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친구를 만났습니다
송정림 지음, 원정민 그림 / 어린이나무생각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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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끄 상뻬의 동화책 중에 <얼굴 빨개지는 아이>라는 동화책이 있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만큼이나 좋아하는 책인데, 정말 나는 이해해주는 친구가 어떤 친구인지, 얼마나 편한 관계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라서 읽을 때마다 가슴이 따뜻하게 데워지곤 했다. 어른인 내 책장 한 켠에 동화책이 여러 권 꽂혀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삭막한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글안경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방송작가인 송정림 작가는 라디오와 TV드라마를 집필하기 전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은 입버릇처럼 '요즘 애들~ 요즘 애들~'하며 혀를 끌끌 차지만, 선생님으로 재직했던 그녀에게 학생들이란 좋은 기억으로 남은 사람(?)들이었나보다. 그녀의 필체를 통해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중 가장 감동인 에피소드는 발걸음이 불편한 한 사람을 위해 횡단보도를 바삐 걷던 사람들이 그와 보폭을 맞추어 천천히 함께 건너주었다는 14페이지이야기였다. 사회생활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빨기 가기 위해 누군가를 제쳐야 할 때도 있고, 의도하진 않았지만 누군가를 밟게 되는 경우도 있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 서운한 마음을 갖게 만들 때도 있다. 나보다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을 위하여 낼 짬 따위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어렵지 않은 일임을 이야기는 시사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먼저 하면 되는 거에요." 가 그 답이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함께 그렇게 한다는 말.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함께 그렇게 한다는 말. 빨간 불로 바뀌었지만 보행자도 신호대기 중인 차에 탄 운전자들도 모두 기다려주었다. 묵묵히.

 

마음이 하는 일은 그에 그치지 않았다.

 

록펠러 재단을 설립한 미국의 대부호인 록펠러의 선행은 의사의 선고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암으로 인해 1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그의 어머니는 "곧 세상을 떠날테니 마음껏 남을 돕도록 해라"라고 아들에게 말했고 그 아들은 아낌없이 나누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40년이나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봉사는 보약이었다.

 

건강을 잃어본 사람은 아프지 않은 몸의 소중함을 알고, 마음을 잃어본 사람은 평온에 대한 감사를 알듯이 사람에게 상처받은 사람 역시 사람으로 치유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참 쉽지 않다. 그렇게 다시 사람을 믿게되기까지는.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 두려움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 <참 좋은 친구를 만났습니다>는 예방책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싶어진다. 눈빛으로, 손짓으로, 표정으로,  그 마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최근 개봉한 영화 제목처럼 <좋아해줘>라고 용기있게 말하는 사람이 되어 주기를...손가락으로 SNS를 누르기 앞서!!! 그런 마음으로 읽혀졌다. 이 동화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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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럼 붉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1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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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화이트보다는 블랙 화이트의 성향이 강한 주인공 루미키 안데리손은 열 일곱살. 어떤 이보면 유에서인지 부모님에게서 독립해서 혼자 산다. 언뜻언뜻 보여지는 회상씬에서는 과거 지독한 왕따를 경험한 일이 있고 친족 내에서도 내돌려졌으며 가깝게는 부모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하며 자라왔다.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 십대 사춘기 소녀가 부모와 떨어져 사는 것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아마 더 큰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스파이보다 민첩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훈련된 것을 보면.

 

아쉽게도 작가의 죽음으로 인해 더 이상 읽을 수 없게 되어 버린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시리즈 속 '리스베트 살란데'보다 훨씬 어린 미니 리스베트 같은 루미키는 핀란드어로 '백설공주'라는 뜻의 이름이라고 했다. 흑단처럼 검은 머리도, 붉은 입술을 지니지도 않은 딸에게 백설공주라는 이름을 붙여준 부모의 바람은 어떤 것이었을까.

 

루미키는 확실히 남들과 달랐다. 먼저 사춘기라는 나이 때의 흔한 징후가 없었다. '반항' 의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고 그보다는 '조심스러움' 그리고 '빠른 판단력'으로 다가온 위협으로부터 자신과 동급생들을 구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을 꼽자면 누군가의 충고를 지독하게 싫어할만한 십대의 나이에 그녀에게는 좌우명이 한 두개가 아니라는 거다.

 

p34  무난하게 살고 싶으면 참견하지 마라

p36  속단하지 마라

p64  복수를 위해 힘을 키우지 마라. 복수가 필요해지는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힘을 길러라

p67  모르는 번호에는 응답하지 마라. 절대로

p68  휘말리지 마라. 참견하지 마라. 자기 일만 걱정하면 된다

 

계속 이어지는 좌우명 퍼레이드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친구도 아니었던 학내 유명 동급생 셋의 위기에 휩쓸렸다. 온실 속 화초로만 자라온 딱 10대의 반항심으로 세상을 살아가던 투카, 카스페르, 엘리사가 발견한 피묻은 돈다발의 위기 속으로. 마약단속 경찰이자 비리 경찰인 엘리사의 아버지에게 배달되어야 할 돈을 중간에서 딸만큼 어린 그의 정부 나탈리아가 가로채 버렸다. 아니, 가로채려고 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그리하여 다시 던져진 피묻은 돈다발을 약에 취했던 십대 셋이 발견했고 나누어 갖고자 했다. 하지만 그들은 서툴렀다.

 

피묻은 돈을 학교 암실에서 세탁해 말리다가 루미키에게 걸렸고 그 돈다발을 추적하던 보리스 소콜로프의 똘마니들에게 위협받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그의 뒤엔 아무도 그 실체를 본 적 없는 어마어마한 대부 북극곰이라는 존재도 있다고 하니...눈내리는 설원에서 흩날릴 선혈은 그 양이 어마어마 하리라는 기대감을 독자에게 안겨주기 충분했다. 하지만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는지, 안도감을 안겨주었는지 모르겠다. 도무지.

 

시리즈의 1권인 것을 모르고 단행본이라고 생각했기에 이야기의 완벽한 결말을 바랬건만 서늘했던 스칸디나비아 스릴러는 -2권에거 계속- 이라며 <눈처럼 희다>를 읽기를 권하고 있었다. 3월에 새로 번역된다는 요 네스뵈의 신간을 기다리고 있고 스티그 라르손에 반해 북유럽의 소설들을 미친듯이 읽어온 독자인 내게 <피처럼 붉다>는 서막이다. 아직은 모르겠다. 이 작가의 이름이 내게 브랜드 네이밍이 될지 2권을 보고 접게 될지는....하지만 궁금해졌다. 열 여덟살에 첫 책을 출간했다는 살라 시무카가 몇 권까지 나를 몰아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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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번의 소개팅과 다섯 번의 퇴사
규영 지음 / 나무옆의자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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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 작가의 인터뷰를 보다가 "연애,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누군가에게 질리도록 사랑받아 본 경험과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했던 시간이 지나고나면 연애라는 것이 시들~해 지는 것이 아니라 평온해지는 단계가 찾아오는 것 같다. 그냥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과의 연애온도는 언제나 36.5도. 그래서 온기는 느껴지지만 화상을 입을 염려는 없다.

 

아직 그 시기가 지나가지 않았거나 대상을 만나지 못했을 경우, 연애에 대한 환상은 짙어지기 마련인가보다. 나이불문, 성별구별없이. 동거한지 한 달차 동성친구인 구월과 우영은 <한번 더 해피엔딩>의 그녀들처럼 사랑 앞에 드라마틱한 반전은 없었다.

 

 

p19  때가 됐다

 

 

키차이가 30센티미터나 나서 그 품에 쏙 들어가는 맛에 함께 잠드는 게 좋다는 우영은 목하 연애 중. 하지만 남친 '단오'는 줄줄이 동생들 학비 대느라 청혼할 수 없는 상태이며 여자에게 치명적이라는 이유로 동거도 거절한 남자. 이쯤 되면 성실하고 개념 있는 남자와 연애중인 듯 하지만 소설 속에서 우영의 파트는 '연애'가 아닌 '퇴사'쪽이었다. 디자이너로 근무중이지만 "조만간 퇴사할거야"를 외친 그녀의 목표는 소설쓰기. 인간답게 살고 싶어 뛰쳐나온 첫번째 직장, 뒷돈 빼돌리는 부장님을 피해나온 두번 째 회사, 왕따로 지내다 세번째 퇴직을, 군대같았던 다섯번째 출판사에서는 우울증을 앓다가 나왔고 이전의 실수들을 만회하며 무난하게 다니고 있는 현재의 회사에서는 이제 그만 때가 되었으니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여섯번째 퇴사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2말3초(20대후반 30대초반)의 직장여성들이 흔히 겪는 나이테 같은 통과의례의 시기가 바로 요맘때가 아닐까. 나도 그랬다. 앞만보고 열심히 달려와서 남들보다는 한 발 빠른 승진과 넉넉한 통장을 째고 뛰쳐나가고 싶어했던 때였으니까. 이 맘 100퍼센트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말릴 사람이 절반 정도는 있을 법도 한데 우영은 참 복터졌다. 차분히 들어주는 친구와 "글 쓰려는 사람이 그 정도의 예민함과 일탈에 대한 욕구가 있는 건 당연한 것"(p123)이라고 응원해주는 엄마도 있고, "신은 회사에 다니라고 인간을 만든 것 같지는 않아"(p59)라고 여섯 번째 퇴사를 인정해주는 오빠가 가족으로 뭉쳐 있으니까. 물론 따박따박 들어오던 월급일은 사라졌지만.

 

사실 대부분의 지인들은 '시집가라'고 말하거나 '그냥 다녀라'며 현실적인 충고를 읊기 마련이다. 소설 속 우영에겐 반대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 사람도. 물론 대박치는 내일은 없다. 결혼은 멀었고 잠정적 백수 상태에 돌입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절망하지도 희망하지도 않는다. 참 차분하다. 그래서 이 소설 담담하게 읽혀졌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불사하는 드라마의 그녀들을 바라보던 것과 달리.

 

물론 '소개팅' 파트를 맡은 구월의 경우는 글로 늘어놓자면 속답답해 할만한 사건들이 있긴 했다.

 

 

p22  세계 어딜 가든 걱정은 스토커처럼 쫓아다녀

 

 

일찍 결혼하고 싶어 착실하게 소개팅을 했지만 참 안생긴다. 그녀의 남편.

165센티미터에 비율이 좋은 구월이건만 단점이 하나도 없는 대신 장점도 매력도 하나도 없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종에 종사하고 있지만 드라마 속 구동미 캐릭터처럼 남자가 포스티 잇처럼 붙었다하면 이내 떨어지고 만다. 단지 매력탓일까. 예식장까지 잡았다가 신랑의 잠적으로 결혼식이 파토나는 것은 기본이요,  한 두 달 사귀다가 헤어진 그 남자들은 꼭 몇 달 안가서 다른 여자와 결혼해 버리곤 했다니...약오를만도 했다. 하지만 꿋꿋하게 또 다음 소개팅남을 만나러 나가는 구월. 최근엔 굥굥이라는 애완견까지 맡길 정도로 적극적이었던 남자와 헤어지고도 다음 소개팅을 잡은 그녀를 보며 이별에도 내공이 쌓이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당장 어떻게 되지는 않았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인생이 그러한 것처럼.

한보따리 이고 앉아 가슴 답답하게 만든 걱정거리도 당장 내일 터질 일이 아니요, 로맨스 소설 같은 핑크빛 로맨스가 똑똑 두드리면서 이른 새벽 문 앞에서 대기타고 있지도 않는 우리네 현실처럼 동거하고 있는 두 여자들의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 나이에 걸맞에 평범했다. 그리고 필체는 참 평온했다. 에쿠니 가오리나 요시모토 바나나의 단행본을 평탄하게 읽어나가는 것 같은 속도로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게 읽어냈다. 예쁜 소설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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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치미교 1960
문병욱 지음 / 리오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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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린 가스 테러를 자행한 옴 진리교를 기억한다. 특히 그 교주의 사진. 어떻게 저런 사람에게 홀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저분 하게 생긴 남자의 얼굴. 결국 언변이었을까. 제 이웃도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집단으로 한 남자를 맹신한다는 것은 '병'처럼 여겨졌다. 뉴스를 접했던 어린 나이에도.

 

본방사수하고 있는 드라마인 <시그널>에서 감질맛나게 톡톡 언급만 되고 수사할 기미는 전혀 보이질 않는 "오대양사건(구원파)" 관련검색하면 함께 이름이 뜨는 유병언 회장이 오버랩된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물론 <사건 치미교 1960>의 배경은 1930년대 전국민을 충격으로 몰고간 백백교라는 사이비 종교단체의 이야기지만 세월이 흐르고 국민교육수준이 높아진 지금에도 그 명맥이 이어졌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교주도 다르고 종교명도 다르지만 들여다보면 그들의 수법은 비슷했다. 전재산 헌납, 맹목적 추종, 여신도 성폭행 그리고 사망설.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사회 소설과 같이 심도있게 쓰여진 <사건 치미교 1960>은 그래서 읽는 내내 의문스럽고 답답했으며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제 1회 이답 스토리 공모전 최종 당선 수상작에 걸맞는 훌륭한 플룻, 스토리, 소재였다. 하지만 일제시대/ 해방전후 와 지금 우리는 왜 같은 문제를 여전히 떠안고 있어야 하나. 다람쥐 체바퀴 돌듯 돌려지는 느낌을 떨칠 수 없나. 의구심이 들고만다.

 

창조일보 김진수 기자는 상원을 치미교에서 빼내고 VPF에 대한 진실을 세상에 폭로했다. 당시 드물었던 의학전문 기자였던 그는 그 대응책으로 복용중인 테미란이라는 약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는데 생체실험까지 일삼아가며 전국민을 상대로 병주고 약주고 했던 실체가 바로 치미교라는 사실에 치를 떨면서 위험을 감수했던 것이다.

 

 

P76  시간은 해용의 인간성 그대로의 인간성을 차츰 마비시킨다

 

 

13특수학교를 졸업하고 731부대의 예하부대격인 735부대에서 세균실험/전염병 연구를 해 왔던 해용은 대한민국이 해방과 분단의 혼란기를 겪는 동안 신흥종교의 교주로 급부상했다. 그동안 전해용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박정철로 살면서 치미교의 대원(교주)으로 불리며 부귀영화를 누리던 그는 수많은 첩들 중 하나에게서 낳은 아들에게 그가 누리는 것들을 물려주고자 무리수를 두었다. 바로 VPF. 감옥을 만들어 사람들을 그 속에서 생체 실험하며 오장육부가 곪아 죽게 만드는 장기농유발균을 만들어 퍼뜨린 후, 사회를 혼돈에 빠뜨렸다. 박차를 가했던 백신 개발은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증상을 완화시키는 테미란을 만들어 팔면서 원하는 바를 다 성취한 것만 같았던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아버지와 여동생을 사이비 종교에서 빼내기 위해 위장잠입했던 상원이었다.

 

전라도 광주에서 '신명당'이라는 한약방을 성업시킨 그를 백신 개발에 투입했지만 상원은 깊이 세뇌된 아버지와 교주의 열네번째 첩이 된 여동생을 구하지 못한 채 빠져나와야 했고 김진수 기자와 더불어 치미교의 악행을 세상에 까발렸다. 후련하게.

하지만 의문이 남는다. 해용은 정말 죽었을까. 치미교는 정말 와해된 것일까. 정말 대한민국 땅에서는 치미교 같은 종교의 뿌리가 완벽하게 뽑힌 것인가. 라는 의문이 남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이 소설.

그 의문 때문에 어떤 스릴러보다 더 무섭다. 읽고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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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 기분
박연희 지음, 쇼비 그림 / 다람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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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그랬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2016년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방송작가의 책을 참 많이 읽게 되었다. 표지와 제목이 참 예쁘다 싶어 고른 <명왕성 기분>이라는 책도 읽기 전 저자 약력을 읽어보니 방송작가의 책이었다. <우리말 나들이>??? 그래, 이 익숙한 프로그램을 쓴 작가는 현재 영국 경찰의 아내가 되어 영국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책은 명왕성같은 영국라이프에 관한 이야기일까?

 

 

p5

살짝 손잡았던 두근거림보다

너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던 슬픔보다

혼자라는 쓸쓸함과 외로움보다

 

 

라는 첫장의 문장. 모태솔로가 아닌 다음에야 이 문장으로 인해 시린 가슴을 쓸어내릴 이도 있을 테고, 지나간 추억을 아련히 떠올려보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나의 경우는 혼자여서 쓸쓸했던 시간보다는 함께인데도 불구하고 외로웠던 시간에 대한 추억이 있다. 충분히 사랑받고 있는데도 왜 외롭고 쓸쓸한 것일까? 남들도 그런 마음을 느끼는 것일까? 궁금해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국제 전화 너머로 친구는 대답했었다. 다 그래. 인간이라서 그래. 원래 그런거야. 라고.

 

남자 사람 친구인 15년 지기 친구에게 늦은 밤 전화를 걸면 나는 용건만 짧게 이야기 하곤 했다. "야, 괜찮다...라고 좀 말해줘바바" 그러면 9시에 잠들어 한참 꿈 속을 헤매던 그는 잠에 취한 목소리로 "괜찮아. 다 괜찮다" 딱 한 마디만 했다. 그리고 통화를 종료했지만 나는 달콤한 위로를 얻었고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래서 참 편했다. 그 친구가 1년에 한 두번쯤 "나중에 이야기 해 줄께. 그런데 나 기분이 참..."까지만 말해도 "잊어버려. 다 잘될거야"라고 말해주곤 끊었다. 서로 구구절절하게 묻지 않아 좋았고 다음에 만나면 다 해결된 상태로 웃으며 다른 이야기 할 거리들이 많아 좋았던 친구가 있었다. 20대에서 30대에 걸친 시간동안-.

 

그래서 내 기분은 안드로메다행이 되진 않았나보다. 내 주변에 좋은 친구들 덕분에. 괜찮다고 말해줄 목소리가 있어서.

 

시처럼 짧고 에세이형식으로 편하게 쓰여진 글들은 '헤갈-하다'나 '맛-바르다','발맘-발맘"같은 낯선 우리말 표현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읽으면서는 지나쳤던 그 말들은 이야기 끝의 각주를 보며 다시 페이지를 펼쳐 찾아보게 되는... 마치 '뒤늦은 보물찾기'하듯 읽게 만들곤 했다. 그냥 그 단어들만 좀 더 진하게 표시되어주었으면 편했을텐데-.

 

하지만 이 책은 우리말 교본이 아닌 더께더께한 누군가의 일상의 이야기들을 내 이야기와 접붙이는 에세이다. 명왕성 기분이 들때 외롭지 않도록 마음의 무기가 되어 줄 착한 사마리안 같은 이야기 책. 괜찮다고 말해주었던 그 옛날의 친구처럼 위안을 안겨주는 책의 제일 끝엔 예쁜 우리말 표현 43가지가 나열되어져 있다. 모두 책에 등장했던 표현들로 '시나브로'와 '더금더금'처럼 원래 아는 말들도 있었지만 ' 곰비임비','어우렁 더우렁'처럼 생전 처음 듣는 표현들도 있었다.

 

15세에 돌아가셨다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가 그 먼 타지인 영국에서 그것도 임신 8개월째 시킨 피자와 함께 먹으려고 딴 콜라에 적힌 'dad'라는 단어를 보고 뭉클했을 그녀. 술취한 사람과의 시비에 휘말려서도 끝끝내 정의감을 포기하지 않는 남편을 보고 심장이 뚝 떨어졌을 그녀, 그 옛날 남자를 좋아했던 남자를 계속 사랑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며 살짝 아쉬움을 드러냈던 그녀는 모두 한 사람이다. 가끔 <우리말 나들이>를 보면서 작가는 정말 바른말만 할까? 잘 알아서 맡은 프로그램일까? 맡았기 때문에 공부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하게 만들었던 저자는 의외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희노애락의 감정선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고 일상의 걱정거리들도 평범했다.

 

대신 그녀의 글은 아주 편안했다. 어렵지 않았으며 심지어 따뜻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종이 위 까만 글자에 무슨 온도가 있냐고들 묻지만 나는 그 글자들의 온도변화를 책을 읽으며 겪을 때가 많다. 2008년 mbc 대한민국 아나운서 대상 작가상을 수상했던 저자는 가끔 명왕성 기분을 타고 있을지 모르나 우리말처럼 예쁘게 살아가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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