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전 재미있다! 우리 고전 13
김남일 지음, 윤보원 그림 / 창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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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김남일

  그림 - 윤보원



  아아, 어린이 책은 진짜 삽화 보는 재미로 읽게 된다. 전우치의 도술 이야기도 재미나지만, 이 책은 삽화가 독특했다. 하아, 미술 기법을 잘 모르니, 뭐라고 정의내릴 수가 없다. 다만 전우치가 어딘지 모르게 손오공을 연상시키는 외모여서,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이 책은 ‘신문관본’을 기본으로 삼았다고, 책 맨 뒤에 있는 작품 해설에 나온다. 전우치의 이야기는 다양한 이본으로 존재했던 모양이다. 하긴 작자 미상의 이야기다보니, 이곳저곳 책을 내는 곳에서 조금씩 내용에 가감을 했을 것이다.


  전우치는 열다섯 달 만에 태어났다. 그리고 골격도 장대하고 다른 아이들보다 모든 것이 다 빨랐다고 한다. 부모의 배려로 어느 암자에서 공부를 하던 중, 우연히 도술을 익히게 된다. 하지만 여우의 꾀로 신선이 되기 직전에 공부를 마치게 된다. 이후 전우치는 도술로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부패한 관리를 혼내주기 시작한다. 그의 피해자 명단에는 공교롭게도 임금까지 들어 있었다.


  임금을 속였으니 문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도술을 부리는 그를 어찌할 수 없기에, 그 재주를 써먹어보자는 계산에 관리로 등용을 한다. 물론 감시한다는 속셈도 있었다. 도적을 토벌하고 이런저런 일을 하며 지내던 어느 날. 역모를 꾀하던 무리가 잡혀왔는데, 대신 한 명이 그 역모에 전우치를 엮어 넣는다.


  궁을 떠난 전우치는 서화담을 찾아가 배움을 청하고, 두 사람은 태백산(지금의 백두산)으로 향한다.


  도술을 부려 사람을 돕는 장면에서는 통쾌함까지 느꼈다. 하지만 결말 부분에서 ‘응?’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패한 관료나 양반을 꾸짖고, 약한 백성을 돕던 그가 갑자기 백두산으로 들어가 버리다니. 이건 뭔가 아닌 듯싶었다. 하다못해 홍길동은 자기를 따르던 사람들을 데리고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기라도 했는데, 전우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진리를 찾아 산으로 들어갔다.


  속세에 환멸을 느낀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 전부를 도울 수 없으니, 진리를 찾아 모두를 이롭게 하는 방법을 택한 것일까? 그가 비서를 양사언에게 남겼다고 하니, 후자의 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책의 존재 여부는 모르는 일이다.


  사실 요즘 액션물에 길들여져 있는 세대라면, 당연히 전우치가 관리들을 혼내주고 임금에게서 백성들을 잘 돌보겠다는 약속을 받아 내거나, 임금의 눈을 흐리게 하는 간신배들을 물리치는 걸 기대할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나라를 좀먹는 나쁜 범죄 조직을 섬멸하는 것도 괜찮고.


  아! 그래서 영화가 나온 건가? 비록 배경이 현대이긴 했지만 말이다.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았구나. 쳇, 셰익스피어 이후 독창적인 작품이란 없다는 말을 누군가 했는데, 그 말이 맞나보다.


  하지만 생각해보니까 이 이야기가 나온 시대 분위기상, 그런 결말이 제일 적절했을지도 모른다. 계급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국가의 기반을 뒤흔드는 글을 쓰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냥 적당히 치고 빠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관리들이나 사대부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정도로만 하고. 왕을 중심으로 하는 계급제 전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롱하고 놀리기는 하지만, 쫓아낼 수는 없었나보다. 그게 그 시대의 한계인 것이니까.


  나도 도술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문득, 나도 역시 이 사회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은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건 내 한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전우치의 마지막 행보가 갑자기 이해가 되었다. 그런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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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D] 레지던트 이블 2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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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Resident Evil: Apocalypse

  감독 - 알렉산더 위트

  출연 - 밀라 요보비치, 시에나 길로리, 오디드 페르, 토마스 크레슈만

 

 

  엄브렐라 사는 무자비했다. 자기들이 만든 바이러스가, 자기들의 실수로 지상으로 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사람들이 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바이러스가 퍼지자마자 일부 고위층인사나 과학자와 그 가족들만 대피를 시킨 야비함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라쿤 시티’ 전체를 봉쇄.

 

  이제 앨리스는 살아남은 몇몇 사람들과 함께 도시를 탈출해야 한다. 동시에 여자 아이도 구하고, 해독제도 찾고. 그러나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앞에 나타난 흉측한 생체 병기. 하긴 언제나 자잘한 것들을 물리치면 막판에 가장 강하고 압도적인 최종 보스가 나타나긴 한다. 그런데 이 막판 보스, 알고 보니 엄브렐러 사의 생체 실험의 희생양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싸우는 앨리스.

 

  근데 여기서 뭔가 억지 감동을 주려는 감독의 센스에 화가 나버렸다. 왜 어떤 영화감독들은 꼭 ‘자, 여기서 관객 눈물 흘리거나 감동받을 준비 하시고. 배우 연기 시작!’ 이러는 걸까? 굳이 그렇게 티를 내지 않아도, 눈물 흘리고 싶은 장면이면 알아서 흘려주는데 말이다.

 

  감독은 멋진 액션과 찡한 감동 두 가지를 다 잡고 싶었던 걸까? 그런 의도였다면 멋진 액션 하나만 잡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찡한 감동 덕분에 손에 땀을 쥐고 봐야할 결투 장면의 김이 새버렸다.

 

  영화는 기업의 음모와 살아남은 사람들의 처절한 사투 그리고 앨리스의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준다. 기업의 생체 실험으로 인해, 이미 그녀는 인간이라 부르기엔 애매한 존재가 되었다. 일명 ‘앨리스 프로젝트’의 결과였다. 또한 최종 보스는 ‘네메시스 프로그램’의 일환이었고 말이다.

 

  왜 그 회사는 인간 실험까지 하는 걸까? 단지 약을 팔아먹기 위해서? 아니면 지구 정복?

 

  그런데 기껏 최첨단 기술로 생체실험을 해놓고, 주먹 싸움으로 누가 더 강한지 대결해보라는 건 좀 우스웠다. 아니 왜? 그러면 단지 육체의 강함을 발달시키기 위해 그 난리를 피운 거? 총 맞아도 안 죽고 벽을 타고 날아다니고 이러는 게 다 강한 군인을 만들기 위함이었다는 건 알지만……. 총알 값을 아끼기 위함인가? 그런데 무기도 보니까 엄청 최신식이던데.

 

  그럴 바에는 차라리 소림사나 닌자 학교에 보내면 돈도 아끼고 피해도 줄였을 텐데……. 나뭇잎 마을의 닌자들은 분신술도 하고 최면도 걸고 여러 가지 다하던데 말이다. (나루토를 안 보신 분들은 죄송.)

 

  뭐 그래도 밀라 언니는 예쁘고 잘 싸우기만 한다. 같은 팀이 된 형사 언니도 밀라 언니보다는 덜 예쁘지만 그래도 나름 매력 있고 잘 싸우고. 두 언니들의 모습에 넋을 잃고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영화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언론이 어떻게 조작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돈의 힘은 참으로 막강하다. 가해자를 피해자로, 피해자를 가해자로 바꾸어버렸으니 말이다. 거기다 모든 일의 원흉인 기업이 감사의 인사까지 받고 말이다. 영화건 현실이건 세상이 개판인 건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런데 앞 편을 복습하는 내 마음대로 붙인 ‘성지순례’를 하는 동안 ‘레지던트 이블 5’가 우리 동네 극장에서 내려졌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아 놔. DVD나 기다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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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 - 문화만담꾼 김재훈의 캐리커처 문화사
김재훈 글 그림 / 아트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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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세기의 아이콘으로 보는 컬처 트렌드

  저자 - 김재훈

 

 

  ‘라이벌’을 통해 문화의 의미를 되묻는다는 광고를 보고 흥미가 생겼다. 게다가 20세기와 21세기를 다룬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고전에 대한 것은 사골 우려먹듯이 나오고 또 나오고 있으니까. 아! 어쩌면 고전은 사골이 아니라, 화수분일지도 모른다. 꺼내도 꺼내도 자꾸 새로운 시각과 재해석이 나오니 말이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와-’하는 탄성이 나왔다. 오드리 헵번과 마릴린 먼로라는 걸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이 페이지를 채우고 있었다. 작가 약력을 다시 보았다. 내용이 궁금해서 저자 이름만 보고 얼핏 넘겼는데, ‘역시 그렇군.’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재훈씨는 만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였다. 그래서 책은 멋진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선 이 책의 구조에 대해 간략하게 얘기를 해야겠다. 책을 펼치면 양쪽에 그림이 각각 하나씩 그려져 있다. 라이벌로 선정된 둘이다. 딱 보자마자 ‘아!’하고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특징이 잘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전반적인 평에 대해 적혀 있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역시 양쪽으로 둘에 대한 간략한 감상이 나와 있다. 그리고 재치 있게 상황을 알려주는 대사와 인물이 그려져 있다.

 

  소설 속의 두 남자, 셜록 홈즈와 뤼팽이 나오는 장을 살펴보자. 폰을 얼른 바꿔야지, 화질이 선명하지 않다. 왼쪽엔 홈즈, 오른쪽에는 뤼팽. 그들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만한 요소들이 잘 드러나 있다. 가운데 자세히 보면 VS라는 글자가 보인다.

 

 

 

 

   그 다음 장 역시 왼쪽엔 홈즈, 오른쪽엔 뤼팽. 간략한 설명과 재미있는 대사가 적혀있다. 화질이 흐릿해서 잘 안보이지만, 대사가 진짜 핵심을 짚으면서도 혼잣말 또는 사족 같지만, 읽으면서 미소를 짓게 한다.

 

 

 

 

  이런 식으로 문화 아이콘, 그래픽디자인과 비주얼 아트, 패션과 프로덕트 디자인, 대중매체, 클래식 음악까지 총 66팀과 그들이 현대 문화에 준 영향이 나와 있다. 팀이라고 한 이유는, 사람만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밀푀유와 독일의 바움쿠헨, 에펠탑과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 B33과 MR20이라는 의자 심지어 페이스북과 트위터까지 사람이 아닌 것들도 수록되어 있다.

 

  특이하게 고 스티브 잡스는 종종 빌 게이츠와 비교되는데, 이 책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오직 그의 CEO적인 면과 디자이너적인 면을 나란히 비교했다. 빌 게이츠는 다뤄지지 않았다. IT는 문화적인 면에서 포함되지 않아서일까? 그러고 보니 과학 쪽은 다루지 않았다.

 

  어떤 부분, 특히 의자 같은 경우는 디자인만 익숙하지, 이름도 누가 만들었는지도 알지 못했었다. 그냥 의자는 다 의자였고, 디자이너는 회사의 디자인실에서 만들었으려니 생각하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계기로 외우지는 못했지만, 몇몇 작품들에는 고유한 이름이 있다는 걸 알았다.

 

  문득 ‘왜 저자는 이렇게 의자 디자인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을까?’라고 생각해봤는데, 현대인은 대개 앉아서 생활하기 때문이라고 나름 결론을 내렸다. 책상이 없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책상엔 앉지 않으니까. 그럼 침대를 다루지 않은 이유는……. 음, 침대는 과학이라서?

 

  라이벌 한 팀에 두 장 분량은 어떻게 보면 장점이고, 또 달리 보면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문화라는 것에 대해 자세히 알기를 기대했던 사람에게는 ‘이게 뭐야?’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라이벌이라는 구도를 통해, 현대 문화에 대해 진지하고 심도 있는 전개를 원했다면 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전공할 것도 아니고 간략하게 사람들에게 소개만 하는 것이라면 적절한 분량이다. 거기서 흥미가 생겨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참고 도서를 찾아보면 될 테니까. 말하자면 맛만 살짝 보게 해준다고 해야 할까? 현대 문화 시식 코너 정도? 문화라고 해서 꼭 그림은 별로 없이 글자만 많고 진지하게 주제를 다룬 책만 있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런 면에서 별로 머리 아프지 않게, 그림도 많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한 번만 읽고 두기에는 들어있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사람은 노래도 들어보고 관련 책도 읽어보고 영화도 보고. 그러면 색다르고 꽤 재미있는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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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섀도우
팀 버튼 감독, 조니 뎁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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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Dark Shadows

  감독 - 팀 버튼

  출연 - 조니 뎁, 에바 그린, 미셸 파이퍼, 조니 리 밀러, 클로이 그레이스 모레츠, 헬레나 본햄 카터, 벨라 헤스코트

 

 

  감독 이름과 출연진을 보는 순간, 어찌된 일인지 더 이상 기대가 되지 않았다. 문득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왜 그런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자기 색이 분명한 감독과 다양한 변신 능력이 있는 배우들이 만났는데, 어쩐지 식상한 내용이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참 곤란한 문제다. 생각해보자. 한식 중식 양식까지 다 다루는 주방장 한 명이 있는 분식집 음식은 굳이 다 먹어보지 않아도 맛이 어떨지 알 수 있다. 어차피 김밥 헤븐의 거의 모든 메뉴는 어느 집이나 맛이 비슷하니까. 또한 주력 종목 두세 가지만 미는 주방장이 있는 식당의 음식도 여러 번 먹다보면 질리기 마련이다. 아무리 맛이 있어도 언젠가는 그렇게 된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계절 한정판 요리라든지 신 메뉴 개발에 열을 올리는 걸지도 모른다. 조리법을 달리한다거나 양념을 바꾼다든지 해서 말이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는 여러 번 먹어본 음식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슬슬 질리기 시작하는 단계.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와 화사하고 강렬한 색이 공존하는 공간적 배경. 좋게 말하면 몽환적이며 동화 풍이고 나쁘게 말하면 어정쩡하다.

 

  그리고 언제나 주인공으로 나오는 조니 뎁. 그는 어딘지 모르게 거의 모든 역할의 성격이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초콜릿 공장 사장에서부터 모자 장수 그리고 이번 배역까지, 차이가 별로 없다는 인상을 준다.

 

  저택의 여러 하녀들과 즐기던 바나바스. 하지만 안젤리크는 그를 사랑했고 콜린스 부인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매정하게 그녀를 차버리고 진정한 사랑 조셋을 만난 바나바스. 하지만 알고 보니 안젤리크는 마녀. 그녀는 조셋을 자살하게 만들고 그를 흡혈귀로 바꾸어버린다. 그것도 모자라 마을 사람들을 조종해, 바나바스를 산 채로 묻어버리기까지 한다.

 

  200년 후, 공사덕분에 관에서 깨어난 바나바스. 안젤리크는 그의 후손들까지 몰락시키면서 분노를 풀고 있었고, 조셋은 빅토리아로 환생했다.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픈 그였지만, 안젤리크의 방해는 멈출 줄 모른다.

 

  영화를 보면서 안젤리크가 참으로 집착이 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혼녀를 죽이고 그를 생매장한 것도 모자라, 후손들에게까지 손을 대다니. 무려 200년 동안 그들 주위에 맴돌면서 말이다.

 

  어쩌면 이건 그녀가 그 구역의 미친년이기 때문에, 바나바스가 차버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주기 위함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0년 동안 사랑하는 님을 기다린 순정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에게 피해 받은 한 남자의 사랑 찾기가 된 것이다. 그녀의 마음을 갖고 논 것은 그였는데! 나쁜 것은 그였는데!

 

  그렇다. 이건 순전히 바나바스와 빅토리아의 사랑에 정당성을 주기 위함인 것이다. 그녀가 소유욕이 너무 심한 미친년이라, 차버린 그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정당성.

 

  후반에 콜린우드를 공격하는 그녀의 모습은 진짜 제대로 미친 것 같았다. 백금발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런 긴 머리에 창백하다 못해 푸른 기가 도는 피부와 다크 서클이 완연한 커다란 눈 그리고 붉은 입술. 이 영화에서 엔젤리크 역을 한 에바 그린이 제일 돋보였다.

 

  사랑했다고 외치는 그녀와 경멸했다고 받아치는 그.

 

  둘 사이에서 제일 피해보는 건 그들의 후손이었다.

 

  미셸 파이퍼는 가문을 지키려고 애쓰는 여주인으로 나왔다. 안정적이고 균형 있게 배역을 잘 소화한 느낌이었다. 다소 둥둥 떠다니는 분위기의 두 남녀 사이에서 안정감을 잘 찾아줬다.

 

  결말은 음, 200년에 걸친 애증의 끝은 너무 힘이 약했다. ‘그런 식으로 끝날 거면, 200년 전에 하지…….’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사실 처음부터 바나바스가 행동을 확실하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성격이었기에 사건을 더 키웠다고 생각한다. 괜히 희망을 주다가 빼앗고. 그러니 분노는 더 커져가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애인님이 말했다. ‘옛날 노래들이 참 좋네.’

 

  난 에바 그린이 제일 기억에 남았고, 애인님은 노래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사실 딱 그것뿐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이야기에 어색한 부분이 느껴졌다. 왜 마을 사람들과 경찰은 그냥 돌아갔을까? 그리고 안젤리크는 마녀면서 왜 그를 그대로 놔뒀을까? 자기 집으로 관을 몰래 가져갈 수 있었을 텐데. 그래야 자기만이 그를 볼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데. 어쩌면 그녀는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가 자기 발 아래 꿇고 비는 것을 보고 싶었을 뿐이 아니었을까?

 

  감독과 출연 배우들의 이름에 비해, 영화는 다소 실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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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 이블 - [할인행사]
폴 앤더슨 감독, 미셸 로드리게즈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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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Resident Evil

  감독 - 폴 W.S. 앤더슨

  출연 - 밀라 요보비치, 에릭 매비우스, 미셸 로드리게즈, 제임스 퓨어포이

 

 

  몇 년 전에, 친구네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 겸 송년회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집이 멀었던 몇 명은 자고 가기로 했는데, 밤에 텔레비전을 켜니 아주 예쁘고 섹시한 여배우가 총질을 하면서 괴물들과 싸우는 영화를 하고 있었다. 거의 후반부터 봐서, 제목을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비디오 가게로 향했다.

 

  그 때부터였다. 나의 ‘레지던트 이블 앓이’가 시작된 것이. 이후 새로운 편이 개봉할 때마다 앞부분을 복습하는, 이른바 ‘성지 순례’를 시작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건 내 마음대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건 ‘쏘우’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제 그 영화는 놓아주려고 한다. 권태기인가보다. 물론 이 영화도 슬슬 마음이 뜨고 있다. 뭐든지 박수칠 때 떠나야한다는 말이 맞다보다. 매번 비슷한 패턴의 반복에 슬슬 짜증이 나고 있다. 게다가 너무 시리즈가 길고.

 

  ‘앨리스’는 기억을 잃었다. 그리고 눈을 뜨니 동화에 나오는 어린 소녀가 아니라, 성숙미가 물씬 풍기는 아가씨가 되었다. 그녀는 토끼가 아닌 군인들을 따라 지하 동굴로 뛰어든다. 어릴 적에는 호기심이었지만, 이번에는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이제 그녀는 긴 금발 머리를 찰랑이며 허리를 질끈 동여맨 원피스에, 무릎까지 오는 양말과 샌들을 신은, 로리콤들의 마음에 불을 붙였던 19세기의 앨리스가 아니었다. 21세기의 앨리스는 금발의 단발머리에 몸매가 드러나는 짧은 치마를 입고 양 손에 총을 든 강한 여전사이면서, 동시에 보호해주고 싶은 가냘픈 이중적인 이미지의 여인이 되어버렸다.

 

  이상한 나라에는 이제 모자 장수나 체셔 고양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차갑지만 속도 차가운 카드 나라의 여왕도 더 이상 있지 않았다. 더 이상 낭만적이면서 동화 같은 곳이 아니라,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살벌한 전쟁터가 돼버렸다.

 

  무자비하지만 바보 같은 여왕이 다스리던 동화속의 나라는 자본주의 이윤을 위해서라면 다른 인간의 생존권은 지나가던 파리의 충권쯤으로 치부하는, 더 악랄하고 잔인한 기업이 다스리는 세상으로 변했다. 모자 장수는 기업에 대항하던 남자로, 체셔 고양이는 슈퍼컴퓨터 ‘퀸’으로 대체되었고, 카드 나라 사람들은 좀비들로 바뀌었다.

 

  자칫 잘못하면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퀸의 보호 장치에 몸이 산산조각날 수도 있다. 무사히 살아서 지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과거를 회상하며 '집이 더 좋아, 엄마한테 갈래' 라며 칭얼대는 소녀는 이제 더 이상 매력적이지가 않다. 대신 '과거는 묻지 마세요.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 라며 앞으로 나가는, 소녀 같으면서 때로는 세련된 여인이 대세이다. 음, 그래서 앨리스가 기억을 잃은 걸까? 어찌되었건 밀라 요보비치는 강하면서도 여린 여인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거기다 무지 예쁘다! 몸매도 짱이고.

 

  십 년 전에 나온 영화지만, 몇몇 장면들은 참으로 멋지다. 특히 슈퍼컴퓨터인 퀸을 제거하러 갈 때, 그녀의 보호 장치가 작동하는 부분은 ‘오오!’하고 감탄사가 나올 뿐이다. 영화 ‘큐브’에서 보았던 설정이지만, 더욱 더 세련되고 긴장감을 주고 있다. 음, 큐브가 먼저였나, 이 영화가 먼저였나? 헷갈린다. 아마 큐브일 것이다. 그걸 동생과 같이 봤으니.

 

  이 영화에서는 좀비가 왜 생겨나는지 그 이유를 나름 과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전까지 좀비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걸로만 다루고 있는데 말이다. 여기서는 대기업에서 만든 바이러스 치료제의 부작용이라고 말한다. 죽은 세포를 다시 살리는 것으로, 의약품으로 만들면 앉은뱅이도 걸을 수 있게 만드는 좋은 것이다. 하지만 죽은 사람들이 감염된 경우에는 그냥 이성은 마비되고 식욕만 남아있는 좀비로 살아나는 것이었다.

 

  1편의 마지막 장면은, 앨리스가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죽은 자들이 살아 돌아온 땅으로 말이다. 어쩌면 그녀의 집은 사라진 지 오래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앨리스는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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