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보다 재미있는 세계 100대 명화 재미있는 100대 시리즈
박현철 지음 / 삼성출판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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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박현철



  우연히도 조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미술에 관한 책을 선물했다. 큰조카도 그랬고 둘째 조카도 그랬고 이번에 막내 조카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은 막내 조카를 위해 산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명화 자체에 저작권이 걸려 있을 것 같아서 패스했다. 책을 펼치면 왼쪽에는 명화가, 오른쪽에는 그림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저자가 붙인 한 줄 감상이 제목처럼 적혀 있다. 설명도 화가나 작품에 대한 역사적인 의의나 미술 사조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림에 얽힌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어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부분에서는 ‘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 아래에, 최후의 심판이 무엇인지 그림에 누가 그려져 있는지 얘기해주고 있다. 밀레이의 ‘오필리아’에서는 ‘햄릿의 연인’이라는 제목과 함께 왜 그녀가 물에 빠져 죽어야 했는지 간략하게 말해준다. 어떤 제목은 참으로 기발하면서 딱 맞아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건 별로인 것도 있다.


  책장을 넘기면서 막내 조카는 ‘이 그림은 학교 책에서 봤어.’라든지 ‘예쁘다’, ‘무섭다’ 같은 감상을 말해주었다. 그런데 글은 별로 읽지 않고, 그림만 보고 넘기는 수준이었다.


  하긴 한 페이지 가득하니 빽빽하게 적힌 글이 아이들에게는 약간 부담스러울 수 있어 보였다. 어른이고 책을 좋아하는 내가 봐도 ‘어린 아이나 책을 즐기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많지 않을까’하고 걱정스러울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조카는 여전히 그림만 휘리릭 보고 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른 책이나 어디 갔을 때 ‘이 그림 고모가 준 책에서 본 거 같아.’라고 기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만 더 신경 써서 화가 이름이라든지 제목, 좀 더 바란다면 관련 이야기까지 기억해줬으면 한다. 그러다가 신화나 역사를 좋아하게 되면 바랄 것이 없고. 이건 고모의 너무 큰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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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
린 램지 감독, 틸다 스윈튼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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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We Need to Talk About Kevin

  감독 - 린 램지

  출연 - 틸다 스윈튼, 에즈라 밀러, 존 C. 라일리, 시옵한 폴론




  보는 내내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자리가 불편한 것도, 뭘 잘못 먹은 것도, 몸이 안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마음 한구석이 쿡쿡 찔리는 것 같고, 얹힌 기분이었다.


  케빈의 거친 생각과 엄마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나.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때문이 아니다. 케빈과 엄마의 생활이 마치 살얼음판을 조심스레 걷고 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그런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너무도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의식하는 엄마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왜 그녀가 그런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봐야하는지, 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지 하나씩 설명해준다. 처음에 볼 때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느라 좀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곧 익숙해진다.


  꽤나 잘 나가는 여행가였다가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덜컥 임신을 한 그녀. 그렇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그녀가 원했던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모든 것에 서툴렀다. 아이를 돌보는 것도, 기르는 것도, 아이와 대화를 하는 것도, 아이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것도 다 그녀는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 나름대로 뭔가 하지만, 지켜보는 내 눈에는 미흡하기만 했다.


  어떻게 아기 우는 소리가 듣기 싫다고, 공사 현장에 유모차를 끌고 갈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공사 소리에 아들의 울음소리가 안 들리자 만족해하는 그녀를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빠는 무조건적으로 아들을 사랑한다. 집을 자주 비우는 직업이라, 그 미안한 마음에 아들에게 물질적으로 보상하는 것이 제일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쁜 종자’의 꼬마 아가씨도 영악했지만, 이 영화의 케빈은 잔인할 정도로 영악했다. 엄마 앞에서는 온갖 성질을 다 부리지만, 아빠 앞에서는 너무도 착한 아들 행세를 한다. 이건 사랑과 신뢰를 주고받는 엄마와 아들이 아니라,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그런 관계였다.


  영화는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상할 정도의 힌트는 준다. 어린 여동생이 어떻게 다쳤는지, 그 현장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케빈이 평소에 활을 잘 갖고 놀고, 제대로 관리를 안 했다고 혼나는 걸 봐서는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또한 케빈이 학교에서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는다. 추측을 할 뿐이다. 그런데 그게 더 끔찍하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범위 내에서 상상을 하기 때문이다.


  케빈이 그런 짓을 저지르게 된 것이 엄마의 책임이라고 몰아붙이고 싶지는 않다. 만약에 그녀가 아들이 아기일 때부터 조금만 더 따뜻하게 대했다면, 모자 관계가 그 지경이 되었을 까라고 추측하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그녀는 현재 아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속죄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웃는 것도 허용이 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케빈이 주인공이 아니다. 그의 엄마가 주인공이다. 그래서 왜 그가 그런 짓을 저지르기로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진짜 태어나면서부터 사이코패스라서 그럴 수도 있고, 세상에 불만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거나 애인을 빼앗겼다거나 등등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걸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엄마가 아들을 그렇게 키웠다고 비난하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영화를 처음 보고 나서는, 나도 그랬으니까. 저따위로 키우니까 애가 그렇게 크지. 어린 딸에게 사랑과 따뜻함이 담긴 눈빛을 주지만, 아들의 시선은 피하는 엄마. 애가 비뚤어지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자란 애들이 다 범죄자가 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 케빈과 비슷한 애들이 자라고 있을 지도 모른다.


  모자가 진지하고 애정이 넘치는 포옹을 한 건 영화 마지막에서였다. 그제야 두 사람은 서로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제대로 바라보았다. 모든 일이 다 끝난 뒤에야 둘은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엄마는 아들의 방에 들어가 다른 엄마들처럼 청소를 해주었고, 아들은 엄마의 질문에 냉소적이지 않은 진심이 담긴 대답을 했다.


  너무나도 오래 걸린 화해, 아니 이해의 시간이었다. 두 사람의 격한 포옹이 훈훈하지만, 그 와중에 희생자가 된 많은 사람들이 안쓰러울 뿐이다.


 엄마역을 맡은 배우와 케빈 역을 맡은 배우 두 사람 다 진짜로 배역에 잘 어울렸다. 케빈 역을 맡은 배우는 패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고, 엄마 역을 맡은 배우는 보는 내가 안쓰러울 정도로 불안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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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 지음, 이영진 옮김 / 진명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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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Who moved my cheese?

  저자 - 스펜서 존슨

 

 

  예전에 아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 당시 이 책을 안 읽은 사람은 시류에 둔감하고 약간은 무식한 자로 매도시켰던 작품이다. 내 안에 있는 반항아 기질 때문인지 일부러 안 읽으려고 버티다가, 왜인지 모르지만 읽게 되었던 책이다. 그 당시 첫 느낌은 ‘바보 아냐? 치즈를 누가 옮겨 옮기긴. 지가 눈치 없이 돼지같이 다 먹었구먼.’이었다. 이후 책의 행방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이 지내왔다.

 

  그러다가 최근에 우연히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그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와 닿는 것이 있었고, 예전에 내가 이 책에 나온 쥐나 인간처럼 행동했었다는 기억이 난 것이다. 내가 이제 나이를 들었다는 것일까 아니면 반항아 기질이 많이 줄었다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니 이런저런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창고에 가득히 쌓여있는 치즈. 먹고 또 먹어도 줄지 않을 것 같이 많은 치즈. 하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쥐 스니프와 스커리는 많은 치즈가 있어도 여전히 신중하고 주의 깊게 치즈를 먹었다. 뭔가 달라진 것은 없는지, 변화가 생기지 않았는지 확인해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치즈가 다 떨어졌다는 상황에 쉽게 적응하고 대안을 마련해,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 헴과 허는 그러지 못했다. 안락한 생활에 만족했기에 느슨해지고 안주했었다. 그렇기에 치즈가 없는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다.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없다는 상황에 분노하고 좌절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허는 새로운 치즈를 찾아 나섰지만, 헴은 그냥 그 자리에서 좌절하고 머물렀다.

 

  쥐 같은 유형은 눈치 빠르고 변화에 잘 적응한다. 하지만 뭐랄까, 인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매번 그러면 곤란하지만, 가끔은 풀어지기도 하고 마음 편히 지내도 좋을 텐데 말이다.

 

  인간 허는 적당히 인생을 즐기고 좌절도 겪지만, 바뀐 상황을 인정하고 바꿀 의지와 실천력이 있었다. 그래서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날 수 있었다. 결국에는 성공이라는 결과를 맛보기에 고생하는 보람이 있다.

 

  반면에 또 다른 인간 헴은 오직 과거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에게 발전이란 전혀 관계없는 단어였다. 오직 책에서만 볼 수 있는 말이었다. 모든 잘못은 남 탓, 자기는 희생양.

 

  난 어떤 유형일까? 적어도 헴 같은 유형이 되지 않도록 반성하고 공부하고 채찍질해야겠다. 적어도 그처럼 ‘난 너무 늙었어.’라고 변명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 내가 생각해도 난 게으른 유전자가 숨어있는 것 같으니까. 부모님은 안 그러신데, 왜 나한테만 그런 유전자가 들어있는 걸까? 설마 내가 ‘멘델의 유전법칙’에서 나오는 것처럼 두 분의 열성인자만 물려받은 걸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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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이혁수

  출연 - 석인수, 김윤희, 홍명진, 이계인



  처음 봤을 때, 너무 무서워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영화이다. 친구들과 여름에 놀러가서 봤는데, ‘무서워! 놀라 죽을 거 같아!’ 라는 기억이 남는 영화이다. 중간에 귀신이 나올 때 친구 하나가 비명을 지르면서 방을 뛰쳐나가고, 그 소리에 어른들께서 무슨 일이냐고 놀라서 달려오셨다. 그런데 커서 다시 보니, 음……. 무서운 부분은 여전히 무서웠다. 하지만 내가 나이가 들었고 호러 영화를 많이 보아서 그런지, 무서운 장면보다는 깔깔대고 웃은 장면이 더 많았다. 


  어느 양반집에 기괴한 일이 생긴다. 첫날밤만 치르면 아들이 죽어 나가는 것. 이미 위의 두 아들은 죽었고, 남은 것은 막내 하나. 게다가 동네에 소문이 흉흉하게 돌아서, 사돈을 맺으려는 집안도 없어 조만간 가문의 대가 끊길 지경이다. 그러다가 조금 먼 곳에 있는 동네의 가난한 집 딸을 막내며느리로 데리고 오는데 성공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결혼 첫날 밤 막내아들은 귀신에게 홀려 죽고 만다. 그러나 하늘의 도움인지 용케 막내며느리가 임신을 하게 된다. 그 짧은 첫날밤, 단 한 번의 관계로! 파워 정력왕인 막내아들이다!


  사실 이 집안에 저주를 내리는 존재는 시아버지가 젊었을 적에 데리고 놀다가 죽여 버린 여자였다. 임신을 했다고 하자, 도망가자고 해놓고는 죽여 버린 것. 한을 품은 그녀는 막내며느리의 뱃속 아기마저 죽여서 집안의 대를 확실히 끊어놓으려고 노력하는데…….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에서 제일 생각나는 것은, 귀신인지 흡혈귀인지 그것도 아니면 여우가 둔갑한 것인지 정체성이 모호하기 그지없는 피 빨아 먹는 귀신의 정체이다. 원한을 품은 이 여자의 귀신이 시어머니로 변신해서 들어오는데, 특이하게도 밤만 되면 가축의 피를 빤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을 목격한 하녀도 죽여서 피를 빨고……. 인간이건 동물이건 가리지 않는다.


  눈과 입에서 피를 질질 흘리고 눈을 흰자만 보이게 훼까닥 뒤집어서 밤중에 노려보는 그 모습은……. 게다가 바로 밑에서 랜턴을 비쳐주는 센스까지! 그 장면이 제일 무서웠다. 아, 포스터 검색하다가 그 장면 사진도 덩달아 보이는데, 환한 대낮에 봐도 무섭다. 


  그리고 지렁이 국수! 아, 이건 웩이다! 싫어! 난 다리 많은 것도 싫고 없는 것도 싫다고! 진짜 지렁이를 썼다는 말도 있는데, 그 얘기를 듣자 영화배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맞은 거 같다. 자신과 뱃속의 아이를 죽였다는 이유로, 자신의 순정을 차버렸다는 이유로, 자신을 그냥 노리개로 여겼냐는 그런 증오와 한으로 한 집안을 거의 박살을 내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 집안의 아들들은 왜 한을 안품은 걸까? 물론 그렇게 하면 영화가 복잡해진다고 스스로 납득하지만, 그래도 역시 아쉬웠다. 게다가 억울하게 죽어버린 시어머니는 왜 한을 안 가졌을까? 멀쩡하게 잘 키워놓은 아들을 셋이나 잃고, 자기마저 죽었으니 억울했을 텐데 말이다. 양반은 죽어도 양반이라는 걸까? 그들은 너무도 우아하고 고상해서 한 따위는 품지 않고 그냥 구천을 떠돌 뿐일까?


  게다가 모든 일의 원인은 시아버지에게 있는데, 이 아저씨 그냥 뒷전으로 물러나서 방관만 하고 있다. 나름대로 뭔가 한다고  큰소리는 치지만, 힘든 일은 다 하인에게 시킨다. 심지어 귀신과 맞서 싸우는 것 역시 막내며느리의 몫이었다. 원흉은 그 인간인데 말이다.


  막바지에 다다르면, 두 여자가 맞대결을 펼친다. 한 명은 죽어버린 자신의 아기와 자신을 위해, 다른 한 명은 이제 태어날 자신의 아기와 자신을 위해……. 하지만 자신을 위한다기보다는, 자식을 위해서 싸운다는 것이 맞는 말 같다. 한 쪽은 한을 위해, 다른 쪽은 미래를 위해.


  광선검 또는 레이저 빔이라는 놀라운 비밀 병기를 가지고 싸우는 두 여자. 귀신 시어머니는 그것을 눈에 달았고, 막내며느리는 가슴에 장착했다. 일본 애니 ‘그레이트 마징가’에 나온 여자 로봇이 생각났다. 가슴 미사일을 능가하는 가슴 레이저빔! 멋지다! 잘 나가다가 막판에 영화가 황당해지긴 한다. 막내 조카가 즐겨 보던 특촬물이나 전대물도 아니고.


  그 부분만 빼면, 아주 무서운 영화였다.


  PS. 이계인씨가 머슴으로 나온다. 다소 모자라지만, 착하고, 세상을 달관한 철학가 같은 대사를 중얼거린다. 그리고 희극적이지만 슬픔을 숨기고 있으며, 실마리를 주고 때로는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처음에는 귀신을 속이고자 막내며느리를 머슴 이계인씨의 색싯감으로 데려온다. 그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 말이다. 그러나 주인집 막내아들이 귀신 따위는 유명 도사님이 주신 검으로 죽이겠다고 큰소리치자, 결국 원래 계획대로 혼인을 치르기로 한다. 장가간다고 좋아했지만 졸지에 결혼이 취소되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는 이계인씨. 그 때 대사가 이러했다. 


  "도련님은 아무도 시집오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이번에 하셔야쥬. 지는 나가면 여자들이 줄을 섰다니까요."


  그러나 큰소리치던 도련님은 귀신 잡는다는 칼 한 번 못 휘두르고 죽어버린다. 그리고 이계인씨는 홀로 남은 막내며느리를 은근슬쩍 도와주는데…….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박진영씨의 노래가 떠올랐다.


  "니가 사는 그 집 그 집이 내 집이었어야 해……."


  이런 마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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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 (1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정범식 감독, 김보경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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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정범식, 정식

  출연 - 김보경, 김태우, 진구, 이동규



  아, 어쩌면 이렇게 슬프고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일까!


 기담을 다 본 뒤에 느낀 감상이었다. 호러라고 해서 봤건만, 이 영화 알고 보니 러브 스토리였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랑 때문이었다. 


  물론 무섭고 놀라운 장면도 있었고, 가슴이 약간은 서늘해지는 내용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분명히 호러였다. 그러나 영상은 아름다웠고, 배경에 깔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 서술과 묘사는 무심코 이 영화가 호러 장르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3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영화는, 각각의 이야기에 다른 매력을 부여했다. 그 개성을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각각의 매력을 뽑아보자면, 첫 에피소드는 ‘영상’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딱 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호러 영화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는 잔잔하고 화면은 평온했다. 그 중에서 특히 검색을 해보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방 안에서 두 남녀가 마주보고 앉아 있는 장면은 그야말로 아름답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두 번째 ‘호러’였다. 3개의 이야기 중에서 제일 호러적인 면이 강했다. 교통사고에서 혼자 살아남은 어린 소녀. 그녀 앞에 나타나는 엄마와 새아빠의 일그러진 모습들. 특히 엄마 귀신은 진짜 무서웠다. 게다가 어린 소녀를 연기한 아역 배우의 연기도 무척이나 실감났다. 


  마지막은 ‘반전’, 그러니까 스토리였다. 반전에 반전을 주던 마지막 부분. 으음, 김태우씨가 의외로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다. 아, 그렇구나. 그런 거였구나. 마지막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쩐지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눈이 시리도록 밝게 빛나는 빛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차갑다는 기분이 들었던 에피소드였다.


  그동안 하이틴 슬래셔나 묻지마 살인물 내지는 좀비물만 보았는데,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 영화였다. 그렇지만 역시 뭔가 부족하다는 인상이었다. 그건 분명 지금까지 보아왔던 내 스타일의 영화가 아니었던 낯섦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어쩌면 너무 차분하고 평온한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두 번째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이게 호러 영화인지 드라마인지 헷갈릴 정도로 잔잔했다. 물론 그러다가 소용돌이가 몰아치듯이 후다닥 이끌어가는 영화도 있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그냥 잔잔하면 잔잔한 대로, 평온하면 평온한 대로 그렇게 흘러갔다. 그래서 어딘지 싱겁다는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골라먹는 맛이 3개나 있으면 그 중에 하나는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니, 이 영화도 그런 의미로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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