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생인 류노스케 스님은 바다 건너 여기까지 와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그것도 불교계에서가 아닌 서점가에서. 자기계발 혹은 명상으로 분류되는 그의 책들은 마음의 양식이 되고 살아가는 현명한 충고가 되어 우리 곁에 남아 있는데 우리와는 종교생활을 영위하는 기준이 다르다보니 스님은 출가해서도 기초생활영위를 위해 학원 강사생활도 했으며 여러 직업을 투잡처럼 해왔던 것으로 보여진다. 게다가 사랑을 해 보지 못했을 스님이 사랑에 관해 충고할 말들이 있을까 싶었는데 그는 대학시절 만난 여인과 결혼했다가 습관적으로 구타하는 폭력성을 참지 못해 2년만에 출가를 결심했다고 했다. 자기 자신에게 상처가 있기에 사랑에 대해, 상처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그의 고백이 더 인간적으로 다가와 사람들은 그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인지도 모르겟다. 말로만 사랑을 만들었다가 없애는 사람들에게 책이 많은 마음의 움직거림을 가져다주었으면 좋겠다. 사랑을 먼저 시작하는 쪽도 먼저 접는 쪽도 있지만 이별 앞에서 우리는 항상 그 온도 차를 인정할 수 없어 울고 때쓰고 흉한 모습으로 매달린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 현명한 대처법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또 같은 상황이 닥쳐지면 인간인지라 마음의 동요가 없으리라 생각지도 않는다. 그렇게 사랑은 우리를, 삶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는 녀석인데도 언제나 우리는 사랑에 목마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였던가 그 비슷한 연애 심리서들이 줄줄이 출판되면서 서점가에서 싹 쓸어 읽어볼 때만 해도 남자가 모르는 사랑에 대해서 또 여자가 알지 못하는 이별에 대해서 딱히 좋을 법한 방법을 찾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사랑을 말한다는 스님의 책에서 아이러니하게 사랑을 발견해낸 것은 어쩌면 재미난 일이 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수녀님이나 신부님들에게 결혼에 대한 고해성사를 하듯 우리는 그들이 모든 답을 다 갖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믿고 있기에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위안이 되고 답이 되었던 것처럼 스님의 말에서 역시 답을 찾게 되었다. 의례 의견을 제시하거나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의 심리 이면에 집착과 공격성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싫증도 습관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이 일면서 급하다고 아무나 만나지 마라는 충고는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것이라 새로운 흐름의 찾게 만들었으며 공기의 흐름만으로도 인생의 흐름을 잠시 멈출 수 있게 만든 것이 글의 힘이요, 말의 힘임을 다시금 깨닫게 만든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책을 읽는 내내 고요한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조용하고 사색에 젖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내일도 오늘처럼 조용한 시간 속에서 멋진 말들에 귀기울일 수 있는 평화가 주어지기를 기도하며 늦은 오후의 시간을 그만 접는다.
[창작과 비평]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권씩 건네지는 계간지다. 가을호를 받아들고 겨울이 오는 문턱에 이르러서야 보게된 까닭은 순전히 개인적으로 이래저래 바빠서였는데, 좋아하는 책을 손에 쥘 수 없을만큼 그간 많은 일들에 치여 바빴다. 그래서 가을호를 읽으며 가을이 오기 전에 읽었다면 다른 느낌이었을까 하고 잠시 떠올려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려운 까닭은 이해해야하는 구석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서로의 이해의 폭이 다 다르다보니 그릇에 따라 상황에 대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이해가 되어 풀리기도 하는 모습들을 봐 왔다. 곁에서 봐온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모두가 개개인적으론 좋은 사람들인데 얽혀나가면서 무언가 풀어지지 않는 것들이 생겨나는구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생긴적도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은 그렇다면 사람과 사회는 어떨까. 나는 이제 사회 속의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사회를 바라보는 나름의 시각을 구축할 필요가 있어 여기저기 자료들을 뒤적이거나 뉴스를 꼼꼼히 보고 사람들이 내뱉어놓은 말들에 주목하고 있다. 사회. 흐름이 너무 빨라 살펴보기 까다롭지만 이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체득해야하는 것 이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기에 사회바라보기는 좀 더 진지해질 수 밖에 없었다. [창작과 비평]을 통해서도 그 단면을 보면서 가을호에 실린 "삽질없는 지역 살리기"나 "새로운 코리아"만들기를 통해 희망을 품어보기도 하고 "중산층의 욕망과 커지는 불안들"을 읽으면서는 잠시 불안해지는 마음을 다독거려보기도 했다 그 와중에 가장 반가웠던 일은 좋아하는 작가들의 소설을 맘껏 읽을 수 있는 페이지들이었는데 장편연재중인 은희경 작가의 '태연한 인생'이나 김숨, 조경란 작가의 소설들은 숨통을 좀 틔워주었다. 재미있는 것만 보고 살아가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회 구조속에서 동시에 두 가지를 구경할 수 있게 해주는 [창작과 비평]이라 읽기를 쉬이 멈출 수 없었다. 몇날 며칠에 이르러 다 구경한 이 책이 다음에 선물로 건네질 친구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열심히 포장해 보고 있다. 다 읽은 창작과 비평을-.
고양이를 키우면서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고양이 세수가 참 엉터리 말이라는 것도, 좁은 서랍 안에 굳이 들어가서 잠든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고양이와 친해지는 눈 인사에서부터 고양이와 함께 살기 위해 익혀야 하는 것들을 고양이가 집 안에 들어오면서부터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잃어버리고 나서는 미친듯이 찾아 헤매며 그 소중함에 대해서도 그 누구보다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운명이라면 운명이고 인연이라면 인연이라 생각이 될 수 있는 이 일들이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동물을 마음으로만 아꼈지 삶 속에서 아껴주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내게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준 소중한 생명이 바로 고양이였다. 열 살 지민도 그랬다. 그 많고 많은 길고양이 중에 임신냥인 "달고나"를 만났고, 그 새끼 중 한마리인 호랑이 줄무늬 고양이가 다시 찾아오면서 집 안에서는 웃음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요물덩어리라고 말하던 할머니도, 귀찮아하고 탐탁찮아하던 엄마도, 별 말을 없었지만 그렇다고 환영하는 편도 아니었던 아빠도 지민이의 바램을 꺽지 못하고 카니를 식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징기스칸의 줄임말인 카니라는 이름도 가족 속에서 탄생되었다. 약간 아플때도 있었고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던 엄마를 딱지로부터 구하기도 했으며 자동차 보관함에 끼여 카센터에서 구해지기도 했다. 탈도 많았지만 카니는 그림 그리는 고양이가 되어 그림 전시회를 여는 유명한 고양이로 거듭났다. 여느 고양이 같진 않았지만 행복을 만들어가는 카니 와 지민이의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따뜻함과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동시에 심어주길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카니의 그림을 판 수익인 27300원으로 길고양이들에게 줄 사료를 사겠다는 그 마음까지 예쁘게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을 이해하기에 그 어떤 이야기보다 와 닿았던 카니 이야기 속에는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게 만든다. 열 살 지민이의 길고양이 입양 일기는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에 필요한 정보들이 가득했고 어린 길고양이가 입양되어 한 가족의 구성원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주어진 가족이 아닌 만들어가는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만든다. 고양이가 사람과 함께 하기 시작한 일이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저 먼 옛날 이집트에서부터라고 하는데, 그 옛날부터 사람들 곁에서 길들여지기보다는 함께 사는 법을 터득한 현명한 고양이에 대한 좋은 이야기들이 세상에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서른의 의자" 서른을 훌쩍 지난 그녀가 말하는 의자는 자리를 뜻하는 거였다. 서른을 넘긴 여자들이 앉아 있는 자리, 생활하는 자리, 평소의 시간을 보내는 그 자리들을 살피면 그녀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기에 나는 이 표현이 참 영리한 표현이라고 생각되었다. 의자 위의 시간은 그래서 아주 여유로운 시간이며 성찰의 시간인 동시에 앞으로의 시간을 위한 준비의 자리가 된다. 그 어떤 에세이를 읽어도 이처럼 문학적이라고 느껴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무언가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우리에게 잘난 척을 하려한 것도 아니요, 심연의 감성으로 감수성을 충동질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서른을 지난 사람들에겐 공감의 시간을 넘어선 그 무언가를 전하고 있다. 희망도 절망도 여성적이거나 전투적인 삶을 살아내라고 용기를 북돋우는 것도 아이면서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공감 속에서 이해를 이끌어내고 있다. 그녀는 이름 앞에 붙여진 특이한 성씨만큼이나 깊고 특별한 생각으로 머릿속을 채우며 살아가는 30대였다. 염전이 있던 곳 / 나는 마흔 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 이문재 [소금창고] 그녀가 좋아하는 시의 구절을 함께 좋아하게 되면서 옛날이 가버린 시간이 아니라 기억하고 있는 오늘에이르기까지 자꾸 오는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마음의 비린내로 시간을 죽일 때 라는 표현이 너무 좋아 메모하면서 좀 더 업그레이드 된 단어구사를 해 본 적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 아울러 침묵에는 시작도 끝도 없으며, 침묵은 그 자체로 능동적이고 독자적인 완전한 세계 라는 구절에 밑줄을 그어본다. 서른은 와서 조용히 지나쳐 갔지만 지나고 보니 그 나이는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들을 가져다 주었던 것 같다. 알게 모르게 사람의 마음을 조용히 움직여 놓고 내 삶의 방향을 정해준 나이. 생의 반짝거림보다는 편안함을 가져다준 그 서른이라는 나이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끼면서 뒤이어 살아내고 있는 여성들이 이 나이를 좀 더 알차게 보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볻다.
마이클 잭슨은 우주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코코 샤넬 또한 우주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우주인이라고 믿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믿음이나 이해가 아닌 그저 재미있을 것 같았다. 세상을 떠난 유명인들이 죽어버린 것이 아니라 어디론가 멀리 떠나버렸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덜 쓸쓸할 것 같기도 했고. 인터뷰식으로 꾸려진 이 책 속에서 마이클 잭슨은 시리우스 별의 마음 치유사로, 찰리 채플린은 헤드로포보스별의 신사로, 코코샤넬은 시리우스별의 똑똑한 이기주의자였으며 마리아 칼라스조차 잉케별의 예술가였다. 또 잉케별의 또 다른 외계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시리우스별의 또 다른 외계인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아이콘들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은 참 색다른 일이었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에서 언급해 놓은 것처럼 그들만 외계인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느 별에서 온 우주인이라는 생각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더 다르게 만들었다. 심심하고 지루한 일상에 상상력을 불어넣으면서 누구누구의 누구가 아닌 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지구별에 와서 지구를 변화시키는 인물로 남기 보다는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으면서도 되돌아갈 때엔 "공부를 했다"는 마음으로 끝맺어져 있어서 좋았다. 그들이 정말 외계인이든 아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을 여행으로 바라보고 죽음을 돌아가는 곳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 좋았다고나 할까. 정말 죽음이 저승사자가 데리러 오는 것이 아니라 우주선을 타고 이 별을 떠나는 것이라면 세상 사람들은 그 마지막 순간을 그토록 두려워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명의 스타들이 나오지만 처음 예상 했던 것처럼 나는 [코코샤넬]편이 가장 좋았다. 꼭 샤넬을 입어야 한다고 고집하진 않지만 여성들이 샤넬 스타일에 열광한다면 그만큼 의식수준이 향상되었음을 뜻한다는 부분에서는 정말 그녀의 육성으로 듣는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였다. 영화를 보면서도 코코 샤넬에 매료되었던 것처럼 책을 읽으면서는 그녀와의 가상 인터뷰를 통해 그녀의 당당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수선재의 책은 두번째지만 참 특이한 책들을 펴내는 이 출판사의 시리즈가 어디까지 이어질까. 출판사 사람들이야말로 우주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들은 특별한 아이템을 담아내고 있다. 세번째 책에서는 대체 어떤 이야기들을 펼쳐놓을지 독자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