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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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마구]를 두고 한화이글스 투수인 류현진은 이런 말을 남겼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투수 이야기"라고.

 

고시엔 1차전 경기 후 포수 기타오카가 그의 애견과 함께 변사체로 발견되고 "나는 마구를 봤다"라는 메모를 힌트삼아 수사를 펼치던 경찰관들 앞에 나타난 것은 그들이 원하던 범인의 모습이 아니라 오른팔이 잘린 채 발견된 에이스 투수 스다 다케시였다.

 

스다 다케시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그 어미가 어린 아들을 두고 자살을 한 까닭에 그 오빠 부부의 큰 아들로 입적되어 자라났으나 아버지가 되었던 외삼촌 마저 일찍 타계하는 바람에 외숙모와 동생과 함께 가난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다만 야구 선수로 성공해 가족을 부양하겠다는 굳은 의지만 가득 담은 채. 그랬던 그가 생물학적 아비를 찾아냈는데 그는 도자이 전기 주식회사의 사장으로 호의호식하고 있었고 사장 나카조를 만난 다케시는 가족의 빚을 갚을 10만엔을 요구한 뒤 며칠만에 변사체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공포나 두려움보다는 슬픔을 맛보게 한 [마구]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년작이다. 그래서인지 빛나는 트릭보다는 애잔한 마음이 들게 만드는 마치 덜 다듬어진 [편지]를 읽는 듯한 느낌으로 읽게 만든다. 장르를 불문하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글을 희롱할 줄 아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야구에 대해 잘 몰라도 끝까지 읽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이 소설은 퍼즐이 맞춰지면 질수록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게 만드는데 그 까닭은 완성된 퍼즐의 끝에서 발견되 범인의 슬픈 사연 때문이리라.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친구를 응징해야만 했던 천재의 고뇌나 출생의 비밀로 인해 평생을 홀로 괴로워했던 고교생의 아픔. 형의 뒷처리를 맡아야했던 동생의 고뇌에 이르기까지. 인간에 대한 진한 애정 없이는 탄생 할 수 없을 이야기들이 우리를 사로잡아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형은 언제나 혼자였어요.....

 

라니. 인간은 누구나 혼자이지만. 그래도 이 말이 이 연말 너무나 구슬프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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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집
나카지마 교코 지음, 김소영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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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독본]을 첫권으로 내고 이젠 다른 책을 출판해보자는 출판사의 말에 독신의 다키 할머니는 지난 세월 속 비밀의 빗장을 풀어낸다. 쇼와 40년대. 아직까지 일본에 "하녀살이"가 존재하던 그때 그녀는 하녀였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여섯째 중 다섯째로 마을 근처가 아닌 저 멀리 도쿄로까지 가게 된 일을 두고 그녀는 지금까지 운이좋았다고 회상하고 있다.

 

도호쿠 지방의 한 현 출신인 시골뜨기 아가씨의 눈에 도쿄는 어마어마한 곳이었다. 더군다나 힘들어하던 언니와 달리 세련된 도시로 나온 그녀는 대우받는 고용인으로서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녀가 부족하던 시절이라 정중하게도 "다키 씨"라고 불리며 가족의 일원으로 대우받을 수 있어 스스로도 충직하게 생활했던 그 집은 미모의 사모님이 계신 곳이었다.

 

히라이가 사모님은 첫번째 남편과 사별하고 그 사이에서 난 아들을 데리고 재가했는데 재가의 상대는 완구 회사의 중역으로 그 세 식구와 다키 이렇게 네명이 한 집에서 기거하며 즐거운 생활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던 사이 도키코 사모님의 권유로 다시 학업을 계속하게 되지만 곧 교이치 도련님이 소아마비에 걸리면서 학업도 중단되고 일본 역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집 안의 사람들 역시 그 분위기에 휩쓸리고 만다.

 

운명의 쳇바퀴가 불러들인 이타쿠라 쇼지군이 방문하면서 묘하게 이그러져 간 행복의 분위기를 다키가 눈치챌 무렵 그녀는 처음 도쿄로 와 잠시 머물렀던 집주인인 소설가 고나카 선생이 그녀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영국의 한 하녀는 학자인 주인을 위해서 주인의 친구이자 라이벌이 쓴 논문을 실수인 척 불태워 버렸고 그녀는 똑똑한 하녀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는....

 

다키가 태워버려야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역사소설이면서, 로맨스 소설이고,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나카지마 교코의 소설은 제 143회 나오키상 수상작답게 편안하면서도 끝까지 그 재미를 잃지 않으며 마지막 장을 덮게 만든다. 한때 행복했던 그 어느 순간을 떠올리는 노인의 추억담은 미스터리의 탈피라는 목적보다는 더 의미있는 것을 찾게 만드는데 작품의 매력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평생을 후회하는 여자가 곱씹는 행복한 젊은 시절을 담고 있어 더 애잔하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애잔함이 따뜻한 봄날에 약간 쌀쌀한 바람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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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의 귀결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3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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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의 사각],[도착의 론도]를 읽으며 최종편인 [도착의 귀결]도 반드시 읽어내리라 마음 먹었건만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의 귀결]은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다. 먼저 앞에서부터 시작되는 [목매다는 섬]과 뒤에서 부터 읽어야 하는 [감금자]의 이상한 편집방식에도 놀랐지만 각각의 이야기인 그이야기가 합쳐지는 가운데 봉인되 부분을 절취해 읽어도 더 헷갈리기만 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중견추리소설가인 야마모토는 이상한 섬에 도착했다. 마음 속 어딘가에선 그 섬에서 도망치라고 권하고 있지만 진흙속에서 발을 뺄 수 없듯 그는 점점 더 섬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수수께끼. 섬에는 수수께끼가 있었는데 대대로 섬의 선주였던 니이미 가문에서 예전에 한 스님이 익사했고 백년이 지난 후 가문의 외아들과 그 아비가 죽음을 맞이했다. 찝찝한 그들의 죽음은 급사이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자살로 위장된 타살같이 보였기에 추리소설 작가인 야마모토에게 섬 사람들은 탐정처럼 미스터리를 풀어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가문의 번영을 기원하고 어부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진 니이미 가문의 "부신당"은 어떤 미스터리를 갖고 있는 것일까...에 주목할 무렵 이야기는 점점 사람들의 관계속 미스터리를 파고들게 만들었고 풀면 풀수록 더 기묘하게 얽히는 사건 속에서 추리소설가 야마모토의 내일은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어 더 기이하게 읽혀진 책이 바로 [도착이 귀결]이다.

 

그간 오리하라 이치의 책을 읽으면 때론 무서워지기도 했고 때론 감탄하게 되기도 했지만 이토록 기이하게 느껴지는 일은 처음 이었다. 그리고 어렵게 느껴진 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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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 측 증인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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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여인의 삶을 망가뜨리고 울리는 일은 현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작가의 삶 자체도 52세의 아까운 나이에 사고사로 끝나버린 고이즈미 기미코의 [변호 측 증인]은 사랑을 잃은 여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통쾌한 복수 스토리로 독자를 찾아왔다. 사랑하는 것의 반대는 배신이 아니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 소설은 한 재벌가 총수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야시마 가를 이끌었던 야시마가 살해된 다음 날 아침. 용의자는 모두 가족으로 묶인 사람들이었다. 딸과 아들들 그리고 클럽 댄서 출신의 새 며느리까지. 범인은 이들 중 누구일까? 소년탐정 김전일이라면 "이 중에 범인이 있다!"라고 외치며 한 명, 한 명 혐의를 벗겨가며 범인을 줄여나갔을 것이며, 명탐정 코난 이라면 "바로 당신!"이라고 지목한 다음 그 이유를 말해주겠지만 세이케 요타로는 사형을 언도 받은 초대받지 못한 가족인 미미 로이의 선공판을 뒤집으며 그녀를 극적으로 구해냈다. 그녀가 그토록 감싸주고 싶었던 남편의 혐의조작으로부터-.

 

아내는 남편을 사랑했으나 남편은 아내를 살인자로 만들었다. 단 한 문장으로 축약되었지만 사실 이 문장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문장이다. 한 사람에겐 계속되는 사랑이 소중했고 다른 한 사람에겐 하룻밤 사이에 버려질만큼 하찮은 무게감을 가진 것이 바로 사랑이었다니. 그들이 부부였다는 사실이 더 서글프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소설을 읽는 시간은. 내내.

 

문장을 쓰는데, 육하원칙에 맞추어 처음부터 끝까지 똑 떨어지게 시간의 순서에 맞게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은 사건, 같은 이야기를 두고도 은유법, 도치법 등등을 활용해 문학적 문장으로 써 내려가는 사람이 있다. 감동을 주는 문장은 바르게 쓰여진 문장, 남과 같이 쓰여진 문장이 아니라 의외성을 가진 문장에서 얻어지는 것임을 나는 안다. 다년 간 많은 작가의 소설을 읽어가며 왜 재미있는지. 혹은 왜 재미없는지를 나누어가며 읽다보니 나름의 기준이나 "눈"이 생긴 것 같다.

 

재미있는 책들을 읽을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가 바로 책인데, 이 고마운 존재는 내게 지식 외의 것들을 가져다주며 나를 더 알찬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좋은 친구였다. 고이즈미 기미코의 소설은 처음 접해보았지만 그녀의 기구한 삶과 죽음 외에 소설이 주는 잔잔하게 뒤집는 반전의 묘미도 찬사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의 좋은 작가, 좋은 읽을 거리 외에 좋은 친구를 얻은 것 같아 기쁘기 그지 없는 가운데, 명문장을 뽑아내자면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표현으로 영원을 맹세케 했는데,

이 죽음이란 대체 누구의 죽음을 의미하는가?

 

우리를 갈라놓은 것은 우리 둘 이외의 사람을 덮친 죽음이었다.

 

라니.그 어떤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도 결혼의 맹세가 두 사람 외의 죽음으로 갈라질 수 있다고 상상해 본 일이 없는 내게 이 두 문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나를 믿어줄 것 같은 사람은 나를 밀어내고, 누가봐도 내게 호의가 단 한 톨도 없을 것만 같은 사람은 죽어서도 나를 살리다니...! 사람의 속은 열 길 물 속 보다 알 길이 없고 삶은 끝까지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것이라는 교훈이 바로 이 소설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겨울이지만 나는 가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진다. 속이 타는 것도 아니고 유달리 추위를 많이 타지만 가끔은...가끔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 이 소설을 읽기 전, 나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소설을 다 읽고나서 맛나게 꺼내먹었다. 마치 재판을 보고 온 사람처럼 시원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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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역열차 - 144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니시무라 겐타 지음, 양억관 옮김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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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인 니시무라 겐타의 [고역열차]는 모르는 작가의 책이었다. 다만 역자인 번역가 양억관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여 무척이나 읽고 싶어졌더랬다. 일본 소설을 꽤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이 익숙할텐데, 그 번역이 매끄럽고 좋아 나는 무조건 적인 신뢰를 가지고 [고역열차]를 읽기 시작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 유명한 열차 속 살인처럼 [고역열차]역시 열차 속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고 니시무라 겐타는 추리 소설이 아닌 열 아홉의 청년이 방황하며 성장하는 성장소설로 [고역열차]를 마무리 했다.

 

흡사 이문열 작가의 [젊은 날의 초상]을 접했을때처럼 무언가 묵직하면서도 결코 무거움보다는 그 깊이를 가늠해보게 만드는 이야기. 오랜만에 나는 같은 무게의 소설을 접하게 되었다. 또한 이야기는 작가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데, 열 아홉의 간타는 성범죄를 저지른 아버지로 인해 가정이 파탄나고 어머니와도 잘 지내지 못한 채 집을 뛰쳐나와 일용직의 삶을 그저 살아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쓸모없는 인간. 마치 스스로조차 그런 취급을 해가며 인생에 있어 목표도 즐거움도 희망도 없는 삶을 살아가던 그에게 평범한 삶의 맛을 알려준 친구가 나타났지만 그 관계를 그는 스스로 망쳐버렸다. 어쩜 이토록 우울한 인생이 있을까 싶어졌는데, 작가 프로필을 읽다가 나는 그만 책을 놓쳐버렸다. 니시무라 겐타 스스로가 초등학교때 성범죄를 저지른 아버지로 인해 가정이 파탄난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원죄, 연좌제...그 어떤 것으로도 사회는 그를 질타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겐타는 등교거부를 시작으로 세상과 등을 돌리면서 결국 가출을 감행했다. 또한 부두 하역 노동자로 살기도 했고 어린 나이에 배달원, 종업원, 경비원 등등 닥치는대로 일하면서 간타처럼 살아가던 젊은 시절이 그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간타와 그의 다른 점은 그는 성장하고 극복해냈다는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이 소설이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그 감정을 오롯이 펜 끝에 담아 타인에게 드러낼 수 있는 용기. 살면서 가져야할 가장 큰 용기를 그는 글로써 풀어냈던 것이다. 이후 이 소설은 아쿠타가와 제 144회 수상작이되었고 "친구도 없고, 연락할 사람도 없습니다"로 수상소감을 마무리하면서 그가 자신의 삶 속에 문학을 받아들이면서 변화되어 왔지만 여전히 한 쪽은 닫아둔 사람임을 시사하고 있기도 했다.

 

정신병력이 있어 병원 생활을 했던 파울로 코엘료, 성범죄라는 극단적인 가족의 범죄를 받아들이지 못해 방황했던 니시무라 겐타, 사건 속의 삶을 살아낸 작가 황석영. 이런 특별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사람을 향해 쓰고 싶은 것이 많은가 보다.

 

작가는 문학을, 자신을 갈고 닦으며 조각해가는 글조각가가 아닐까 싶은 생각에 이르게 만든 작품이 바로 오늘 읽은 이 이야기,[고역열차]다. 비록 예상은 빗나갔지만 나는 좋은 작품 하나를 읽고 가슴에 또 새긴다.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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