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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달, 제주 - 월별로 골라 떠나는 제주 여행
양희주 지음 / 조선앤북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멀리서 보면 아름답다"
정말일까. 푸른 섬 제주는 그 따뜻한 온기 때문에라도 꼭 살아보고 싶은 땅이다. 육지에 사는 내게 섬은 언제든 훌쩍 떠나 돌아오지 않아도
좋을 곳 같아서 아주 어린시절부터 동경해오던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껴두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여권을 챙겨 먼 나라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면서
가까운 곳 제주는 쉽게 발걸음하지 못했다. 혹여 누군가가 다녀왔다고 하거나 누군가가 가서 살 땅을 사 두었다는 소식을 전해오면 "부럽네"라고
말했을 뿐.
얼마전 시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친구에게 카톡문자를 보낼 적이 있다. 이렇게.
"뚜껑은 열어봐야 알 수 있고 사람은 겪어봐야 알 수 있노라"고. 살아보니 그랬다. 나이 서른을 넘으면서 내 나이 세는 법을 잊어버렸듯
나는 흐르는 삶이 아닌 멈추어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매년 깨닫게 되는 "어른으로서의 성장점" 같은 것은 있어서 가끔 누군가에게
조언아닌 조언을 해줄만큼은 성숙된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긴 한가보다 싶다. 그런 내가 여전히 떠나, 발 디디고 싶은 제주이기에 [열두달,
제주]라는 책이 보이자마자 얼른 손에 거머쥐었는데, 생각보다 꽤 두꺼워 며칠을 나누어 읽으며 즐거워했고, 페이지마다의 내용이 내가 원하던 것이라
신나서 읽으며 메모한 페이지 장수가 10장이 넘는다. 꽤나 양질의 여행서인데, 여행을 목적으로 한 내가 읽어서 여행서이지 일상을 살고 있는
누군가가 보았다면 '삶의 지침서' 내지는 '우리동네 맛집,멋집,즐거운 장소'가 소개된 가이드북 정도로 읽히지 않았을까. 사람은 이렇듯 제 입장에
따라 책 한 권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남자는 봄여름가을겨울을 함께 나봐야하고 계절이 지나도록 사귀어 봐야한다는 책의 어느 구절을 보며 오랜 친구 한 녀석이 떠올려졌다.
여자친구가 또 바뀌었다는 말에 대뜸 "이제 그만 정착하지!"라고 그랬더니 봄~겨울까지 모든 계절동안 지켜봐야 그 사람의 진면목을 조금쯤은 알 수
있는데 그러는 동안 맘에 드는 여자가 없었노라 라고. 그 녀석은 4계절동안 변함없는 여자를 원했던 것일까. 아님 4계절동안 똑같지 않아 재미난
팔색조 같은 여자를 원했던 것일까. 여전히 고르고 있는 녀석이라 그 해답을 아직은 알지 못하겠다. 녀석과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이 또 있구나
감탄하면서 나는 꼼꼼히 읽던 프롤로그를 지나쳐 6월로 껑충 뛰어 6월의 제주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사실 5월의 제주 여행을 꿈꾸어 보았는데,
좋아하는 수국이 6월에 가득하다는 책의 소개로 인해 6월부터 구경하기 시작했던 것. 떠나보지 않아 몰랐던 제주 여행의 팁은 이렇듯 책을 쓴
저자의 충고로 다시 채워진다.
이렇듯 이 책은 순서를 따로 정하지 않고 보아도 좋을 책이다. 추리소설처럼 뒷부분부터 본다고 스포가 될 걱정도 없고 듬성듬성본다고 해서
딱히 해가 될 일도 없다. 다만 시간 날때마다 펼쳐들고 자주자주 눈에 익혀서 나만의 여행코스를 짜 보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본다. 나는 현재의
제주도, 과거의 제주에도 관심이 참 많다. 생멸치를 '멜'이라고 부르는 그 어태도 좋고 걷기 싫어하지만 3대 계곡이라는 탐라계곡을 걸어보고
싶어지기도 하다. 제주니까.
그저 편하게 다녀오고픈 장소가 아니라 사람겪듯 겪어보고 계절 지나듯 오래 깊이 사귀어보고 싶은 땅이 바로 제주니까. 그 녹담만설에 올라
설문대할망이 내려보았을직한 그 높이를 나 역시 내려다보며 수많은 상상을 해보고 싶게 만든다. 열두달, 제주는 그 모습이 모두 달라 참 좋다.
여행서로 시작했지만 그 언젠가는 잠시잠깐만이라도 제주의 주민이 되어 이 책을 동네탐방용으로 사용해 보고 싶은 열망을 들끓게 만든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머리는 즐겁고 가슴은 뜨거웠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