자와 그의 형제의 과거가 언급되고 그들을 미워하기 이전에 그들을 이해할 시간이 주어진다. 자기 파괴를 넘어선 세상 파괴자로 낙인찍혀버렸지만 그들이 과거에는 인간이었음을, 인간의 삶을 살았음을 이해하게 만드는 부분이라 꼼꼼히 유심히 읽게 되었다. 앞으로 2권,3권이 남아있지만 소설을 읽으며 나는 꽤 많이 슬퍼질 것같다. 인간이 제 방향대로 살지 못하고 인간의 삶을 벗어나는 것을 바라봐야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임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