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의뢰인 TURN 11
가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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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의 시작은 ‘부재’에서 시작된다. 10년 전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안개 속으로 사라진 친구를 잃고 경찰 조직을 떠난 최정훈과 부모의 실종으로 삶의 목적지를 잃은 서연우. 이들이 카페 새벽에서 만난 것은 우연이었을까. 이 평범하지 않은 만남은 우연에서 시작되어 서로의 공통 분모를 발견한 두 사람의 연결고리가 되어주었다. 카페 새벽은 단순히 배경으로 존재하지 않고 인물들이 마음을 열고 다시 만날 수 있는 소망을 품게 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이야기는 10년 전의 사건에서 예상치 못한 단서가 발견되며 급물살을 탄다. 놀랍게도 그 단서는 전혀 별개로 보였던 두 사건 사이에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암시한다. 소설은 범인 추적이라는 장르적 본분에 충실하면서도, 기존 미스터리와는 궤를 달리하는 차별성을 둔다. 자칫 평범하게 흐를 수 있는 서사의 틈새마다 사건의 이음새를 촘촘하게 배치하여, 흩어진 파편들을 하나의 정교한 설계도로 완성해가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소설은 범인 찾기에 몰두하면서도 기존 미스터리 작품과는 조금 다른 차별성을 둔다. 그래서 자칫하면 평범할 수 있는 이야기를 사건 사이에 촘촘하게 배치함으로써 제대로 된 연결고리를 잇는 과정을 거친다. 작가의 이 정교한 설계도는 독자로 하여금 소설에 빠져들게 만드는데, 눈 앞에 펼쳐지는 장면이 생생하게 펼쳐진다는 것이다. 주인공 특유의 통찰력이나 민첩성은 상황을 답답하게 만들지 않는다. 이 시원한 전개가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한다.

이야기는 10년 전의 사건에서 새로운 단서가 발견되며 급물살을 탄다. 특유의 통찰력을 가진 서연우는 외로운 최정훈의 조력자가 되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직접 해결하지는 않더라도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건 상당한 능력이었다. 현장에 직접 뛰어들지 않더라도 사건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연우의 능력은 정훈이 만약 그를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조수로 삼고 싶어 했을지도 모를 만큼 뛰어났다. 놀랍게도 그 단서는 놀랍게도 두 사건에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가리킨다. 그 진실 속의 이야기 무엇이든 마주해야 했지만 그 무게를 감당하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163p 이대로 가다 보면 어떻게든 마주하게 되겠죠. 라는 담담한 말 뒤에 숨겨진 비장함이 읽히는 이유다.

 

진실로 다가가지 못했던 두 인물은 사실 공허함에 시달렸다. 사건에 매달리면서 그런 시간은 사치라고 생각했을 뿐. 137p 무의미한 건 없다고 사실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에요. 라는 서연우의 말처럼 ‘의미‘를 찾아야했다. 사건의 진범을 잡는 것을 넘어 진실을 알고 싶으면서도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확인받고 싶었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토록 다르면서도 비슷한 두 사람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거치며 서로의 새벽을 지켜주는 진정한 조력자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독자는 차가운 미스터리에서 따뜻한 인류애를 느끼게 된다.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쾌감보다, 홀로 고립되었던 두 세계가 맞물리며 서로를 구원하는 순간의 울림이 더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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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훔치는 남자들 - 피해자의 자리와 억울함이라는 무기에 관해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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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국 사회의 젠더 이슈를 '도깨비 도로'에 비유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도깨비 도로는 실제로는 명백한 내리막길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지형과 환경이 만들어내는 착시 효과로 인해 오히려 오르막길처럼 보이는 기이한 구간이다. 저자에 의하면 오늘날 한국 사회가 이와 같다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폭력이 엄존하는 '내리막길'의 현실 속에서도, 사회는 교묘한 착시를 일으켜 도리어 '남성 역차별'이라는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다고 굳게 믿어버린다고 주장한다. 객관적 사실과 통계마저 조롱의 대상이 되는 이 시대에, 책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은 이 거대한 왜곡의 근원과 일상화된 폭력의 민낯을 매우 집요하고 날카롭게 파헤친다.


가장 참담한 대목은 '혐오'가 어떻게 정치인에게 '기회'이자 손쉬운 '선거전략'으로 전락했는가를 짚어내는 지점이다. 정치권은 무한 경쟁과 줄 세우기만이 공정이라는 '그릇된 공정 감각'을 자극하며, 평등을 이야기하는 이들을 위선자로 몰아붙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은 비단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서도 재생산된다. 배우 양자경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성들이여(And ladies), 전성기가 지났다는 말을 절대 믿지 말라"고 남긴 묵직한 수상 소감에서, 국내 한 방송사가 고의로 'And ladies'라는 핵심 주어를 삭제하고 보도한 사건은 매우 상징적이다. 우리 사회가 여성의 성취와 연대의 목소리를 얼마나 교묘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지워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촌극이자, 여전히 굳건한 유리천장의 단면이라고 말한다.


책에서 언급되는 <소년의 시간>의 문제의식처럼, 십 대 남성 청소년들이 이른바 '인셀(Incel, 비자발적 독신주의자)' 문화에 빠져드는 현상은 이제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징후가 되었다. 올바른 젠더 인식이 형성되기도 전에 또래 문화와 온라인 하위문화를 통해 혐오를 일종의 '유희'로 먼저 학습하는 소년들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들은 N번방이나 딥페이크 성착취 같은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피해자들이 문란해서"라는 왜곡된 성인식으로 가해를 정당화한다. 책은 이들이 '왜 끔찍한 폭력에 가담했는가'라는 결과론적 심판에 머물지 않는다. 이 소년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나며 무엇을 보고 배우는지, 혐오를 오락처럼 소비하게 만드는 사회적 현상을 되묻는다.


저자는 남성들이 혐오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로 '가부장제로부터의 탈피'를 든다. 현재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희생해야 했던 어머니 세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주체적인 삶을 모색하고 있다. 반면, 남성들에게 '결혼'을 통해 남편이자 아빠가 되는 것은 여전히 자신의 능력과 정상성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로 남아있다. 미디어에서 미혼 남성을 한없이 짠하고 동정적인 시선으로 그려내는 반면, 흠결 있는 기혼 남성의 모습을 향해서는 "저런 놈도 결혼을 하는데" 라며 끊임없이 비교하는 대중의 반응은 여전히 남성들이 가부장적 역할 모델에 얼마나 강박적으로 얽매여 있는지를 방증한다. 이 모순적인 시선들은 결국 남성들 스스로가 가부장제라는 낡은 틀 안에서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자화상이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예리한 진단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간 현실적인 제언을 덧붙이고 싶다. 책은 이른바 '여경 무용론'이 젠더 이슈를 악용하는 비논리적인 혐오 프레임임을 정확히 짚어내며, 여성 경찰이 성폭력 피해자 등에게 제공하는 정서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의 가치를 부각한다. 혐오의 무기가 된 이 억지스러운 프레임을 깨부수어야 한다는 저자의 문제의식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이 부당한 프레임을 더욱 근본적으로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여성 경찰의 역할을 '피해자 정서 지원'의 영역에만 머물게 두어선 안된다. 체력 검사 기준을 현실의 치안 수요에 맞게 강화하고 그에 맞는 전문 훈련 체계를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결코 여경 무용론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경찰이 현장에서 '물리적 치안 유지'와 '피해자 지원'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완벽하게 수행하는 주체로 우뚝 서게 함으로써, 혐오 세력의 논리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가장 주체적인 타파 전략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책이 지닌 명확한 한계점 역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이 남성들 스스로 가부장제를 타파하고 진정한 성평등의 길로 나아가게끔 설득하는 데 있다면, 책 전반에 흐르는 다소 공격적인 어조와 도발적인 제목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 은 아쉬움을 남긴다. 혐오의 민낯을 직설적으로 고발하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러한 날 선 태도는 오히려 변화가 가장 필요한 남성 독자들에게 거부감과 방어기제를 일으킬 우려가 크다. 자칫하면 젠더 이슈에 피로감을 느끼는 대중을 설득하지 못하고 이미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이들끼리만 환호하게 만드는 '확장성의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저자는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흠결 있는 누군가를 찾아내어 재단하고 '심판'하는 데 몰두하느라, 정작 가장 중요한 '피해자의 곁을 지키는 연대'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페미니즘은 남성을 억압하기 위한 사상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거대한 부조리에 대항할 용기를 불어넣고 일상의 폭력 속에서 숨 쉴 수 있게 만드는 '숨구멍'이라는 것이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남성성의 모델은 매우 구체적이고 희망적이다. 그것은 가족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 청년 남성이 더 이상 원치 않는 가부장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홀로 짊어지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를 지배하거나 부양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연대와 상호 돌봄의 주체'로 거듭나는 것. 남성들에게 얄팍한 특혜를 쥐여주며 달래는 단기적 처방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이로운 평등한 구조로 나아가는 것이 결국 남성 스스로를 구원하는 길이다. 저자는 무너져가는 가부장제의 폐허 위에서 우리가 쟁취해야 할 진정한 승리는, 차별을 훔치는 비겁함을 멈추고 서로를 돌보는 단단한 연대의 자리를 넓혀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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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스러운 돌봄 - 잘 키우려 할수록 나빠지는 불행에 대하여
신성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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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 능숙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이 책의 출발점이자 수많은 부모가 품고 있는 이 이상은 현실이라는 벽과 충돌한다. 부모들은 자신만의 교육 철학을 단단히 견지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체제에 자발적으로 순응하고 세상의 속도를 아등바등 따라잡아야만 아이 하나를 겨우 건사할 수 있는 구조다. 이 시대에서 '부모 되기'는 결국 시대가 요구하는 '표준화된 경로'를 따라갈 수밖에 없게 만들며, 개인을 자기모순에 빠뜨리고 묘한 절망감을 안겨준다. 내 아이가 남보다 뒤처질까 봐 두려워하는 상실감은 부모를 고립된 선택으로 내몰아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 만든다. 돌봄은 결코 개인의 애씀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영역임에도, 수많은 '나'들은 각자의 최선이라는 이름 아래 불안이라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내 아이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은 본의 아니게 공동체를 도외시하는 '탐욕스러운 돌봄'으로 변질된다.


이러한 불안과 압박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장이 바로 학교다. 체육 활동이 점점 사라지는 학교의 이면에는 학령인구 감소뿐 아니라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이기적인 민원이 얽혀 있다. 줄 세우기식 평가에 대한 항의, 심판 판정 불만, 교사의 안전사고 부담, 그리고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과 응원 소리를 ‘소음’이라 규정하는 주민들의 민원까지 맞물려, 결국 운동회는 사라지고 말았다. 수학여행과 소풍 같은 체험 활동도 안전사고 책임 논란과 각종 민원으로 대폭 축소되거나 폐지되는 추세다.


아이들이 교실 밖에서 부딪히고 땀 흘리며 경쟁할 기회, 낯선 환경에서 갈등을 조율해 보는 귀중한 사회화의 장이 통째로 증발해 버렸다. 이는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낯선 세계와 부딪히고 '건강하게 실패할 권리'를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결과를 낳았다. 실패를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들은 작은 좌절 앞에서도 크게 흔들리며, 타인과의 건강한 갈등 해결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타인과 공존하기 위한 '시민적 자존감'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상처받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적인 '개인적 자존감'으로 변질되어 상대를 굴복시키는 무기가 된다.


이 책의 탁월한 지점은 개인의 양육 경험을 사회 구조와 연결한다는 데 있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능력주의와 불평등의 실체를 가족의 일상 속에서 포착한다. 젊은 의사들의 파업, 한 정치인의 자녀 특혜 등의 사례는 사회가 얼마나 철저히 계급화되고 파편화되어 있는지를 드러낸다. 아버지의 배경이 아닌 개인의 능력으로도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소득과 지식, 서울과 지방의 교육 격차가 기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부모의 자본이 아이 세계의 크기를 결정짓는다.


가장 뼈아픈 현실은 구조적 모순을 해결해야 할 국가와 사회가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체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시민들 간의 날 선 갈등뿐이다. 이 책은 부모에게 주어진 과중한 책임을 위로하면서도, 그들이 놓치고 있는 ‘훈육과 사회화’의 공백을 냉정하게 직시한다. 생존 경쟁에 지쳐, 혹은 아이의 자아를 다치게 할까 두려워 ‘건강한 악역’을 피할 때, 그 청구서는 고스란히 교실로 돌아온다. 공교육의 마비는 부모조차 아이를 시민으로 길러낼 여력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비극적 초상이다.


나아가 저자가 제시하는 ‘차별 없는 시대’라는 이상은 따뜻하지만, 복잡한 현실 앞에서는 다소 이상적으로 들린다. 타인의 모든 차이를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는 온정주의는 때로 현실의 규범과 충돌할 수 있다. 유럽 사회의 경험처럼 다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 시민적 규범이 약화되었고, 그로 인해 오히려 안전과 평등이 위협받았던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다양한 인종을 포용하되, 헌법적 가치와 성평등, 시민 규칙과 같은 한국의 문화를 따를 경우에만 공존이 가능하다. 약자를 향한 환대와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려는 단호함은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아이들에게, 그리고 이 사회에 물려주어야 할 것은 ‘상처 하나 없는 완벽한 무균실’이 아니다.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광장으로 나와 ‘기본적인 매너’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탐욕스러운 돌봄’의 좁은 요새를 허무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타인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고, 순서를 기다리며, 갈등 속에서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시민적 매너. 이 평범한 덕목이야말로 진짜 어른을 길러내는 출발점이며, 파편화된 사회를 다시 세울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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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불안하기 때문이야 특서 청소년문학 46
임지형 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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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청소년기를 지나왔지만, 어른이 되면 마치 그 시절의 지독했던 열병을 단 한 번도 겪지 않은 사람처럼 굴곤 한다. 사회가 복잡하게 고도화되면서 아이들을 둘러싼 외형적인 환경은 분명 좋아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피어나는 불안의 크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성적이라는 견고한 지옥, 관계라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아이들은 철저히 혼자가 되어 자신의 불안을 감당해 내고 있다. "미래는 너무도 길고, 현재의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이 무력한 깨달음은 청소년들을 짓누르는 불안의 씨앗이 된다. 우리는 꾸준히 힘듦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에게 방황 끝에 남겨진 '쉬었음 청년'이라는 이름표를 쥐어주어서는 안 된다.


청소년 소설 《사실은 불안하기 때문이야》는 그런 불안감에 맞서 청소년들을 응원하기 위해 쓰인 글이다. 이 책은 청소년이 느끼는 불안을 틀렸다고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불안이 발목을 잡는 무거운 추가 아니라, 앞으로 밀어내는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네 편의 이야기가 모두 물음표로 끝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각자의 두려움이 동화처럼 속 시원하게 끝나지 않는 것이 곧 불안의 진짜 얼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세상의 모든 불안을 없앨 수는 없지만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우리를 옭아매는 무게추가 아니라 무너진 세상의 끝에서도 나를 지키고 움직이게 만드는 또 다른 가능성일지 모른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세상의 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갑옷의 모양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깨닫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 그것뿐이었다." 라는 말처럼 단단한 마음을 선물해준다. 완벽한 미래가 없더라도 직접 발로 뛰어 나아가기도 하고, 상처가 욱신거릴 때는 서로의 손목에 별을 붙여줄 수도 있다. 서로에게 어둠이 젖어 들었다면 빛을 비춰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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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 - 말보다 깊은 눈빛, 양조위의 삶·사랑·작품
주성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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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홍콩 배우 양조위>는 한 배우의 전기이면서 홍콩영화의 연대기를 그린다. 그도 그럴 것이, 책 곳곳에는 홍콩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이 스며있다. 당대 홍콩영화를 빛냈던 감독과 배우를 소환하며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양조위의 새로운 면을 꺼내 든다. 빽빽할 정도로 채워진 글들은 그의 필모그래피 뿐만 아니라 시대의 공기까지 풍기게 만든다. 특히 책의 바깥 여백에 글을 배치한 편집 방식은 독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글의 정성이나 세심한 배려에 '아끼는 마음'이 가득 묻어나온다.


저자는 양조위의 연기를 한 문장으로 정의 내리지 않는다. “내재화된 감정연기를 오직 시선과 호흡, 그리고 최소한의 제스처만으로 작품의 정서를 이끌어간다.”라는 문장으로 그의 다채로움을 표현한다. 세계 영화사의 대배우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안겨준다고 말한다. 양조위의 시간이다.


홍콩영화의 황금기를 이끈 네 배우, 장국영, 유덕화 주윤발 그리고 양조위. 그중에서도 주윤발과 양조위는 화려했던 전성기의 얼굴이었다. 유덕화가 장르 그 자체였다면, 양조위는 장르에 귀속되지 않는 배우였다. 멜로와 누아르,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홍콩의 운명을 관통하는 작품 속에 자리했다.


홍콩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감독은 바로 '왕가위'다. 그의 영화는 홍콩을 배경으로 한다. 1997년 반환을 전후한 불안과 상실, 그리고 2046년이라는 상징적 시간은 소재가 된다. ‘유통기한이 정해진 도시’에서 기억은 미래로 유예되고, 사랑은 끝내 완성되지 못한 채 반복된다. 영화 속 이별은 곧 영국과의 결별이며 새로운 체제와의 관계는 여전히 불확실한 채로 남았다.


'해피투게더'의 대사는 먼저 떠나간 장국영에 대한 그리움을 더한다. "네가 떠난 지 10년이 됐지만 내 휴대폰에는 여전히 네 번호가 저장되어 있어" " 우리 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 장국영의 거대한 빈자리를 메우며 시대를 건너온 배우가 바로 양조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양연화. 양조위와 장만옥이 만들어낸 '로맨스'는 여타 전통 멜로와는 차이가 있었다.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묶어두는 인물들, 말하지 못한 감정이 화면의 여백을 채운다.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온다’라는 말처럼 시대의 변화가 녹아 있다. 낡은 윤리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감각이 도래하는 길목의 진통을 가장 우아하게 담아낸 기록이다. 제목은 과거를 지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미래를 향한 희망을 품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또한 색, 계는 양조위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 작품이다. 냉혹한 권력자이면서도 연약한 인간의 결을 동시에 지닌 인물. 공공의 적이지만 동정심을 자아내는 복합적인 존재를 설득력 있게 완성해 낸다. 그의 선한 얼굴에서는 악한 역할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 작품에서는 또 다른 면모를 선보인다. 


책은 말한다. 홍콩영화라는 개별적 개념은 쇠퇴했을지라도, 홍콩 정신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오래가는 것이 진정 강한 것이라고 믿음처럼, 유덕화와 양조위가 존재하는 한 홍콩은 여전히 현재형이라는 주장이다. 양조위는 왕가위의 시간을 살았고, 동시에 그가 경험하지 못한 미래를 살아가고 있는 배우다. 과거의 눈부신 장면들이 오늘에도 유기체처럼 숨 쉬는 이유는 그가 모든 시대를 살아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배우를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로 마무리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회고록처럼 정리된 문장들은 그를 이미 완결된 존재처럼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를 풀듯 책에서는 아직 진행형으로 나아가고 있는 양조위에 대한 경의의 표현을 더한다. 한 시대를 살아온 양조위가 계속해서 홍콩 영화를 빛내주고, 그 시절의 홍콩영화가 되살아나길 바라는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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