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스러운 돌봄 - 잘 키우려 할수록 나빠지는 불행에 대하여
신성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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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 능숙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이 책의 출발점이자 수많은 부모가 품고 있는 이 이상은 현실이라는 벽과 충돌한다. 부모들은 자신만의 교육 철학을 단단히 견지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체제에 자발적으로 순응하고 세상의 속도를 아등바등 따라잡아야만 아이 하나를 겨우 건사할 수 있는 구조다. 이 시대에서 '부모 되기'는 결국 시대가 요구하는 '표준화된 경로'를 따라갈 수밖에 없게 만들며, 개인을 자기모순에 빠뜨리고 묘한 절망감을 안겨준다. 내 아이가 남보다 뒤처질까 봐 두려워하는 상실감은 부모를 고립된 선택으로 내몰아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 만든다. 돌봄은 결코 개인의 애씀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영역임에도, 수많은 '나'들은 각자의 최선이라는 이름 아래 불안이라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내 아이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은 본의 아니게 공동체를 도외시하는 '탐욕스러운 돌봄'으로 변질된다.


이러한 불안과 압박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장이 바로 학교다. 체육 활동이 점점 사라지는 학교의 이면에는 학령인구 감소뿐 아니라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이기적인 민원이 얽혀 있다. 줄 세우기식 평가에 대한 항의, 심판 판정 불만, 교사의 안전사고 부담, 그리고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과 응원 소리를 ‘소음’이라 규정하는 주민들의 민원까지 맞물려, 결국 운동회는 사라지고 말았다. 수학여행과 소풍 같은 체험 활동도 안전사고 책임 논란과 각종 민원으로 대폭 축소되거나 폐지되는 추세다.


아이들이 교실 밖에서 부딪히고 땀 흘리며 경쟁할 기회, 낯선 환경에서 갈등을 조율해 보는 귀중한 사회화의 장이 통째로 증발해 버렸다. 이는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낯선 세계와 부딪히고 '건강하게 실패할 권리'를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결과를 낳았다. 실패를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들은 작은 좌절 앞에서도 크게 흔들리며, 타인과의 건강한 갈등 해결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타인과 공존하기 위한 '시민적 자존감'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상처받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적인 '개인적 자존감'으로 변질되어 상대를 굴복시키는 무기가 된다.


이 책의 탁월한 지점은 개인의 양육 경험을 사회 구조와 연결한다는 데 있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능력주의와 불평등의 실체를 가족의 일상 속에서 포착한다. 젊은 의사들의 파업, 한 정치인의 자녀 특혜 등의 사례는 사회가 얼마나 철저히 계급화되고 파편화되어 있는지를 드러낸다. 아버지의 배경이 아닌 개인의 능력으로도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소득과 지식, 서울과 지방의 교육 격차가 기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부모의 자본이 아이 세계의 크기를 결정짓는다.


가장 뼈아픈 현실은 구조적 모순을 해결해야 할 국가와 사회가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체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시민들 간의 날 선 갈등뿐이다. 이 책은 부모에게 주어진 과중한 책임을 위로하면서도, 그들이 놓치고 있는 ‘훈육과 사회화’의 공백을 냉정하게 직시한다. 생존 경쟁에 지쳐, 혹은 아이의 자아를 다치게 할까 두려워 ‘건강한 악역’을 피할 때, 그 청구서는 고스란히 교실로 돌아온다. 공교육의 마비는 부모조차 아이를 시민으로 길러낼 여력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비극적 초상이다.


나아가 저자가 제시하는 ‘차별 없는 시대’라는 이상은 따뜻하지만, 복잡한 현실 앞에서는 다소 이상적으로 들린다. 타인의 모든 차이를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는 온정주의는 때로 현실의 규범과 충돌할 수 있다. 유럽 사회의 경험처럼 다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 시민적 규범이 약화되었고, 그로 인해 오히려 안전과 평등이 위협받았던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다양한 인종을 포용하되, 헌법적 가치와 성평등, 시민 규칙과 같은 한국의 문화를 따를 경우에만 공존이 가능하다. 약자를 향한 환대와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려는 단호함은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아이들에게, 그리고 이 사회에 물려주어야 할 것은 ‘상처 하나 없는 완벽한 무균실’이 아니다.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광장으로 나와 ‘기본적인 매너’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탐욕스러운 돌봄’의 좁은 요새를 허무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타인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고, 순서를 기다리며, 갈등 속에서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시민적 매너. 이 평범한 덕목이야말로 진짜 어른을 길러내는 출발점이며, 파편화된 사회를 다시 세울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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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불안하기 때문이야 특서 청소년문학 46
임지형 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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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청소년기를 지나왔지만, 어른이 되면 마치 그 시절의 지독했던 열병을 단 한 번도 겪지 않은 사람처럼 굴곤 한다. 사회가 복잡하게 고도화되면서 아이들을 둘러싼 외형적인 환경은 분명 좋아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피어나는 불안의 크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성적이라는 견고한 지옥, 관계라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아이들은 철저히 혼자가 되어 자신의 불안을 감당해 내고 있다. "미래는 너무도 길고, 현재의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이 무력한 깨달음은 청소년들을 짓누르는 불안의 씨앗이 된다. 우리는 꾸준히 힘듦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에게 방황 끝에 남겨진 '쉬었음 청년'이라는 이름표를 쥐어주어서는 안 된다.


청소년 소설 《사실은 불안하기 때문이야》는 그런 불안감에 맞서 청소년들을 응원하기 위해 쓰인 글이다. 이 책은 청소년이 느끼는 불안을 틀렸다고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불안이 발목을 잡는 무거운 추가 아니라, 앞으로 밀어내는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네 편의 이야기가 모두 물음표로 끝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각자의 두려움이 동화처럼 속 시원하게 끝나지 않는 것이 곧 불안의 진짜 얼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세상의 모든 불안을 없앨 수는 없지만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우리를 옭아매는 무게추가 아니라 무너진 세상의 끝에서도 나를 지키고 움직이게 만드는 또 다른 가능성일지 모른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세상의 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갑옷의 모양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깨닫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 그것뿐이었다." 라는 말처럼 단단한 마음을 선물해준다. 완벽한 미래가 없더라도 직접 발로 뛰어 나아가기도 하고, 상처가 욱신거릴 때는 서로의 손목에 별을 붙여줄 수도 있다. 서로에게 어둠이 젖어 들었다면 빛을 비춰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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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 - 말보다 깊은 눈빛, 양조위의 삶·사랑·작품
주성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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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홍콩 배우 양조위>는 한 배우의 전기이면서 홍콩영화의 연대기를 그린다. 그도 그럴 것이, 책 곳곳에는 홍콩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이 스며있다. 당대 홍콩영화를 빛냈던 감독과 배우를 소환하며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양조위의 새로운 면을 꺼내 든다. 빽빽할 정도로 채워진 글들은 그의 필모그래피 뿐만 아니라 시대의 공기까지 풍기게 만든다. 특히 책의 바깥 여백에 글을 배치한 편집 방식은 독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글의 정성이나 세심한 배려에 '아끼는 마음'이 가득 묻어나온다.


저자는 양조위의 연기를 한 문장으로 정의 내리지 않는다. “내재화된 감정연기를 오직 시선과 호흡, 그리고 최소한의 제스처만으로 작품의 정서를 이끌어간다.”라는 문장으로 그의 다채로움을 표현한다. 세계 영화사의 대배우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안겨준다고 말한다. 양조위의 시간이다.


홍콩영화의 황금기를 이끈 네 배우, 장국영, 유덕화 주윤발 그리고 양조위. 그중에서도 주윤발과 양조위는 화려했던 전성기의 얼굴이었다. 유덕화가 장르 그 자체였다면, 양조위는 장르에 귀속되지 않는 배우였다. 멜로와 누아르,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홍콩의 운명을 관통하는 작품 속에 자리했다.


홍콩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감독은 바로 '왕가위'다. 그의 영화는 홍콩을 배경으로 한다. 1997년 반환을 전후한 불안과 상실, 그리고 2046년이라는 상징적 시간은 소재가 된다. ‘유통기한이 정해진 도시’에서 기억은 미래로 유예되고, 사랑은 끝내 완성되지 못한 채 반복된다. 영화 속 이별은 곧 영국과의 결별이며 새로운 체제와의 관계는 여전히 불확실한 채로 남았다.


'해피투게더'의 대사는 먼저 떠나간 장국영에 대한 그리움을 더한다. "네가 떠난 지 10년이 됐지만 내 휴대폰에는 여전히 네 번호가 저장되어 있어" " 우리 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 장국영의 거대한 빈자리를 메우며 시대를 건너온 배우가 바로 양조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양연화. 양조위와 장만옥이 만들어낸 '로맨스'는 여타 전통 멜로와는 차이가 있었다.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묶어두는 인물들, 말하지 못한 감정이 화면의 여백을 채운다.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온다’라는 말처럼 시대의 변화가 녹아 있다. 낡은 윤리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감각이 도래하는 길목의 진통을 가장 우아하게 담아낸 기록이다. 제목은 과거를 지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미래를 향한 희망을 품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또한 색, 계는 양조위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 작품이다. 냉혹한 권력자이면서도 연약한 인간의 결을 동시에 지닌 인물. 공공의 적이지만 동정심을 자아내는 복합적인 존재를 설득력 있게 완성해 낸다. 그의 선한 얼굴에서는 악한 역할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 작품에서는 또 다른 면모를 선보인다. 


책은 말한다. 홍콩영화라는 개별적 개념은 쇠퇴했을지라도, 홍콩 정신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오래가는 것이 진정 강한 것이라고 믿음처럼, 유덕화와 양조위가 존재하는 한 홍콩은 여전히 현재형이라는 주장이다. 양조위는 왕가위의 시간을 살았고, 동시에 그가 경험하지 못한 미래를 살아가고 있는 배우다. 과거의 눈부신 장면들이 오늘에도 유기체처럼 숨 쉬는 이유는 그가 모든 시대를 살아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배우를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로 마무리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회고록처럼 정리된 문장들은 그를 이미 완결된 존재처럼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를 풀듯 책에서는 아직 진행형으로 나아가고 있는 양조위에 대한 경의의 표현을 더한다. 한 시대를 살아온 양조위가 계속해서 홍콩 영화를 빛내주고, 그 시절의 홍콩영화가 되살아나길 바라는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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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 시대의 귀환 -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과 무한 각축의 시작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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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저서 『야만시대의 귀환』은 우리가 그간 애써 외면해온 대한민국 사회와 국제 질서의 어두운 이면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드는 문제작이다. 저자는 20세기 말부터 세계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구조적 한계에 이르렀음을 지적하며, 그 공백 속에서 국가주의와 인종주의, 무한 경쟁의 논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현상을 ‘야만의 귀환’으로 명명한다. 그의 비판은 정치권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사회 내부에 깊이 뿌리내린 승자독식의 사고방식과 타자에 대한 배타성까지 아프게 파고든다.


저자가 분석하는 국제 정세의 핵심에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쇠락이라는 진단이 자리한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본격화된 미국의 ‘미국 우선주의’는 이러한 분석이 단순한 이론적 추론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 압박, 관세를 외교적 무기로 활용하는 행보는 과거 ‘세계의 경찰’로 불리던 미국의 모습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박노자는 이러한 변화가 국제 사회 전반에 각자도생의 논리를 확산시키고, 국가 간 경쟁을 더욱 거칠게 만들 것이라 경고한다. 제국이 질서 유지의 비용을 동맹에 전가하기 시작할 때 그 질서가 흔들린다는 그의 진단은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국제 뉴스들과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그러나 저자의 분석이 ‘대안’의 영역으로 넘어갈 때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박노자는 미국 중심 질서의 쇠퇴를 전제로 북한과의 적극적 교류와 중국과의 연계를 한국의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탈미국 중심적 사고의 가능성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안보와 체제 선택이라는 현실 정치의 조건 속에서는 상당한 위험을 동반한다. 따라서 현실 정치에서는 이상적 방향성뿐 아니라 그 실행이 안보와 외교환경에 파급효과를 종합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한미동맹은 대체 불가능한 요소와 동시에 재조정이 논의되는 측면을 함께 지닌 동맹이었다. 이는 강대국에 대한 일방적 종속이라기보다는, 전후 폐허 속에서 안보와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하나의 현실적 선택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미국의 역할과 태도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곧바로 기존 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부정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시에, 중국의 대외적 태도나 북한의 지속적인 핵 위협을 고려할 때, 이들을 곧바로 ‘대안적 파트너’로 상정하는 접근은 안보적 리스크를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판단일 수 있다.


또한 체제의 문제 역시 단순한 이념 대립의 차원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의 축적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유민주주의와는 가치와 운영 원리에서 뚜렷한 차이를 지닌, 다수 국가에서 심각한 한계를 드러냈던 체제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특정 이념에 대한 감정적 거부라기보다, 경험적 현실 인식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야만시대의 귀환』이 던지는 문제의식 자체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박노자가 지적하는 우리 사회의 내면적 야만성, 즉 학벌주의, 비정규직 차별, 약자에 대한 혐오와 같은 구조적 문제는 분명 성찰과 개선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이 책은 개인과 사회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경쟁의 논리를 다시 묻게 만들며, ‘민(民)’의 존재를 중심에 놓고 사회를 재사유하도록 이끈다.


결국 이 책은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독자는 박노자의 해박한 지식과 시대 인식을 통해 “세계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동시에 그가 제시하는 이념적 방향성에 대해서는 “이 선택이 과연 우리의 자유와 안보를 어떻게 보장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학자의 이론은 중요한 참고서가 될 수는 있지만, 시민의 삶을 대신 결정하는 답안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야만시대의 귀환』이 제기하는 문제를 성찰하되, 우리가 축적해온 역사적 경험과 안보 현실, 그리고 자유의 토대를 함께 고려하는 균형 잡힌 시선이야말로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를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지혜일 것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의존해온 질서와 가치가 언제든 흔들릴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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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바다 TURN 9
이수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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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흔히 기대하는 블록버스터 SF의 쾌감과는 거리가 멀다. 사건의 전개는 느리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지루하다. 그러나 이 건조함은 연출의 실패가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거대 기업 SG의 계획을 막기 위해 움직이는 개인들의 시선은 끝까지 작고 무력하다. 그들이 무엇을 밝혀내든, 무엇을 저지하든, 비슷한 프로젝트는 다른 이름으로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다. 이 반복 가능성 앞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허무함이 이 소설이 독자에게 강요하는 감각이다. 세상을 구하는 서사는 이 책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건조함은 소설이 출발부터 실패를 전제로 한 디스토피아 세계를 다루고 있기에 가능하다.


위기가 닥치면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몸을 던지고, 다른 누군가는 그 혼란을 계산서로 바꾼다. 인류의 역사는 이 두 태도가 늘 함께 작동해 왔음을 증명해 왔다. 《사막의 바다》는 2056년이라는 가까운 미래로 우리를 데려가, 그 오래된 공식을 다시 한 번 적용한다. 참패로 끝난 ‘사막의 숲’ 프로젝트가 폐허로 남았음에도, 인류는 멈추지 않는다. 반성은 비용이 되지만, 다음 계획은 투자 설명서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타림분지 지하의 짠물 호수를 파헤치는 ‘사막의 바다’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된다. 기후 위기와 식량 문제라는 그럴듯한 명분은, 자본이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반복해 온 변명에 불과하다.


작품에서 가장 날카로운 문장은 192페이지에 있었다.

“사실이 아닌 말만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아요. 해야 할 말을 안 하는 것도 거짓말이죠.”


이 문장은 정보 조작의 본질을 정확히 찌른다. 문제는 거짓말이 아니라, 선택된 사실이다. 팩트라는 이름으로 잘려 나간 맥락과 침묵 속에서 대중은 손쉽게 방향을 잃는다. 우리는 흔히 선동이 쉬운 이유를 대중의 무지에서 찾지만, 이 소설은 그보다 불편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진실의 복잡함을 감당하기보다, 단순하고 명쾌한 설명에 기대고 싶어 하는 태만. 멀리 떨어진 비극을 ‘어쩔 수 없는 일’로 정리해 버리는 방관. 그 태도야말로 이 거대한 사기극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미 바다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고, 인류는 그것을 통제할 능력을 잃은 상태였다. 빠른 해결책을 요구하는 조급함은 결국 ‘사막의 바다’라는 또 하나의 괴물을 만들어냈다. 소설은 끝까지 낙관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한다. 이 싸움이 세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침묵보다 나은 선택이 되는 순간은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희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무엇을 외면했는지를 분명히 알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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