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마리 베이비 (악마의 씨)
로만 폴란스키 감독, 미아 패로우 외 출연 / 필림21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원제 - Rosemary's Baby

  감독 - 로만 폴란스키

  출연 - 미아 패로우, 존 카사베츠, 루스 고든, 시드니 블랙메어

  원작 - 아이라 레빈의 ‘로즈마리의 아기 Rosemary's Baby’



  예전에는 ‘악마의 씨’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어서, 무척이나 헷갈리게 했던 영화이다. 오래 전에 ‘악마의 씨, Demon Seed’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어서, 두 개가 혼동되었다. 한글 제목은 둘 다 똑같이 ‘악마의 씨’였으니 말이다. 다만 전자는 악마 숭배와 연관이 있는 영화였고, 후자는 고도로 발달한 컴퓨터의 폭주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두 영화 다 ‘아이라 레빈’과 ‘딘 R 쿤츠’라는 탁월한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고, 아기를 낳는다는 공통점이 있기는 했다.


  로즈마리는 남편과 함께 맨해튼의 아파트에 입주한다. 그녀는 전업주부이고, 남편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이다. 그곳에 사는 다소 과잉 간섭을 하는 노부부를 비롯해 아파트 주민들과 친분을 쌓아가는 로즈마리. 그러다가 그녀가 세탁실에서 우연히 만났던 한 여성이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후 다른 사람이 맡았던 주요 배역이 남편에게 돌아오고, 남편은 노부부의 말이라면 거의 맹신하다시피 한다.


  이상한 괴물에게 강간을 당하는 악몽을 꾸고 며칠 후,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된다. 하지만 노부부와 남편의 강요로 그들이 소개한 산부인과에 가게 되고, 그녀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를 걱정하던 지인까지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데, 로즈마리는 그가 남긴 책에서 섬뜩한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노부부가 악마를 숭배하는 집단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아, 예전에는 그냥 지루하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다시 보니까 이건 뭐 그냥 후덜덜했다. 연출도 그렇고 배우의 연기도 그렇고 분위기까지. 몽땅 다 그냥 닥치고 찬양해야할 것 같았다.


  이건 어쩌면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결론을 알고 보니까 배우들의 대사나 행동이 무의미해보이지 않았다. 음, 이걸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데……. 하지만 이 영화는 나름 유명해서 상당수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써보겠다.


  로즈마리가 임신한 이후, 남편은 그녀를 예전처럼 잘 만지지 않는다. 뽀뽀를 할 때도 예전처럼 입에다 해주는 걸 본 기억이 없다. 그녀와 눈을 잘 마주치지도 않고. 일종의 죄책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출세를 위해 부인을 팔아버린 죄책감. 영화를 보면서 욕만 나왔다. 이런 나쁜 놈! 찢어죽일 놈!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패고 이십대 더 때려줄 놈! 하아, 몇 년 동안 할 욕이 두 시간을 약간 넘는 상영 시간에 다 나올 정도였다. 그 남자 욕은 밤이 새도 모자를 것 같으니, 여기서 그만하고 다른 부분으로 넘어가겠다.


  이 영화의 연출이 섬세하다는 걸 느낀 것은, 로즈마리가 아기 울음소리를 따라서 비밀통로로 이어진 방에 왔을 때이다. 거기서 남편은 은근슬쩍 그녀의 눈을 피해 자리를 이동한다. 당연하다. 아기가 죽었다고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으니까. 근데 그게 화면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구도에서도 그런 연기를 하고 있었다. 감독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 정성이 느껴졌다.


  게다가 로즈마리가 임신 후 점점 말라가는 과정 역시 잘 다루고 있다. 물론 머리와 화장빨인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괜찮아보였던 그녀의 얼굴이 점점 변해서 짙은 다크서클에 퀭하니 쑥 들어간 눈에다가 홀쭉한 볼이 되고, 그러면서 그녀의 예민함과 불안감이 증가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까지 불안해지는 기분이었다.


  거기에 다른 인물들이 내뱉는 대사나 행동 하나 놓칠 게 없었다. 어쩌면 이건 내가 너무 감명을 받아서 오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나 뻔히 아는 진행을 하면서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한다면, 그건 진짜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힌트를 한 치의 오차가 없이, 관객들이 감독의 의도에 맞게 생각하도록 배치를 했다면, 그건 칭찬을 넘어서 극찬을 해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간섭이 심한 주책바가지 노부부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힌트가 모이면서 그들의 집착이 공포로 다가오는 과정은 소름끼쳤다. 나중에는 그 노부인의 수다스런 입을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 아, 난 원래 경로사상이 투철한 사람이었는데, 동네 할머니할아버지들에게 인사 잘하고 다니는 그런 사람인데.


  그렇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무서운 것이다. 실체를 모르는 막연함에서 점점 구체화되는 공포가, 겉으로 보기엔 너무도 평범한데 실상은 너무도 다른 가족과 이웃이, 안전하다 믿었지만 배신과 음모의 장소가 되어버린 집이라는 공간이, 이 세상은 불신과 악이 지배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영화는 잔잔하지만 오싹하기만 하다.


  꼭 악마주의가 아니라고 해도 사이비 종교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존재하며, 가족이라도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이웃끼리 다툼이 살인으로 번지는 일도 종종 올라오고,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는 말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그때보다 지금이 더 각박하고 무서운 세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화, 과학을 들어 올리다 즐거운 과학 탐험 16
정창훈 지음, 민은정 그림 / 웅진주니어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 정창훈

  그림 - 민은정

 

 

  이건 내가 흥미가 있어서 고른 책이다. 조카는 조금 어려웠던 모양이다. 어린이용 과학책은 간혹 용어가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선은 그냥 읽어보라고 했다. 아직은 한자에 약하기에, 한자어로 된 용어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출몰성’, ‘주극성’ 이런 것들이다.

 

  이런 과학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면, 잘 모르는 아이들은 ‘이건 뭐지?’라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용어를 다 풀어쓸 수는 없을 테고……. 그래서 과학이 어려운 것 같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이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러 가지 일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어떤 것은 그럴듯하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것은 너무 억지스럽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를 들면 강의 신인 아켈로스가 헤라클레스와 싸울 때 모습을 뱀처럼 바꾸다가 황소로 변했다가 하는데, 그 와중에 뿔이 하나 부러진다. 이 책에서는 그것을 강의 모습이 변하는 것을 그리스 사람들이 신화적으로 얘기한 것이라 한다. 그러니까 강이 흐를 때 구불구불한 것이 아켈로스가 뱀으로 변한 것이고, 우각호가 생기는 것을 그의 뿔이 부러져 떨어져나간 것에 빗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페르세포네의 이야기와 계절의 변화, 나르키소스와 반사에 대해서 언급한다. 또한 독수리에게 끊임없이 쪼임을 당하면서도 재생하는 프로메테우스의 간에 대해 얘기하면서, 간의 재생성에 대해 말한다.

 

  제일 재미있던 것은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에 관한 부분이었다. 페르세우스가 방패에 메두사의 얼굴을 비춰봤다는 얘기에서, 방패를 잘 닦아 사물을 반사시키면 원래 모습보다 작에 나오니 메두사가 별로 안 무서웠을 거라고 저자는 추측한다. 아, 이런 놀라운 비밀이!

 

  책은 우선 신화를 얘기하고, 그 다음에 과학을 말한다. 중간에 삽화가 들어가고 신화에 얽힌 조각이나 미술 작품이 곁들여있다. 그림은 무난했고, 적절하게 들어있었다. 거기에 재미있는 개그 대사도 들어있고.

 

  나중에 조카가 나이가 들면, 그래봤자 5학년쯤 되었을 때 한 번 더 읽어보라고 해봐야겠다.

 

  아, 신화를 과학적으로 풀이해놓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얘기하고 있지는 않다. 가능한 것만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학 천재 아이북클럽 14
베시 더피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자넷 윌슨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 - The Math Wiz

  작가 - 베시 더피

  그림 - 자넷 윌슨

 

 

  자칭 수학만은 잘한다고 으스대는 조카를 위해 고른 책이다.

 

  어릴 때부터 수학을 무척 좋아하고 잘하는 마티. 그런 그에게 문제가 생겼다. 바로 이번에 전학 온 학교의 체육 수업이 무척이나 까다롭다는 것이다. 두 명의 대장을 뽑아 각자 팀을 나눠 수업하는 방식은 그에게는 너무도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그는 운동을 너무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꼴찌로 이름이 불리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꼴찌로 불린다는 건, 어느 팀에서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학을 잘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 그에게, 그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체육 수업을 빼먹을 계획을 짜는 마티.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수학 공식처럼 척척 풀리는 건 아니다.

 

  마티에게 공감이 가는 책이었다. 나도 학교 다닐 때 체육을 아주 못했기 때문이다. 마티처럼 배가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생리 현상을 핑계 삼아 체육 수업을 빼먹기도 했었다. 물론 마티처럼 수학을 기가 막히게 잘한 건 아니다.

 

  마티의 사고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모든 것을 공식화하고 표를 만들어 답을 구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남자 아이 + 수학을 잘한다 = 성적표의 ‘수’도장

  남자 아이 + 운동을 잘한다 = 친구들

  수학 천재 + 체육 시간 = 비참함

  수학 천재 + 체육 시간 + 친구 =????

 

  어쩌면 그래서 그에게 친구가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 사이의 일이 계획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법이 없으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 마티는 그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압박 붕대를 이용해 다리를 다친 척하려 했지만, 처음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 급기야는 교장 선생님에게 불려갈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에 전전긍긍해한다.

 

  하지만 그가 모든 것을 수학 공식처럼 바라보지 않을 때, 지금까지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때, 해결책이 보였다. 남을 바꿀 수 없다면 나를 바꿀 수도 있고, 이 길이 막혀있으면 다른 길로 돌아갈 수도 있는 법이다. 책에서는 그것을 ‘문제를 바꾼다.’고 표현했다.

 

  운동을 잘하는 아이들만이 친구가 많고 인기 있는 것이 아니다. 운동을 못해도 체육 시간을 즐길 수 있고, 친구를 만들 수 있다. 다른 친구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자기 안의 독선을 지우면, 남을 자기 기준에 맞추려 하지 말고 모든 아이들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좀 더 즐겁게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어린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 ‘어린 왕자’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었다고 하면 어떤 집에서 사는지가 더 궁금하다는 대목이다. 아이들은 그런 것에 별로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이 책에서도 그런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글의 후반부에 가서 마티는 나와 다른 남을 차별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수학 천재 + 체육 시간 + 친구 =????’ 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마티의 눈에 아이들이 한 무리가 아니라 저마다의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 어떤 아이들은 체육을 잘하고, 어떤 아이들은 음악과 미술을 잘했다. 또 어떤 아이들은 수학을 잘하고, 어떤 아이들은 글짓기를 잘했다.

  모두가 다 달랐다. 모두 마티처럼 어떤 건 썩 잘하지만 어떤 건 아주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오늘에야 마티는 자기가 수학을 잘한다는 것이 기뻤다. 수학을 하면 마티는 행복했다.

  그러니 체육을 못한들 무슨 상관인가? 누구나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 - p.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턴 (2disc) - 일반판
이규만 감독, 김명민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감독 - 이규만

  출연 - 김명민, 유준상, 김태우, 정유석



  한 시간이 넘어가니 몸이 비비 꼬였고, 2시간 가까이 되니 짜증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난 아직도 영화 ‘타이타닉’과 ‘반지의 제왕’ 그리고 ‘킹콩’의 3시간 남짓한 고문 시간, 아니 상영 시간을 잊을 수 없다. 얼마나 지루하고 짜증이 나던지, 킹콩이 여주인공과 공원에서 나름 종족을 초월한 로맨틱한 연애질을 하는 것을 보고 '빨리 죽어!'라고 중얼거렸고, 타이타닉은 '왜 빨리 안 가라앉지?' 라며 시계만 볼 정도였다.


  그런 나에게 이 영화의 상영 시간 역시 고문이었다. 보면서 '빨리 죽일 놈은 죽이고 끝내라.' 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이건 빨리 넘어가도 되는 부분이고, 여긴 설명이 부족하고 어쩌고저쩌고 중얼거리면서 보았다. 그래도 집에서 보았기에, 중간에 멈춰두고 딴 짓을 할 수 있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래, 이건 뭐 내 지랄 맞은 성격의 문제일 것이다. 모든 사건이 45분 안에 다 해결을 봐야하는 초스피디한 미드만 보았더니, 그런 것에 익숙해진 탓일 것이다.


  영화는 나쁘지도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그냥 유준상은 미친 놈 같았고, 김명민은 잘 울었고, 김태우는 매번 그런 분위기의 역만 맡는 것 같았고, 정유석은 존재감이 없었으며, 김유미는 예뻤다 정도?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범인이 누구라는 게 너무 일찍 밝혀졌다는 것이다. 아, 진짜 이건 너무했다. 세상에나 반도 지나기 전에 범인이 누구라는 것이 뻔히 보이다니. 어쩌면 그래서 지루하고 짜증이 났을지도 모른다.


  처음에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범인으로 몰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분위기로 몰아가면, 아마 저 사람이 범인이구만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진짜 그랬었다. 이런, 제길! 미스터리 스릴러의 기본은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그런 아슬아슬한 분위기이건만! 이 영화, 후반에 가면서는 눈에 띄게 그 힘을 잃었다.


  범인이 주절거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고, 눈앞에 둔 복수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아니 죽이려면 그냥 죽이지 왜 주절거리다가 반격을 당해? 바보 아냐?


  게다가 극 후반에 등장한 '봐, 불쌍하지? 그렇지? 그러니까 범인에게 동정심을 좀 줘봐!' 라는 감독의 의도가 분명히 보이는 편집은……. 동정심보다는 '그래서 어쩔? 그래봤자 미친놈은 미친놈이잖아?' 이라는 반문만 나올 뿐이었다. 차라리 중간에 범인이 과거의 기억 때문에 고통 받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여줬더라면 조금은 불쌍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사실 중간에 쫌 보여주긴 하는데, 고통 받는 모습이라기보다는 미친 짓하는 걸로만 보였었다. 


  극 중에서 최면 의사와 마취 의사는 처음부터 미묘한 관계로 나온다. 술김에 벌인 최면 놀이 때문이었다. 마취 의사가 벌칙으로 최면에 걸리고, 그 이후 둘 사이에는 뭔가 알 수 없는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그렇다고 BL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나중에 최면 의사가 말하길, 마취 의사가 문제의 소년일 수 있다고 넌지시 언급한다. 주인공은 그의 말을 믿고, 마취 의사가 범인이라 단정 짓고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내가 범인이라면 말이다. 나에게 최면을 걸었던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그가 뭔가 달라졌다. 내가 뭔가 이상한 것을 말했을까? 내 비밀을 털어놓았나? 이런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둘 사이가 껄끄러웠다고 영화에서는 분명히 밝혔다. 


  그러면 내가 살인을 하려고 하는데, 제일 먼저 죽여야 할 존재가 누굴까? 내가 복수할 상대? 아니다. 내 비밀을 알고 있는, 그러면서 믿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니까 마취 의사가 범인이라면, 최면 의사를 제일 먼저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반전은, 후우……. 이 부분만 어떻게 잘 했어도 훨씬 더 재미있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이 부분이 제일 아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녀 - 고전의 재창조
김기영 감독, 김진규 외 출연 / 덕슨미디어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감독 - 김기영

  출연 - 김진규, 주증녀, 이은심, 엄앵란, 안성기


  포스터를 보자마자 뭔가 스릴러 같다는 기운이 느껴졌다. 거기다 제목은 ‘하녀’! 오오, 설마 이것은 하녀와 주인님 그리고 주인마님의 삼각관계! 잠깐만 그러면 안성기씨는? 엄앵란씨는? 그러면 5각 관계? 설마 1960년대, 그것도 한국에서 그런 구도가? 순간 당황했다. 이런 앞서나가는 영화라니! 그렇지만 실망스럽게도 안성기씨는 통통한 볼을 가진 주인집의 귀여운 어린 아들로 나온다.


  공장에서 여직원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피아노 레슨이 직업인 선생님. 병약한 부인, 다리가 불편한 딸 그리고 개구쟁이 아들. 이 네 식구가 사는 집에 하녀가 하나 들어온다. 공장에서 추천을 받은 여자로, 몸이 아픈 부인을 대신해서 집안일을 하기 위해 고용한 것이다. 선생님은 무척이나 인기가 많은 남자이다. 공장의 여직원들에게서는 인기 만점으로, 엄앵란도 그를 흠모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그녀가 하녀로 추천한 사람이 바로 이은심.


  이미 자신에게 러브레터를 보낸 여직원을 퇴사하게 한 전적이 있는 남주인공. 어느 날 그 여직원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괴로워하다가, 하녀인 이은심과 그만 관계를 갖는다. 그것도 하필 비 오는 날에. 그리고 그 날 이후, 그녀는 그를 ‘여보’ 라고 부르며 부인 행세를 한다. 설상가상으로 남주인공의 아기를 가졌다는 충격적인 고백까지. 그 때부터 적대감과 살기를 품은 사람들의 묘한 동거가 시작되는데…….


  영화 내내 나오는 곳은 주인공의 집이다. 1층은 부인의 공간이고 2층은 하녀의 공간,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하는 것은 계단과 피아노 소리였다. 특히 계단은 의미심장한 곳이었다. 이 집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곳이 바로 계단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양립할 수 없는 두 세계를 보여주는 1층과 2층의 유일한 통로이다. 양립할 수 없었기에 사고가 생기는 것일까?


  보는 내내 부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식을 위해서라지만, 그녀의 행동은 비굴할 정도였다. ‘머리끄덩이라도 잡고 싸워야지, 이 아줌마야! 한복 곱게 차려입고 재봉질이나 하고 있을 때야? 교양 예의범절 따위는 내팽개치라고! 이런 상황에서 고고해봤자 무슨 소용이야!’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렇지만 뭐, 1960년대니까 지금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여자도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에 공감했다. 이혼하고 나면 애들과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니, 남편이 첩질을 하건 하녀가 주인마님 행세를 하건 꾹 참아야 하니 말이다. 


  남주인공도 뭐. 이런 스토리의 영화에서는 당연히 욕을 먹기 마련이다. 부인이 아파서 그동안 쌓인 것이 많았나? 그래서 젊은 여자가 옷 훌렁 벗고 달려드니까 아주 그냥……. 감당하지도 못할 일을 해놓고는, 일처리도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이 참으로 한심했다. 그러니까 사고치기 전에 생각을 다시 해봤어야지. 할 때는 좋았겠지. 욕만 나왔다.


  하녀는 그냥 무서웠다. 눈만 뜨고 있어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가 진정으로 그를 사랑했는지, 아니면 후처자리라도 꿰차서 팔자 고치려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하룻밤 꿈으로 끝내고 싶었는데, 남자 하는 꼬락서니가 괘씸해서 더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애들만 불쌍했다. 특히 어린 아들.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예전 영화를 보면 느끼는 것이지만 목소리 톤이 참으로 낯설다. 그래서 진지하게 몰입해서 봐야하는 그런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픽'하고 나올 때가 있어서 참으로 난감하다. 이 영화도 그랬다. 아직 내공이 모자란 듯하다.영화가 좀 길었다. 앞부분과 중간에 조금씩 압축해도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살포시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좀……. 이건 뭐지?하는 기분이 들었다.



  ps. 메이드라는 존재에 대해 이상한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으로 보는 그런 베이글녀에 앞치마한 메이드가 아니라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