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 나영석에서 김태호까지 예능PD 6인에게 배우는 창의적으로 일하는 법
정덕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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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행을 극도로 싫어하는 남자였던 나영석PD는 여행같은 일을 즐기며 떠나는 PD로 알려져 있다. 인간관계, 리더십, 카리스마 를 갖추어야 PD로 성공할 수 있다지만 나PD는 보여지는 모습보다 더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고 했다. 에이, 설마~ 싶지만 그는 그랬단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 기회는 순간 찾아오기도 하고 사람으로 찾아오기도 하는 법. 그에게는 이명한 PD와 이우정 작가가 기회였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금의 잘에 올랐다.

 

P51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낯설음을 가능성으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

 

나영석PD를 처음 본 건 1박 2일에서였다. 그는 그냥 좋아하는 걸 하자. 지금까지 재미있게 해왔던 것을! 을 외치며 오늘을 달리는 PD다. 복불복 게임을 시키고 징징대는 출연자들을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손해보는 타협을 절대 하지 않아 오히려 프로그램의 재미를 붙여내던....그런 그가 공중파 방송에서 케이블로 옮겨가면서 무얼 보여 줄 수 있을까  흥미롭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가장 그다운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등의 해외여행 시리즈를 내보이더니 급기야는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얼마전부터 내어놓고 있다. 세상에-.

 

P90   시스템이 중요하지만 사람은 더 중요하다

 

고 말한 PD는 서수민이다. 개그콘서트의 안방마님이자 100명이 넘는 개성강한 개그맨 군단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던 그녀. 인기리에 종영된 한 드라마의 실질적인 모델로도 유명세를 떨쳤던 그녀는 버림으로써 반대로 함께 사는 방법을 구축해낸 현명한 선장이었다.  PD는 재미있는 판을 짤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 이라고 했던가. PD로 성공하지 않았어도 그녀의 조직관리능력이라면 대기업에서도 분명 크게 성공했을 능력이어서 부럽기만 했다.

 

반면 책에서 소개하는 여섯명의 PD중에서 가장 개성강해 보이는 이물은 단연 <무한도전>의 김태호PD다. 예의 그 멋진 스타일과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페이스 비주얼까지. 그 스스로도 참 개성 강한 사람인데 그가 만드는 프로그램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서 완전 특이했다. 나는 아직도 무한도전이 100% 재미있지는 않다. 어느 날엔 혹~할만큼 빠져 보고, 어떤 날엔 여지없이 채널을 돌리고 마는 냉정한 시청자다.

 

P188  우리가 의도한 결과로만 끝낸다면, 딱 그 예기에 관해서만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나영석PD가 모범생같다면 김태호 PD는 틀을 거부하는 천재같다. 하지만 둘 다 일을 나름의 방식으로 신나게 즐기며 열정적으로 임하는 모습에서 젊은 세대들에게 또 다른 롤모델화 되어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도 출근이다? 라는 프로그램처럼 모든 직장인들에게 일터는 전쟁터다. 예능 PD도 직장인이고 살인적인 일터에서 목숨걸고 뛰는 월급쟁이다. 하지만 이들이 부러운 까닭은 자신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외에도 따져보니 참으로 많았다. 그 이유들은 다 달라도 이 여섯 PD의 성공적인 어제와 신나게 일하는 오늘, 더 빛나게 될 내일이 그들에게 주어진 것만으로도 나는 이들이 참 부럽다. 물론 이들이 신나게 일한다고 해서 적당하게 일하고 적당히 배짱배짱하다는 것은 아니다. 1분 1초를 나누며 야근을 밥먹듯하면서 자신의 일터를 지켜나가고 있다. 열심히 한다고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이들은 모두 남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는 것을 이제는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의 일하는 모습 속에서 나는 '양'도 '질'도 찾아낼 수 있었다.

 

처음부터 그들에게 만만하게 주어진 것은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된다면 나는 이상한 시청자일까?

재미나게 읽고 있다고 자랑했더니 이 책을 빌려달라는 친구들이 참 많았다. 궁금했던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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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한 줄은 무엇입니까 - 버리고 집중해서 최고가 되는 자기 정의법
김철수 지음 / 청림출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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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집중' 생각만큼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었다. 2014년 올해 들어 가장 많이 들어야 했던 말이 바로 이것이 아니었나 싶다. '미생'이나 '오늘부터 출근'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 저 때는 정말 나도 저랬는데'라는 사회초년생의 마음으로 시청하는 나를 발견하고 있지만 바꾸어서 생각하면 그때에 비해서 나는 참 많이 노련해지긴 했다. 실수는 줄고 어이없는 행동들은 하지 않게 되면서 일을 '잘'하게 되긴 했는데 반면 '일을 즐기면서 하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듯 했다.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만은 적어도 저때엔 신나서 하긴 했었는데 말이다. 아마 일을 잘 몰라서 배워나가는 즐거움이 더해진 듯 해서였을까.

 

P51  내가 만든 한 줄 콘셉트가 나의 가슴을 뛰게 할 수 있어야 한다

 

20대 때, 30대에 접어든 관리자에게 물어 본 일이 있다. 더 잘할 수 있는데 왜 나이제한을 두어 경력직을 뽑지 않느냐고. 당시 회사는 신입만을 채용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는 내게 그들의 경력이 편견이 되고 오만이 되어 틀에 갇힌 사고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모두 다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밥을 몇년 차 먹다보니 그의 말이 적어도 일부는 진실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최고의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진 최악의 것에 한 수 보태는 인간이 되지 않으려 발버둥치며 살게 되었다. 바로 저자가 말하는 '리프레임 능력'을 키우기 위해.

 

사실 대한민국에서 월급을 받아가며 '주인으로' 일하는 직원이 되는 일은 꿈같은 일이다.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말들은 하지만 주인처럼 책임감을 갖고 일해도 알아주지 않거나 시키는 일만 하도록 종국에는 강요받게 되는 일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직원의 능력이나 생각보다 오너심이 낮은 경우에 그 한계에 부딪히게 될 때가 있다는 말이다. 간혹 그래서 상처받는 멘티들에게 이 조언을 들려주면 좋겠다 싶은 페이지가 책 속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스티브 잡스의 충고를. 총각네 야채가게 대표처럼 다른 생각으로 일하면 굳이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배워나갈 수 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변명하기 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방법을 터득해 나오면 되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하지만 생각만 가득해서는 실행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절대로. 그런데 현재 내게 가장 절실한 시간이 바로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 만들기'였다. 그래서였을까. 내게 가장 필요한 파트는 me-타임모드를 가지라는 충고였다. wyh not? 왜 안된다고만 생각해 왔던 것일까. 시간이 도저히 안되고, 주중에는 너무 피곤해서 안되고...안되는 것들만 나열하면서 포기하고 말았을까. 라는 후회를 가득 갖게 만든 책이 바로 콘셉트 디지이너 김철수의 책을 읽고난 다음에 든 후회였다. 개그콘서트의 서수민 피디의 신조처럼 버릴 것은 빨리 버려야 했다. 생각이라고 다르겠는가. 습관이라고 다르겠는가. 그래서 나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서평쓰기를 하기 위해 오늘 아침 용기를 내어 새벽 5시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이 꿀같은 시간이 그동안은 잠으로 죽은 시간처럼 보내졌었다니....아깝기 그지 없지만 앞으로의 새벽 5시를 얻어냈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감은 충분히 채워졌다.

 

가끔 친구보다 낫고 가족보다 유익한 책 한 권을 발견할 때가 있다. 나를 변화시키는 바로 이런 책과 만났을 때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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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어바웃 치즈 - 10가지 대표 치즈로 알아보는 치즈의 모든 것
무라세 미유키 지음, 구혜영 옮김 / 예문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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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라고 하면 콤콤하면서도 짭쪼름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상쾌하게 느껴져 나는 이 맛을 '상콤함'이라고 혼자 부르고 있다. 코스트코에 갈 때마다 치즈 코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데 언제나 넉넉하게 사 본 일이 없어, 돈이 많이 생기면 꼭 치즈를 듬뿍 사보리라는 꿈을 20대부터 꾸어왔지만 30대인 지금까지도 스스로 느끼기에 '넉넉하게 샀다'는 느낌을 받아 본 일은 없다. 아직까지는.

 

너무 좋아하다보니 찾게 된 치즈에 관한 책들. 그 중에서 나보다 더 치즈를 좋아한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는 치즈를 구경다닐 계획으로 프랑스에 여행다녀온 후 직업까지 바꾸게 되었다. 지금도 그 음식점에서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파스타가 좋아 이탈리아를 누비고, 치즈가 좋아 프랑스 시장 곳곳을 누볐을 그녀의 그 한 때가 한없이 부럽기만 했다. 세상은 치즈만큼이나 이렇듯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 누군가는 맘 속으로만 꿈꾸던 일을 인생을 던져 직접 해보는 이가 있기도 하고 그 경험들을 책으로 함께 나누며 행복해하는 이가 살아가고 있기도해 재미난 곳이다.

 

승무원으로 재직 중에 치즈와 와인의 매력에 빠져 자연치즈 전문점 점장까지 역임한 치즈전문교실의 운영가 무라세 미유키는 '페코리노 로마노','로크포르','콩테','샤비놀','에프와스','체더','에멘탈','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모차렐라','브리 드 모' 의 10가지 대표 치즈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나 식감, 요리법,숙성되는 단계들을 책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다만 치즈에 관한 책이라 당연히 사진이 올컬러일 줄 알았는데 흑백이라 약간 당황스러웠던 점을 제외하곤 책은 상당히 재미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읽는 독감(?)을 활성화 시켜대고 있었다. '한 마을에 한 가지 치즈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프랑스에는 많은 치즈가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그 많은 치즈를 다 맛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인데 프랑스에서는 아직도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니 그들에게 치즈는 역사요, 생활 그 자체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자연치즈와 가공 치즈 중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10종류는 모두 자연 치즈였는데 우유만으로 만들어 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 재료는 산양젖,소젖,양젖 등 너무나 다양했고 숙성 과정에서 치즈의 표면을 40도에 달하는 독한 술인 브랜디로 닦아낸다는 워시 치즈 방식의 에프와스나 자르지 않고 '연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는 죽기 전에 꼭 입에 넣어 보고 싶어 버킷리스트에 올려두기도 했다.

 

한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페코리노 로마노는 지중해에 떠 있는 섬에서 만들어져 현재는 로마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모양이나 향, 맛이 다 달라 알면알수록 빠져들게 되는 치즈라는 식재료는 사실 어떤 치즈와 함께해도 저녁을 우아하게 아침을 든든하게 점심을 재미나게 만들어줄 재료라서 절대 맛보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든다. 아직도 며칠 전에 먹은 치즈의 향이 코끝을 맴도는 것 같다. 언젠가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치즈들을 몽땅 맛볼 날이 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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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를 연주하는 소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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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장르를 잘 쓰는 작가라 부럽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가장 바라는 장르는 역시 추리다. 그래서 최근 그의 번역본들이 여러 편 보여 구매하면서도 모두 다 '추리'이기를 기대했었다. 사실 더럿 그렇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지금의 [무지래를 연주하는 소년]처럼. 소설은 판타지의 성향이 강했는데, 지구를 지키는 인류영웅이 나오는 소설은 아니지만 분명 평범한 우리와는 다른 그 어떤 능력을 지닌 소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능력. 돌연변이들처럼 능력자들은 능력을 숨기고 살지 않으면 이용당하든지 말살당하든지 둘 중 하나가 된다. 그래서 노인을 비롯한 능력자들은 그 능력을 이용해 뛰어난 삶을 살면서도 자못 평범한듯 자신의 능력은 감추고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날부터 노인은 마음의 텔레파시를 보내기 시작했다.

 

p359 내 목소리가 들리면 연락하기 바란다

 

라고. 지나치게 많은 빛에 싸여 생활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향해. 결과 고교 중퇴생이자 오토바이 폭주에 몰두해 있던 소마 고이치, 아버지를 증오하는 미쓰루등이 뭉쳤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사람들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연주회로 승화시켜 내보였는데 잘 상상이 되진 않지만 '광악'이라는 이름 아래 아름다운 빛의 연주를 하다 폭발과 함께 그들은 납치되기에 이르렀다.

 

누구일까? 누가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었을까. 그들은 그냥 새벽녘에 수수께끼의 빛을 바라보았고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킬지도 모를 그 빛의 힘이 궁금했을 뿐인데....

우연히 발견한 빛과 그 진실은 그들을 위협했고 빛에 메시지를 담아 연주하는 멋진 능력을 가진 미쓰루와 고이치는 그만 납치되고 감금되어 그 능력을 빼앗기고 말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들이 말하는 적이라는 존재는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의 사람들을 일컫는 말일까.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머릿속에서 이들이 연주하는 영상은 과연 어떻게 그려지고 있길래 그는 sf한 편을 우리 앞에 내어놓으며 그 상상에 동참하자고 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얼마전에 읽었던 그의 추리소설에 비해 이번 소설은 퀼트 조각보를 손에 쥔 것처럼 이해하기 좀 난해한 부분이 있었다. 무엇보다 장면들이 상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힘들었는데, 만약 이 조각보 같은 장면들이 다 이어지게 되면 멋진 퀼트보 하나가 완성된 것처럼 멋진 장면이 머릿속을 채워줄까. 아, 다시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 이번에는 조금 더 차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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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뺑덕
백가흠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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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을 넘어 25금이라는 이 영화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하지만 고전이 원작이라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궁금해서 책을 통해 먼저 읽어보고 싶었다. 너무 바른 이야기라서 너무 교훈적인 이야기라서 이야기를 비틀어도 별 재미 없을 것만 같았던 그 이야기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나면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되어서 세상에 나왔다.

 

작가는 작가로 사는 시간이 더딜수록 잘 살아보려는 의지를 버렸다고 했는데, 마흔을 넘어 시작했다는 이 소설은 그래서인지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 속의 이야기로 사람냄새가 잔뜩 묻혀져 있었다. 세월이 허락한 나이테가 묻어 있었고 착한 마음 이면의 욕망이 들춰져 있었다. 사랑과 욕망 그리고 집착 후에 남은 것은 여전히 사랑이었다. 나는 희생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믿고 싶어졌다. 이들의 관계를. 무척이나 위험했다. 또한 무척이나 위태위태했다. 하지만 나빴을 망정 천박하지는 않은 이야기가 바로 오늘 읽은 소설 [마담뺑덕]이었다.

 

[심청전]의 주인공은 심청이였지만 [마담뺑덕]의 주인공은 심학규였다. 영화를 본 이들은 뺑덕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소설을 읽은 내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심학규다.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었던 학규가 기증자로부터 두 눈을 받고 시력을 회복한 뒤 되찾고 싶은 시간은 가족을 찾는 일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자살해버린 아내가 아니라 그토록 자신을 경멸하던 딸 심청과 집착과 사랑을 반복하며 자신 곁에 머물던 애인 뺑덕. 그들은 머리카락 보일까봐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도무지 찾을 방법이 없었는데 그래서 그는 인연이 처음 시작되었던 s읍으로 향했다.

 

p13 사랑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을 보지 못해도 좋으니 다시 자기 곁으로 되돌려달라고 신께 기도했다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길이는 짧아보여도 깊이는 깊어서 사람도 그 속에 쑤욱 집어넣어 없애 버리고 기억도 시커멓게 태워버렸다. 처음 s읍에 도착했을때 다방에서 그를 재워주던 뺑덕의 어미는 사라진지 오래. 로리타콤플렉스에 빠진 듯 어린 여제자들과 육체적 탐미를 즐기던 그는 대학에서도 잘리고 작은 시골로 내려와 글선생이 되어야했다. 하루 아침에 인생의 나락까지 미끌어져버린 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닌 제 탓이었지만 그는 반성을 모르는 나쁜 남자였다. 이 곳에서도 뺑덕 어미와 뺑덕이가 없었다면 도저히 견딜 수 없었겠지만 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어미와 자고 딸과도 육체적으로 얽혔으면서도 그들을 버려두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 서울로 돌아가 버렸던 것이다.

 

p57 이제 나 기다리지 마. 나 너한테 다시 돌아갈 일 없어.

 

천벌이었을까. 시력이 점점 사라지는 시점에 뺑덕은 아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를 간병하려는 건지 벌주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행동들을 일삼던 그녀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 옛날 그가 잔인하게 그녀에게 퍼부었던 그 말 그대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요량으로 사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드문드문 아름다운 기억이 떠오를 때도 있었다. 그리움. 그건 분명 그리움이었다. 그 암울하고 떨치고 싶은 시절 속에도 그리워할만한 추억들이 숨겨져 있었다. 롤러코스터 타듯 인생의 굴곡을 거친 학규는 다시 눈을 떴다.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지만 가장 소중한 두 사람은 사라지고 난 뒤였다. 너무 늦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반전. 그에게 눈을 기증한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눈을 각각 한짝씩 받아 눈을 뜬 그에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무슨 힘으로 누구를 의지하며 그는 살아가야 할까. 결말은 끔찍했지만 역시 고전적 교훈은 남겨졌다. 나쁜 놈에게 걸맞는 결말이.

 

책의 홍보문구처럼 효의 텍스트였던 심청전. 이제는 욕망의 텍스트로 기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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