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lor 세계를 물들인 색 - 원하는 색을 얻기 위한 인간의 분투
안느 바리숑 지음, 채아인 옮김 / EJONG(이종문화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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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감을 높이는 색이 있고, 식감을 낮추는 색이 있다. 어떤 그림을 보고 나면 유난히 배가 고파지게 만드는 그림도 있고 유독 피로감을 안겨주는 그림도 있다. 다 색감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것을 미술을 강의하는 언니를 통해서 작년 즈음해서 알게 되었다. 그녀가 늘어놓은 이야기들은 마치 마술과도 같아서 들으면서 색에 대한 흥미로움이 새싹처럼 돋게 만들었는데, 그 이후 따로 미술을 공부할 시간을 갖지 못했기에 호기심은 거기에서 딱 접혀버린 상태였다. [더 컬러- 세계를 물들인 색]을 만나기 전까지는.

 

세상을 덮은 많은 색을 우리의 눈은 다 인식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눈뜨고 장님같이 살아가고 있다니 안타깝기 그지 없지만 눈에 보이는 색만으로도 충분하니 그만 욕심내야 되겠다 싶다. 어린시절 12색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다가 24색, 36색, 48색, 126색...이렇게 점점 더 많은 색을 가지다보니 달랑 12개만으로 그릴때보다 그림은 더 풍성해지고 색을 겹쳐쓸 수 있어 미술시간은 언제나 마술시간처럼 기다려지는 수업시간이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결국 전공은 하지 못한 채 다른 길로 들어섰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색감이 마음에 드는 물건은 갖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때도 알지는 못했다. 이런 색들에 예전부터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어 왔다는 것을......!

 

흰색 은 백악, 고령토, 조개나 알 껍데기 등에서 얻어지는 색으로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에서는 신성한 색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여신들의 몸에 걸치는 옷들도 다 흰색이었으며 이슬람, 가톨릭, 불교, 종교를 막론하고 신성시 여기는 색이어서 순례자의 옷까지도 흰색이었지만 수의나 상복에 사용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 죽음을 함께 하는 색이기도 하다. 특이하게도 뉴기니 이아트물족은 성인식을 치를때 흰색을 즐겨사용하는데 통과의례용이라고 한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빨간색 은 성적으로 성숙된 색이라 동화 백설공주에서는 순수의 흰색에 빨간 피가 떨어지는 것의 의미도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어린 시절 무릎이 까지거나 팔꿈치가 까지면 할머니들이 의례 발라주곤했던 빨간 약의 레드는 보호를 전투의 색으로 쓰일때는 피를 상징하며 그로 인해 빨강은 위험과 죽음을 나타내는 색으로도 두루 사용되어왔다고 한다.

 

흰색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색은 빨간색말고도 검정색 이 있는데 식물탄, 그을음,유럽밤나무,진흙 등을 통해 비교적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색이었던 검정은 죽음,금욕,저승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힌두교의 최고신 비슈누가 아나율로 현신할땐 검은색으로 나타나 무섭게 인간들을 내려다보았고 진시황은 주왕조의 붉은 색을 걷고 자신의 검은색을 문장으로 삼았단다. 사실 블랙이라고 하면 프랑스의 유명한 디자이너인 샤넬을 대표하는 색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검정색이 상징하는 것은 심플하다는 의미 말고도 참 많았다는 것을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아는만큼 이해하게 되나보다. 특히 관심도 없었던 코란의 검은 쿠픽체를 보면서 꼭 뱀이 구불거리는 것 같은 그 서체가 묘하게 아름답게 느껴져 얼른 친구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아마 확인해보고 그 아룸다움에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싶다.

 

앞의 색들과 달리 어렵게 얻어진 색들도 있다. 파란색, 보라색, 녹색은 희귀한 색들로 구하기 쉽지 않아 사용도 조금씩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물감이든, 크레파스든, 색연필이든 간에 풍족한 현대의 우리들에겐 다소 어려운 일이지만 셋 중 가장 없어서 못썼던 색인 녹색 은 녹토, 공작석, 녹청에서만 얻을 수 있는 색이었으며 성장, 부활, 풍요, 좋은 꿈의 상징이자 이슬람교의 상징의 긍정적인 의미가 많이 부여된 색이어서 그 희소성에 당대에는 많은 안타까움으로 발을 동동 굴렀으리라 짐작이 된다. 작년 한 해 질리도록 보았던 얀 반에이크의 [아를놀피니 부부의 초상]에서 녹청이 치마 가득 사용되어서 희귀한 색인지 미처 몰랐으니 그 시대를 직접 살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들도 참 많은 것 같다.

 

보라색 역시 얻기 힘든 색이긴 마찬가지였는데 자주색과 혼동되던 색으로 보여진 작품 중에선 이집트 콥트 교도의 미라를 감싼 태피스트리의 그림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듯한 모습으로 전체적으로 깔끔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유머가 섞여져 있는 듯 하여 보고 또 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과거 파란색 을 만드는 일은 정교한 일이라 여성에게 그 임무가 맡겨졌는데 얻기 어려워 조금씩만 사용되거나 신성시한 까닭에 조심히 다루었던 색이었다. 하지만 양면적 의미도 부여되어 "공포의 색"으로 여겨질 때도 있었는데 게르만 족이 전투시 머리카락부터 말끝까지 스머프처럼 파랗게 물들인데다 그들의 눈동자색까지 푸른 눈이어서 적국의 전사들에게는 파란색은 곧 공포로 각인되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아시아에서는 파란색에 마력,죽음,애도의 뜻을 부여하기도 했고 인도에서는 거부의 의미로 이 색이 사용되어왔다.

 

마지막으로 황토, 강황, 목서초에서 얻어지는 노란색 은 아시아에서는 행복과 신, 권력을 의미했고 불교나 폴리네시아의 부족사회에서는 성스러움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루벤스의 극찬을 받았던 나폴리 노랑과 달리 미라노랑이라 불리는 색은 아마천 붕대와 미라의 피부를 갈아만든 색이라고 하니 노란색을 마냥 순수하게 좋아할 수만을 없을 것 같았다. 특히 미라 노랑은 끔찍하게 여겨졌다.

 

사실 이 책에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색은 빠져있다. 단지 7가지 대표색에 대해서만 그 색이 어떻게 얻어져왔고 무엇이 원료가 되었으며 어떤 작품들 속에서 사용되어 왔는지 밝혀두고 있다. 하지만 이 7가지만 알고 있더라도 우리는 앞으로 그림을 감상할때나 일상생활에서 어떤 식으로든 색을 대할때 어제와 달리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병실의 색은 어디를 둘러보나 흰색이다, 영화제의 카펫은 언제나 빨간색이며 수묵화는 먹으로 검게 그려진다. 쉽게 변하지 않을 이 색들이 대표하는 의미들을 잘 알게 된 지금, 색은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참으로 재미난 스토리텔링을 가진 자연의 일부라 생각되어졌다.

 

 

살펴보면, 우리는 참 재미난 세상, 재미난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그것에 감사하며 며칠동안 누워 읽은 책 한 권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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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양장) - 세상의 모든 인생을 위한 고전 글항아리 동양고전 시리즈 4
공자 지음, 김원중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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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을 돌리다가 강의가 있으면 반드시 멈추는데 강사에 따라 채널이 1분만에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있고 "에이, 좀 더 일찍 틀어볼껄. 언제부터 시작한 거야?"라는 아쉬움을 갖고 남은 시간동안 시청할 경우도 있다.

 

바로 얼마전의 경우에도 그랬다. [23살 맨땅에 헤딩하기]를 읽고나서부터 그녀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 허스키한 목소리를 들으며 독설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케이블 TV의 <스타 특강쇼>를 통해서.

 

그녀의 독설은 적절했다. 한마디,한마디가 폐부를 찌르며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고 그 어떤 명강사의 칭찬보다 더 획기적이며 효율적인 충고들로 가득했다. 총 5가지 에피소드를 골라 채 한시간도 안되는 시간을 알차게 메우며 진행한 특강이었는데 처음부터 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남아 인터넷으로 다시보기를 찾아볼만큼 매력적인 강의였다.

 

만약 공자가 살아있다면.....나는 그도 그 강의의 패널로 그날 그자리에 앉아 있었을 거라고 장담한다. 현자인 공자 역시 오늘날 우리의 인재들이 그 어느 곳에도 들어갈 곳이 없는 것처럼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의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던 인물이 공자였기 때문이다. 그 역시 이 시대의 말로 표현하자면 고학력 백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다. 그 드넓은 중국 대륙을 돌고 돌아 제후들을 직접 만나며 면접을 보는 적극성을 띄였고 일터의 환경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따라 자신도 같은 평가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이후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자 후학을 양성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어록을 후대에 남기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사상은 옆나라 조선으로 전해져 조선의 중심사상이 되었다.

 

유수연 강사가 강조했던 것처럼 방안에서 검색으로 없는 것을 찾기보다는 경험하며 발로 뛰는 적극성을 보였던 인물이 바로 공자였다. 그랬기 때문에 비록 자신의 뜻을 펼칠 환경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고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학의 종장이자 춘추 전국 시대 대표 사상가인 공자는 이렇게 청년 취업과 실업대란이라는 현업과 맞물려 쉽게 다가와 주었다. 이 뛰어난 인재를 그 드넓은 대륙의 많은 나라 제후들 중 아무도 등용하지 않았지만 그는 결코 실력이 모자란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남긴 말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호기심이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한장, 한장 넘기면서 조선왕조가 숭산했던 유교의 바이블 [논어]가 총 20편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 책이 개인의 저작을 뛰어넘은 고전이라는 말에도 수긍이 가기 시작했다. 공자의 어록집이자 사후 그 제자들이 편집한 담화집을 이토록 간결하게 읽어볼 수 있기에 그 옛날로 돌아가 공자에게 직접 듣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마치 중학교 한문시간으로 돌아가 그 시절 한문 선생님이 칠판에 필기하고 그 뜻을 밑에 달아놓은 채 엮인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셨듯이 그때를 상상하며 나는 한장, 한장을 읽어나갔다. 물론 영어공부를 하듯 처음에는 훑어보기부터 시작했다. 꽤 두꺼운 책이기에 짧은 시간에 다 읽을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하곤 그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애벌 읽기를 끝냈고 다음날부터 정독을 위해 메모를 위한 포스트 잇을 책 앞에 끼워두고 재독하고 있다. 결코 서두르지 않을 생각이다. 지식이 아니라 현문을 내것화 하는 일인데 어찌 시간을 넉넉하게 내어놓지 않겠는가.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p.83 정말로 인에 뜻을 두고 있으면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올 시간에 나는 미드 한편을 틀어놓고 있었다. 최근에 보기 시작한 [크리미널 마인드]가 할 시간이라 잠시 책읽기를 멈추었는데 하필이면 이 문장을 읽고난 후 드라마를 시청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보는 내내 저 범인이 논어를 읽었다면 인에 뜻을 두고 나쁜 짓을 멈출 수 있었을까. 아니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돌고돌아 스토리 라인을 쫓기보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공자의 어록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친구와 잠시 통화를 했는데, 전화를 끊고 다음에 눈에 들어온 문장이 바로

 

p.90 덕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라는 문장이었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하지는 못했지만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는 인물은 아니었는지 통화를 마친 친구로 인해 나는 이 문장 속 덕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의 멋진 이웃이자 가족같은 친구가 있어 외롭지 않고 힘들지 않고 언제나 용기를 얻는다. 그래서 스타특강에서처럼 민폐가 아닌 인맥으로 곁에 있기 위해 2012년은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마음 먹고 있다.

 

사람이 뜻을 품으면 그 뜻을 펼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찾아내야한다. 그래야 그 뜻을 펼쳐 세상에 나아가고 사람을 얻어낼 수 있다. 결국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명강사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살아가는 것"에 관한 것이기에 나는 귀를 쫑긋 세울 수 밖에 없었다.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삶에 대한 애착이 생겼으므로. 최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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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 아름다운 공존을 위한 다문화 이야기
SBS 스페셜 제작팀 지음 / 꿈결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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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의 세계화, "글로벌한 인재양성"을 외치멶서도 대한민국은 그 이면에 이중적인 잣대를 대고 있다. 마치 양면이 다른 아수라 백작같은 얼굴로-.

 

십수년전 새내기가 되어 선배들을 따라 동아리 농활 취재차 동행했는데 그때도 우리네 농촌엔 타국에서 시집온 "외국 며느리"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신기했으나 그네들이 마을 사람들과 섞여 음식을 하고 노래를 하고 함께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거리낌없이 함께 하다 돌아왔던 시간이 떠올려졌다. [다른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를 읽는 순간.

 

이제 그들이 이땅에서 낳아기른 아이들이 학교에 갈 시점에 이르렀는데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국적이 "한국"인 그 아이들이 미처 상상치도 못한 상처로 이 땅을 하나, 둘 떠나고 있다. 떠나지 못한 이들은 상처를 떠안으며 살아가는 것은 물론이요. 여기서 태어나도 국적조차 갖지 못하는 아이들도 태반이란다. 부모가 불법체류자인 경우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 함께 불법체류자가 되는 것이 법의 현실이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그 어떤 혜택도 기대할 수 없는 그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서 있었다.

 

당연하게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국민의 한사람으로 살아가면서도 경제니 체감현실이니해서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런데 그런 우리네보다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대한민국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인종차별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단일민족의 장점만을 우리것으로 할 수는 없을까. 단일민족.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의 국민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생김새 상관없이 "똘똘 뭉쳐" 서 "우리"가 되는 것. 그것을 장점화한다면 글로벌화는 대한민국내에서도 가능한 일이 아닐까.

 

읽다보니 약간씩 눈에 눈물이 맺힐 떄가 있었는데, 아이들의 멍든 동심 속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들 때였다. 우리에겐 당연한 것들이 그들에겐 간절한 것들이었다니, 이땅의 국민으로 앞으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할지 곰곰히 고민하게 만든다.

 

이들을 위한 좋은 대안은 과연 없는 것일까. 한국을 알리는 일은 돈을 들여 해외마케팅을 하기 이전에 자라나는 새싹들의 마음 속에서부터 시작할 제도적 장치마련은 어려운 일인 것일까. "우리"라는 테두리가 좀 더 넓고 관용적인 의미로 이해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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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도서관
아비 스타인버그 지음, 한유주 옮김 / 이음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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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있는 몇 개의 학위 중에 문헌정보학에 대한 학위도 있지만 나는 사서가 되어 본 일이 없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인 도서관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알고 싶어 공부해 놓은 정도니까. 좋아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은 직업으로 이어지진 못했는데 단 한번 일을 쉬고 있을 때 지역 공공 도서관에서  계약직 사서를 구한다는 인터넷 공고를 보고 면접을 보러 간 적이 있긴 했다. 물론 일을 얻진 못했다. 면접관은 "당신처럼 커리어가 대단한 사람을 뽑을 수는 없다"고 했는데 결국 그것이 이유가 되었나보다.

 

얼마뒤 평소처럼 책대출을 위해 도서관에 갔다가 새로 뽑힌 사서가 일하고 있는 모습을 모았는데 뽑힌 사람들은 모두 50대 정도 되는 머리가 허연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었다. 컴퓨터를 이용하는 대출 시스템이 익숙치 않으셨는지 대출을 위한 줄은 길게 늘어서 있었고 안경너머로 땀이 흐르시는 것을 보고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관계자가 아니라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어 그냥 긴 줄에 낀 한 사람으로 긴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줄은 예전과 달리 길었지만 단 한 사람도 불평을 하거나 불편한 얼굴로 사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대하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도서관을 나오면서 마음이 편했다.

 

나보다 더 그 일이 필요한 사람을 뽑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떨어진 것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남질 않았다. 일반 학위를 가진 내가 지역 도서관에서 일하려고 시도했던 일은 정말이지 일반적인 일일 것이다. 그런데 하버드를 졸업한 사람이 교도소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건 그렇지 못한 일 같이 느껴졌다. 흔히 하버드를 졸업하면 어느 분야든 최고들 틈에서 일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저자 아비 스타인버그는 하버드를 졸업하고도 교도소에서 일했다. 그것도 사서로.

 

교도소 도서관이라고하면 자동으로 떠올려지는 영상이 바로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두고두고 재방송할때마다 봐도 감동적이다. 세월이 비켜간 영화처럼 전혀 촌스럽거나 시시하지 않았다. 이 감동적인 영화의 한 장 면 속엔 듀프레인이 책을 기부받아 도서관을 꾸미는 에피소드가 재미있게 그려진다. 다들 신나서 책을 분류하는 가운데,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나오자 내용을 모르는 재소자가 듀프레인에게 내용이 어떤 거냐고 묻고, 그는

 

감옥을 탈출하는 이야기야

 

라고 답한다. 곧 바로 그 책은 교육파트로 분류된다. 복수극의 소설이 재소자 들에겐 감옥을 탈출하는 이야기가 섞여있다는 이유만으로 교육파트로 분류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들다니....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유머가 그들에게는 있었다. 물론 이건 영화니까 가능한 일일 것이다. 감옥이 이처럼 인간적이고 따뜻할 리가 없다.

 

그래서 그가 일하는 감옥의 도서관은 매일 방문자로 넘쳐나지만 책을 읽는 조용한 분위기가 아니라 떠들기 위한 만남의 광장 같이 되어버렸다. 교도소에서 책은 읽는 매체가 아니라 돌돌 말면 무기가 되고 때론 방탄복이 되며 편지를 숨기는 메신저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이곳에서 일하던 중 강도를 만나지만 복면의 강도는 그가 보스턴 교도소 도서관 사서임을 알아보고 신체적 위해를 가하지 않고 도망갔다. 물론 도망가면서도 "책 2권을 아직 반납하지 않았지롱~"이라면 떠벌떠벌했지만. 이 모두가 저자가 실제로 겪은 일이라니 얼마나 웃긴 일인지....!

 

미국 범죄 드라마들이 보여주는 흉악함은 그가 만난 재소자들 속에서는 만나기 힘들었다. 물론 그가 가벼운 잡범들만 골라 도서관에 입실시킨 것은 아니었다. 포주,조폭,스트리퍼,불법 노름꾼 등 세상과 격리 되어야하는 모든 인간 부류가 이 곳에 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전적이 어쨌든 간에 책을 빌려주면서 그는 인생을 선물받았노라고 회고하고 있다.

 

첫문장에서 그는 "포주는 가장 훌륭한 사서가 될 수 있다"고 고백했다. 이 문장의 의미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을 자격이 주어졌다고 본다. 나 역시 첫문장에 이끌려 책을 끝까지 읽어냈기 때문이다. 그가 전하는 교도소의 도서관이 영상으로 다시 찾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서 그가 만난 캐릭터들을 종이에 한 사람, 한 사람 기록해 봐야겠다. 왠지 재미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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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 순간, 나는 학생이 되었다 - 북미 최고의 치유심리학자 기 코르노의 자전 스토리
기 코르노 지음, 김성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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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 전 즈음 이야기다.

일터에서 만나 친해진 동갑내기 친구가 병원에 한달째 다니는데도 감기가 낫질 않는다며 걱정하길래 다른 병원에 가보라고 지나가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다음날 다른 병원에 다녀온 친구의 입에서는 어마어마한 병명이 튀어나왔다. "감기가 아니고 암이래." 바로 대학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한 친구는 비록 몇 달에 한번씩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약을 타와야하지만 그래도 일을 하며 즐거이 생활하고 있다.

 

북미 최고의 치유심리학자라는 기 코르노의 실화가 담긴 책을 보며

 

"감기가 아니라 암이라고 한다..."

 

는 부분을 읽다가 나는 문득 십년 전 친구의 그 일이 떠올려졌다. 코르노 역시 치료과정을 거쳐 병마와 싸워 이긴 사람이다. 20여년 동안 사람들을 만나고 강연을 하러 다니면서 누군가에게 코칭을 했을 그가 병 앞에서 나약한 인간이 되어 인생을 다시 배우는 학생의 자세로 돌아갔다. 죽음 앞에서는 그 누구의 조언도 필요 없었다는 그의 말이 내 심장에도 격하게 와서 꽂히는 까닭은 최근 나 역시 갑자기 쓰러져 건강을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병은 이렇게 불시에 건강한 삶을 쓰러뜨리고 긍정적이었던 사람을 고통 속에 빠뜨려버린다. 겪어보니 그렇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르노는 전이까지 되었지만 그는 죽음이 아닌 삶에 매달렸다. 물론 고통 이후 찾아온 우울증도 그의 몫이었고 그로 인해 찾아온 불안감도 그가 감내해야하는 일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잘 이겨냈기에 그는 병을 극복할 수 있었고 그 과정을 담아 타인과 공유할 수있는 책을 출판해낼 수도 있었다. 물론 그에게도 그냥 죽고 다른 몸으로 태어나고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어느 페이지보다 절대 공감으로 읽어나갔던 부분도 내겐 바로 이 부분이었다. 쓰러지고 입원 첫날 너무나 아파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연신 간호사를 호출하며 진통제를 맞을면서 차라리 죽고 다시태어났으며 했던 순간들이 내게도 있었다. 아주 먼 순간의 이야기같지만 내겐 바로 얼마전의 이야기였으며 진통제도 맞는 시간적 간격이 있는데, 고통을 호소하는내 목소리가 너무 크고 절박해 간호사들도 연신 진통제를 놓아주던 그 밤. 나는 잠들지 못하면서 계속 머릿속으로 차라리 죽어버렸으면...했었다. 그랬기에 코르노의 투병일지는 페이지페이지마다 내겐 눈물로 읽을 수 밖에 없는 나의 이야기처럼 다가왔고 그가 깨달은 생의 해법들은 내겐 실천의 요소가 되기 시작했다.

 

누구도 아파보지 않고서는 아픔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 책은 단 한번이라도 크게 아파본 사람들에게는 가슴 절절한 일기가 될 것이고 가족 중 누군가가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에게는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로 읽혀질 것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 깨달은 가장 소중한 인생의 지혜는 "건강"을 잃고서는 그 무엇도 시작할 수 없다는 거다!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이상 우리는 이미 갖고자 하는 것의 50%는 가진 사람이니,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고 비관할 일도 포기할 일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늘 기도를 통해 많은 것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기만 했던 나 역시 내가 가진 50%를 잃고나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 나의 기도는 많은 것들을 바라는 기도에서 단 하나를 원하는 기도로 바뀌었다. 제게 다시 건강을 허락해주십시요. 나머지는 제게 주신 달란트의 힘으로 제 스스로 해결해나가겠습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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