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Livid (Livide)

  감독 - 알렉상드르 뷔스티요, 쥴리앙 모리

  출연 - 클로에 룰루, 베아트리체 달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상영작

 

  두 감독의 첫 장편작이 영화 ‘인사이드 À l'intérieur Inside’ 라는 걸 검색으로 알았다. 으아! 갑자기 그 영화의 악몽이 떠오른다. 진짜 무자비할 정도로 잔인했던……. 그런데 그 감독들의 영화라니, 어쩐지 기대가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작보다는 피가 덜 나온다. 살점이 튀기지도 않고, 눈살을 찌푸리는 잔혹한 장면도 별로 없고. 인상적인 것은 여주인공의 눈동자가 서로 색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영화가 제목과 어울리게 전반적으로 겨울을 연상시키는 짙은 푸른색조로 화면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루시는 견습 간호사이다. 그녀는 한때는 무용 선생이었지만, 지금은 산소 호흡기로 연명하는 한 노인의 간호를 맡게 된다. 그녀의 집은 엄청난 대 저택으로 수많은 장서와 조각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저택 어딘가에 보물이 숨겨있다는 소문까지.

 

  그런데 그녀의 얘기를 들은 남자 친구와 또 다른 친구가 그 집을 털자고 제의를 한다. 어차피 혼수상태에 빠진 노인네니, 보물을 찾아 마을을 떠나 새롭게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고민 끝에 그녀도 동의하고, 세 친구는 저택으로 향한다. 그런데 저택엔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영화 시작부분에 실종된 아이들을 찾는 수많은 포스터. 어린 여자애를 보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여인. 아무도 없는 게 분명한 저택에서 울리는 발걸음 소리. 웃음소리와 함께 나타난 여자애들. 그리고 닫힌 저택의 문.

 

  옆에서 애인님이 ‘저 할머니 혹시 흡혈귀 아니야?’ 라고 속삭였다. 하긴 처음에 노인이 수혈을 받는 장면이 나오긴 했다. 하지만 난 마녀라고 생각했다. 쳇, 그런데 애인님이 맞았다. 생각해보니 무용 학원에 마녀라면 영화 ‘서스페리아’의 짝퉁이라는 오명을 받을 테니, 그렇게 할 수는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긴장감을 주던 영화는 갑자기 루시가 저택의 사람들과 교감을 하면서, 급속도로 느슨해진다. 그들을 통해 저택의 과거와 비밀을 알게 된 그녀. 그 부분이 다소 환상적이었지만, 호흡은 앞과 달리 아주 느리게 진행이 되었다. 숨을 돌리라는 배려인가? 그러다가 인형의 정체를 아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저게 과연 사랑일까 아니면 집착일까?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예상이 되면서, 안쓰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리고 약간은 모호한 결말. 주인공의 오드 아이를 기억한다면, 어째서 이런 마무리냐고 의아해할 수 있다. 사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그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자유를 원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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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한판 붙자! 로마인 대 공룡 도전! 나도 작가 3
니칼라스 캐틀로우.팀 웨슨 지음, 신정미 옮김 / 책읽는곰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부제 - 로마인 대 공룡

작가 - 니칼라스 캐틀로우, 팀 웨슨

그림 - 니칼라스 캐틀로우, 팀 웨슨

 

 

  ‘도전! 나도 작가’ 시리즈 중의 세 번째 권이라고 한다. 표지 하단에 ‘니칼라스와 팀과 __________가 쓰고 그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책’이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면, 등장인물들과 등장 공룡들의 소개가 이어진다. 그리고 책을 읽고 그리기 전에 준비할 재료가  그림 그릴 때 간단하게 무늬 넣는 방법 소개가 바로 뒤에 나온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화성에 로마인들과 공룡들이 사이좋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같이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 소행성이 화성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바로 그들이 사는 유리 돔 로마사우리아를 향해 곧장! 다른 데 눈 돌리지 않고 일직선으로! 로마인들과 공룡들은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해야하는지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다. 물론 그 와중에 상대방이 내놓은 의견에 비웃기도 하고 반발하고 싸우기도 한다.

 

  결말은 뭐, 어린이 동화라는 걸 감안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단순히 글자만 읽는 것이 아니다. 크레파스나 연필 내지는 사인펜 등등을 가지고 이야기를 읽으면서, 중간에 빈칸으로 남겨진 그림을 완성하면 된다.

 

 

  맨 뒤에 ‘그림창고’가 있으니 그걸 보고 따라 그릴 수도 있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릴 수도 있다. 조카애는 이 책을 보여주니 신나게 읽었다. 그런데 그림을 그려보면 어떻겠냐는 내 제의에 이렇게 대답했다.

 

  ‘고모, 상상력은 머릿속에서만 그리는 거야.’

 

  뭐라고? 이 녀석이! 이제 열 살이라고 대답도 아주 번지르르하게 잘한다. 기특하긴 하지만, 가끔은 쥐어박고 싶을 때가 더 많다. 뭐, 그 녀석의 그림 실력을 잘 아니 굳이 강요하지는 않았다. 이해한다. 머릿속에서는 미켈란젤로 급인데, 손으로 그리면 하아…….

 

  그 마음을 잘 알기에 그냥 책꽂이에 꽂아두고, 심심하거나 번득이는 뭔가가 있으면 그려보라고 했다. 속으로는 ‘당장 그려! 서평 올릴 때 사진도 첨부하고 싶단 말이야!’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말이다.

 

  그림을 그리는 단순한 책이라고 생각하면, 저학년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중학생이 되어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 정도 되면, 세밀화를 그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저학년들처럼 단순하게 그리는 게 아니라, 뭔가 엄청난 작품이 하나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른 시리즈도 한 번 봐야겠다. 이 책은 공룡 그림이라 그리기 어려웠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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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고 재미난 과학 학교 : 미생물편 신나고 재미난 과학 학교
히어르뜨 부까르트.마르크 판 란스트 지음, 정신재 옮김, 안 더 보더 그림 / 주니어중앙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작가 - 히어르뜨 부까르트, 마르크 판 란스트

  그림 - 세바스찬 도닝크

 

 

  조카에게 이 책을 보여줬을 때,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글이 너무 많다!’ 글자가 작고 빽빽하게 차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글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싫으면 고모 친구한테 줄게. 거기 너보다 두 살 어린 동생 있잖아.’ 라고 했더니, 금방 말투가 바뀌었다.

 

  “고모. 다시 생각해보니까, 내가 모르던 미생물이라는 것에 대해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공부하는 거니까 천천히 볼게요.”

 

  아, 남 주긴 싫고 자기가 갖기엔 아까운 그 심보 같으니라고!

 

  그런데 책이 그럭저럭 재미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어휘도 어렵지 않고 매 장마다 그림이 하나씩 들어있어서인지 읽기 편한 모양이다.

 

  이 책은 다섯 개의 장에 각각 대여섯 개의 소제목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첫 장이 ‘미생물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요.’인데, 그 안에 ‘미생물이 뭔가요?’, 생물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그리고 ‘미생물은 언제부터 존재했나요?’ 등등의 소제목이 들어있다. 그리고 각 소제목별로 딱 한 장의 분량으로 답변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아무데나 마음에 드는 페이지를 펼쳐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 며칠 사이 조카가 은근슬쩍 물어온다.

 

  “고모, 북극에 미생물이 살게 안 살게?”

 

  맞추면 그냥 지나가지만, 틀리면 ‘헐, 고모 나이가 몇인데 그것도 몰라?’라는 공격이 들어온다. 발칙한 녀석 같으니라고. 지금 대충 물어보는 걸로 짐작하기로는, 삼분의 일 정도 읽은 모양이다. 62쪽밖에 안 되는, 별로 두껍지도 않은 책을 참으로 오랫동안 읽는다. 하지만 내 기준에 맞춰서는 안 되겠지. 그 아이도 나름의 사정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일반적인 미생물에 대한 설명과 감기와 그 예방법 그리고 요 몇 년 사이에 유명해진 조류 독감이나 에이즈 바이러스, 에볼라 바이러스 같은 것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들이다.

 

  그림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들도 무척이나 귀엽게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읽으면서 ‘이런, 별로 무섭지가 않잖아! 이러면 안 되는데! 페스트조차 좋은 놈같이 보여!’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중간에 큰 제목 하나가 끝날 때마다 상식 테스트라는 것이 있다. 앞에서 읽은 내용을 확인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인 ‘미생물학자가 되어 볼까요?’부분에는 집에서 미생물에 관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안내서가 있다. 젤라틴에 박테리아를 배양한다든지 요구르트를 만든다든지 감자에 박테리아를 키워보는 것들이다. 제발 이건 해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감자 실험은 결사반대할 것이다.

 

  그리고 제일 뒤에는 미생물 갤러리라고 해서, 실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의 확대 사진과 레벤후크라는 과학자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나온다.

 

 

  내용도 이 정도면 충실하고, 그림도 귀엽고. 무엇보다 각 소제목의 분량이 짧아서 하나를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금방 다 읽을 것이고, 내 조카처럼 별로 가까이 하지 않는 아이라도 거의 매일 조금씩 질리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꽤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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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밴던 어밴던 시리즈
멕 캐봇 지음, 이주혜 옮김 / 에르디아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원제 - Abandon

  작가 - 멕 캐봇

 

 

 

 

  그리스 로마 신화 중에 제일 안타까운 얘기 중의 하나를 꼽자면, 아마도 페르세포네 이야기일 것이다.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로 지상에서 잘 나가던 소녀가 갑자기 납치당해 음울하고 어둡고 음침한 곳에서 살도록 강요받는다. 납치범이 그녀의 삼촌 중의 하나라는 건 제쳐두자. 그리스 로마 신화의 윤리 기준을 현대의 잣대로 생각하는 건 조금 말이 안 되니까. 하여간 어머니의 노력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올 기회가 있었건만, 그녀는 단지 석류 몇 알 먹은 이유로 일 년 중의 몇 달을 그곳에서 지내야 했다.

 

 

  비록 죽은 자들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받지만, 그녀는 선천적으로 태양이 빛나는 지상의 아이였다. 빛도 들지 않는 지하 세계에서 사는 건 어쩌면 그녀에겐 고역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이후 그곳에서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죽은 자의 왕이라 불리는, 납치범인 그가 그녀를 계속 아껴주었는지의 여부도 알지 못한다. 그 집안 남자들의 특징이 바람피우기라서 추측만 가능하다. 단지 그녀와 그녀 어머니 데메테르의 슬픔만 전해질 뿐이다.

 

 

  이 책은 그런 페르세포네와 하데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두고 있다.

 

 

  피어스는 일곱 살 되던 해에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죽은 새를 살려주는 기이한 능력을 가진 그.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녀는 수영장에 빠져 죽는다. 그런데 그녀가 눈을 뜬 곳은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 곳. 그곳에서 피어스는 어린 시절의 그와 재회한다. 같이 있자는 그에게서 도망친 그녀. 다행히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이후 그녀 주위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그가 준 목걸이의 색이 변하면 안 좋은 일이 생기고, 그녀가 위험할 때마다 그가 나타나 다소 과격한 방법으로 구해준다. 덕분에 그녀는 다시 살아난 이후, 말썽쟁이라 불리며 학교에서 쫓겨날 지경에 이른다.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의 고향인 우에소스 섬에 와서야, 존이라 불리는 그가 어떤 존재이고 그의 목걸이를 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버린 피어스. 게다가 그를 노리는 무리들이 그녀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본격적으로 정체를 드러내며, 그녀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위에 대략의 내용을 시간 순으로 적었지만, 책은 역순으로 진행한다. 그러니까 피어스가 우에소스 섬으로 오면서부터이다. 그 전의 일은 모두 그녀의 회상 속에서 이야기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도대체 얘가 왜 이런 행동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지 종잡을 수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사건의 이야기가 다 끝나고서야,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보면, 뭐랄까 약간 추리적인 면이 약하다는 인상이 들었다. 적절하게 힌트를 주면서 추측하도록 하는 게 추리 소설의 묘미인데, 이 책은 간간히 폭탄으로 던져줬다. 하긴, 이건 로맨스 판타지이지 미스터리 물이 아니다. 그러니 그런 점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후반부의 존을 공격하고자 피어스를 노리는 무리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에서는 ‘오~’하고 놀라긴 했다. 설마 그 사람이 그 일당 중의 한 명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뭔가 조작이나 세뇌 같은 비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같은 편일 거라 생각한 내가 단순하고 어리석었다. 이런 바보! 수행이 부족하다!

 

 

  책은 그들의 공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에서 1권을 마무리한다. 거기에 페르세포네의 목걸이에 얽힌 이야기와 섬에서 벌어지는 ‘관의 밤’ 행사와의 관련, 사촌 알렉스와 세스 일당의 관계 등등의 사건이 슬쩍 입맛만 보여주면서 끝난다. 그래서 다음 권을 기대하게 한다. 과연 피어스와 존은 공격을 잘 방어할 수 있을 것인가? 피어스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바라는 것은, 다정하지만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피어스가 너무 존에게 의지하는 내용으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다. 로맨스 소설을 보면,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민폐만 끼치고 지나치게 의존적인 면을 드러내는 것이 간혹 있다. 하지만 다 용서된다. 주인공이고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받고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앞으로 이 둘이 싸울 상대가 인간이 아니기에, 존의 활약이 부각될 것이다. 그 때 피어스가 민폐 캐릭터로 남을 지, 당차고 자기주장 뚜렷한 캐릭터가 될지 궁금하다. 내심 전자보다는 후자이길 빌어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삽화였다. 아무래도 십대 소녀들이나 이십대 초반을 대상으로 한 책이라, 그림이 그런 스타일인 것이라 추측한다. 하지만 내 취향은 전혀 아니다. 중학생 소녀가 그림을 보더니 ‘우와-예쁘다.’하고 탄성을 질렀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나보다. 표지는 분위기가 좋았는데, 안의 그림은 좀 아쉽다. 뭐, 내 취향이 아닌 것이지 다른 사람은 좋아할테니까 큰 문제는 아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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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클리브 지음, 하현길 옮김 / 검은숲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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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Collecting Cooper

  작가 - 폴 클리브

 

 

  앞표지를 보면, 깔끔하게 정리된 책장이 있다. 그런데 거기에 놓인 유리병들이 심상치 않다. 사람으로 추정되는 존재가 들어 있기도 하고, 잘린 손가락이 보이기도 한다. 뒤표지 역시 평범하지 않다. 떡하니 맨 위에 쓰여 있는 문구. ‘감금된 범죄학 교수 VS 연쇄살인범 수집자 VS 범죄자를 죽여 버린 전직 경찰’

 

  그렇다, 이 책은 범죄 소설이고 주요 등장인물이 셋이나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세 번 놀랐다. 첫 번째는 주인공 급이 세 명이나 된다는 점에서였다.

 

  범죄학 교수인 쿠퍼, 그를 납치 감금한 에이드리언 그리고 4개월 만에 출소한 전직 경찰 테이트. 극의 화자가 많으면 읽으면서 헷갈릴 수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 책은 테이트는 ‘나’라는 화자로 등장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그’ 내지는 ‘그녀’라고 나온다. 잘못하면 시점에 화자가 헷갈리면서 내용 파악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630쪽이나 되는 분량에 서술자가 왔다 갔다 하면 읽기 힘들 텐데…….’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가 ‘헐!’하고 놀라고 말았다. 두 번째로 놀란 점인데, 주인공 세 명이 번갈아 나와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데 전혀 느슨하지 않고 헷갈리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어쩌면 각자 처한 상황을 긴박하게 표현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자신의 은밀한 비밀을 지키려는 쿠퍼와 그를 자신의 살인 파트너로 만들고 싶은 에이드리언 그리고 사라진 소녀를 찾아야 하는 테이트.

 

  각자 생각하는 바와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상황은 점점 꼬여가고 복잡해진다. 거기에 중간에 다른 인물들까지 나오면서, 분위기를 점점 고조시킨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지럽다거나 뭔가 난잡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 가끔 글을 읽다가 느끼는 ‘이런 부분은 불필요한 것 같은데…….’라는 생각도 별로 안 들었다.

 

  세 번째로 놀란 점은 그 모든 것들이 교묘하게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글이 느슨해지지 않고, 어지럽지도 않은 것이다.

 

  얼핏 보기에 별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모든 사실과 인물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되면서 하나의 커다란 문양을 그려나가는 과정에서는 ‘으아~’하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사라진 소녀 엠마, 여성 연쇄 살인마 멜리사X, 그로브의 무법자 ‘쌍둥이’ 등등 나오는 인물이 많았다. 그리고 그만큼 동시에 일어나고 밝혀지는 사건사고들도 적잖았다. 특히 다른 사람들은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어갔는데, 멜리사X와의 연결 고리가 밝혀지는 부분에서는 ‘헐……. 대박’하고 중얼거렸다. 진짜 그 부분은 충격이었다. 이게 이렇게 연결될 수 있구나, 이놈이 나쁜 놈이네. 진짜 못된 놈이다.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치밀하고 꼼꼼한 구성이 이 책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밀가루, 호박, 양파, 후추, 소금, 마늘, 파, 달걀 등등의 다른 재료가 섞여서 수제비라는 멋진 요리를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할까?

 

  그리고 또 하나 꼽자면, 담담하게 모든 것을 서술하는 걸 고르겠다.

 

  직접 눈으로 보면 끔찍해서 눈을 가리고 비명을 지를 상황이지만, 글은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다못해 인물들의 격앙된 감정이나 흥분 내지는 놀라움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늘 있는 일인 것처럼 적어놓는다.

 

  쿠퍼가 범죄 연구가이기 때문에, 그와 에이드리언의 대화에서는 어떤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영향을 받으며 자라면 살인자가 되는지 간간히 나온다. 뭐, 이건 범죄 사례집을 보면 다 나오는 얘기이긴 하다. 물론 모든 사례가 다 100% 이론과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가정이 아이들의 인격 형성에 제일 큰 영향을 주는 건 사실일 것이다.

 

  이 책의 에이드리언 같은 경우에는, 비뚤어지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의 환경이었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왕따를 당하고, 그것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서 애완동물을 죽이고 시설에 수용되어 폭행을 당하고……. 그런데 그런 상황도 그냥 옆집에 놀러갔다 오는 것 같은 분위기로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 범죄자와 처절하게 싸우는 격투 장면도 비슷하게 차분했다. 특히 고양이가 목매달려 지붕에 매달리거나, 죽은 여인의 시체가 걸려있는 건 분명히 놀랄 일이다.

 

  하지만 책에서는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차분하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그게 더 무서웠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간접 증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물기는 하지만, 일상적으로 범죄가 일어난다는 뜻이리라.

 

  하긴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인 크라이스트처치는 연쇄 살인마가 여러 명 활개 치는 곳이니까. 그 뿐인가, 단순 강도도 있고 도둑도 있고……. 내가 몰라서 그렇지, 서울도 저곳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다만 규모가 좀 작을 뿐.

 

  그래서 크라이스트처치는 오늘도 어제와 별로 다르지 않다. 오늘도 카페에는 크로스워드 퍼즐 풀기에 여념이 없는 노인이 앉아 있고, 커피 맛은 어제와 똑같다. 주인이 원두를 바꾸지 않은 이상, 내일도 아마 맛은 똑같을 것이다. 그리고 도시 어느 곳에서는 사람이 죽어가고, 경찰은 범인을 잡기 위해 분주히 달릴 것이다. 내가 당하지만 않으면, 방화도 살인도 단순 구경거리에 불과할 것이고.

 

  그게 크라이스트처치, 아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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