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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망치 -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ㅣ 블랙 캣(Black Cat) 10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기시 유스케의 작품을 세번째로 읽으면서 이만큼의 방대한 양을 한순간의 흐트러짐 없는 호흡으로 써내려 가는 작가에 대해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읽었던 [13번째 인격]에서부터 [크림슨 미궁]과 [유리망치]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독특한 재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환경에 의해 사악해 지는 것일까. 아니면 환경을 탓하면서 사악한 본성이 드러나게 되는 것일까. 앞의 경우엔 장발장이 생각났고, 후자의 경우엔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떠올려졌다.
[유리망치]를 읽으며 닭과 달걀같은 이 문제가 머릿속을 파고든 까닭은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고 나서였다. 그 전까지는 코난이나 김전일처럼 밀실 사건의 트릭을 파헤치기 위해 골머리를 앓으며 읽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반에서 범인이 트릭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을 보게되면서 인간의 사악함과 낮은 밀도의 죄의식에 대해 고민스러워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건의 시작은 아주 미미했다. 롯폰기 로쿠센 빌딩의 꼭대기 층에서 사람이 죽는 일이 발생했다. 꼭대기 층은 베일리프라 불리는 회사에서 사용중이었는데 간병보조 기구를 만드는 회사였다. 그 회사의 사장이 완벽한 자신의 방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다. 아무도 드나든 흔적이 없던 완벽한 밀실 살인 사건인 셈이었다.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다른 방과는 다른 열쇠를 사용 중이며, 경비실에 기록을 남겨야 드나들 수 있는 건물, 게다가 엘리베이터는 12층 꼭대기 층에 가기 위해 그들만의 암호를 눌러야 올라갈 수 있는 층이었다.
이 까다로운 절차를 다 피해가며 사장실에서 사장의 뒤통수를 갈긴 범인은 누구일까. 용의자로 지목된 전문쪽에서 아오토 준코를 변호인으로 세우고 준코는 사건의 해결을 위해 방범 컨설턴트인 에노모토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간병 원숭이, 경비, 간병로봇이 차례로 거론된 가운데 명석한 에노모토의 추리에 반해갈 무렵 매력적인 범인이 나타나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로 범인인 아키라다. 부모의 빚으로 인해 대부업체 야쿠자의 빚독촉을 받게 된 남학생 아키라. 살아남기 위해 신분을 세탁한 채 도쿄에 숨어 살고 있었다. 여러 직업을 거쳐 유리청소를 맡게 된 그 앞에 거액의 다이아몬드를 숨기는 베일리프 사장의 모습이 눈에 띄고 더이상 숨어사는 일에 이력이 난 아키라는 사장을 죽이고 보석을 손에 넣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탐욕이었을까. 물욕이었을까. 생명에 위협을 느끼며 살고 있어서였을까. 무엇이 한 어린 남학생을 철저하고 냉혹한 살인마로 만든 것일까. 에노모토의 말처럼 유리망치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유리로 만든 망치가 진짜로 위험한 흉기가 되는 것은 부서진 후인 것도 사실이다. 출소후 아키라가 갱생되어 나올지 훨씬 더 위험한 흉악범이 되어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이 모든 사실과 가정을 뒤로하고 제목 [유리망치]는 처음과는 달리 섬뜩한 느낌으로 와 닿는 것은 인간의 추악한 면을 소설을 통해 깨달아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악의적인 주인공은 글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도 영향력을 갖기 때문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사회고발적 소설을 읽을때처럼 기시 유스케의 글들 역시 인간성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단 세 편의 장편을 읽고 나는 기시 유스케의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