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순살탱 - 내가 선택한 가족
김주란 지음 / 야옹서가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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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끄네 집' 이후, 믿고 보는 출판사 [야옹서가]의 고양이 책. 이번에는 반려묘 3마리가 있는 집이다.

 

보통의 책은 책 표지를 넘기면 이어진 페이지에 작가 소개 & 약력 등이 기재되어 있는데, 특이하게도 고양이 세 마리의 소개가 먼저다.

 

순구/살구/탱구....'구'자 돌림의 사랑스러운 반려묘 셋. 하지만 첫째 순구의 소개글을 읽다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눈은 제일 많지만 손은 제일 많이 가는 타입" 이건 또 무슨 말인지. 고양이 세마리니 눈은 여섯개 일텐데...제일 많다니....

 

아~ 고양이 셋, 눈 셋인 가정이구나! 둘째 살구는 눈이 하나고, 막내 탱구는 두 눈이 없다. 너무 예쁜 녀석들인데, 많이 불편하겠구나.....라는 것 또한 오해. 이건 지극히 사람의 생각인거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든 것조차 녀석들에게 미안해진다.

 

2015년 펫숍에서 안아본 하얀 새끼 고양이는 다른 녀석들과 달리 벌벌 떨기만 했다고 한다. 활발한 녀석들보다 더 눈에 밟혔던 '순구'를 첫째 고양이로 데려온 저자는 닳고 닳은 장사꾼에게 속았다. "나중에 오셔도 다른 스코티시폴드는 있겠지만 이 아이는 없을 것"이라는 말이 심장에 콕 박혀 80만원에서 10만원 깎아주겠다며 선심쓰듯 건넨 곳에서는 이동장마저 생략했다. 구멍 뚫린 종이상자에 넣어 순구를 들려 보내곤 설사와 기침을 계속한다고 전화하자마자 '다른 고양이로 교환해주겠다."고 했단다.

 

이런 이야기가 종종 들려온다. 이웃 고양이 중 하나도 순구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녀석도 순구처럼 좋은 집사님을 만나 사랑받으며 살지만 그렇지 못한 고양이들도 많겠지. 아마! 허피스에 링웜까지 달고 온 순구를 위해 저자는 '제주도에서 한달살기'도 포기했고, 아픈 몸을 이끌고 과외를 열심히 뛰어 병원비를 벌었으며 비염과 알러지 때문에 눈물,콧물 다 빼야했지만 잘한 일 이라고 했다. 곁에 와서 눈을 맞추고 누워 주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존재. 고양이의 힘은 참 대단했다.

 

둘째 살구유기묘 입양 홍보 중인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했고 '도키->살구'로 개명했다. 크고 예쁜 한 쪽 눈을 사진으로 보고 너무 속상했다. 저렇게 예쁜 눈인데......하지만 글과 사진으로 접한 살구의 일상은 다른 고양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평범하면서 때론 웃기기도 했고, 툭닥툭닥 서열 싸움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제서야 한쪽 가슴을 쓸어내렸다. 또 사람의 눈으로 보고 있던 것이다.

 

셋째 탱구는 파혼 후 제주도로 내려간 저자가 임보 맡았다가 셋째가 된 케이스였다. 완전 개냥이인 탱구의 합사는 둘째보다 쉬웠고 두 눈이 다 없는 고양이였지만 두 눈을 뜨고도 자기가 싼 똥을 밟는 순구에 비해 너무나 뛰어난 점이 많았다고.

 

제주도로 내려가서 살고 있는 집사님들이 부쩍 많아졌다. 언제나 부러움 반 포기 반이지만 순살탱 집사의 경우는 전화위복이 된 듯 싶다. 남자친구와 다시 만나 결혼했고 세 고양이의 집사로 살고 있으며 빠르고 빡빡한 도시보다 한결 여유롭게 건강을 돌볼 수 있는 환경을 섬이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가족'이라는 표현도 참 마음에 든다. 가족 문제, 갈등을 다룬 책들 속에서 '어쩔 수 없는/ 가족이기 때문에/ 버릴 수 없기에' 이런 표현들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고양이 순살탱>>에서는 스스로 선택하고 함께 책임지는 가족들을 만날 수 있어 미소를 내려둘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의 순살탱의 뒤태.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궁디팡팡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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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딸들
랜디 수전 마이어스 지음, 홍성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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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채널에선 단 하루도 '죽음'에 대한 소식이 빠지질 않는다. 대한민국 어딘가에선 꼭 누군가가 끔찍하게 살해되거나 사고를 당했고 처벌수위에 대한 언급이 있곤 했다.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에게도 가족이 있을텐데...그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나? 슬퍼지곤 했는데, 피해자의 가족인 동시에 가해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어린 자매의 이야기가 <<살인자의 딸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었다. 상상과는 달랐고 더 먹먹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는 이러했다.

 

 

엄마를 죽인 아빠를 바라보는 자매의 다른 시선

친탁했다는 얘기를 듣는 아홉 살 룰루와 엄마를 쏙 빼닮아 아빠뿐만 아니라 외가에서도 관심 듬뿍 받는 다섯 살 메리는 하루 아침에 부모를 잃었다. 엄마는 땅에 묻혔고 아빠는 감옥에 갇혔다. 둘 다 이상적인 부모는 아니었지만 울타리를 잃은 아이들의 상황은 비참했다.

엄마와 아빠는 집에 있을 때면 항상 싸웠다(p9)

남자들이 줄곧 엄마를 찾아왔다(p12)

아빠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걸 원했고, 다른 무엇보다도 엄말 간절히 원했다(p9)

 

자매의 부모는 완벽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숙한 인간도 아니었다. 이럴 때마다 누군가의 바램처럼 부모가 되는 과정도 시험을 거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든 거다. 처음 책의 제목을 접하곤 타인을 살해한 살인자 가족이 세상의 불편한 시선과 부당한 대우를 겪어 나가는 일들이 쓰여진 소설일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아빠가 엄마를 살해했고 자신의 어린 딸도 칼로 찌른 후,자해했다. 그리고 감옥에 갇혀 딸들이 자신을 보러 오길 바라는 이야기라니....게다가 세상의 편견에 앞서 가까운 가족들이 준 상처가 먼저였다. 할머니도 외할머니도 자매를 돌볼만한 어른은 아니었으며 언니가 살아 있을 때도 어린 조카들에게 독설을 날리던 이모는 언니가 죽고 자신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조카들을 고아원에 갖다 버렸다. 치과 의사인 남편의 손을 빌려.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인내와 영리함을 동시에 갖추어야했던 언니 '룰루'는 좋은 남편을 만나 두 딸의 엄마가 되었고 동생 '메리'는 줄곧 아빠를 면회가며 '보호관찰사'의 삶을 살고 있었다. 삼십여 년이 그렇게 흘러갔다.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했던 큰 딸과 과거, 자신을 찔렀던 아버지를 지키려 노력했던 작은 딸. 들여다보면 멍투성이인 두 딸은 사실 아무 죄가 없다.

 

룰루의 죄책감

집에서 아빠를 쫓아낸 엄마랑 살고 있을 무렵, 아빠가 찾아왔다. 그것도 자신의 생일 전날. 행복한 순간을 아빠는 그렇게 망쳐버렸던 것이다.

"걱정 마, 엄만 화내지 않을 거야. 약속할게."라는 아빠의 말을 무시했다면. 그래서 그날 엄마의 당부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아다면 엄마는 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동생은 칼에 찔리지 않았을테고, 고아원에 가야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평생 자신을 짓눌렀던 후회는 죄책감으로 남아 그녀를 옭죄어왔을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평범한 삶. 가정적인 남편이 있고 사랑스러운 두 딸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지만 룰루는 완전하게 행복을 누릴 수 없었다. 잊을 수도 없었다. 교도소에서 계속 편지가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엄마 얘기를 할 수 있는 걸까....아빠, 우리에게 가족 따윈 없어요."(p298)

"교도소 측에 말해서 아빠가 더 이상 내게 편지를 보내지 못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아빠가 내게 전화하는 걸 금지해 달라고 신청했었다."(p299)

"나는 아빠를 더러운 존재처럼 숨기는데, 아빠를 면회 가는 동생은 사실 더 훌륭한 사람이 아닐까?"(p428)

딸들에게도 외할아버지가 죽었다고 말해왔지만 비밀은 쉽게 들통나버렸다. 동생에게 딸을 맡겨놓은 날, 애들이 인질이 되었고 동생이 범인을 설득하는 가운데 비밀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메리의 부담감

아빠의 존재를 외면해 온 언니와 달리 아빠를 돌봐왔던 메리도 결코 행복하진 않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부모의 자격'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아내를 죽이고 딸들의 인생을 지옥으로 만든 아빠에게 진정한 반성의 순간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할머니 장례식 이후로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다가 찾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메리한테서 멀어지라고? 나를 도와주는 게 메리한테도 도움이 돼."/ "아빠가 했던 일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어요? 아빤 어떻게 자신을 용서했어요?"->"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쓴단다. 이미 지난 일이야."

단 두 문장만 읽었는데도 자매의 아빠가 참 뻔뻔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삶을 망친 것으로 모자라 딸들의 인생도 찢어 버렸다고 절규하는 룰루에게 아빠는 단 한 번도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았다고 원망섞인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러면서 가석방 되면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런 아빠를 보살펴 온 메리에게도 그의 빠른 가석방은 부담이 됐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나한테 미안하단 말 한 번 한 적 있어?" (p479) 아빠가 찌른 상처를 내보이면서 말했을 때 그는 "아빠도 어렸어"라고 답했다. 스물여덟이 어린 나이인가. 아내를 죽이고 딸을 찔렀으나 술에 취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얼버무리면서 어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일인가. 이런 아빠지만 메리는 일하고 공부하며 아버지와 시간을 쌓아나갔다.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으로 여기면서.

 

 

화해하는 자매

둘 사이에 아버지라는 존재는 언제나 논쟁거리였다. 다른 노선을 걸어왔기에 평행선만이 존재했다.

룰루는 여전히 아버지와 왕래없이 살고 있지만 동생의 생일 날 이모의 집에 들러 엄마의 유품을 가져왔다. 여전히 독설을 내뿜는 이모를 꼼짝 못하게 말로 응수하며. 지난 날의 작고 어린 소녀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이고 사회 속에선 의사로 살아가고 있는 당당한 어른이었기에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어? 너한테 잘해 주려고 부른 거야."라는 이모에게 "나한테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실라 이모. 날 왜 고아원에 버리려고 했어요?"라고 맞서면서. 통쾌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받는 상처는 깊고 쓰라리다. 특히 상대가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그렇게 쟁취해온 박스를 개봉하며 자매는 웃을 터뜨리며 과거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여기 안에 뭐 들었는지 알아?"(p495)

완벽한 화해는 아니었지만 시작점은 참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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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발견 - 월든의 소로가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전하는 삶의 진수!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경원 옮김 / 에이지21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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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에 읽은 <월든>은 만만한 책이 아니었다. 책의 내용에 집중한 나머지 저자의 삶에 대해선 다소 무지했는데, <고독의 발견>을 읽으면서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아닌 사상가 '소로'에 집중해 보고자 했다. 1817년에 태어난 그는 무려 열여섯 살에 하버드에 입학했다. 장학금을 받고서. 엄청난 천재처럼 느껴졌는데, 놀라운 사실은 여러 일을 하면서 글을 썼다는 그가 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슨의 집에서 가정교사를 한 적이 있다는 점이다. 일반인도 아닌 저명한 사상가의 집에서 가정교사를 했다니....나 같으면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법도 한데, 그리스/라틴 문학/영국 고전문학/민속학/박물학/생태학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다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는 별일 아니었나보다.

 

1845년 7월부터 1847년 9월까지 2년간 월든 호수에서 지내며 기록한 삶이 그의 모든 삶을 대변할 수는 없다. 사실 2년이라는 시간은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참 짧은 순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자신에게나 읽는 독자들에게 <월든>은 묵직하게 와 닿는다.

 

그렇다면 <고독의 발견>은 어떤 느낌일까.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걷는 게 중요하다. 남의 걸음에 맞추려다 보니 쉬이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P14

남에게 인정받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 바라는 인생은 하잘것없다

P24

삶의 요령은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그 요령은 경험에서 우러난다

P84

다툼은 왜 일어나는가? 필요 이상으로 소유한 사람과 필요한 것조차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P102

 

 

'다들'이라는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는 부분이 특히 가슴에 와 닿는다. 나만의 기준, 나만의 패턴, 내 스타일, 내 속도를 가진 사람이라고 평소 생각하며 살지만 때로는 타인의 기준에 솔깃해지기도 하고 쉽게 유혹될 때도 있다. 그럴때마다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는데 "누구나 하는 것처럼 해서는 결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P18) "는 조언은 참 적절하다 싶다. 게다가 생존작가도 아닌데 현재의 우리들이 읽을 때 가슴 따끔할 충고도 서슴지 않았다. 스캔들에, 악플에 눈이 따갑고 귀가 따가운 우리들에게 소로는 일침을 놓는다. "나는 기억에 남는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없다. 무엇을 훔쳤다든가, 누구를 죽였다든가, 사고로 죽었다는가.......몇 번씩 읽을 필요가 없다. 한 번으로 족하다....철학자에게 이른바 뉴스는 하나같이 가십에 불과하다.....그런데 이런 가십에 우르르 달려드는 인간이 너무 많다"(P45)고 이야기하면서.

 

 

사상가의 조언은 어렵지 않았다. 길게 늘어지지도 않았으며 짧막한 문장 속에 현명함이 담겨 있었다. 촌철살인.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낯설 정도였다. 말의 포장조차 거추장스워 포인트만 던져두었나 싶을 정도로 머릿 속을 쏙쏙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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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나의 고전 읽기 1
손택수 지음, 정약전 원저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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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형으로만 알고 있던 '손암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

 

 

기차, 자동차, 비행기가 없던 시절, 내륙의 학자가 먼 거리의 바다생물에까지 어떻게 관심을 두게 되었을까? 궁금했는데, [자산어보]는 정조의 죽음 이후, '서학과 천주교'를 빌미로 추방당한 후 쓰여진 책이다. 나쁜 일이 꼭 나쁜 결과를 불러오는 것만은 아님을 그의 일생을 통해 깨닫는다. 그렇다고 유배 간 모든 선비들이 계속해서 학문을 탐구하고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며 저서를 남기진 않았을 터, 특이하게 '바다'에 관심을 둔 정약전이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의 동생 정약용에 의하면 형은 아주 자유분방한 정신의 소유자로 '길들여지지 않은 사나운 말' 에 비유되기도 했고 조상화를 그리기 위해 바늘구멍 사진기의 원리를 이용하기도 했다니....천재 괴짜처럼 보여지는 조선의 선비는 오늘날 사극을 통해 보아온 근엄한 대감들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언제 중앙으로부터 사약이 도착할 지 모르는 불안한 하루하루를 '새꼬막'을 설명하고 '도미'와 '해파리'를 기록하는데 썼다니......이런 기록들이 묻힐 뻔 했다. 그가 죽은 후 한 장 한장 뜯겨 어느 섬집 벽지로 사용하고 있던 걸 그의 동생 정약용이 제자에게 필사를 시켜 되살려 놓았다고 했다.

 

기록 속에서 자신이 작명한 물고기의 이름과 더불어 어부들이 실제로 쓰는 어명도 함께 표기했고 기준을 정해 분류해 놓았으며 시를 짓는 시인들에게까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쓰임새까지 고려했다는 점 또한 놀랍다. "영남산 청어는 척추가 74마디이고, 호남산 청어는 척추가 53마디"(p46)라는 차이점도, 홍합은 조수가 밀려오면 입을 열고 밀려가면 입을 다문다는 점도, 낚싯배를 끌고 다닐 정도로 힘이 센 돗돔이 2미터 길이에 몸무게가 300킬로그램까지 나간다는 것 또한 책을 읽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물고기에 워낙 관심이 없었고, 생선 반찬 또한 즐기지 않아 알고 있는 모양이라곤 갈치나 고등어 정도인 내게도 저자가 풀어놓은 <자산어보>의 내용은 재미나게 읽혔다.

 

고전읽기가 고전 소설 읽기에만 국한된다면 너무 아쉽다. 범위를 넓혀 과거에 살았던 그들의 삶, 생각까지 읽어낼 수 있다면 훨씬 다채로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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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할머니 - 사라지는 골목에서의 마지막 추억
전형준 지음 / 북폴리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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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에게 가혹한 세상, 많은 길고양이들은 오늘만 살아간다

 

할머니 손에서 자라 '어른 알러지(?)'가 없었는데, 고양이를 반려하면서 정확히는 길고양이들 밥을 챙기면서 할아버지/할머니에 대한 원망이 생겨버렸다. 약을 놓아 죽이고, 돌을 던지고, 심지어 잡아 먹기까지 하는 노인들과 마주하면서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으로 사는 것'은 아님을....집도 있고 노동 없는 노후를 보내고 있으면서도 유독 길고양이/길강아지들에게 야박한 그들을 한동안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봐야했다. 그날 먹은 반찬과 국을 동네 폐가에 버리고 쓰레기 봉투조차 쓰지 않는 노인들이 길고양이에게 손가락질하며 동네를 더럽힌다 타박하고 있었다. 세상 모든 노인이 이들 같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에 미움이 켜켜이 쌓여 딱지처럼 굳을 무렵, 상처에 연고를 발라줄 사연이 담긴 책을 한 권 발견했다.

 

사실 세상엔 이렇게 따스한 할머니들이 더 많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칠천원 짜리 멸치는 자신이 볶아 먹고 만이천 원짜리 멸치는 노랑둥이 꽁알이들 챙겨주는 정많은 할머니, 손바닥만 할 때부터 8년을 키우면서 자식처럼 찐이를 아낀 할머니, 태어난 형제 중 홀로 남은 고양이에게 '하나'라는 이름을 붙여준 할머니, 길고양이들에게 인심 후한 공터 할머니들, 개파와 고양이파로 나뉘어 즐거운 설전이 벌어지는 곳인 부식가게 할머니, 골목 고양이들을 챙기면서 든든하게 보살피는 캣대디들, 저자가 사진찍는 동안 알아서 가방 속 사료와 간식을 챙겨 먹는 고양이 노상 강도단(?)이 사는 화단 을 가꾸는 할머니, '고양이, 이 작고 작은 얄궂은 것들'이라면서도 사랑듬뿍 쏟는 무뚝뚝한 할머니까지.....

 

할매 니 없으면 몬 산다

니도 할매 없으면 몬 살제?

고양이 발자국을 따라가서 마주친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래, 고양이를 반려하면서 좋은 사람들도 참 많이 만났다. 따뜻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는데, 그렇지 못한 몇몇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져 그들을 잊고 있었던 거다. <<고양이와 할머니>>를 읽고 있으면 마음이 참 많이 치유된다.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 같고, 따뜻한 이웃이 도처에 널려 있는 것만 같고.

 

책 속 할머니들은 넉넉하고 여유로워서 고양이를 챙기는 분들은 아니었다. 외롭고 쓸쓸한 분도 있었고 병원에 데려가는 비용이 부담스러울 법한 분도 있었으나 망설이지도 마다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고양이는 이웃이고 가족이고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에. 아낌없이 나누고 따뜻하게 보살폈다. '공존'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모자라게 느껴질만큼 할머니들의 품은 넉넉했다.

 

 

기쁜 일만 마주했으면 좋겠지만 책 표지를 아름답게 장식한 '찐이'는 결국 할머니와 이별했다. 모르고 있다가 할머니와 이별하는 대목에서 그만 눈물이 터져버렸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걱정했는지 그 맘이 와 닿아 도저히 참아지질 않았다. 우리끼리 서로의 반려동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얘들이 우리 보다 먼저 가서 기다린대. 꼭 다시 만날 수 있을거야."라고 위로하곤 하는데, 찐이네는 반대의 경우였으므로. 암 말기에 치매를 앓으면서도 그 속에 찐이를 담았던 할머니의 마음. 외롭고 쓸쓸했을 할머니의 인생 속에 찐이가 나타나서 다행이다.

 

이후 홀로 남겨진 찐이가 걱정됐는데, 좋은 반려인을 만났다고 했다.

 

세월을 이겨낸 낡은 골목에 온기가 들어차 있다. 할머니들과 고양이들이 있어 햇살 한 줌 없어도 참 따스하다. 이런 동네, 오래오래 지켜지길......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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