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소설인 심청전, 해님과 달님, 흥부와 놀부, 토끼와 거북이, 장화와 홍련을 미래에 데려다 놓은 SF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당신의 간을 배달하기 위하여'라는 책을 감상했다. 각자 다른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고전에 SF를 더했다는 새로움만으로도 기대감을 잔뜩 주어 첫 장을 가볍게 펼칠 수 있었다. 각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지만 새로움이 주는 낯섦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 기존의 캐릭터에 매력을 더하고 설령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아도 인생은 그럭저럭 괜찮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 이 5개의 단편이 포함되어 있는 책의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들에서 과거의 것을 나쁘다고 끝내지 않고 어떻게 달라졌을 때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수긍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교훈은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시대의 배경 안에서 좌우할 수 있는 교훈들에 한해서는 약간의 변화를 시도한다. 정해진 삶에서 꿈꾸는 목표를 향해 날아오르는 각 등장인물의 모습이 빛난다.
기념비에도, 기록에도 남아있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가 '관통당한 몸'에서 펼쳐진다. 전시 강간이라는 단어만큼이나 끔찍한 증언이 책에 빼곡하게 담겨있는 이 책은 역사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전시 강간과 더불어 언제나 전리품으로 여겨졌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책을 완독하는 데 있어서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더는 전쟁에서 관통당한 몸이 나오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을 책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제대로 서 있지 않으면 어떤 사람도 보호받지 못한다."전쟁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일어난다."전쟁이 끝나고 나면 전범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지만, 전시 강간에 대한 언급이나 처벌은 극소수에 달한다. 어떤 상황이든 '그 후'가 중요함에도 전쟁이 끝나고 나서 피해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성별, 연령을 구분하지 않고 자행되고 있는 강간 피해자들은 만 명을 넘어가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는 배제되어 재판이 열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2차 가해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전시 강간은 같은 패턴을 보이고 처벌도 미미한 채 묵인되었다. 많은 사람이 강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이제는 전시 강간을 여성의 문제로만 놓지 말고 전범의 영역에서 처벌해야 할 때가 아닐까.
성별을 딴 이름 정책 위에 가려진 진정한 정치는 어디에 있는걸까. 한 선거를 기점으로 정치판에서 남녀 갈등을 다루지 않으면 선거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쓰이고 있다. 직전의 정치에서 이용했지만 어떤 것도 바뀌지 않은 사회를 보고 등을 돌린 층도 상당 수 있었고 그 갈등에 대한 지지층도 생겨났다. 그런 효과를 본 이번 대선에도 선택한 것이 '남녀 갈등'이다. 분명히 남녀 갈등이라는 소재는 정치에 있어서 효율적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고 누군가를 위하지 않아도 따라와 주는 민감한 단어가 되었기에 어떤 당이 정책을 주도하든 용어를 사용할 뿐 그 이상을 펼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누구에게도 맡기기 힘든 한국의 5년, 한동안 이러한 추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책에서는 청년은 항상 외계인 같은 존재로서 이대남, 이대녀, MZ세대 등에 빗대어 표현되어진다. 무슨 말인지 인터넷에 검색해 보아야 하는 단어들인데, 기성정치인들은 이 단어들로 특별한 노력 없이 손쉽게 특정 커뮤니티를 일으키고 그들의 의견에 의존하여 청년 정책을 짜는 행태를 보이는 모습이 어떤 이의 정치적 무관심이 아니라 정치적 배제를 뜻하고 있다고 말이다.자극적인 것이 아니면 바뀌지 않은 판로에 지치는 마음이 가득한 가운데 조심스레 접한 책이었다. '판을 까는 여자들'은 편견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정치판을 그들의 시선에서 풀어낸다. 하지만 편을 나누지 않기 위해 편을 나누는 한켠의 불편함을 고스란히 읽은 사람이 느껴야 했다. 20대 여성들의 의견을 대변할 수 없는 만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문제들을 여과없이 내보냈기 때문에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대선만 되면 특정 색을 입기 껄끄러워져 무채색으로 입게 되는 불편함이 불편하다.*최악과 차악을 피해 의견을 표명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피로 얻은 우리의 의견을 우리의 손으로 버려서는 안된다.
잔잔한 하늘에 갑작스레 찾아온 불행은 아무렇지 않은 마음에 먹구름이 자욱하게 한다. 차디찬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휘날려도 다음으로 나아가는 '아무렇지 않은' 이들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본다. 사회는 언제나 부조리로 가득하고 모두가 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살기 어렵다. 그렇게 삶에 맞춰 살아갈 것인지 나의 바람에 맞춰 살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같은 방향을 선택하여 완만한 길을 선택한다. 전혀 다른 환경이지만 같은 사회에 불안정한 고용환경에서 담담하게 살아가고 또 살아갈 김지현, 김은영, 이지은이라는 사람들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답장이 오지 않더라도 전하고 싶은 말을 기억하고 있는 이모는 혈육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조카들에게 사소한 편지를 보낸다. 그 사소한 편지는 사소한 임무를 건네 한 줄기 빛처럼 내려온다. 임무를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빛났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거창하지 않은 임무를 통해서 무사히 배턴터치를 하고 이어달리기를 마친 이들에게 사소한 편지가 펼치는 마법은 성공적으로 다가왔다.성인의 몸과 나이에 있지만 아직 성인이 아닌, 어른 아이 풀리지 않는 일들과 헤쳐나가기 힘든 문제들은 여전히 어렵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이 책은 혼자의 힘으로 버텨내고 있었던 그들에게 자그마한 날갯짓으로 날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