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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사바 SE [dts] (2disc) - 할인행사
안병기 감독, 김규리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원작 - 이종호의
'모녀귀'
감독 - 안병기
출연 - 김규리, 이세은, 이유리, 최정윤
분신사바는 귀신을 불러내는 주문이다.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귀신 놀이인데, 그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나 같은 사람은 진짜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어서 절대로 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그냥 일본에서 건너온 질 낮은
장난이라고 여긴다.
이 영화는 분신사바를 이용해 자신들을 괴롭히는 일진에게 보복하려는 여학생 무리로 시작한다. 전학생
유진은 학교 아이들의 괴롭힘이 극에 달하자, 다른 아이들 두 명과 함께 밤늦은 학교에서 분신사바를 시도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저주를 내린
아이들이 하나둘씩 죽어간다. 검은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자기 손으로 라이터 불을 붙이는 끔찍한 방법으로.
한편 그 학교에 미술 선생으로 새로 부임한 은주는 수업 첫날 29번 인숙의 출석을 부르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번호의 학생은 오래 전에 죽었는데, 소문으로는 아직도 학교를 떠돌아다닌다고 한다. 아이들이 계속 같은 방법으로 죽어가는
가운데, 인숙의 죽음에 얽힌 마을의 비밀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음, 영화는 이것저것 많이 말하려고 노력한다. 원한을 품은 소녀 귀신, 심령술사, 빙의 내지는
환생,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 남자의 추악한 욕망과 여자들의 질투 등등. 나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말하고 싶은 게 많으면 중구난방 주저리주저리
떠들게 된다. 그래서 상대방이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 영화도 처음에는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산만했던 곁가지들은 싹 가지치기가 되어간다. 그 때문일까? 앞부분에
나왔던 이야기가 뒤에서는 나오지 않아, 어떻게 된 걸까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대목도 있고, 왜 그렇게 연결되는 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아이들이 계속 죽어가기에 집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는데, 어떻게 아이가 짐을 다 챙겨서 몰래 빠져나올 수 있을까? 암만 봐도
대문으로 나온 거 같은데……. 그리고 왜 짐을 비닐봉투에 싼 걸까? 가방은 어디에 두고? 왜 비밀 얘기를 꼭 그렇게 위험한 장소에서 해야
했을까? 애가 늦게 들어온다고 혼을 내는 게 아니라, 못 나가게 막아야 했지 않을까 등등.
초반에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귀신의 저주가 몰아친다. 아주 그냥 숨 쉴 틈이나 마음을 가다듬을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흐름이 중반이후부터는 느릿해진다. 인숙과 그녀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후반의 메인을 차지하면서, 사건이 아닌
설명조로 영화는 흘러간다. 황당하게도 30년 전 두 모녀가 살해당한 사건의 진상이 유진과 은주에게 최면을 걸었던 호경의 입을 통해서 술술
나온다. 아, 이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위기 잘 잡고 잔뜩 긴장하게 만들다가 뜬금없이 최면으로 전생을 알아내는 건 뭐람?
추리 호러 스릴러를 보는 재미가 뭔데? 감독이 영화 곳곳에 배치한 퍼즐을 짜 맞춰 추측하여,
맞추면 좋아하고 틀리면 다음 기회를 노리는 그 아슬아슬함에 있다고 본다. 사건의 배경과 숨은 동기까지 몽땅 다 최면술사의 입을 통해서 알려주는
건 관객의 수준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한다.
제일 좋았던 건 세 여배우의 연기였다. 유진 역을 맡은 배우 이세은의 눈이 무척 컸는데, 두 눈을
부릅뜨고 화면을 바라볼 때면 가슴이 철렁한다. 거기에 요즘 '연민정'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유리의 귀신 연기도 역시 꿈에 나올까 무서웠다.
김규리 역시 후반에 으아……. 세 여자들이 완전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면서 오들오들 떨게 했다. 영화의 분위기도 그에 어울리게 충분히
서늘했는데, 중간에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주려고 해서 흐름이 삐끗했다. 그래서 앞으로 나올 결말이라든지 뒷이야기까지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맞춰서 좋긴 하지만, 끝나기 20분 전에 모든 것을 알게 되면 무척 허무해진다.
문득 얼마 전에 읽은 이춘풍전 배비장전 이야기가 생각난다. 사고는 남자들이 치고, 그 대가는
여자가 떠맡는……. 이 영화에서는 여자, 특히 여고생들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했다.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