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검심: 교토 대화재편
오오토모 케이시 감독, 아오키 무네타카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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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るろうに剣心 京都大火編, 2014

  감독 - 오오토모 케이시

  출연 - 사토 타케루, 타케이 에미, 아오키 무네타카, 아오이 유우

 

 

 

 

 

  아편을 팔던 약장수를 처치하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켄신'에게 정부 관리가 찾아온다. 그는 정부를 위협하는 무리의 수장인 '시시오'를 처리해달라고 부탁한다. 시시오는 켄신의 후임으로 정부에서 시키는 암살 같은 일을 하던 자인데, 너무 위험해서 처리를 하려다 실패한 자라는 것이다. 겨우 살아난 시시오는 부하들을 모아 정부 전복을 꿈꾸고 있었다. 켄신은 시시오가 벌인 살육의 현장을 보고 마음을 굳힌다. 결국 그는 교토로 떠나지만, 시시오의 부하인 '소지로'와 대결을 벌이다 역날검이 부러지는데…….

 

  1편과 달리 이번 편은 그냥 그랬다. 정부에서 시시오에게 한 짓을 보면, 복수를 계획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보살(?)이라면 가능하겠지만, 그런 사람은 드무니까. 어차피 무력과 피로 세워진 정부인데, 테러로 무너지는 게 무슨 큰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 Neon Genesis Evangelion, 1995'을 보면서 겨우 열 서너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세계의 존망을 맡길 수밖에 없는 무력한 정부라면 무너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어른들이 똥을 싸지르고 꼬꼬마아이들에게 치우라고 시키면서, 그것도 제대로 못 치운다고 죄책감을 불어넣고 윽박지르는 사회라면 뒤엎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들이 괴물을 키워놓고, 제대로 다루지도 못한다. 그래서 한 사람을 지목해서 네가 희생해서 괴물을 막아내라고 한다. 제때 괴물을 막지 못해 사람들이 피해를 보면, 그건 괴물을 만들어낸 자기들이 아닌 막아내지 못한 그 사람의 탓이 되어버린다. 뭐 이런 개똥같은 헛소리를 해대는지 모르겠다. 착하게 살려니 호구로 보는 격이다. 아, 토사구팽 兎死狗烹은 사냥이 끝나면 쓸모없게 된 개를 잡아먹는다는 뜻이다.

 

  만약에 시시오가 지방에서 마을들을 접수하면서 공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지배를 했다면, 상황은 많이 바뀌었을 것 같다. 하긴 그런 정치를 펼칠 성격이었으면, 정부에서 토사구팽할 리도 없었겠지.

 

  영화는 결국 켄신이 얼마나 호구 같은지 보여주고 있다. 정부의 암살자 노릇을 하면서 지은 죄를 갚기 위해 그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자신을 죄인이라 생각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런 그의 죄책감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기들의 뒤치다꺼리를 시키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계획은 성공한다. 결국 켄신은 과거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그들의 요구를 수락한다. 마음을 비우고 모든 사람에게 선하게 대하려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영락없는 호구다. 그런 존재들은 켄신이나 시시오뿐만이 아니다. 예전에 정보기관에서 일하다가 버림받고 다른 일을 하는 집단도 등장한다. 필요할 때는 사탕발림으로 써먹다가, 나중에 필요 없어지니 입막음을 위해 제거 대상이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정부라는 것이 얼마나 줏대 없고 비겁한, 그러면서 잔머리는 잘 돌아가는 모리배들의 집합체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고위층에게 사람들은 정권을 잡기 위한 도구였고, '충 忠'이라든지 '신의 信義'라는 말은 도구를 낚기 위한 미끼였다. 자기들이 하는 모든 것, 심지어 배신하는 것까지 대의를 위한 것이고, 거기에 반항하는 사람은 반역도였다. 그들을 처리하는 것에 자기들의 손은 더럽히지 않는다. 이이제이 以夷制夷. 암살자는 암살자로 처리하면 그만이다. 실패하면 일처리를 맡긴 사람의 탓을 하면 된다. 이상하게 19세기 일본의 모습에서 익숙한 향기가 난다. 지금은 21세기인데 말이다.

 

  시시오를 연기한 배우가 후지와라 타츠야라는데 붕대를 감고 있어서 못 알아봤다. 중간 회상 장면에서 켄신이 포니테일 스타일로 머리를 묶고 나오는데 꽤 예쁘게 잘 묶였다. 앞머리도 자연스럽고 부러웠다. 언제쯤 영화나 드라마, 만화에서 민폐 스타일 여주인공을 안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런 스타일이 유행인가? 그럼 나도 이제부터 애인님에게 민폐를 끼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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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검심
오오토모 케이시 감독, 아오이 유우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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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るろうに剣心, 2012

  감독 - 오오토모 케이시

  출연 - 사토 타케루, 타케이 에미, 킷카와 코지, 아오이 유우

 

 

 

 

 

 

  일본이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엄청난 칼솜씨로 사람을 죽이고 다니던 칼잡이 ‘켄신’이 있었다. ‘발도재’라 불리는 그는 아무리 남명을 받았다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이 과연 옳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떠돌이 생활을 한다. 그리고 10년 후, 켄신은 우연히 도장을 운영하는 ‘카오루’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집에서 머무르게 된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돕기로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자신을 발도재라고 자칭하며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다니는 사람이 등장한다. 켄신은 누가 자신을 사칭하여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지 궁금해 한다. 그러던 중 약점을 잡혀 ‘타케다’ 밑에서 강제로 약을 만들던 ‘메구미’가 탈출하여 카오루의 도장으로 오게 되는데…….

 

  언제였을까? 십오 년도 더 된 일일 것이다. 그 시절에 살던 동네에 도서 대여점이 하나 있었다. 무척 큰 규모였고, 가운데 커다란 테이블도 있어서 그곳에서 책을 읽을 수가 있었다. 대여점 사장은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은 여자 분이었는데, 성격이 서글서글하니 무척 좋았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 그곳은 동네 아가씨들의 모임장소 비스무레한 곳이 되었다. 그 때 사장 언니가 재미있다고 추천해준 책이 있었는데, 사람을 죽이지 않는 칼을 들고 다니는 일본 사무라이의 이야기였다. 한 권 두 권 보다가 재미있어서, 아예 왕창 빌려다가 밤새 읽은 기억이 난다.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기본 흐름과 주인공을 비롯한 다른 조연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알고는 고민했다. 만화나 소설을 영화화한 것 치고, 특히 일본에서 만화 원작을 영화로 만든 것치고 호감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내 추억을 망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로 엉망으로 만든 게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보고 욕하자는 심정으로 보기로 했다.

 

  그런데 헐? 생각보다 괜찮았다. 비록 초반 한 시간 가량을 등장인물 소개로 보내긴 했지만, 이야기의 흐름이라든지 칼싸움 장면 등은 좋았다. 배경도 예뻤고, 색감도 괜찮았다. 게다가 주연을 맡은 배우도 잘생겼다.

 

  영화는 사람을 죽이면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에 함부로 칼을 들지 않으려는 진짜와 무차별 살육의 쾌락에 빠진 가짜의 대비를 통해 사람의 생명과 신념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또한 켄신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면서,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죽이는 것이 정당한가 묻고 있다. 비록 나와 다른 편이긴 하지만, 그 사람에게도 가족이 있었고 소중하게 지켜야할 존재가 있었고 삶이 있었고 미래가 있었다. 그것을 망각하면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닌 단지 도구나 수단으로만 여겨질 뿐이다. 그 때문에 이용하고 죽이고 착취할 수 있는 것이다.

 

  켄신은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이고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그 때문에 칼날의 방향이 반대로 된 칼을 갖고 다니면서,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이다. 가짜 발도재도 그냥 내버려두면 언젠가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반성했을까?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폭력을 반대하는 주인공의 입장을 확실히 보여주는, 약물 남용을 반대하고 비폭력을 주장하는 영화라고 여길 수도 있었다. 또한 돈이면 뭐든지 된다고 생각하는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타케다’를 통해 물질의 유혹에 넘어간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아편을 팔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말을 듣지 않는 메구미를 협박하기 위해 우물에 독을 풀기까지 했다. 그의 목표는 돈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다른 사람들은 그냥 돈벌이 도구에 불과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기에 그 모든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이었다.

 

  두 시간이 좀 넘는 시간이라, 중간에 집중력이 좀 흐트러졌다. 그래도 중간 중간에 자잘한 사건사고를 보여주어서 그렇게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 흐름은 마음에 들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중에서 그나마 괜찮았다는 느낌을 받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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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시체스영화제 최우수작품상)
타셈 싱 감독, 저스틴 와델 출연 / 플래니스 엔터테인먼트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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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Fall, 2006

  감독 - 타셈 싱

  출연 - 리 페이스, 카틴카 언타루, 저스틴 와델, 킴 울렌브로크

 

 

 

 

 

  애인님 집에서 프로젝터로 본 영화이다. 지난번에 ‘더 셀 The Cell, 2000’의 화면이 너무 멋있어서, 혹시 그 감독의 다른 작품은 어떨까 검색을 해봤다. 사진도 멋지고 이 작품은 영상미의 결정체라는 평까지 읽고는 주저 없이 골랐다. 그리고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쟤 나쁘다’라고 투덜대면서도 눈은 그대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국의 한 병원에 ‘알렉산드리아’라는 다섯 살 난 소녀가 입원하고 있었다. 한 팔에 기브스를 했지만, 소녀는 씩씩하게 돌아다닌다. 어느 날, 좋아하는 ‘에블린’ 간호사에게 보내려던 편지가 바람에 날려 엉뚱한 곳에 떨어진다. 편지가 도착한 곳은 ‘로이’라는 젊은 남자가 누워있는 병실이었다. 다리를 다친 그는 어린 알렉산드리아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해줄 테니 부탁을 들어달라고 한다. 그리고 로이는 독재자인 ‘오디어스’에게 저항하는 다섯 명의 영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작품은 두 가지 이야기로 진행된다. 알렉산드리아와 로이의 병원 생활과 로이가 들려주는 다섯 영웅들의 모험 이야기다. 물론 로이와 알렉산드리아가 원하는 방향대로 이야기가 바뀌기도 하고, 두 이야기가 섞이기도 한다. 그래도 교묘하게 현실과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두 사람의 우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처음 로이가 알렉산드리아에게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모르핀을 몰래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 때문에 이야기에는 어린 여자아이가 좋아할 법한 용감한 다섯 영웅과 악독한 악당, 그리고 아름다운 공주가 등장한다. 위험에 처했지만 재치와 끈기로 역경을 이겨내고 공주와 사랑까지 나누는 내용에 알렉산드리아는 푹 빠져든다. 그녀는 매일 로이의 병실로 출퇴근을 하며,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른다.

 

  하지만 나중에 자신의 그런 거짓말 때문에 알렉산드리아가 다치게 되자, 로이는 절망과 자책감에 휩싸인다. 그 때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무척이나 슬프고 비극적이었다. 이 때 두 사람은 갈등을 빚는다. 로이는 나락으로 빠져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려했고, 알렉산드리아는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애원한다. 로이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마스크 밴디트’가 오디어스에게 굴복하지 않고 부활한 것은, 어떻게 보면 죽음만 생각하던 로이의 마음이 바뀌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저 부분에서 ‘로이, 이 개XX! 어린아이한테 어떻게 저런 잔인하고 비극적인 얘기를!’하면서 욕을 했었다.



 

  영화는 죽음을 꿈꾸던 한 청년이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건 어린 소녀의 우정덕분이었다. 너무도 순수하고 삶을 사랑했던 소녀는 청년의 마음속에 있던 어둠을 몰아낼 정도로 밝은 빛을 갖고 있었다.

 

  문득 덴젤 워싱턴과 다코타 패닝이 나왔던 영화 ‘맨 온 파이어 Man on Fire, 2004’가 떠올랐다. 거기서도 나락으로 떨어졌던 ‘크리시’라는 남자가 한 소녀를 만나면서 변화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고 무슨 로리타 콤플렉스를 다루는 내용은 아니다. 그들은 소녀를 성적인 대상이 아니라, 빛이자 희망으로 여겼다. 어쩌면 두 남자에게 두 소녀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어린 천사와 같은 존재였을 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생략된 부분이 무척 많았다. 알렉산드리아는 어쩌다가 팔을 다쳤는지, 그녀의 아버지는 누가 죽였는지, 로이는 왜 다리를 다쳤는지, 병실의 할아버지는 왜 갑자기 죽었는지, 로이가 왜 분노하는지, 알렉산드리아가 그 날 밤 본 것은 무엇인지 확실히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스쳐지나가는 대사라든지 주변 상황으로 추측하게 한다. 제목이 ‘더 폴’인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알렉산드리아는 나무에서 떨어졌고 로이는 말에서 떨어져서 그런 걸까하는 상상만 하게 한다. 아니면 모든 것은 위로 올라가려는 습성을 갖고 있고, 결국에는 떨어지게 마련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영화는 이 지구에 존재하는 유적지나 건축물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CG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일일이 그곳을 찾아가서 찍었다고 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는 장소들을 감독 특유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각도로 보여주고 있었다. 덕분에 눈이 아주 호강을 했다. 그래서 중간에 영화의 내용이 이상해지는 부분에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혹시 내용 연결은 어색하지만 멋진 배경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냥 넣은 건 아닐까?’

 

  로이와 알렉산드리아는 만나서 좋은 인연이었다. 이후 두 사람이 다시 만났는지의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마 다시는 만나지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병원에서의 그 짧은 만남만으로도 두 사람은, 특히 로이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충분한 희망과 용기를 갖게 되었다.

 

  알렉산드리아 역을 맡은 꼬마 아가씨의 연기는 그야말로 천연덕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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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 마키나
알렉스 갈란드 감독, 돔놀 글리슨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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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Ex Machina, 2015

  감독 - 알렉스 갈렌드

  출연 - 돔놀 글리슨, 알리시아 비칸데르, 오스카 아이삭, 첼시 리

 

 

 

  '칼렙'은 인공지능계의 천재라 불리는 회장 '네이든'의 저택에서 며칠 머무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아무도 모르는 숲 깊숙한 곳에 위치한 그의 저택에서, 칼렙은 뜻밖의 제의를 받는다. 네이든이 추진하고 있는 비밀 실험에 동참해 달라는 것이었다. 바로 그가 만들어낸 인공지능 로봇의 테스트를 해달라는 것이다. 인간처럼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단순히 프로그램에 따르는 것인지 아니면 인공지능 스스로 판단하는 것인지 확인하는 실험을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세기적인 사건이 될 것이 분명한 일에 참가한다는 들뜬 기분으로 칼렙은 승낙한다. 그의 눈앞에 나타난 아름다운 여인의 외모에 달콤한 목소리를 가진 로봇 '에이바'.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는 네이든을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칼렙. 급기야는 자신이 진짜 인간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워한다. 한편 네이든은 칼렙에게 에이바를 조심하라고 말하는데…….

 

  예고편을 보면서 ‘우와!’했던 영화이다. 로봇과 인간의, 인간과 인간의 심리 대결이 멋들어지게 펼쳐지면서 한편으로 속고 속이는 반전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용은 예상과 맞아떨어졌다.

 

  다만 내 예상보다 영화의 속도가 느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영화 느리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눈을 떼지 못했다. 잠깐이라도 딴 짓을 하면 중요한 뭔가를 놓칠 것 같은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에이바라든지 네이든이 허튼 짓을 하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뱉을 것 같았다. 참 묘한 영화였다.

 

  로봇이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에이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다 이룰 수 있는 천재이자 부유한 네이든, 그리고 평범한 프로그래머인 칼렙. 이 셋의 만남은 처음부터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편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처음에는 순수하게 기뻐할 줄 알았던 칼렙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지적인 에이바에게 점점 끌리면서, 그는 네이든과 묘한 삼각관계를 이루었다. 그녀를 만든 창조주는 네이든이지만, 그녀가 마음을 연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남을 얕잡아 보는 듯한 네이든의 태도에 반발심을 느껴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갈라테이아와 피그말리온'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자신이 만든 조각상 갈라테이아를 사랑하게 된 조각가 피그말리온. 결국 그의 마음이 신을 감동시켜 조각상이 여인으로 바뀌어 사랑을 이루었다는 신화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의 피그말리온은 갈라테이아에게 사랑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그가 만든 수많은 조각상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대신 그의 조수가 그녀를 마음에 두었다.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조수의 마음에서는 순수한 존경심이 사라지고 경쟁심이 그 자리를 채웠다. 자신만이 그녀를 이해하고 아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자신 이외의 남자는 필요 없을 거라 믿었다.

 

  한편 갈라테이아도 신화와 달리 두 사람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 때문에 세 사람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폭력은 물론이고,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처음 칼렙이 당첨되었을 때 모두가 부러워했고 행복해했던 며칠간의 휴가가 악몽으로 변해버렸다. 인간과 인간의 심리 대결도 볼만한데 여기에 로봇까지 가세하니,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다만 에이바와 칼렙의 실험 과정이 너무 느슨하게 느껴지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막판에 몰아치기위해 앞부분이 그렇게 느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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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의 숲
럭키 맥키 감독, 아그네스 브루크너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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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Woods, 2006

  감독 - 럭키 맥키

  출연 - 아그네스 브루크너, 패트리시아 클락슨, 로렌 버켈, 레이첼 니콜스

 

 

 

 

 

  1965년, 반항적인 성격의 헤더는 엄마와의 불화로 어느 한적한 숲에 있는 기숙학교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녀는 여왕벌 사만다와 그 일행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마시와 친구가 된다. 하지만 사만다의 괴롭힘은 마시에서 헤더로 옮겨오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선생들은 헤더에게만 벌을 내린다. 유일하게 밤에 마시와 몰래 듣는 대중가요만이 낙이던 헤더의 눈에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이 들어온다. 나뭇잎만 남기고 사라지는 학생들, 밤마다 꿈에 나타나는 낯선 소녀의 유령, 그리고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숲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까지.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마시가 그녀를 멀리하기 시작한다. 영문을 몰라 하는 헤더에게 사만다가 다가오더니, 그들이 노리고 있으니 학교를 빨리 떠나라는 경고를 남긴다. 그런데 얼마 후 사만다가 식당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심각함을 느낀 헤더는 아버지를 설득해 학교를 떠나기로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들은 숲을 벗어나질 못하는데…….

 

  예전에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2015'를 보면서 어디선가 익숙한 느낌이 든다 싶었다. 여학생만 있는 외딴 곳에 위치한 기숙학교, 어딘지 모르게 비밀을 숨기고 있는 교직원들, 그리고 하나둘씩 사라지는 학생들까지 확실히 어디선가 본 설정이었다. 뭐였을까 곰곰이 생각하고 키워드를 검색하다 '아!'하고 떠오른 것이 바로 이 영화였다. 물론 소녀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달랐다.

 

  영화는 적절히 잔잔했고, 적당히 오싹했으며, 또한 무난하게 이어졌다. 초반을 넘어가면서 아이들끼리 밤에 무서운 얘기를 한답시고 학교에 얽힌 전설을 말하는데, 무척이나 결정적인 힌트였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헤더가 보고 듣는 것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일의 원인을 추측하는 것보다 이제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는 예상치 못한 설정이 하나 들어있다. 그걸 보는 순간, 왜 헤더가 이 학교로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학교는 무작위로 아이들을 부르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어쩌면 전 세계적으로 그들만의 조직망이 뻗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그러면 설마 독일에 지부가 있어서 그 학교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설마 '서스페리아 Suspiria, 1977'? 어쩐지 말이 안 되는 상상이지만, 그런 식으로 연결하려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비슷한 설정의 영화가 또 뭐가 있더라? 이런 식으로 연결하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

 

  헤더와 마시가 밤에 몰래 즐겨듣던 노래는 '레슬리 고어'의 'You don't own me'였다. 자기들을 억압하려는 학교에 '넌 날 마음대로 못 해.'라고 소극적으로 반항하는 느낌이었다. 대놓고 반항은 못하고 하지 말라는 걸 몰래 하면서 좋다고 키득거리는 것 같았다. 그런 둘의 모습에 전반적으로 귀엽다는 기운이 느껴졌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생각하니, 사만다는 아무래도 츤데레였던 것 같다. 그리고 헤더가 수업 시간에 몰래 연필 세우기를 성공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떠오르……. 여기까지.

 

  그나저나 여기서 헤더, 마시, 사만다, 또는 헤더, 교장, 사만다의 삼각관계를 연상하다니! 난 썩었나보다. 으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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