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방화 TURN 8
조영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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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눈길을 끈다. 노란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진 독특하고 감각적인 색 조화와 중간에 그려져 있는 절취선은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게 만든다. 뜯는 곳을 따라 종이를 뜯어내면 그 속에 숨겨진 주인공의 진짜 내면이나 감춰진 사건의 진실이 드러날 것 같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한, 노란색 인물과 그 뒤의 검은 그림자(또는 타버린 형상) 사이를 가로지르는 절취선이 정상적인 일상과 파괴적인 충동 사이의 위태로운 경계를 드러내고 있다. 독자가 직접 표지를 '뜯는' 행위를 상상하게 함으로써 소설 속 방화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옴니버스 형식의 추리소설이면서 성장 소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기묘한 조합은 각 사건의 단서를 발견했느냐면서 사건마다 조금씩 절취선을 뜯듯 주인공의 내면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소설은 미스터리 범죄 수사극으로 다채롭게 이야기를 펼쳐낸다. 한 강력계 형사의 시점으로 수사 과정을 보여주는데,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강력계 형사 함민은 셜록 함스라고 불릴 정도로 사건을 잘 해결해 나간다. 그런 그에게도 단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사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의 충동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지기 시작한다. 그의 충동은 '방화'였다.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 사건을 기점으로 자책과 자기혐오가 달라붙어 방황에 대한 충동은 거세졌다.


만약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충동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쉽게 해결이 되는 사건도 있었지만, 정황이 너무나 명확해서 뭔가 수상한 낌새를 가지고 있는 사건도 있었다. 수사가 미궁에 빠질 때마다 끓어오르는 충동은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유능한 팀원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게 한다. 범인을 잡아야 하는 형사가 스스로 파괴적인 범죄(방화)의 유혹을 느끼는 역설적인 상황은 극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충동의 근원은 1993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함민은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불을 지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함민은 동급생들과 함께 대전 엑스포에 가게 되었고, 모두가 잠든 밤 담배를 피우다 성냥불을 드럼통에 던지게 된다. 불이 거세게 타오르며 숙소로 옮겨붙는 모습을 본 함민은 친구들을 구조하고 큰 화상을 입게 된다. 학교에서는 '영웅'이라 칭송했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죄책감으로 남는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30년 만에 대전에 방문하고, 그곳에서 당시 화재 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형사와 마주한다. 함민은 그곳에서 어떤 진실을 마주하게 될까.


악마 같은 본성이 있을 것 같았는데 실제는 그러지 않았다. 죄책감이나 자기혐오라는 게 얼마나 큰 그림자를 내고 자기 자신을 악마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진다. 그 검은 그림자는 악마가 아니라 죄책감이 만들어낸 비대한 그림자였다. 그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매우 어려웠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모습도 보여준다. 도움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의 마음이다. 자기 자신을 비로소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은 매우 빛났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각자의 절취선을 품고 살아간다. 그 선을 뜯어냈을 때 마주할 '진짜 나'는 생각보다 그리 괴물 같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위로를 건네고 있다. 이런 따뜻한 추리소설은 처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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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테라피 - 삶이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울 땐
빅터 프랭클 지음, 박상미 옮김 / 특별한서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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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만이 앓는 고유한 신경증이 있으며, 그에 따른 심리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들러의 시대가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으로 고통받았다면, 현대인은 삶의 공허함에서 오는 무력감이라는 더 큰 통증을 마주하고 있다. 소외감과 불안 속에 기계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다, 문득 멈춰 서는 일요일이 되면 어찌할 바를 몰라 불안과 무기력에 빠지는 '일요 신경증'은 우리 시대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실존적 공허로 인한 고통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무의미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상당수의 현대인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을 행복이라 말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은 상담자를 찾아와 더 이상 인생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로고테라피는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는 행위 자체가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것은 심리주의적이나 병리학적으로 왜곡될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직면해야 할 가장 숭고한 실존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다. 간절한 마음으로 내 안에 숨겨진 순수한 동기를 찾아낼 때, 우리는 비로소 삶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를 바꿀 수 있다.


인간의 본능은 더 이상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는 곧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르는 상실로 이어진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타인의 방식에 순응하거나 독재와 전체주의의 요구에 굴복하는 삶이다. 특히 전통의 상실은 젊은 세대에게 더 큰 공허함을 안겨준다. 로고테라피는 이러한 실존적 좌절의 현장에서 의미를 향한 의지를 일깨운다. 마치 북풍이 부는 날 동쪽으로 가기 위해 기수를 북동쪽으로 높이 틀어야만 목표 지점에 착륙할 수 있는 경비행기처럼, 인간 역시 지금의 나보다 더 높은 이상을 품고 스스로를 가능성 있는 존재로 인식할 때 비로소 진정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여야 한다. 행복의 문은 바깥쪽으로 열리기에, 억지로 밀고 들어가려 하면 문은 오히려 닫혀버린다. 행복에 집착할수록 삶의 의미는 멀어지고, 그 과도한 집착은 결국 상실을 부른다. 따라서 우리는 자아실현을 넘어 자기초월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내면이 아닌 세상 속에서 구체적인 과업을 실현하고 타인과 관계 맺을 때 의미는 완성된다. 의미는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현실 속에 존재하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며, 그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고유한 존재는 오직 나 자신뿐이다.


삶에 무의미한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고통과 죄책감, 그리고 죽음이라는 비극적 삼중주조차 올바른 태도로 마주한다면 긍정적인 성취로 바뀔 수 있다. 로고테라피는 두려워하는 대상을 오히려 정면으로 시도하게 하는 역설 의도 기법을 통해 공포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자신의 증세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해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르친다. 결국 치료의 핵심은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삶의 과제에 몰입하는 것이다. 여러 관점에서 삶을 분석하고 세심하게 접근하여, 나만이 가진 고유한 가능성을 실현하는 책임감을 회복해야 한다.


이 시대의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양심을 일깨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삶의 매 순간 숨어있는 요구와 의미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통해 각자의 무지를 자각하게 해야 한다. 자극의 홍수 속에서 유익한 것과 유해한 것을 구별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깨닫는 것만이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길이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기에 오히려 희망이 있다. 나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위대하며, 내 삶의 의미는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삶이 던지는 질문에 회피와 변명이 아닌, 책임 있는 행동으로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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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을 넘은 새 특서 어린이문학 14
손현주 지음, 함주해 그림 / 특서주니어(특별한서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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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서서히 좁아지고, 그 자리에 고층 건물들이 하나둘 들어선다. 유리새의 둥지는 조금씩 숲의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자리에서 유리새는 살아간다. 이 동화의 시작은 인간의 일방적인 도시 확장에서 비롯되지만,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쉽게 정리되지 않는 질문 하나를 남긴다. 우리는 과연 ‘공존’이라는 말을 얼마나 가볍게 사용해 왔는가.


공존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 앞에서는 그 말을 쉽게 꺼내기 어렵다. 여기서 공존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누군가를 밀어낸 뒤에야 내미는 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유리새는 숲이 사라지는 동안 끊임없이 외곽으로 밀려났고, 다른 새들이 떠나는 사이 홀로 남았다. 떠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둥지를 잃고도 그 자리에 남아야 했던 이유는 단 하나, 곧 태어날 생명 때문이었다.


유리새는 까치와 까마귀의 위협 속에서 겨우 둥지를 지켜내고 아기 새들을 키운다. 먹이를 구하러 다니는 동안 몸에 묻은 잿빛 먼지는 결국 아기 새들조차 엄마를 알아보지 못하게 만든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감내한 도시의 때묻음은 아이를 위협하는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보호를 위해 감수한 희생이 오해를 불러온 것이다.


까마귀와의 대화 역시 공존이라기보다는 타협에 가깝다. 살아남기 위해 까마귀 앞에 나선 용기와 그 대가로 감당해야 했던 위험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유리새는 끝까지 둥지를 지켜내고, 아기 새들이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아이들이 도시에서 잘 살아내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와 공존하지 못한 존재, 끝내 타협하지 못한 유리새는 목숨을 잃는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비극을 과장하지 않는다. 유리새의 죽음은 숭고하게 미화되지 않고 조용히 지나간다. 그래서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이 동화를 읽다 보면 ‘유리새’라는 이름이 왜 유리새인지 알게 된다. 도시는 투명한 유리창으로 가득하지만 그 투명함은 새들에게 결코 안전하지 않다.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목숨을 잃는 새들처럼, 유리새 역시 인간이 만든 구조물 앞에서 끝없이 위험에 노출된다. 인간에게는 깨끗하고 안전한 공간이지만, 다른 생명에게는 치명적인 함정이 되는 공간. 이 동화는 그 사실을 설명하지 않고 자연스레 겹쳐 보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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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렁이는 음의 밤
최지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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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골든베르크 변주곡, 글렌 굴드의 음악을 들으며 출근한다고 말한다. 매일 비슷하게 열리고 비슷하게 닫히는 하루 속에서 음악은 유독 시간을 의식하게 만든다.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며, 우리는 반복과 변주를 거듭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위에 음악을 포개며 시작된다.


존재하는 것들은 결코 혼자 존재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맞물려 있고, 우리는 타인의 삶을 경유해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반복되는 일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어딘가에서는 미세하게 달라지고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세상을 비관하면서도 끝내 희망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월은 흐르고 기억은 옅어진다. 그러나 흐릿해진 기억의 틈으로 어떤 음들은 다시 스며든다. 이 책은 문장과 문장 사이에 노래를 끼워 넣으며, 사라진 감정과 잊었다고 여겼던 밤들을 조용히 불러낸다. 읽는다는 행위는 어느새 듣는 일이 되고, 독자는 오래된 음의 밤 속을 천천히 걷게 된다.


저자가 곱씹는 것은 우리 앞에 이미 와 있는 오래된 슬픔이다. 이 책이 말하는 삶은 기대하지 않는 삶이라기보다는, 사람과 삶에 대한 애정에 가깝다. 다소 밀도가 높은 에세이지만, 책에 수록된 음악과 함께 읽을 때 문장은 훨씬 부드럽게 스며든다.


글쓰기가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질 만큼 세계는 끊임없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죽어가며, 도시들은 폐허가 되어간다. 그런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그럼에도 저자는 말한다. 다른 존재는 여전히 우리 삶의 희망이라고. “계속되는 파도가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는 문장은 이 책이 품은 태도를 상징처럼 남긴다.


예쁜 꽃은 자주 피지 않고, 아름다운 경치도 늘 그 자리에 있지 않다. 그래서 시간을 살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된다. 목적지에 끝내 다다르지 못하더라도, 세상에는 그런 곳들이 무궁무진하다. 마음은 타인의 마음을 지나 잠시 다른 존재의 마음을 살아본다.


문학은 시대를 구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책은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음에 불과하지만, 그 음들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일렁이는 밤 속에서도, 그 미약한 음들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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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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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몰리나르. 그 낯선 이름의 정체는 여덟 해 동안 글을 써온 작가다.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에서 다뤄지는 것은 그 시간의 백 분의 일에 불과하다. 바바라 몰리나르가 쓴 모든 글은 찢겼기 때문이다. 다시 쓰이고, 또 찢기고, 몇 번이고 거듭 쓰기를 반복했다. 필요한 만큼 몇 번이고 다시 말해진 문장들은 고통의 극한까지 밀려간다. 의미가 그 근원의 완전한 어둠 속으로, 고통의 모태 속으로 다시 가라앉을 때까지 그녀는 문장을 세심하게 찢었다. 그렇게 조각들이 더미처럼 차곡차곡 쌓여 이 책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녀는 끝임없이 저항하면서도 새로움을 갈구했다. “사랑하고, 성기고, 기다리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릴 정도로 각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소설 대부분은 대화보다는 인물의 움직임을 서술할 뿐인데도 속마음이 들리는 것 같다. 침체된 내면이 겉모습을 숨기지 못하고 튀어나와버린다. 감정이 과잉으로 응축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이 허구인지 허상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누군가의 내면에서 피어난 한 조각이기도 하다.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허무하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이다. 우리는 고통의 흔적과 파편을 따라갈 뿐이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삶에 대한 약간의 정보가 필요하다. 알려진 것은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녀가 살아낸 흔적이 소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해하기에는 충분하다. 이것은 상상도, 꿈도 아니다. 평생에 걸쳐 겪은 고통과 광기에 언어로 맞서 싸운 기록이다. 옮긴이에 따르면, 소설을 읽는 동안 아무리 찾아도 존재하지 않는 출구를 향해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계속 나아가려 애쓰는 한 여성의 실존적 불안과 고독, 광기를 머리가 아니라 몸의 미동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름 없는 작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을 들여다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이 그의 전부를 담고 있지는 않더라도, 분명 그의 일부를 마주했다는 확신이 남았다. 처음에는 차분하면서도 고통스러운 문맥에 발목을 잡혔지만, 뒤로 갈수록 이 사람도 이렇게 힘들었고,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은 작가를 이해하게 만든다.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 위로를 받았고, 그 위로는 다시 글로 돌아왔다. 나 역시 이 애환을 문장으로 풀어가고 싶어진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 생전에 단 한 권의 책만을 남긴 그녀의 이름, 에마 라마단. 뒤라스는 이 작품을 읽고 시문을 썼고, 이 책을 번역하기로 결정했다. 작가로서 힘겹게 쓴 작품을 스스로 폐기하는 고통과, 언젠가 폐기될 것을 예감하면서도 여덟 해 동안 계속 써 내려가는 고통 중 무엇이 더 괴로운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엉망진창이고 고통스럽고, 그러나 아름다운 이 소설을 온전히 살려내기 위해 번역자는 깊이 고민했고 매혹되었다. 그 매혹이 독자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기이하고 고통스러움으로 가득해서 무척 슬프지만 묘하게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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