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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려움에 대처하는 비효과적인 방법들 




1. 상황을 회피하기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을 회피한다. 단기적으로 이 방법은 아주 좋은 해결책처럼 보인다. 이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들과 두려움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 방법은 그리 좋다고 볼 수 없다. 그런 식으로 살면 개인의 행동반경이 점점 좁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상황을 극복하는 경험을 할 수도 없다. 가령 비행이 두려운 나머지 아예 비행기를 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비행이 상상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어떤 상황을 시종일관 회피하기만 하는 사람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많은 일을 회피하게 된다. 피하기 전략은 차츰 많은 영역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종국적으로 두려움이 작아지기는커녕 더욱더 커지게 된다. 




2. 상황에 단기적으로 대치하기

몇몇 사람들은 아주 의식적으로 ‘두려움을 유발하는 상황’ 속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두려운 상황들을 찾아다닌다. 이런 방법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아주 거칠고도 위험한 전략이다. 이런 방법은 전문가의 지도하에 시행되어야 하고, 이런 전략에 돌입했다가 얼마 못 가 중단해버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스스로 평온하고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그 상황에 충분히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그 상황에 익숙해지기 전에 중단하면, 나중에는 그런 상황에 대해 전보다 더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3. 두려움을 음식이나 술, 약물로 해결하기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거나 폭식을 하는 것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너무 빨리 신경안정제를 복용한다. 물론 이런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발휘한다. 두려움은 이내 가라앉거나 사라진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약물에 의존하는 생활을 할 수도 있다. 그런 방법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원인은 제거되지 않고, 단지 증상만 잠깐 숨어버릴 따름이다. 




4. 걱정하고 고민하고 안달복달하기

많은 사람들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안 좋은 상황들을 미리미리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이러이러한 일이 일어나면 얼마나 끔찍할까’ 등의 생각이 다반사고, 이런 생각을 통해 불안에 빠진다. 그런 상황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은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절망하거나 속수무책 상태가 되지 않도록’ 이런 전략을 개발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내가 계속 걱정하고 고민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미신에 매달린 채 살고 있다. 




5.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서 두려움을 견디기

또 하나의 전략은 두려움을 유발하는 상황으로 들어가되,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거나, 신문을 읽거나, 숫자 퍼즐 등을 하면서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다. 이런 방법의 장점은 두려움을 유발시키는 상황으로 들어가서 피하지 않고 견딘다는 것이다. 단점은 두려움을 유발시키는 마음가짐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언제나 이런 전략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강박적인 행동에 이를 수 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두려움에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령 라디오를 들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패닉에 빠진다.




6. 다른 사람과 함께하여 두려움을 줄이기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쇼핑을 할 때는 늘 배우자나 자녀를 동반하고, 배우자가 출장을 가면 친구더러 자기 집에 와서 자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전략 역시 단기적으로는 일상이 그런 대로 돌아가도록 해준다. 그러나 우리가 ‘○○○한 일을 할 때는 꼭 ○○○가 필요해’와 같이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 한 가지 방식 밖에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상황은 위험해진다. 늘 ‘나는 ○○○가 필요해’, ‘○○○가 없으면 되지 않아’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 혹은 사물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서 무엇인가를 할 능력은 점점 더 줄어든다. 이런 경우 두려움 뒤에 또 다른 모티브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두려움은 사람들의 도움과 주목을 받고, 혼자서 책임질 필요가 없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7. 두려움을 숨기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두려움은 좋지 않은 것이다. 두려워한다는 것은 무능하고 나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려움은 겁쟁이, 비겁한 사람, 마마보이, 실패자라는 말과 가깝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두려움을 숨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신체가 한번 경보상태에 놓이면 바짝 긴장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는 진정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 ‘거의 미쳐버릴 것 같은’ 마음이 든다. 







8. 미루기

많은 사람들은 부담스러운 상황을 자꾸 미룬다. ‘좀 나중에 하자’고 결정하면 단기적으로는 부담이 없어진다. 그러나 이런 전략 역시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없다. 미루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고 싶지 않은 전화, 치과에 가는 것, 귀찮은 연말정산 등은 미룬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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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나는 그에 대해 증오밖에 없었으며, 이 증오란 것은 너무도 강렬한 빛을 발사해서 그 속에서는 사물의 윤곽이 사라져버리는 법이다. 중대장은 내게 그저 앙심을 품은 교활한 쥐새끼 같이만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 나는 그를 무엇보다, 한 젊은이로, 연기를 하는 한 사람으로 보게 된다. 어찌 됐거나 젊은 이들이 연기를 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삶은, 아직 미완인 그들을, 그들이 다 만들어진 사람으로 행동하길 요구하는 완성된 세상 속에 턱 세워놓는다. 그러니 그들은 허겁지겁 이런저런 형식과 모델들, 당시 유행하는 것, 자신들에게 맞는 것, 마음에 드는 것, 등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그리고 연기를 한다.
...
그런데 내가 그와 같은 젊은 연기자를 만난 것이 처음이었을까? 엽서 건으로 사무국에서 심문을 받을 때 나는 겨우 스무살을 갓 넘겼었고 나를 심문하던 이들도 나보다 한 두살 밖에 더 많지 않았다. 그들 또한 무엇보다 우선, 자신들이 가장 탁월하다고 믿는 가면, 즉 금욕적이며 강직한 혁명가의 가면 아래 자신들의 완성되지 않은 얼굴을 감추고 있는 어린아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르케타는 어땠는가? 구원의 여인 역할을, 그것도 잠시 유행하는 싸구려 영화를 보고서, 그 역할을 연기하려 들지 않았던가? 또 제마넥은, 갑자기 온 마음을 다하여 도덕이라는 것에 열광했던 그는? 그것은 어떤 배역이 아니였는가? 그리고 나는? 역할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이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나는 혼란스러워 하며 이 역할 저 역할을 왔다갔다하던 끝에, 결국 어디로 도망쳐야 하나 어쩔 줄 모르다가 붙잡힌 것이었다.


젊음이란 참혹한 것이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이 희랍 비극 배우의 장화에 다양한 무대 의상 차림을 하고,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면서 광적으로 신봉하는 대사들을 외워서 읊으며 누비고 다니는 그런 무대이다. 역사 또한, 미숙한 이들에게 너무도 자주 놀이터가 되어주는 이 역사 또한 끔찍한 것이다. 네로라는 풋내기, 나폴레옹이라는 애송이, 흥분하여 날뛰는 수많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흉내내는 열정이나 간단하게 맡아버린 역할들은 처참하도록 실제적인 현실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이런 생각을 하면 내 머릿속에서 모든 가치 체계가 흔들려버리고 젊음이라는 것에 대하여 엄청난 분노를 느끼게 된다-그러면서 또 반대로 역사의 불한당들이 한 일이 갑자기 그저 미숙아들의 무시무시한 동요로밖에 보이지 않으면서 그들에 대하여 역설적인 너그러움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미성숙 이야기를 하니 알렉세이가 생각나다. 그 또한 자신의 이성과 경험을 넘어서는 커다란 역할을 연기하고 있었다.
-129~130p


p 105~107

다른 어떤 여인을 향해서도 나는 그러한 감사의 마음은 결코 느껴보지 못했다. 감사의 마음? 무엇에 대해서? 루치에는 우선 우리 모두가 갇혀 있던 저 참담한 사랑의 전망으로부터 나를 끌어내 주었다. 물른 갓 결혼한 스타나 역시 자기 나름대로 이 굴레를 벗어나 있었다. 이제 그는 프라하의 집에 자신을 사랑해 주는 아내,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아내가 있었다. 그러나 그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결혼을 통하여 그는 자신의 운명을 다시 움직이게 만들긴 했지만, 오스트라바로 돌아오는 기차에 오르는 순간 그것은 그에게 아무 소용이 없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루치에를 발견하고서 나도 나의 운명을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운명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았다. 루치에와의 만남은 드문드문이긴 했지만 거의 규칙적이었고, 나는 그녀가 2주일 아니라 더 길게도 나를 기다릴 수 있으며, 그러다가 마치 전날 만났었던 듯 나를 맞아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루치에는 단지 오스트라바의 그 절망적인 사랑 놀이에 기인한 전반적인 구토증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주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내가 졌다는 것을, 그리고 내 검은 표지를 절대 바꾸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2년 이
상을 같이 보내야 할 사람들 앞에서 자꾸만 도망쳐 내 속으로
숨으려 드는 것도 우스운 노릇이며, 내 길을 지킬 권리를 달라
고 외쳐대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도 이제 알았다(그것이 특권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단지 이성과 의지의 차원에 있는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의 잃어버린 운명에 대해 내가 속으로 흘리는 눈물은 마를 수가 없었다. 이 내면의 눈물, 루치에는 그것을 마치 마술처럼 가라앉혀주었다. 내 곁에 그녀를 또한 그녀의 삶 전체를 느끼기만 하면 되었다. 그녀의 삶 속에서는 세계동포주의와 국제주의, 철저한 경계와 계급 투쟁,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정의에 대한 논쟁들, 전략과 전술이 동반된 정치,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역할도 하고 있지 않았다.

바로 이런 일들(너무도 전적으로 그 시대의 것이어서 곧 그용어조차 뜻모를 소리가 되어버릴 일들)을 하다가 나는 파멸했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바로 그 일들에 계속 집착하고 있었다. 여러 위원회에 소환되었을 때 나는 나를 공산주의로 이끌었던 동기를 수십 가지는 늘어놓았지만, 이 운동에서 무엇보다 나를 매혹시키고 심지어 홀리기까지 했던 것은 내 시대의 (또는 그렇다고 믿었던) 역사의 수레바퀴였다. 그 당시 우리는 정말로 사람이나 사물의 운명을 실제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것은 대학에서 특히 더했다. 당시 교수단에는 공산당원이 한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에 처음 몇 년 간 학생 당원들이 교수 임용도 결정하고 교육 개혁이나 교과 과정 개편도 결정하는 등 거의 단독으로 대학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맛보았던 그 도취는 보통권력의 도취라고 불리는 것인데, 나는 그러나 (약간의 선의를 가지고) 그보다 좀 덜 가혹한 말을 고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는 역사에 매혹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역사라는말 위에 올라탔다는 데 취했고, 우리 엉덩이 밑에 말의 몸을 느꼈다는 데 취해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결국 추악한 권력에의 탐욕으로 변해 버리고 마는 것이었지만, 그러면서도 (인간의 모든 일에 여러 가지 면이 있듯) 거기에는 동시에 아름다운환상이 있었다. 사람이(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이제 역사의 바깥에 머물러 있거나 역사의 발굽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역사를 이끌어나가고 만들어나가는 그런 시대를 우리, 바로 우리가 여는 것이라는 그런 환상이 있었다.


나는 그 역사의 수레바퀴를 떠나서는 삶은 삶이 아니라 반죽음이며, 권태이고, 유배이고, 시베리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그 시베리아에서 여섯 달이 지난 후) 지금 나는 갑자기, 존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완전히 새롭고 예상치도 못했던  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내 앞에는 이제 전속력으로 비상하는 역사의 날개 아래 가리워져 있던 초원이 펼쳐지고 있었다. 잊혀져 있던 일상이라는 초원, 소박하고 가난한, 그러나 충분히 사랑할 만한 한 여인, 루치에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
 루치에, 그녀가 이 역사의 거대한 날개에 대해 무엇을 알 수있었겠는가? 그 날개 소리가 희미하게 그녀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면 아주 어렴풋이 짐작이나 했을까. 그녀는 역사에 대해아무것도 몰랐다. 그녀는 역사 아래에서 살고 있었다. 역사에 대한 갈증도 없었다. 거대하고 일시적인 일들은 전혀 몰랐고, 다만작고 영원한 자신의 문제들을 위해 살았다. 그리고 나, 나는 그렇게 단번에 해방이 되었다. 그녀는 나를 자신의 회색빛 낙원에데려가려고 찾아온 것 같았다. 그리고 한순간 전만 해도 그렇게두렵게 보였던 그 발걸음, 역사의 바깥으로) 나를 이끌었던 발결음이 갑자기 내게 안도와 행복의 발걸음이 되어 있었다. 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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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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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다섯살이였고, 순진했으며, 젊음 특유의 타협을 모르는 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
나는 자랑스럽고 복잡한 내 여성성을 원래 모습 그대로 살아내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너는 여자니까 라는 말은 무엇에 대해서든 유효한 이유가 아니라고 거부하겠다고. 나의 가장 진실되고 가장 인간적인 자아로 살고자 애쓰겠다고. 하지만 세상의 인정을 구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억지로 변형시키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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