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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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제목부터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 받았다고? 판타지 소설인가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하지만 막상 책을 넘겨보니 저주 자체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구성했던 이야기에서 비롯된 일들을 저주라 치부하며 그 벽장에 자신을 가둔 어떤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소설을 소개하는 글 중에 "내가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지 않는 법, 그것은 내가 속한 세상을 점점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았다. 외려 저주 속에 머물다 보면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둠 속에서 살아왔던 이들에게는 외부의 적이 있어야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환각이라 할지라도 그 거짓말이 사람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저주받은 희망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위험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비밀과 거짓말 그리고 죄책감이 만들어낸 결과가 어떤 모습일까. 그 위험한 희망이 축복인지 더 큰 저주인지에 대한 답은 이 책 속에 있다.

이 이야기는 정말 사소한 저주에서 시작된다. 한 초등학생에게 해리포터에서 저주받은 것처럼 우식 또한 저주받았느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 인생의 고민이 탈모에 국한되어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근근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단하게 악착같이 살아가야 겨우겨우 유지할 수 있는 삶이었다. 어린 시절 생각했던 역사적 사명? 인류 공영에 이바지? 해나 안 끼치고 살면 다행이지 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그런 우식에게 어쩌다 세 번의 자가 격리 명령이 떨어지며 의도치 않게 폐를 끼쳤다. 바이러스 취급을 당하며 사회적 낙인을 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우식은 휴식 기간 여러 가지 일을 하던 중 휴먼북인 <휴먼북 조기준>이라는 책을 읽게 된다. 격리 전문가 조기준? 이보다 더 시의적절한 책은 없는데, 왜 최저가 할인 북 코너에 분류된 걸까? 그렇게 열람하게 된다. 소년의 과거와 우식의 현재가 교차하며 뭔가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는 가전 수리 서비스센터에서 함께 일했던 선배 마태공과 함께 온라인상의 흑역사를 지워주는 디지털 세탁소 ‘더 빨래’를 운영하고 있다. 선한 의도에서 시작되었지만 늘 윤리적이지는 않았고, 공공의 선에 부합하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때론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일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기도 해서 그것을 외면하고 이득을 얻기도 한다. 결국에는 이 세탁소가 향하는 길이 도움이 필요한 피해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명으로 합리화하기도 했다. 어딘가 어색한 조기준의 이야기, 마태공 선배의 전국 각지 사과 소동이 벌어지며 궁극적으로는 저편에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풀어나갈 퍼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길을 벗어날 용기가 없던 우식에게 사실 팬데믹이라는 위기는 ‘변화의 기회’가 될지도 몰랐다.

소설은 질병에 얽힌 사람들과 과거의 죄책감에 대한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어 더욱 흥미를 유발한다. 비극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가 잘 팔리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처럼 자극은 언제나 손쉬운 선택지다. 나도 그와 같은 글을 써보려 시도도 해봤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에서 우러나지도 않았고 손끝이 움직이지도 않았다. 내가 쓰려고 했던 건 자극적인 것에 반응을 유도하는 글이 아니라 나의 솔직하고 진솔한 마음을 담은 글이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누군가의 의도에서 비롯된 자극적일까. 그래서인지 소설은 무엇이 진실인지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사실 소설에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우리가 그 어두운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 사실에 대해 불편해하며 외면하는 척하면서도 끝내 그 이야기의 전말을 알고 싶어 하는 우리의 모순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때론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의 휴먼북은 어떤 모습일까. 등급에 따라 나눠져서 조금은 충격을 먹을 테지만 나의 휴먼북이 살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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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양주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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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다큐멘터리 <양양>에서 못다 한 마음, 그리고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다큐멘터리의 내용뿐만 아니라 비하인드,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들까지 모두 실어내었다. 그뿐만 아니라 고모와 자신,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조금 더 촘촘하게 다룬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밤, 저자 양주연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자살한 누나가 있음을 알렸다. 뒤이은 말이 주연의 마음을 흔들었다. 너는 고모처럼 되지 말아라. 양씨 집안 여자들은 모두 불행했으니까. 그녀는 방황하던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다고 했다. 죽음을 결심할 만큼 힘들었지만 실행에는 옮기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 후 보지도 못했던 고모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막연한 호기심일까. 두려움일까. 당연하게 불행한 존재는 없다. 양씨 집안의 여자들은 불행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모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 보기로 했다.

제목 '양양'은 고모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녀가 나름대로 만들었던 그녀를 호명하는 이름이었다고 한다. 물론 양씨 집안의 여성들을 상징하기도 했고, 양지영과 양주영을 합친 말이기도 했다. 다른 이들은 이 이름을 듣고 물이 흐르는 느낌, 익명의 여성 같다고도 했지만, 각자의 느낌을 열어줄 수 있는 이름이라는 생각에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자신이 촬영하면서 다큐멘터리의 주인공들은 항상 자기 삶이 특별하지 않다고 했다. 특별한 삶은 무엇이고 특별하지 않은 삶은 무엇인지 고민하다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가 담고 싶었던 건 특별한 사람을 다루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이 특별한지를 묻는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고모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고모를 어떻게 카메라에 담을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막막했으나 질문하는 영화로 구성하기로 한 것이다.

고모의 삶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우리 집안의 비밀을 들추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고모를 들여다보기 전에 할머니의 삶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는데, 할머니는 평소 정상성과 평범한 삶을 강조했다고 했다. 그 생각이 설명될 수 없는 죽음으로 인한 두려움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하고 의문을 품었다고 했다. 그래서 더더욱 고모의 시간을 되찾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고모에 관해서 물어볼 용기는 없었지만 이름과 얼굴만이라도 알고 싶다는 생각에 사진첩을 펼쳐보게 되었다고 한다. 고모를 닮지 말아야 할 존재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를 설득해 인터뷰하며 가족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으나 특별하게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고모의 주변 사람들에게 찾아가 아무도 알지 못했던 고모의 삶을 조금씩 채워가기 시작했다. 사진으로만 남았던 어린 시절 고모의 이야기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고모의 이야기로 확장되며 '양지영'이라는 사람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모르는 고모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과거가 가까워지는 것 같다고 했다. 고모의 죽음의 이유를 추적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고모의 목소리를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고모가 이 이야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좋아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날의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고모의 시선과 목소리로 마무리하고 싶었다고 했다.

카메라 뒤편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보여줌으로써 <양양>이라는 영화의 진정한 연출 의도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누군가는 망자의 잊힐 권리를 부정하는 이야기라고 말하며 불편해할 수 있을 지점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타인에 의해 의도적으로 잊힌 여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또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그녀의 이름을 가족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에 다시 새겨놓음으로써 그 존재가 여기 있었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저자는 그 과정을 거치며 사랑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가 다른 새로운 길목에 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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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계 레볼루션 - 기술 패권 시대, 변화하는 질서와 한국의 생존 전략
이희옥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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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제조 2025’가 막을 내리는 이 해는 지난 10년 동안 중국이 제조업·반도체·배터리·AI·전기차 등 첨단 산업 전 영역에서 체급을 키워온 시점이다. 저자는 이 전환점을 통해, 세계가 무역 경쟁의 단계에서 신패권 재편의 국면으로 진입했다고 진단한다.

중국은 지난 십 년간 내수 확대·기술 국산화·공급망 내재화 전략을 통해 스스로를 패권 레이스의 행위자로 격상시켰다. 이에 맞서 미국은 더 이상 중국을 ‘시장’이자 ‘생산기지’로 보지 않는다. 대신 제재·무역통제·기술봉쇄·동맹 리쇼어링 전략을 통해 미중 경쟁을 ‘국가 전략의 프레임’으로 끌어올린다. 즉, 싸움의 무대는 관세 뿐만 아니라 기술·표준·공급망·AI·동맹 체계로 이어진다. 기술 패권의 시대에서 한국은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 정치, 외교, 경제, 기술 분야의 최고 전문가 4인의 대담을 묶어낸다.

이전과는 다르게 중국의 반도체·클라우드·데이터 접근·AI 모델 개발을 연동해 압박하는 것은 기술 견제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AI 기반 지식·군사·감시·정치 질서의 주도권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전략이다. AI는 기술경쟁을 넘어서 핵무기급 억제·통제 시스템의 자산이다. 래서 AI를 선점한다는 것은 곧 국가 권력의 미래 구조를 선점한다는 뜻이며, 바로 그 지점에서 미국과 중국은 산업 경쟁 뿐만 아니라 미래 권력 구조를 두고 치열하게 전투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한미경중(韓美經中)’ 전략을 통해 균형을 유지하며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은, 더 이상 균형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국면에 들어섰다. 저자는 한국이 마주한 두 가지 구조적 난제를 제시한다.

-연루의 딜레마: 원치 않는 전쟁·분쟁에 끌려 들어갈 위험

-방기의 딜레마: 동맹국이 우리를 버리고 떠날 위험

한국의 선택지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전략을 설계할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기술 자립, 공급망 전략, 동맹 재구성, AI 생태계 구축, 산업 정책 재정비 등 책이 제안하는 방향은 ‘방향 제시’보다는 ‘구조적 질문’에 가깝다.

이 책의 장점은 미중 패권 전환을 경제·기술·외교·안보라는 네 축으로 고르게 분석하며, AI와 핵무기 결합 가능성, 기술 표준 전쟁, 동맹의 재편과 같은 현실적 주제를 깊이 있게 다뤘다는 데 있다. 다만, 비평적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의 ‘기술 자립 전략’이 슬로건 이상의 구체성으로 전개되지는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금의 상황은 위기이자 기회인만큼, 한국이 ‘줄타기’에 익숙해진 외교를 반복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미중 패권 경쟁의 주변국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질서를 설계하는 주체로 전환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국가 전략을 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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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몸으로 살기 - 나를 다듬고 타자와 공명하는 어른의 글쓰기
김진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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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몸으로 살기>.

이 책의 원래 제목은 '무적의 글쓰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가 의도한 '무적'은 싸워 이긴다는 뜻이 아니다. 적을 만들지 않는 글쓰기, 더 나아가 적도 친구로 만드는 글쓰기다.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선 먼저 ‘쓰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부딪히고 흔들리며 변화하는 몸, 삶이 그대로 스며든 몸. 그런 몸으로 써야 살아 있는 글이 나온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이 책은 저자가 6년간 연재한 칼럼 「말글살이」를 엮은 글이다. 글쓰기의 기술보다는 ‘글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진공 속이 아닌, 현실의 얽힘 속에서 글을 쓴다고 말한다. 모든 게 정리되고 평화로운 시간은 없으니 결국 흔들리면서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완벽히 닫힌 글보다 배회하고 찾아 헤매는 글이 더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그런 글엔 삶의 두께가 두껍고 몸에 힘을 빼 더욱 솔직하고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좋은 글은 그 글의 주인이 보고 싶어지는 글이다.” 이 한 문장은 이 책을 관통한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누군가에게 닿기 위한 일이지만, 그 전에 상대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상상하며 쓰라”라고 말한다. 추상에서 구체로, 구체에서 다시 추상으로 오가며, 말에 가려진 말들을 찾아내는 과정. 멋진 말보다 단순한 문장이 더욱 힘을 가지는 것도 그 이유인 것 같다.

저자는 ‘나쁜 글’을 쓰라고 권한다. 여기서 말하는 나쁜 글이란 도덕과 상식에 갇히지 않은 글이다. 허를 찌르고, 익숙한 틀을 흔드는 글. 글감은 어디에나 있지만, 문제는 스스로 세계를 좁히는 마음이다. 그는 “무한한 세계에서 무한히 열린 가능성을 스스로 닫지 말라”고 말한다. 낯선 언어로 나를 새로 써보려는 시도, 초고에 갇히지 않으려는 노력. 결국 글쓰기란 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 '쓰는 몸' 훈련이다. 언어에 대한 그의 관점도 흥미롭다. 언어는 세상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세상을 만들어내는 힘이라고 했다. 그 문장은 마치 내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생각한 바를 글로 다 담아내지 못하는데 왜 '글'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기존에 생각했던 것들이 주입된 고정관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라는 것이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나름의 자유를 글 안에서 펼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학습된 '글쓰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이질적인 것들이 부딪히며 만들어지는 공동의 결과물인데, 왜 글쓰기만은 하나의 단정한 생각으로 정리되어야 하냐는 생각이 모여 나 또한 지금과는 다른 '글쓰기'를 실천해 보아야겠다.

읽기에 대한 태도 역시 인상 깊다. 저자는 “포도주의 특징을 알기 위해 한 통을 다 마실 필요는 없다”라고 말한다. 글을 쓰기 위해 억지로 읽는 것보다 즐거움을 위해 읽는 걸 권한다고 강조한다. 읽는 즐거움이 결국 글의 숨결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좋은 글이라고 읽어보라고 추천하는 글이 항상 나에게 재미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완독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저자가 그랬듯이 읽는 과정이나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책 읽는 '즐거움'을 찾는 게 더 우선이라는 것이다. 읽는 것 자체가 경험하지 않은 경험을 경험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나만의 방식으로 책을 '즐겁게' 다니엘 페나크 방식으로 읽는 것을 추천했다. 쓰는 몸을 위해서는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가지고 있던 읽는 것에 대한 강박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이 책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부딪히는 고민에 대해서 언급한다. 잘 쓰려고 할수록 그 안에 담기지 않으며 그 무게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언급한다. 완성된 문장을 향한 집착보다, 미완의 움직임 속에서 자신만의 문체를 찾아가라고 말한다. 글은 완성되는 게 아니라 늘 다시 써내려 가는 것임을 강조한다. 무엇이든 해보고 써 내려가고 거듭 단련하여 자신을 쓰는 몸으로 만들어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자기에게 멀어질수록 자신을 잘 알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써내려 가는 과정, 쓰는 몸으로 살기는 그렇게 하나, 하나 체득할 수 있는 단련의 기록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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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피플 - 개정판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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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하지 않은 인간의 형태 혹은 인외 존재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다. 인간은 본래 불완전하기에 서로를 수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때로는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한다. 우리는 나와 다른 것을 배제하고, 비슷한 것끼리 어울리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누군가를 밀어내는 일은 정당화될 수 없다. 너무 당연해서 언급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는 '당연함'이 과연 모두에게 내재해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소설은 끈질기게도 옆집과 옆집이 연결되어 있지만 별다른 관련성은 없다. 그저 사람 사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사람이 아닌 존재가 비밀을 품는 그런 이야기 같기도 했다. 도리어 그런 괴상한 사건들은 해프닝이 아닐지 여길 정도였다. 신비한 힘일까 우연의 일치일까?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일지도 몰랐다. 모든 것이 이어져 있지만 아무것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그런 현대사회의 단면이 담겨있었다.

〈박쥐 인간〉이나 〈쥐들의 지하 왕국>에서의 배제된 존재들은 인간의 경계 밖에 있기에 인간의 불완전함을 더 부각하는 장면이었다. 이웃이지만 연결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현실의 단절과 소통 부재가 어떻게 그렇게 깊어졌는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타인과 다른 점이 아니라 같은 점만을 바라본 결과가 어떤 결말을 초래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댓글부대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는 단편 <삶어녀 죽이기>에 눈길이 갔다. 익명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 자행하는 폭력은 너무나도 쉽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정말 무겁고 생채기를 마구마구 낸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 비난에 두려워하기도 한다. 소설은 세상 곳곳을 비추며 그곳의 어둠과 빛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심지어는 그림자까지도.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나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까지도 생각하게 돼서 조심스러워졌다. 소설이 차분히 이어지고 연결성이 있는 듯 없는듯한 느낌이 특이하게 다가왔다.

소설은 다양한 방식들로 사람들과 이 세상을 그려낸다. 이 열 편의 이야기가 다른 방향을 보여주는 것 같았지만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을 제안하기 위함인 것 같았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확실하지 않고 애매모호했던 이유는 그 '답'이 우리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타인과 다른 모습을 한 이가 세상에 이해받지 못하는 그런 모습은 주변에서 너무 흔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성을 잃고 비슷한 모습이 되어가는 현실이 미래에도 이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모습에 씁쓸해지면서도 나 또한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반성하게 된다. <뤼미에르 피플>의 사람들은 우리와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특히 장강명 작가님의 전 소설에서의 인물들이 등장해서 너무 반가웠고, 책장이 덮여도 작가님의 머릿속에서는 이 인물들은 여전히 살아있는다는 것을 느꼈고 애정도 느껴져서 조금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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