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의 여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오후세시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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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는 유쾌했다. 뭐 이런 의사가 다 있어? 라고 하면서도 통쾌하고 크게 웃어넘길 수 있었다. 우울한 날 종종 다시 꺼내 읽기 좋았다. 하지만 이후의 소설 속에서는 [공중그네]만큼의 놀라움은 없었다. 그래서 그의 글을 찾아 읽으면서도 딱히 남길 만한 말들이 없었다. 그런데 또 한 권 [소문의 여자]를 찾아 읽으면서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의 필력을 재경험하게 되었다.

 

타국에 비해 대한민국은, 수도권에 비해 지방도시는 보수적이고 닫혀 있는 경향이 있다. 주변인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말들은 많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어쨌든 시끌시끌하다. 일본도 그러한 모양이다. 한 지방 소도시에 미유키가 떴다. 한방에 남자를 쓰러뜨릴 것 같은 악녀 이미지의 그녀를 둘러싸고 사람들은 '세컨드설','독살설','정부설'에 이르기까지 소문만을 부풀려가고 있지만 정작 그 시선 앞에서 회피도 변명도 하지 않는 그녀는 그저 묵묵히 다음 남자를 낚을 뿐이다. 한 남자가 죽고나면.

 

그녀 주변의 남자들은 왜 죽어 나가는가?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는데, 실제 주인공의 사진을 보고 "정말?"이라고 외쳤을 정도였다. 육덕진 거구의 여자가 남자들을 육체적으로 홀리면서 그들에게서 돈을 뜯어내고 죽였다니.....! 그 여자의 어떤 면에 반했을까. 싶지만 그건 그들만 아는 매력포인트일테고.

 

소설 속에서는 여러 사람들의 소문이 점점 커져나가면서 소문 속 그녀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켜나간다. 사람사는 사회가 이런 것이 아닐까. 그 축소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우리의 일상은 우아한 가면들을 쓰고 있지만 사실은 이토록 소소하고 째째한 것인지도 모르니까. [소문의 여자]는. 소문을 만들어낸 것이 그녀이든, 그 주변 사람들이건 간에. 소문이 사회를 둘러싼 삶의 일부임을 깨닫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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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홍창욱 지음 / 북하우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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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허수경이 딸과 함께 제주에서의 삶을 책으로 펴 낸 일이 있다. 물론 이전부터 제주의 삶에 관심이 많아 섬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책들을 읽어오긴 했다. 펜션을 연 사람들, 이촌으로 제주의 작품을 키워내는 젊은 층들, 카페나 당근케이크처럼 맛거리를 유명하게 만들 이들의 이야기까지. 정말이지 제주는 힐링플레이스인 동시에 똑같은 것만을 강요하던 세상을 벗어나 다양한 일들을 해보게끔 만드는 드림랜드 같았다.

 

그 제주, 로망의 땅에서 아이를 키우는 행복한 엄마의 웃음소리. 그 책을 통해 미래에 아이를 키우며 살아도 좋을 땅으로 나는 제주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이번에는 엄마가 아니라 아빠였다. 소설 <아버지>속 아빠 모습은 이젠 대한민국에서 잊혀진 것일까. 한결 자녀와 가까워진 모습으로 아버지란 이름 대신 우리는 요즘 그들을 "프렌디","딸바보"등의 호칭으로 지칭하고 있다. 육아일기를 쓰고 아이를 위한 화장품을 만들고 가족을 위한 캠핑을 계획하는 다정한 아빠들. 제주에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날아간 뽀뇨아빠 홍창욱 역시 그런 아빠 중 하나다. 만 4년의 시간. 그는 제주에서 일궈낸 삶을 '행복 그 자체'라고 부른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오늘은 정말이지 마음껏 부럽다.

 

서울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에게 제주행을 제안했을 때 그녀는 '월200의 생활비'만 충당된다면 고고!!를 외쳤다. 그리고 현지인조차 좋은 연봉을 희망하기 힘들다는 관광도시 제주에서 그는 아내의 조건에 걸맞는 일자리를 찾아냈다. 그곳은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가족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낼 수 있는 일자리이기도 했다. 수도권에서 치열하게 밥그릇 싸움을 하는 가장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여유를 선택한 뽀뇨 아빠는 칼럼니스트, 무릉외갓집 실장등을 역임하며 육아웹진 '베이비트리'에서 <뽀뇨 아빠의 리얼야생 전업육아"를 연재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빠감성으로 전하는 육아일기는 모든 부모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기 충분했으리라.

 

p 69  항상 똑같은 시간에....똑같은 직장에 갑니다. 이런 생활에서 조금만이라도 벗어나면 낙오될까봐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벗어나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유로워지죠

 

이 멋진 위안을 나는 뽀뇨 가족의 일상 속에서 얻어냈다. 마치 가장 힘들어 웅크리고 있을 때 누군가에게 "괜찮아"라는 등두드림을 받은 것처럼. 이 말은 며칠 째 내게 두고두고 위안이 되고 삶의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여전히 제주의 삶을 꿈꿔보게 된다. 딱 한 달만 살아보면 평생 살게 될까? 제주?

 

내가 제일 힘든 순간, 내게 제일 행복한 순간을 꿈꾸게 만드는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에는 자유롭고, 충만하게 삶의 행복을 즐기는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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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 - 교토의 역사 “오늘의 교토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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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그 양이 방대하면 <상권>과 <하권>으로 나뉘어질까 싶지만은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사실 이 양은 모자란 것인지도 모르겠다 싶어진다. 무덤 안에 누운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서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만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역사는 진실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머릿 속을 파고들곤 했다.

 

교토를 구경하기 앞서, 우리의 '경주'와 함께 거론되는 도시라 언제나 그 땅이 궁금하기만 했지 여전히 발밟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칫 맹인의 코끼리 다리 만지기 격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면이 없지 않았었다. 그러나 배의 선장은 1박2일에서 경복궁의 매력포인트를 멋지게 알려주시던 유홍준 교수님이셨고 그래서 그 믿음 하나로 교토의 역사 알아가기에 용기가 생겼더랬다.

 

책 하나를 두고 무슨 고민이 그렇듯 많을까 싶겠지만 내게 역사란 결코 가벼운 부분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역사 책 속 주인공들은 마치 이웃주민들처럼 상상 속에서 나타나 주었고 그들이 자유롭게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 속에서 무한 상상력을 키우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알고 싶고 재미나게 즐기고 싶기도 한 문화가 내겐 '역사'다.

 

앞서 역사스페셜 시리즈와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 시리즈를 소장본으로 가지고 있는 내게 또 한 권의 답사기는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기 충분했고 한장 한장 읽어나가면 제대로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

 

[일본의 역사와 일본의 마음을 읽어내는 키워드]라는 출사표 아래, 그간 일본 땅의 역사를 너무 대한민국의 관점으로 이해시키려 하지 않았나는 생각과 더불어 일본인의 마음을 이해하되 우리와 교집합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유교수님의 올바른 지침을 되새기며 나 스스로 판단의 잣대를 세워보리라 마음 먹고 첫 장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사진을 찍어도 안되고 설명을 해도 안되는 곳이라는 광륭사'는 그래서 더 가보고 싶은 곳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관광지가 아니라서 길안내가 안된다는 뱀무덤 '헤비즈카'의 경우는 비가 오기 전 하늘이 우둑우둑해진 날 가거 보면 뭔가 새로운 영감이 떠올려지지 않을까 싶어 기대하게 만드는 장소로 찜해두었다. 학창시절 그토록 지식의 응용력을 넓혀 수능적 사고를 하라고 교육받았으면서도 중국,한국,일본의 문화적으로 성수기였던 시절을 콕 찝어낼 수 없어 쩔쩔 매기도 했다. 1대 100에 출연한 것도 아니면서 이 책 한 권이 나의 학창시절 지식의 창고를 탈탈 털어내어 그 먼지조차 보태어도 얕음이 바로 표시나버리게 만들어서 잠시 우울해지기도 했으며 눈으로 읽는 책이 아니라 스터디하듯 메모하고 연대표를 그려보고 지역의 지도를 그려보면서 읽게 만드는 입체적 학문의 영역을 담은 책이라 꽤 많은 시간을 책읽기에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디아나 존스가 보물지도를 손에 넣었을 때의 기분처럼 신나게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기도 했다.

 

일본은 결코 만만하게 볼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현재의 일본도 그러하지만 과거의 일본 역시 그러했다. 그저 우리에게 문화를 배워가고 조공을 바치기만 했던 나라가 아님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적만 17곳이나 되는 역사와 문화가 이어져온 땅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 [교토]편에 기대를 하고 있었던 이유는 좋아하는 '헤이안'시대가 담긴 서적이었기 때문이다. 음양사를 보고 흠뻑 빠져든 헤이안 시대는 귀신과 사람이 함께 살았던 음울하면서도 사랑과 낭만에 목매는 사람들이 거리 가득 누볐던 시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행을 위한 예행서가 아닌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시켜줄 서적으로 꼽은 이유도 그때문이다. 또 다른 한가지는 '도래인'의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인데, 신라계인 하타씨, 백제계인 아야씨, 고구려계인 구레씨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어서였다. 일본을 배경으로한 소설 속에서 (백제화원 이나 패왕 후히토 등) 언듯언듯 보여졌던 도래인의 삶을 두고 우리 것이라고 해야할지 그들의 고유한 문화적 토착역사를 인정해야할지 망설였던 부분에 대한 선명한 선이 그어져 있어 혼선을 줄일 수 있어서 좋았다.

 

일본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이의 책이었지만 일본 답사의 길라잡이로 충분한 이 책은 시대순으로 서술되어져 있다. 역사적 큰 흐름을 알게 하고 그에 따른 문화 유산을 작은 가지들처럼 탐닉하게 만드는 답사기여서 마음만큼은 부담을 덜고 읽기 시작할 수 있었다

 

"교토는 천년의 도읍지답게 많은 문화 유산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관리하는 데에도 성공하여 도시 전체에 역사적 향기가 넘쳐흐른다" 라고 했던가. 책을 옆구리에 끼고 훌쩍 답사를 다녀와도 좋겠지만 유홍준 교수님과 함께 그 사이사이 이야기를 감질맛나게 전해 들으며 여행갈 수 있는 이들이 완전 부럽다. 책을 읽고나니 부러움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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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과 연애 사이 - 당신이 놓친 건, 연애 타이밍
이명길 지음 / 황금부엉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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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통계 자료가 있다.

 

대한민국 커플들의 1일 평균 통화 시간은 18분. 부모님과의 통화시간은 3분이라는 거다. 어버이 날을 목적에 두고 무슨 불효스러운 자료를 코 앞에 들이미냐고 할 지도 모르지만 연애기간이나 나이에 따른 차이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가만하고서라도 놀라운 수치임엔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항상 그 평균 통화 시간을 웃도는 수다타임을 즐겨왔던 나를 떠올리자니....상대가 할 말이 많았는지 내가 궁금한 게 많았는지 새삼 의문스러워진다. 통화 시간만 재미난 것이 아니었다. 섹스 타임의 경우 평균 5명의 파트너와 2580번의 섹스타임을 가진다는 통계수치를 보고 살짝 의심이 들기는 했다. 평군 154800분이라는 건데..과연~ 글쎄....!

 

[썸과 연애 사이]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나 "똑똑하게 사랑하라"처럼 충격요법을 던져주진 않는다. 그 보다는 친한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에게 그녀가 사귀는 남자가 좋은 남자인지 아닌지 현명하게 충고해주는 책이랄까. 그래서 이 책은 여자들이 맞장구쳐주는 연애고민상담보다 더 실질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남자가 나를 바라볼 때 '매력녀' 라고 생각중인지 '그저 생명체'라고 판단한 것인지 알게 하는 몇 가지 그의 징후, 연애를 왜 42.195 킬로미터를 뛰는 마라톤과 같은 마음으로 시작해야 하는지, 여자가 자신에게 확신을 주는 남자에게 마음을 여는 것과 달리 남자는 가능성을 느낌 여자에게 마음을 연다는 점, 예쁘기만 한 여자보다는 매력이 있는 여자가 쉽게 질리지 않으니 여왕처럼 굴고 매력을 발산하라는 조언은 사랑의 필요충분조건적인 팁으로 다가온다. 모든 것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내숭 떠는 여자애들을 여자들 무리 속에서는 재수없어 했지만 그녀들이 연애의 고수가 되어 갈수록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었고 요즘 세상에서는 그 방법을 책과 tv프로그램을 통해 배울만큼 우리는 연애에 목마른 여자들로 늙어가고 있다. 어쩔 수 없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배울 것은 배우면 되는 법. 살아 있는 한 인생에 있어서 늦은 것은 없으니까.

 

p 197   여자들이 절대 용서하지 말아야 할 4가지-술, 도박,여자,폭력

 

다만 이 점은 유의해 두어야 할 것이다. 술 때문에 실수 하는 남자, 도박/게임/야동에 미친 남자, 폭력적인 남자, 시도때도 없이 바람 피우는 남자 및 원나잇 스탠드가 투나잇으로 넘어가는 남자들의 버릇은 절대 평생 고쳐지지 않는다는 법. 이 것은 책의 저자이자 이미 결혼한 유부남인 남자의 충고이니 절대적으로 신뢰해도 좋을 듯 하다. 오랜 결혼 생활을 유지해온 엄마들에게 물어도 좋다. 같은 답이 나올테니까. 사랑을 시작할 때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설레임일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해서 고백할 때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니라 '타이밍'이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말도록!!! 존중 받는 여자의 사랑이 오래가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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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브리오 기담 이즈미 로안 시리즈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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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어둠 속의 기다림], [평면견] 등을 읽으면서 이 작가 '묘하다'라고 느꼈다. 주로 그의 공포소설을 읽을 때 등 뒤로 싸늘함이 짜릿하게 느껴질만큼 그는 공포라는 장르가 어떤 것인지 완벽하게 보여주는 작가다. 그런 그가 여러 가명으로 소설을 내고 있다고 해서 그 중 한 권을 골라 읽게 되었는데 바로 '야마시로 아사코'라는 필명으로 낸 <엠브리오 기담>이다.

 

매번 길을 잃는 이상한 여행작가 이즈미 로안. 길을 잃으면서도 죽은 이들이 사는 곳만 골라 가는 로안이 주인공이지만 시선은 그를 향해 있지 않았다. 옴니버스식 단편들 속에서 등장하여 사건을 겪는 이들이 작은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이점이 특이하면서도 재미있게 읽혀졌다.

 

'엠브리오 기담' 은 로안의 짝꿍 '나'에 관한 이야기다. 홈즈에게 와트슨이, 세이메이에게 히로마사가 있는 것처럼 로안 역시 여행동무가 있다. 부모 없이 홀로 사는 독거남인 '나'는 도박을 좋아하고 유혹에 약하다. 그런 '나'는 로안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가 '갈 때는 지나지 않았던 동네'에서 태아를 주웠다. 낙태전문인 나카조에서 버려진 태아는 놀랍게도 살아 있었고 그를 엠브리오라고 부른다고 로안이 일러주었다. 손가락만한 태아를 소중히 여기던 그는 유혹의 덫에 그만 걸려버렸다. 도박으로 흥청망청하면서 노름돈이 부족하여 태아를 구경거리로 만들었던 것. 결국 로안의 도움으로 태아를 어느 부유한 부부에게 인도했고 몇 년 뒤 소녀로 태어난 태아와 스치듯 지나치는 것으로 이야기는 종결된다.

 

'린'은 여행안내서를 써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이즈미 로안과 함께 한 여행에서 신기한 돌을 선물받게 되었다. 어느 노파의 손자를 살려준 댓가였는데 그녀는 절대 자살해서는 안된다고 당부를 했다.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세월이 흘러 결혼하고 자식을 두었으나 어느날 일어난 화재로 그만 린은 죽고 말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곳은 자궁 속. 다시 태어나려하고 있었다. 환생이 아니라 생이 반복되는 것.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린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이전의 생과 달리 부유한 남자의 아내로 태어나보기도 했고 마음씨가 착한 남자와도 살아보았다. 삶이 반복되어 여러 선택의 결과를 알게 되었지만 단 하나, 태어나는 순간, 죽어버리는 엄마의 얼굴은 절대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업보처럼 탄생이 반복되면서 엄마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녀를 살릴 수는 없을까 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노파의 당부를 외면하며 린은 자궁 속에서 탯줄을 목에 감아 자살했고 지옥으로 떨어져버렸다.

 

"수증기 사변'은 또 로안의 짝꿍 미미히코가 유혹에 빠지는 에피소드다. 온천마을에 온 그는 밤에 절대 온천에 가면 안된다는 말에 찝찝하긴 했지만 결국 온천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리고 이미 죽은 지인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황천길로 가버릴 뻔 했지만 어린 시절 소꿉친구 유노카가 그를 구하는 이야기.

 

'끝맺음'은 미미히코의 유혹중 최악의 유혹으로 나는 이 단편만큼은 절대 재미나게 읽을 수 없었다. 인간의 사악한 본성이자 본능이 숨어 있는 이야기이며 생명을 죽이는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어느날부터 두 남자를 따라온 아름다운 닭 아즈키를 미미히코는 배고픔에 미쳐 죽여버린다. 그리고 그 털이 여기저기서 나오자 오열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악어의 눈물같지만 인간은 미치면 친구라고 여기던 생명조차 가볍게 여기게 되나 싶어져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 외에도 '있을 수 없는 다리','얼굴 없는 산마루','지옥','빗을 주워서는 아니된다','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 등 짧으면서도 기묘하게 읽혀지는 단편들이 이어진다. 오츠이치의 소설들은 귓목털이 쭈삣할만큼 공포스러운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무섭거나 작의적이지 않아 나는 도리어 이 작품들이 즐겁게 읽혀졌다. 마치 아주 어린시절 보던 '환상특급'이라는 외국드라마의 느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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