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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카타르
지병림 지음 / 북치는마을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열정이 가득한 30대, 그녀....
닮아가는 것일까. 히잡같이 보이는 검은 천을 두른 그녀의 모습은 카타르의 여인처럼 이국스럽게 느껴진다. 비행경력 7년의 베테랑 승무원 지병림 부사무장은 이웃이라 블로그에 글이 올려질때마다 그녀의 일상을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나누는 이다. 그녀가 한국의 대표해서 한복을 입거나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들이 올려질때면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구나"하고 감탄하게 되는데, 감탄은 여기서 그치질 않는다.
매일 하늘로 출근하는 "외항사 승무원"이라는 특색있는 직업군인 그녀는 기압차, 시간차를 휘리릭 날려버리고 언제나 글을 쓰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미[인어의 꿈]을 시작으로 [화성의 아내],[서른 살 승무원],[플라이 하이],[행복한 투자자] 등을 집필한 바 있다. [서른 살 승무원]을 통해 처음 그녀를 알게 된 후, 이웃이 되어 그녀의 일상을 함꼐 나누고 있다. 매혹적인 것은 비단 카타르에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떤 일을 하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완성시킨다...
라고 세계적인 디자이너 김영세가 [퍼플피플]을 통해 말한 적이 있다. 지병림이라는 한 여인을 두고 보면 이 말은 정말 맞는 말이 된다. 두 발을 땅에서 떼는 순간부터 유별나게 구는 사람들을 위해 서비스를 하고 편의를 제공하는 그녀가 비행 중 만난 이들은 정말 다양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상상조차 가지 않는 다른 문화속 외국인 룸 메이트들이란...
삶에 안주하지 않았기에 이들을 스쳐갈 인연이 되었을 것이고 이들을 겪어냈기에 그녀는 좀 더 성숙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오늘을 좀 더 열심히 살아내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흔히 현재의 30~40대를 두고 이케아 세대라고 부르는데, 이는 기존의 삶에 반향된 삶을 살며 높아진 문화의식, 옮겨다니면서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는 1인의 삶을 사는 미혼을 일컫는 말이다.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또 다른 느낌의 30대의 삶을 살아가는 저자를 보며 선택만 달랐다면 나 역시 그녀와 같은 삶을 살고 있었을텐데....라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기웃거림으로 그녀가 전하는 카타르의 삶을 신나게 전해받고 있다. 그녀가 만난 사람들은 다양했다.
[김지윤의 달콤한 19]에서 언급한 것처럼 장거리 연애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다소 무심경한 사람들에게 맞는 연애패턴이다. 나처럼 감성적이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이에게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연애방식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이 연애에 대해서는 실패한 바 있다. 저자 역시 철새처럼 먼거리를 오가며 한 남자를 품었으나 그녀의 연애도 종지부를 찍는 날이 다가와 있었다.
그래도 사랑에 용감했던 그녀와 달리 첫번째 룸메이트는 자신을 아껴주지 않는 남자를 선택하여 자신부터 사랑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여자였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첫번째 부인이 있는 남자의 두번째 여자가 되어 그 남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자신을 끼워 마추는 여자였다. 행복할 리가 없다. 이런 연애.
두번째 룸메이트 역시 문제가 있었다. 뻔뻔함으로 무장한 채 무직의 남자를 집안으로 끌어들인 것으로도 모자라 타문화권의 그녀를 이해하기는 커녕 배척해내는 일에 전투력을 증가시키고 있는 캐릭터였다. 여자로 이해하기보다 먼저 인간으로서도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었다고나 할까. 몇몇 에피소드들만 늘어놓은 글 속에서 나는 무한한 짜증을 읽어낼 수가 있었다. 나라면 이런 타입과 단 일주일도 한 공간에서 숨쉬기 어려웠을 것 같았다.
주거공간에서 한껏 휴식을 즐길 수 없는데 일터에서 무한한 휴식이 주어질지 만무할 터. "남편이 죽었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른 할머니 승객에서부터 고소공포증을 이유로 자신만 불가능한 서비스를 제공받으려고 하던 이기적인 부부, 스프라이트 한 잔을 마지막으로 마신 채 기내에서 숨을 거둔 수석회계사 바우커씨 등 여느 승무원들의 책 속에서처럼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도 별난 승객들은 등장하기 마련인가보다. 적어도 그녀는 뉴욕행 비행기의 승무원처럼 얄미운 고객의 허벅지를 포크로 찌르고 도망가지는 않았으니 다행인 것일까. 사람과 사람 곁에 있다보면 짜증이 치미는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다. 정말 홀로 무인도에 가서 사람 소리 안들리는 곳에서 살고 싶어지는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7년이라는 비행 시간 속에서 그녀 역시 그런 충동을 느껴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 속에 살고 있는 까닭은 가끔씩 찾아오는 감동의 순간 때문이리라.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래서 지금 역시 작은 위안과 감동을 전해받기 위해 그녀의 책을 품에 안고 있다.
카타르라는 나라는 낯선 곳이다. 중동 국가. 이슬람 국가. 모래 바람이 이는 나라. 정도가 알고 있는 지식의 전부다. 그곳에서의 한국이라는 나라 역시 익숙한 국가는 아닐 것으로 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 있던 지병림이라는 여성은 이제 나라와 나라 사이에 서 있다. 민간 외교인이란 그녀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카타르에 한국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며 카타르가 낯선 대한민국에는 자신이 적을 두고 사는 국가의 문화를 긍정적 이미지로 전달하는 일. 그래서 그녀가 보내오는 소식에 가끔 모래알이 섞여 사각거렸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바다의 비릿하면서도 짭쪼름함을 전하는 이웃이 있는가 하면 뜨겁고 건조한 모래를 시원한 바람에 날려 이곳으로 보내주는 그녀같은 이웃도 있어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오늘도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