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피조물
피터 잭슨 감독, 케이트 윈슬렛 외 출연 / 기타 (DVD)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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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Heavenly Creatures

  감독 - 피터 잭슨

  출연 - 케이트 윈슬렛, 멜라니 린스키, 제드 브로피, 클라이브 메리슨



  1952년 뉴질랜드에서 발생한 2명의 10대 여자 아이들의 충격적인 실화를 토대로한 작품. 15세에 살인범이 된 그녀들이 죄를 범하게 되는 심리적 변화를 그린, 소녀 시절의 복잡 미묘한 동성애적 이상 심리에 관한 작품이라는 소개글과 케이트 윈슬렛이라는 여주인공의 이름과 피터 잭슨이라는 감독의 이름으로 보게 된 영화이다. 물론 피터 잭슨이 영화 ‘반지의 제왕’을 만들기 전에 내놓은 작품이다. 사실 어린 살인범이라는 소재가 특히 마음에 들어서인 점도 있지만.


  폴린은 지극히 따분하고 재미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소녀이다. 그리 넉넉하지 못한 집안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모님. 사춘기 소녀가 꿈꾸는 이상적인 부모와 현실의 부모는 원래 차이가 좀 있다. 언제나 남의 떡이 커보이는 법이다. 그리고 너무도 평범해서 촌티를 풀풀 풍기는 자신의 외모. 그녀는 그런 것들에 불만을 품은 내성적인 소녀였다.


  그런 그녀의 앞에 나타난 소녀 줄리엣. 폴린이 보기에 너무도 우아하고 교양 있어 보이는 상류계급의 부모님을 갖고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태도와 먼 곳을 바라보는 눈과 예쁜 미모의 소유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은 금방 친해져,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된다. 서로 같은 꿈을 공유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두 소녀는 자기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요즘 같으면 애들이 친하구나 내지는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 당시 시대 상황은 그런 두 사람의 친밀감을 위험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두 사람과 그들을 떼어놓으려는 주변의 압력은 대립하게 된다.


  결국 정신적으로 막다른 곳까지 이른 두 소녀는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하기로 한다가 처음 제작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냥 상류 계급에 편입하고 싶은 소녀의 발악인 것처럼 그려졌다.


  왜냐하면 폴린이 꿈꾸는 환상에서 두 사람을 환하게 웃으면서 반겨주는 것은 줄리엣의 부모님이었다. 사람들의 환송을 받으며 떠나는 호화 여객선에서 두 사람을 마치 친딸처럼 안아주고 웃어주는 환상이 마치, 불만족스러운 친부모 대신 겉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두 사람을 자신의 부모로 여긴다는 뉘앙스가 풍기기 때문이다.


  사실 어릴 적에 그런 상상은 한두 번은 해보기 마련이다. 주로 부모님에게 꾸지람을 듣거나 뭔가 불만스러울 때, 내 진짜 친부모님이 날 데리러 올 거야라든지 내 친부모는 어쩌고저쩌고 그런 상상 말이다……. 나만 해봤나?


  하여간 폴린에게는 그런 욕구 내지는 상상이 존재했던 것 같다. 비록 줄리엣과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했지만, 그런 면도 있었다.


  그런데 감독의 의도인지 모르지만, 그 부부도 그렇게 행복하고 완벽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사람의 속사정은 겉으로 봐서는 모르는 거니까.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줄리엣이 폴린과 비슷한 환경의 소녀였다면, 폴린은 그녀에게 그렇게 집착했을까? 사춘기 소녀의 순수한 우정과 사랑을 너무 모독한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의문이 들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그녀였기에, 더 매달리고 애정을 퍼붓고 날 구해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에 감독이 여자였다면,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소녀들의 감정 변화를 좀 더 섬세하게 그려내지 않았을까? 두 사람의 환상을 더 몽환적이고 신비롭게 잘 표현하지 않았을까? 물론 피터 잭슨 감독이 별로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소녀들의 감정 처리가 좀 더 섬세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로 ‘여고 괴담 2편’이 떠올랐다. 거기서는 소녀들의 불안하면서 위태로운 심리와 그들이 꿈꾸는 환상이 적절하게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 부분에서 이 영화는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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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 서울 시 1
하상욱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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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하상욱

  그림 - 하상욱

 

 

  자주 가는 다음 카페에 게시물이 하나 올라왔다. SNS 짧은 엽기시라는 제목으로 두 줄 정도의 재미있으면서 공감이 가는 시가 적혀있었다. ‘와아, 기가 막히네. 어떻게 이걸 이렇게 딱 꼬집어 표현했지?’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시집으로 나온다기에, 더 접해보고 싶다는 욕심 반, 과연 다른 시들은 어떨까하는 호기심 반인 생각이 마구 피어올랐다. 반반은 치킨에만 해당하는 건 아닌가보다. 아, 치킨은 그냥 반반이 아니라 반반무많이구나.

 

  책에 적힌 시는 짧은 두 줄에서 네 줄에 한두 문장 정도 되는 분량이지만, 시를 읽고 제목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 정도로 사람의 마음에 딱 와 닿고 ‘맞아, 맞아’가 입에서 저절로 나오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어떤 것은 풍자적이고, 또 어떤 것은 자조적이며, 또 다른 것은 유머로 가득했다. 게다가 평범한 단어의 조합이지만, 독특하고 개성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게 무슨 시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다. 내 친구가 그랬다. 그냥 재미있는 감성적인 짧은 글귀가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긴 요즘 개그 프로에서도 비슷한 형식의 시를 읊는 코너가 있긴 하다. 개그 콘서트의 ‘정 여사’에서 가끔 정 여사가 그런다.

 

  친구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언젠가 지인이 알려준 일본의 하이쿠(俳句, Haiku)라는 시가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시가 아니라 시의 한 형식일 것이다. 하이쿠는 10자가 조금 넘는 짧은 분량에 계절감과 미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읽어보면 상당히 서정적이고 감성적이다. 분위기 있는 풍경사진과 같이 붙여놓으면 더 효과적이다.

 

  이 ‘서울시’ 역시 그런 느낌을 주고 있다. 다만 음, 서정적이라기보다는 유쾌한 면이 더 많이 느껴진다. 바쁘고 어찌 보면 각박한 현대인의 감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니까.

 

  예를 들면

 

‘지켜

준다더니

 

아껴

준다더니’ - 개인 정보

 

 

‘잘못된

선택

 

뒤늦은

후회’ - 내 앞 자리만 안 내림

 

 

  시만 읽을 땐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제목까지 읽으면 무릎을 치면서 ‘캬~’하는 감탄사와 고개는 절로 끄덕여지고 웃음이 나온다. 절묘하다. 사람과 주위 환경에 대한 생각과 관찰을 깊고 다양하게 한 결과물 같다. 나도 관찰과 사색을 좀 더 깊이 있고 독특하게 하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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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시를 향하여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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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owards Zero (1944년)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이번 소설에는 포와로도 미스 마플도 나오지 않는다. 배틀 총경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다른 작품에도 가끔 나오는 모양이다. 책을 보면, 포와로와 친분이 있는 것 같은 설명이 나온다. 그렇구나, 기억해두고 그의 활약을 기대해봐야겠다.

 

  제목이 ‘0시를 향하여’인데, 흐음……. 책을 찬찬히 읽어보면 그냥 시간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원제도 zero라고 하니, 뭐라고 해야 할까? 모든 일의 시작점 내지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 마지막을 뜻한다고 이해해도 될까?

 

  유명한 운동선수인 네빌. 그는 지금의 아내와 이혼한 아내 두 사람이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독특하고 소박한 소망을 갖고, 두 사람과 같이 숙모의 집에 여름휴가를 보내러 온다. 그런데 역시 그곳에 휴가를 지내러 온 노인이 심장마비로 죽고, 뒤이어 숙모마저 끔찍하게 살해당한다. 설상가상으로 모든 증거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는데…….

 

  사람의 원한이란 참으로 개인적이면서 무시무시하다는 걸 느꼈다. 살인마가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기에, 남들이 보기에는 뭐 그런 걸로 그러냐고 말할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살인마에게는 심각한 일이었기에, 상대를 죽이기 위해 이중 삼중의 함정을 파놓는다. 정말로 치밀하고 꼼꼼했다.

 

  그런 침착함과 꼼꼼함과 대담함 그리고 치밀함을 다른 곳에다 발휘했으면 엄청난 성공을 거뒀을 거 같다. 차라리 생산적인 일에 쏟을 것이지 왜 쓸데없이 복수하기 위해 세 명이나 죽이려는 건지…….

 

  하지만 사람마다 자존심의 높이는 다르고, 상처받는 부위도 다르고, 그 깊이도 다르니까 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난 바늘이라고 생각한 말이 상대방에게는 전봇대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살인을 하는 건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부득이한 경우라면 정상 참작을 해주겠지만, 이 책에서는 그렇게 부득이하다거나 급박하다거나 하는 일은 아니었다. 내 판단에서는 그냥 미친 사람의 집착이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결말에서는 로맨틱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작가가 커플이어서 그런지, 거의 모든 싱글 남자와 여자들을 맺어주는 분위기였다. 범인만 빼고. 아아, 낭만적이야!

 

  이 책의 교훈이라고 한다면, ‘서류 작성을 할 때는 꼼꼼히 살펴보자’였다. 이 책에서 유언장 조항이 ‘유산이 네빌과 그의 아내에게 상속된다.’라고 나오는데, 사람들은 당연히 현재 아내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항을 살펴보면 그 당시의 아내, 그러니까 전 아내에게도 공동 상속이 된다고 나온다. 역시 계약서 쓸 때는 조항 하나하나를 살펴보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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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투 킬
조엘 슈마허 감독, 매튜 매커너히 외 출연 / 마루엔터테인먼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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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A Time To Kill

  감독 - 조엘 슈마허

  출연 - 케빈 스페이시, 매튜 맥커너히, 산드라 블록, 사무엘 L. 잭슨

 

 

  찡하니 가슴이 아파서 ‘아놔, 진짜!’라고 안타까워하다가, 막판에는 ‘그렇지!’를 외치게 했던 책. 예전에 아주 좋아해서 나오는 족족 찾아 읽었던 작가의 책. 영화로 보니 또 느낌이 달랐다. 그나저나 소설 감상문이 없다? 아! 내가 감상문 작성을 하지 않을 때였구나.

 

  무덥던 어느 날. 먹을거리를 사들고 집에 가던 흑인 소녀를 두 명의 백인 청년이 처참하게 강간을 하고 죽이려던 사건이 일어난다. 하지만 동네는 남부, 백인의 우월의식이 극에 달하는 동네였기에 두 청년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을 분위기였다.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소녀의 아버지가 법정에서 둘을 쏴죽이고, 주인공에게 변호를 부탁한다.

 

  공교롭게도 주인공 변호사는 전형적인 백인 가족을 이루고 있는 남자였다. 흑인을 돕는다는 이유로 KKK단의 협박에 가족들을 대피시키면서, 온통 백인으로 이루어진 배심원단과 피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백인 판사를 앞에 두고 그는 몇몇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고군분투한다. 그럴수록 그를 향한 위협은 점점 강도를 높여간다.

 

  이 영화 역시,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오리엔트 특급살인’처럼 개인적인 복수가 과연 가능한지 말하고 있다. 다른 점이라면, 이 책에서는 법이 처벌을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이다. 불공평하게 적용된 것이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법의 처벌이 불공평한지 공평한지, 적절한지 아닌지 누가 판단하는 걸까? 피해자가? 가해자가? 제 3자가? 아니면 관련자가? 그것도 아니면 언론이나 여론이?

 

  누구나 다 자기 입장에서 판단을 하기에, 내가 제일 억울하고, 내가 제일 불쌍하고, 내가 제일 잘났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법의 판단이 내가 생각하기에 불만족스럽다고 마음대로 사사로이 처벌을 해도 되는 걸까?

 

  백인 건달들이 소녀를 폭행하고도 거들먹거린 것은 자기들이 이 동네에서 절대로 처벌을 받을 리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왜냐고? 속된 말로 자기들 구역이니까, 어떤 피부색이냐가 죄의 유무를 결정하는 곳이니까. 소설에서는 그들이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 과정까지 나왔지만, 영화는 그 부분을 생략했다. 그래서 소녀의 아버지가 총기 난사 사건을 벌이는 장면이 좀 뜬금없어 보이긴 했다.

 

  딸이 처참하게 성폭행을 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면, 당연히 그런 일을 저지른 놈들과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놈들이 처벌도 안 받고 풀려날 게 뻔 하다면, 법의 효용성이나 존재 의의에 불만을 품을 것이다. 젠장, 이따위가 법이라니! 누구를 위한 법이야? 이런 생각을 당연히 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아버지가 그런 일을 저지를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쓰레기 같은 백인 건달, 성실하게 살아가던 화목한 흑인 가정, 너무도 어린 소녀에게 닥친 처참한 상황, 열악한 흑인 인권 등등. 특히 소녀의 강간 폭행 장면은 간접적으로 표현하지만, 눈물이 날 정도로 안타까웠다. 거기다 변호사 부인은 ‘그런 일을 당했으니 일을 저지를 만해요.’라는 동정적인 대사를 노골적으로 내뱉는다. 아버지의 행동으로 총상을 당한 백인 부보안관 역시 는 죄가 없다고 재판정에서 외치기까지 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저 아버지가 무슨 죄야? 건달 녀석들이 원흉이고, 도대체 변호사를 협박하는 KKK단이나 건달의 가족들은 뇌에 뭐가 들었기에 복수하겠노라 난리치는 거지? 미친 거 아냐? 개념을 어디다 흘렸기에 저러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변호사의 마지막 변호 장면에서 울컥하고, ‘그렇지!’라고 외치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조금 삐딱하게 보면, 호감형 외모에 말 잘하는 변호사만 얻으면 누구나 다 무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배심원제의 단점이 아닐까 싶다. 그들에게 얼마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동정심을 어떻게 잘 자아내는가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니 말이다.

 

  아, 역시 세상은 외모 지상주의란 말인가!

 

  어쩌다가 결말이 이렇게 나는지 좀 의아스럽다. 분명히 법의 판결이 부적절한지 누가 판단하느냐와 개인의 복수가 가능한지가 문제였는데. 어쩌면 음, 법이 사회와 사람들의 의식을 빨리 수용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문제인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스토킹이라든지 남자에 대한 성폭행 관련법이 미비하다고 알고 있다. 법이 너무 빨리 변하는 것도 좋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을 하고 변화에 적응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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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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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우와앙, 내가 좋아하는 탐정 중의 한 사람인 포와로가 등장하는 책이다. 이 이야기는 너무 마음에 들어서 영화로 만들어진 것도 봤고, BBC 드라마로 제작된 것까지 찾아볼 정도이다. 앞서 리뷰를 적었던 시리즈 1권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어떻게 보면 많이 닮아있으면서 또 다르다.

 

  이 책은 1934년도에 출판되었다.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지금과 많이 다른 면을 보인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가장 세련된 작품이었을 것이다. 예전 흑백 영화 시절의 그 어설픈 CG를 가끔은 못 견디는 경우가 있다. 저기 훤히 보이는 와이어라든지 가짜라는 게 티가 나는 그런 것들. 물론 요즘의 CG로 범벅이 된 영화보다 훨씬 나은 작품들도 있지만 말이다. 앞선 시대의 작품들은 요즘은 어떻다고 따지기보다는, 그냥 그 시대에 내가 산다고 생각하면서 접하는 게 제일 괜찮은 관람 방법인 것 같다.

 

  사건을 해결하고 돌아가는 포와로. 오리에트 특급 열차를 타야할 일이 생겼다. 그곳에서 만난 한 남자가 그에게 사건을 의뢰하지만, 포와로는 거절한다. 그런데 바로 그 남자가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쌓인 눈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는 기차 안에서 말이다! 도대체 그는 왜 죽어야했고, 누가 그를 그렇게 잔인하게 죽였을까? 그와 같은 차량을 쓰는 다른 여행객들 중에 범인이 있는 것일까? 포와로는 그들과의 인터뷰와 여러 정황을 파악하면서, 사건의 진상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죽어나가서 범인이 누군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면, 이 책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는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운데 서로 우연히도 알리바이를 다 증명해주고 있는 사태가 벌어진다. 여기서 처음 봤다는 사람들이! 아주 공교롭게도 빈틈없이! 서로의 알리바이를!

 

  100% 완벽한 것은 자기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포와로이기에, 차근차근 모든 것에 의심을 품고 실마리를 찾아간다. 모든 것을 의심하는 그의 자세는, 누가 말했는지 모르지만 꽤나 인상이 깊었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모든 의심을 하나씩 지우다보면 마지막 한 개가 남는데, 그게 바로 답이다.’ 아마 이런 말이었을 것이다.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괜찮은 문구가 있으면 나중에 써먹게.

 

  이 책 역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처럼 법이 심판하지 못하는 범죄자를 개인이 처벌하는 것이 옳은 지 묻고 있다. 한 가족, 아니 그와 관련된 여러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었지만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간 악독한 살인자. 그 때문에 고통과 슬픔에 잠겨 살던 나에게 그를 처단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도 완전범죄로?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법이 어쩌지 못하는 나쁜 놈을 처벌할 기회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내 소중한 사람을 앗아가 놓고 죄책감 없이 뻔뻔스럽게 잘 살고 있는 사람에게 단죄할 여건이 된다면, 난 어떻게 할까? 죄는 미워하되 인간을 미워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 인간이 죄를 저질렀는데 어떻게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간이 나중에 사회 관리를 위해 만들어낸 죄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서 안 되는 죄를 저지른 자라면?

 

  영화와 BBC 드라마 판에서는 살인자를 죽인 사람이 약간의 망설임과 죄책감을 보인다. 끝부분에서 포와로가 그를 고발할까 말까 고민하는 동안, 그 사람의 눈동자와 얼굴에서는 불안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드라마 판이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 소설에서는 처벌을 받을 각오로 당당했던 걸로 나오는데.

 

  어쩌면 그 사람도 평생 누군가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갖고 살아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통쾌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걸 다 감안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으로 살인을 저질렀을 것이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보통 마음가짐으로는 되지 않으니까. 묻지마 살인은 빼고. 내가 말하는 것은 계획을 세워 죽이는 것을 뜻한다.

 

  어떻게 보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이다. 그건 즉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서 너무도 큰 상처를 받았고, 치유될 수 없었다는 걸 의미하니까.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이 지인이건 처음 보는 사람이건 말이다. 그러니까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살아야한다. 개념이 없어서였건 의식을 못해서였건, 그건 변명이 되지 않는다. 아, 그래서 요즘 힐링이 유행인가보다.

 

  이 책이 나온 지 거의 80년이 지나가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지금도 영화, 소설 그리고 드라마에서는 법이 어쩌지 못하는 범죄자를 처단하는 소재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다는 말은, 그 때나 지금이나 사회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뜻일까?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매스터맨이라는 남자가 50대 중반은 확실히 넘은, 나이 지긋한 중년으로 나온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39살밖에 안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그 시대는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39살과 50대는 좀 차이가 나지 않을까? 도대체 어디서 뭐가 어긋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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