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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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라면 장르불문하고 열정적으로 찾아보던 시기가 있었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그랬고, 온다 리쿠도 그랬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진한 작품에 물이 스며들듯 색이 옅어지기 시작하면 나는 어김없이 그들을 떠나 다른 작가의 매니아가 되곤 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장르를 넘나들며 뛰어난 역량을 보이던 작가라 참 오랫동안 그의 작품들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지난 일년간 둘러본 몇몇 작품들의 색이 옅어지기 시작하며 나는 이전 작품들 속에서 그가 쏟아부었던 열정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작품인 [새벽거리에서]는 근래 드물고 보고싶어진 작품이었는데 내용이 15년 전 한 가정에서 일어난 비극의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당 형사가 용의자를 뒤쫓지만 포커스는 당시 학생이었던 용의자인 그 집 딸의 현재 유부남 애인인 "나"에게 맞춰져 있다. 현재의 그녀를 사랑하지만 당시의 그녀에 대해 알리 없는 그래서 어정쩡한 제 3자의 시선이 될 수 밖에 없는 화자. 그가 궁금해하는 내용들이 바로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이라 그는 바로 독자를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과연 15년 전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라는 궁금증은 공소시효를 며칠 앞두고 불륜의 현장에 던져지는데, 가정까지 포기하고 애인을 택하려는 "나"에게 그녀, 아키하가 범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였다. 자신도 가족을 속이고 애인과 함께하는 밤을 보내면서도 그녀에 대한 믿음의 증거가 왜 필요한지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인간 저 밑바닥에 존재하는 공포와 [인간의 증명]에서처럼 최소한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대상이 사람이라는 증거는 필요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서른 한 살이 된 아키하 주변에는 그래서 당시 담당 형사, 별거중이었던 아버지, 집안 일을 봐 주던 이모, 아버지의 애인이었던 죽은 여인의 여동생까지 맴돌고 있었고 "나"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15년 전 일이 밝혀지길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진실은 아키하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밝혀지는 추악한 가정사. 결국 아키하를 둘러싼 진실은 가정내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며 가정내로 숨겨진 이야기였던 것이다.

 

원하는 만큼의 진함은 없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솜씨의 작품이었기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좀 더 긴장감을 갖고 읽던 과거의 그 느낌을 전달받을 소설을 만나고 싶다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원하는 바다.

 

 

p.254  정말 듣고 싶어요?

         혼조 레이코 살해 사건의 진범은 나카니시 아키아, 당신이 사랑하는 연인이라는 이야기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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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
렌조 미키히코 지음, 양윤옥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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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죽었다. 태어난지 4년남짓 된 아이의 원죄는 무엇이었을까.

소녀의 죽음을 둘러싸고 알리바이가 있건 없건 연류된 사람들은 모두 가족이거나 가족과 연계된 사람들이어서 더 충격적인 소설 [백광]은 렌조 미키히코의 작품이다. [회귀천 정사]보다 더 진한 향을 풍기며 독자들을 유혹하고 있는 [백광]은 얼마전 가슴 아프게 읽었던 한 소설이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배겨의 아픔을 밑바탕에 깔고 시작하는 것과 달리 지극히 가정사 내에서 파생되지만 결국엔 인간의 심리를 저 밑바닥까지 끌어내려 샅샅히 훑게 만드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진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날, 전쟁터로 떠나는 남편에게 "이 아이는 당신의 자식이 아니야"라고 내뱉은 잔인한 전처의 고백.

전쟁터에서 심리적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 소녀를 죽이고 만 과거를 떠안고 살아가는 치매 노인.

자신의 남편과 여동생의 불륜에 괴로워한 가정주부.

형부를 비롯해서 많은 남자들을 전전하며 살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고 결국 자신의 딸을 죽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 여자.

아내의 여동생이 낳은 자신의 딸을 스스로 마당에 묻어야 했던 남자.

불륜녀의 아이를 죽이기 위해 집에 잠입한 한 대학생.

이 모든 사실을 묵묵히 지켜보며 입을 다물어야했던 집.

 

죄악은 과연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서 소녀의 죽음으로 고통의 소리를 내지르게 되었던 것일까. 일곱명의 등장인물은 각각의 알리바이와 사연들을 담고 있으면서도 묘하게 뒤틀린 가정을 억지로 끼워맞추며 편안한 일상을 살아가는 척하고 있었지만 섬뜩한 반전은 그들 모두가 범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미 일어난 것이 아닐까 싶다. 소년탐정 김전일에서처럼 멋진 트릭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소녀의 죽음을 통해 산산히 부서진 이 가정의 어두움이 낱낱이 파헤쳐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게 된 [백광]은 사실 우리가 이루고 있는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쉽게 부서질 수 있는 것인지 알려주는 것 같아 참 고통스럽다.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던 소설을 뒤로 하고, 범인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찝찝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책장을 덮으면서 나는 마당에 묻힌 4살 짜리의 죽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있다. 소설 속이긴 하지만 죽어버린 4살짜리의 죄는 어른들이 만든 것인데, 아이가 희생되어서야 그 어른들의 죄가 밝혀지는 것은 너무나 억울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인생인가 싶어져 쓴 커피를 연커푸 들이킨 듯한 우울함을 감출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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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교전 2 악의 교전 2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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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주간문춘의 걸작 미스터리 1위 작품은 [악의 교전]이었다. 단 두 권으로 이루어진 일본 소설이 이토록 섬찟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학교라는 닫힌 공간을 배경으로 가장 신뢰받는 선생님이라는 직업군이 대다수를 사냥해나가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2011년 일본 서점 대상 수상뿐만 아니라 2011년 이 미스터리가 굉장하다와 2010년 1회 야마다 후타로상까지 거머쥔 악의 교전은 사이코패스로 태어난 천재인간 하스미 세이지가 필요에 의해 사람을 조정하기도 제거하기도 하면서 학교를 자신의 베이스캠프로 만드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결국 잡히게 되지만 마지막까지 후회나 반성은 없었던 하스미.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지 못하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이코패스와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일까. 덱스터처럼 좋은 방향으로 자신의 약점을 발산시키는 사이코패스가 있는가 하면 하스미처럼 철저하게 자신의 즐거움과 놀이를 위해 인간을 게임 속 캐릭터처럼 몰아가는 인물도 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만큼 사람을 무섭게 느끼도록 만든 악의 교전은 총 서른 여덟 명의 학생과 세 명의 교사의 죽음으로 끝맺어졌지만 왠지 그 끝은 찝찝하기만 하다. 특히 하스미를 심신장애로 무죄 선고받게 하려는 변호사들이 전국에서 몰려드는 현상은 기가막힐 수 밖에 없었는데, 또 탈옥에 대한 하스미 탈옥에까지 두려움이 보태져 마치 데스티네이션을 보는 듯한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덮게 만든다.

 

부모를 죽이는 악행으로 시작돼 학교를 무방비 상태의 살해지역으로 만든 하스미는 분명 소설 속 주인공이지만 읽는 내내 그가 입으로 흥얼거린 "모리타트"가 들려오는 듯 해서 등골이 오싹오싹했다. 이제껏 학교는 귀신과 집단 따돌림 정도의 두려움만 배경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그 속을 채우는 구성원인 인간이 무섭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소설 때문에 다시 학교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공간뿐만 아니라 인적자원까지. 학교를 졸업한지 오래되어 갈 일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 학교에는 괴물이 있다...

 

이 섬찟한 한 마디가 이 소설의 처음과 끝이 되어 참극을 예고하고 진행시키며 엔딩으로 이끈다. 학교. 과연 그 곳에서의 즐거웠던 추억은 왜 자꾸만 이런 이야기들로 덮여져야하는 것일까. 즐겁게 기억하고 싶다.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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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과 가면의 룰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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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야 하는 사람에 따라 약속장소를 달리 잡는데 나는 내가 편한 장소로 약속을 잡는 편인 사람이다. 그래서 주로 만날 사람에게 소개했던 좋은 찻집이나 서점등을 이용하는데,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코너로 향해가다가 그 중간 즈음에서 [악과 가면의 룰]을 발견했다. 표지를 보는 순간부터 읽고 싶었던 강력한 매력을 발산하던 책.

 

메이커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매번 월급날 마다 브랜드의 옷을 한아름 안고 나타나서는 "지나가는데 얘가 날 부르더라구. 사가~ 날 사가~"라고 말하던 친구를 당시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내가 그러고 있었다. 약속시간은 촉박하고 책은 재미있을 것 같아 넘겨보고 싶고. 세상에 유혹도 그런 유혹이 없어서 망설이다가 그날엔 정신을 강하게 다잡고 지나쳐갔으나 결국 나는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최근 읽었던 가장 흉측(?)했던 소설인 [악의 교전]보다 인간적이길 기대하면서 읽게 되었는데 "악"에 대한 근본적 이야기들을 하고자 했고 계속되는 악을 제거한다는 면에서는 고수와 강동원 주연의 영화와 참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사실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데뷔이래 꾸준히 "악"이라는 소재를 추구해왔다는 작가에게 "악"이란 대체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 살며 소중한 존재를 지켜나가는 순간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믿으며 살고 있는 내게 내 안의 최고 가치는 "선"이 아니고 세상도 아니고 신조차 아니라고 생각의 전환을 갖게 만든 이 책의 위력은 정말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일일지도 모르겠다.

 

[쓰리],[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와 달리 내게 이 소설은 참으로 무겁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아버지를 죽이는 일은 분명 패륜인데,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악을 행하면서까지 그녀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방법은 잘못되었으나 그 시작은 자신의 이익이 아닌 타인에 대한 마음이었기에 개츠비의 것과 비교되었고 가오리 라는 여인의 삶 또한 살펴보면 그다지 평탄하지 않아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재미있음으로 인해 페이지를 놓칠 수 없었고 결국 다 읽어내면서 나는 또 많은 질문들을 뒤로 남겨두어야했다. 과연 그래야만 했을까? 사람의 내면에는 과연 어디까지의 악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내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인생에 칼을 대도 좋을 것인가? 등등.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남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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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교전 1 악의 교전 1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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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세상의 모든 공포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한 느낌을 건네 받았었다. 단어 하나가 사람을 이토록 무너지도록 만들 수 있나 싶어질만큼. 세상의 그 어떤 단어가 인간을 가리켜 이토록 바닥까지 무섭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인지! 그런데 더 무서운 사실은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이 이 단어에 무뎌졌다는 것이다. 익숙해진다는 것. 어떻게 이런 단어에 익숙해질 수가 있지? 싶다.

 

드라마에서, 소설 속에서, 영화 속에서, 이젠 사이코패스는 더이상 낯선 유형의 등장인물이 아니다. 두려움 없이 쉽게 내뱉어지는 단어 중 하나가 되어 우리 삶 속을 파고들었다. 그 사실이 무엇보다 무섭다. 그래서 남들은 모르게 멀쩡한 삶을 살아가는 하스미 세이지 같은 인물이 이웃이 되어 살아간다.

 

하스미 세이지. 마치다 고등학교의 인기 영어 교사로 2학년 4반의 담임이다. 아무도 그가 사이코패스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의 과거는 베일에 가려져 있고 그의 옛 행적을 수상쩍이 여기는 사람은 하나 둘 씩 제거된다. 스는 스포츠를 즐기듯 살인을 일삼고 마음의 동요없이 사람을 살해하는 괴물이다. 자신의 부모마저 죽이는 대목에서는 영화 [공공의 적]이 떠올려졌는데, 높은 지능에 비해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이토록 큰 정신적 장애가 될 수 있는지 이전엔 미처 알지 못했다.

 

이 테스트에 솔직하게 대답하면 안 될지도 몰라

 

는 하스미가 유치원 시절 부모에 의해 정신 테스트를 받으면서 생각한 대목이다. 어떤 유치원 생이 이토록 디테일하게 타인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 수 있을까. 그들의 모자람보다 그들의 뛰어남이 인간적인 삶에 도리어 해가 된다는 사실을 죽는 순간까지 모르는 것은 어쩌면 천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생물에게 천적이 있듯이 강동원 고수 주연의 영화에서처럼 모두의 의심을 사지 않을만큼 뛰어나면서도 인기를 독차지하며 살아가던 괴물 하스미의 내면을 감각적으로 알아낸 학생이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가타기리 레이카. 마치다에서 4명의 선생님을 무섭다 거론했는데 그들은 각각 드러나는 문제가 있던 체육교사 소노다, 시바하라, 수학교사 스리이에 이어 겉으로는 전혀 문제점을 찾아볼 수 없는 영어교사 하스미였다.

 

너무나 기묘해서. 너무나 잔인한 전개를 평범함 속에 묻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만들어 눈을 뗄 수 없도록 하는 기시 유스케의 소설을 읽다보니 사이코패스를 사회가 암묵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다. 악의 교전. 결말을 읽지 못해 모두가 극찬하는 반전의 묘미를 아직 경험해보진 못했으나 나는 소설 한 권으로 인간이 가진 마음 깊은 곳의 지옥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들고 있는 느낌을 받고 있다. 1권의 마지막 장에서 사카이 교감이 사람은 모두 마음 속에 지옥을 품고 있다라고 울부짖은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만든 지옥인지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지옥인지 모를 그 곳으로 한 발 내딛는 순간 쑤욱 빠져들어버렸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2권. 읽고나면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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