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을 말할 때는먼저 자신의 의견을 믿자

헤이안 시대의 승려인 코호 대사는 일본 최고의 서예가로 유명하다. 그는 "글자를 쓸 때는 그 글자가 되어라"라고 말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의 제임스 포레스트James Forrest 박사에 따르면 속마음은 숨기려고 해도 어딘가에서 드러난다고 한다. 말로 아무리 감쪽같이 속이려고 해도 표정과 행동, 몸짓에서 속마음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가령 싫어하는 사람에게 "난 널 좋아해"라며 마음에 없는 말을 한다고 해도 금방 들통나고 만다.

의견을 말할 때는 자신이 믿는 사실만을 이야기해야 한다. 아무 상관없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자신과 관계없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상대는 단번에 알아차린다. 목소리에서 한 치의 열정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상대는 꿰뚫고 있다.

예수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돼지 앞에 진주를 놓아서는 안 된다"는 말로 대신했다.

쉽게 설명하고 싶다면 예를 들어보자. 이야기가 단순해지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하게 된다.

평범한 이야기를 평범하게 표현하면 대화의 달인이 될 수 없다. 머리를 전력 가동해 예를 들거나 비유를 사용해 설명해야 듣는 사람도 이해하기 쉬워지고 마음이 움직인다

가령 내가 아무리 "인용하면 설득하기 쉬워진다"라고 말해봤자 크게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같은 내용을 어느 대학의 대단한 교수가 말했다고 하면 순순히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영향력 있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면 자신의 의견에 힘이 실리면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게 된다.

"오늘은 좀 길게 설교할 거야."
"15분 정도 이야기할 테니까."
 
이렇게 미리 말해두면 지적받는 쪽도 어느 정도 대비하게 된다. 지적받는 일은 싫지만, 얼마 동안 계속될지 짐작할 수 있다면 참고 견딜만하기 때문이다. 정말 참기 힘든 일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지적을 할 때는 반드시 끝을 알려야 한다. 언제까지 참고 견디면 되는지 상대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것만 지킨다면 다소 목소리가 거칠어지더라도 상대는 참고 견뎌낼 것이다

누군가를 혼낼 때는 먼저 상대에게 겁을 줘야 한다. 두려움을 충분히 느끼게 한 뒤 상대가 몸을 움츠렸을 때 혼낸다.

겁먹게 한 뒤 평소와 똑같이 혼낸다.
상대가 제대로 혼날 거라고 각오했는데 실제로는 예상만큼 혼나지 않았을 때 ‘적당히 봐준 건가?’라며 오히려 상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혼났음에도 고마워하는 것이다.

물론 이 기술은 매번 사용할 수는 없다.
매번 "이번엔 진짜 각오해"라고 말하고는 한 번도 혼을 낸 적이 없다면 혼나는 사람도 ‘이번에도 겁만 주는 거겠지’라고 생각할 게 뻔하다. 어쩌다 한번 사용하기에 효과적인 기술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른 뒤 "너무 많이 잘랐네요"라며 불평하는 사람은 있어도 "너무 안 자른 거 아니에요?"라며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자기 모습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리를 많이 잘라 자신의 모습이 바뀌는 데 거부감을 느낀다. 따라서 머리를 많이 자르지 않고 고객의 모습을 크게 바꾸려고 하지 않는 미용사를 오히려 선호한다.

대화 역시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상대의 의견이나 태도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 의해 자신이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은 해보겠지만 바뀌지 않을 거야’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편이 설령 상대가 바뀌지 않더라도 ‘왜 내 말을 듣지 않는 거지?’ 하고 화내는 일도 없고 정신적으로 편하다

화가 난 사람을 상대할 때는더 크게 화를 내라

쉽게 폭발하는 사람을 상대할 때는 친절하게 대하지 말고 도리어 상대보다 더 폭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몸싸움을 하게 되더라도 물러서면 안 된다

프랑스에서는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연설을 해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어려운 이야기를 되도록 알기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에게 사랑받거나 존경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거래 상대는 적군이 아닌아군으로 대하자

"상대를 적대시하는 태도만 바꿔도 대인관계는 놀랄 만큼 원만해진다." 하버드대학교의 테렌스 버넘Terence Burnham 박사의 말이다.

상대가 협력자라고 생각하면 ‘내가 더 잘해야지’, ‘경쟁에서 이겨야 해’, ‘내가 더 큰 이익을 얻겠어’와 같은 마음은 줄어든다.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상대에게는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을 만날 때는 무턱대고 상대를 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협력자가 될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도록 하자.

반면 정도의 문제이지 기본적으로는 온화한 태도를 유지하되 유연하게 입장을 바꿀 수 있다는 자세를 보이는 편이 훨씬 이득이라는 사실을 제시하는 자료도 있다

미네소타대학교의 알렉산더 로스만Alexander Rossmann 박사에 따르면 환자에게 수술을 권할 때 "600명 중 400명이 죽는다"가 아닌 "600명 중 200명은 산다"고 설명하면 의사의 말에 귀 기울여준다고 한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죽는다’는 말보다 ‘산다’는 말에 초점을 맞추면 ‘그렇다면 수술을 받아볼까?’라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악의적인 말을 들었다면상대의 말꼬리를 잡고 반격에 나서라
 
"너는 맨날 이런 식이냐?"
"맨날이라니?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래?"
 

말꼬리를 잡을 때 중요한 점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하되 공손한 말투로 공격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질문하고 있을 뿐’이라는 태도를 유지하면서 상대를 바늘로 따끔하게 찔러야 한다.

이러한 기술은 익숙해지지 않으면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상대의 무례한 말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
상대가 무례한 행동을 한다면 나 또한 반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만만한 사람이라 여기고 얕잡아 보기 때문이다.

미주리대학교의 케논 셸던Kennon Sheldon 박사에 따르면 상대가 불쾌한 행동을 했을 때는 나 역시 반드시 되돌려줘야 상대가 온순해진다고 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보복 전술’이라고 부른다.

상대가 나를 물어뜯으려고 하면 나 역시 물어뜯어야 상대도 송곳니를 감추게 되고, 이는 결국 나를 지키는 일이 된다.

상대의 말에 악의가 느껴진다면 얌전히 듣고 있지 말고 질문을 던지며 상대를 꼼짝 못 하게 할 정도의 배짱이 필요하다.

무슨 일이든지 그렇겠지만 대화에서도 기본이 탄탄해야 응용도 가능하다.
어떠한 기술이든지 기초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응용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이는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대화에서만큼은 누구나 쉽게 상급자의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한다.

대화에서도 기초를 탄탄히 다져야 비로소 농담 섞인 유쾌한 대화가 가능하다. 연설에서 느닷없이 사람들을 웃기려고 해도 연설의 품위만 떨어뜨릴 뿐, 결국 사람들에게 빈축을 살 게 뻔하다

워싱턴대학교의 조너선 브라운Jonathon Brown 박사에 따르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자존심에 상처받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자신감 넘치는 사람은 상대에게 승부를 양보하는 일쯤이야 별일 아니지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말싸움에서 지는 일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말싸움에서 질 수 없다는 생각은 쓸데없는 허세이자 자존심에 불과하다. 말싸움에서 지는 일이 자신에게 수치라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다. 우아하게 승부를 양보하는 것이다.

물론 져준다고 해서 "네, 네. 당신 말이 모두 옳습니다"라든가 "알았어, 알았어. 네 말이 다 맞는다니까" 등 비꼬는 식의 말투는 피해야 한다. 상대를 더욱 화나게 할 뿐이다. 겉으로는 고분고분하게 져주는 것이 사교술이라고 할 수 있다

감사의 말로상대에게 기쁨을 선물하자
 
"바쁜데 이렇게 도와주다니, 정말 감사해요."
"아니 뭘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무거운데 들어줘서 고마워."
"바쁠 텐데 시간 내줘서 고마워."
"도와줘서 정말 기뻐, 고마워."
 
언제든지 감사의 말을 입버릇처럼 꺼낼 수 있다면 멋진 일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친절을 베풀었을 때 곧바로 감사의 말을 건넬 수 있도록 감사하는 습관을 들이자.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지?’
이렇게 머뭇거린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망설이지 말고 누구에게나 "고마워", "고맙다", "고마웠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캘리포니아대학교의 로버트 에몬스Robert Emmons 박사에 따르면 감사의 마음을 전할 줄 아는 사람이 늘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사람에 비해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며, 신체적으로도 건강하다고 한다. 즉,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더 즐겁게 생활한다는 의미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그 즉시 "고마워"라고 말을 해보자. 깊게 고민하지 말고 감사의 말을 건네는 것이다. 말 한마디에 삶이 즐거워진다면 실천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참고로 감사의 말을 들었다면 과장되게 기뻐하는 것이 좋다. 내가 감사의 기쁨을 표현하면 할수록 상대는 나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대보다 크게 고마워하면 ‘이런 작은 일에 이렇게 고마워하다니, 다음에는 더 큰 친절을 베풀어야겠군’이라고 생각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 딱히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조금은 과장되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보자. 사실 친절을 베푸는 쪽에서는 꽤 수고스러웠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일은 더 많은 친절을 끌어내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조금은 과장되게 어필한다면 상대도 보람을 느끼고 나 역시 계속해서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성격이 무뚝뚝해 보이는 사람은 사실 단정 지어 말하는 말투여서 상대에게 그러한 인상을 줄 때가 많다. 이때 말끝을 애매하게 얼버무리며 말함으로써 부드러운 이미지가 풍기도록 한다면 온화한 성격에 친근감 넘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인간에게는 청개구리 심보가 있어서 부탁을 받으면 ‘반대’ 행동을 하려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에 부정의문문으로 부탁하는 편이 승낙 확률도 높일 수 있다

도망치는 개를 붙잡고 싶다면 쫓아가지 않는 편이 낫다고 한다. 쫓아갈수록 개는 더 도망치려고 하기 때문이다. 도리어 등을 돌리고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면 주인이 자신을 두고 간다는 두려움에 주인 근처로 돌아온다.

인간에게도 비슷한 성격이 있는 듯하다. "창고 좀 청소해"라며 명령조로 말하면 청소하기 싫어지지만, "바빠서 창고 청소는 못 하겠지?"라는 말에는 "바쁘긴"이라고 대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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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에 먼저 선생께서 정신 분석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정신 분석을 하는 동안 환자는 침대에 누워서 의사에게 때로는 하기 거북한 말을 해야 합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즉흥적으로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로고테라피를 받는 동안 환자는 똑바로 앉아서 의사로부터 때로는 듣기 거북한 말을 들어야 합니다."

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말하자면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다.로고테라피는 이렇게 의미에 중점을 둔 정신 치료법이다. 동시에 로고테라피는 정신 질환을 일으키는 데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하는 악순환의 고리vicious circle formation와 피드백 기제feedback mechanism를 약화시킨다. 그렇게 해서 정신 질환 환자에게 전형적인 자기 집중 증상이 발생하고 심화되는 것을 막는다.

로고테라피에서는 환자가 삶의 의미와 직접 대면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이렇게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우치게 도와주는 것이 정신병을 극복할 수 있도록 환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인간이 의미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그 사람의 삶에서 근본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이지 본능적인 욕구를 2차적으로 합리화하려고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이상과 가치를 위해 살 수 있는 존재이며, 심지어 그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존재이다.

몇 년 전 프랑스에서 설문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그 결과 89퍼센트의 사람들이 인간에게는 살아야 할 의미를 주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그중 61퍼센트는 자기 삶에 기꺼이 그것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어떤 것’과 ‘어떤 사람’이 있다고 대답했다.

누제닉 노이로제는 욕구와 본능의 갈등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인 문제 때문에 생긴다. 그 원인 중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좌절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갈등을 겪는다고 해서 다 신경 질환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의 갈등은 정상적이고 건강한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고통 역시 모두 다 병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고통이 실존적 좌절 때문에 생긴 경우에는 그것을 신경 질환 증세라기보다는 인간적인 성취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거나 아니면 그런 것이 과연 있을까 의심하거나 간에 이런 현상이 병 때문에 생긴다거나 혹은 이것 때문에 결국 병이 생길 거라는 생각을 나는 단호하게 부정한다.

의사는 환자의 실존적 위기를 통해 그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로고테라피는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그렇게 하려면 환자의 실존 안에 숨겨진 ‘로고스’를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 하는데, 이것은 상당한 분석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런 점에서 로고테라피는 정신 분석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마음에 평온을 가져오기보다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면의 긴장은 정신 건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최악의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딘다’라는 니체의 말에는 이런 예지가 담겨 있다. 이 말에서 정신 치료에도 유용한 어떤 좌우명을 찾을 수 있다

낡은 아치를 튼튼하게 할 때, 건축가는 오히려 아치에 얹히는 하중을 늘린다. 그래야만 아치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이 서로 잘 밀착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환자의 정신 건강을 증진시키려는 심리 요법가는 삶의 의미를 갖도록 지도하는 과정에서 환자 마음에 어느 정도 긴장을 유도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삶의 의미를 찾도록 하는 것이 환자에게 유익한 영향을 끼친다

‘일요병’을 예로 들어 보자. 일요병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한 주일을 보내고 내면의 공허감이 밀려올 때, 자기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람이 겪는 일종의 우울증이다.

자살의 상당수가 바로 이런 실존적 공허 때문에 일어난다.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는 우울증과 공격성, 중독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면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실존적 공허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연금 생활자나 나이 든 노인들이 느끼는 위기감 역시 이와 같은 종류의 것이다.

게다가 이런 실존적 공허는 가면을 쓰거나 위장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좌절되면 사람들은 권력욕으로 좌절을 대신 보상받으려고 하는데, 여기에는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권력욕인 돈에 대한 욕구도 포함된다. 한편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가 좌절된 곳에 쾌락을 추구하는 의지가 대신 자리 잡는 경우도 있다. 실존적 좌절을 겪은 사람들이 종종 성적 탐닉에서 보상을 찾으려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누제닉 노이로제

삶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시기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포괄적인 삶의 의미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한 개인의 삶이 갖는 고유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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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란 가짜 약을 의미하는데, 꼭 약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효과가 있다고 확신하면 믿는 대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인간은 매우 단순해서 확신이나 암시가 무척 강력하게 작용한다.

"난 많은 사람 앞에서도 훌륭하게 프레젠테이션을 해낼 수 있다."
"난 고객들에게 물건을 잘 판다."
"자기소개만큼은 잘 해낼 자신이 있다."
 

다시 말해, 용기를 얻을 만한 암시를 평소 자신에게 걸어보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자기암시는 대화 능력뿐 아니라 모든 기술을 향상시키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다. 문장력을 키우고 싶다면 스스로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고 믿고, 정리정돈을 잘하고 싶다면 정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믿으면 된다.

일단 말하라.말발은 연습량과 비례한다

나는 직업상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많다. 그래서 말에는 자신이 있는데, 이는 단지 사람들과 말할 기회가 많아서일 뿐 다른 특별한 비법은 없다. 연습했으니 잘하는 것은 당연하다.

"연습도 하지 않은 채 대화 능력을 키우고 싶다니 그런 꿈같은 일은 기대하지 마십시오. 꾸준히 연습하는 사람만이 결국 가장 먼저 실력을 쌓습니다."

상대의 눈에 보이는 형태인 몸으로 친절을 보이는 것이 말로 친절을 베푸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물건을 산 뒤에 "고맙습니다"라고 말해도 고객은 기뻐하지 않는다. 불쾌해하지는 않겠지만 "고맙다"는 말은 크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점원이 공손하게 고객의 돈을 받은 뒤 거스름돈을 줄 때도 지폐의 앞면이 보이도록 정리하고 동전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고객의 손에 올려준다면 어떨까? 그리고 "고맙습니다. 또 오십시오"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나라면 다시 그 매장을 방문하고 싶어질 것이다. 말에서뿐만 아니라 행동에서도 점원의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화가 능숙한 사람은 결코 말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배려 섞인 행동을 연출할 줄 안다. 멋스러운 대사를 외우는 일뿐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도록 훈련해둘 필요가 있다.

뮤지컬영화 <메리 포핀스>에는 주인공인 줄리 앤드류스가 방 청소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청소를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재미있어져. 생각하기 나름이지"라고 말하며 행복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장면이 있다.

대화란 서로를 즐겁게 하는 게임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대화를 나누는 일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즐거워지면서 ‘다음에는 더 높은 점수(좋은 인상을 주는 일)를 받아야지!’ 하고 마음먹게 된다. 대화는 게임일 뿐이니까.

반면 ‘말실수하면 어쩌지, 공손하게 말해야 하는데’ 등 대화의 감점 요인을 찾다 보면 상대와 나누는 대화가 ‘시험’처럼 느껴져 전혀 즐기지 못한다.

대화를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어깨에 힘이 빠지고 마음이 편해지면서 대화가 즐거워진다. 좋아하는 게임을 할 때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는 것은 그 행동 자체가 즐겁기 때문이다.

나 역시 가장 좋아하는 게임을 할 때면 몇 시간이고 계속할 수 있다. 대화도 게임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에 몇 시간이고 쉬지 않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쉽게 지치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60시간이나 지속 가능하다는 데이터가 있는데, 즐거운 일에는 피로를 잊게 하는 효과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대화를 ‘시험’이라고 생각하면 갑자기 고된 노동처럼 느껴지니 참 신기하다. ‘괜히 감점 받느니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낫지’라며 한발 물러선 자세를 보이면 대화가 즐겁지 않게 된다.

《여성을 위한 비즈니스 게임론》의 저자인 베티 레한 해러건Betty Lehan Harragan은 "비즈니스를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같은 일을 하더라도 능률이 오르고 즐거워진다"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날씨 이야기로 시작하자.’
"날씨가 정말 좋네요.
오늘은 날씨처럼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아요."

대개 처음 만나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 내용은 웬만큼 정해져 있다. 따라서 백문백답의 원고를 작성해두고 매뉴얼처럼 외워두면 누구와도 대화가 가능하다.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험 보기 전에 과거의 출제 경향을 살펴보면 대략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것처럼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운다면 대화가 절대 어렵지 않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 내용도 시험문제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름이며 취미, 업무 내용, 가족관계, 학창 시절의 추억 등 거의 정해져 있다.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답할지 원고를 작성하고 외워두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처음 만나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도 끄떡없다.

대화 원고를 되도록 많이 머릿속에 저장해둬야 한다. 즉흥적인 애드리브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는 불가능하다.
모국어로 말할 때도 재치 넘치는 답변과 상대를 웃기는 농담 등을 최대한 많이 머릿속에 저장해두자. 노력한다면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매번 비슷한 내용으로 대화하다 보면 차츰 대화하는 일에 익숙해질 것이다. 같은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면 두려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몸매, 외모, 말투, 목소리 톤 등이 닮은 사람은 성격 또한 대체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달변가가 된 것처럼자신을 연기하라
 
‘나는 최고의 영업자다.’
"우리 회사 최고의 제품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연기하는 대로 그 인물이 될 수 있다.
성공한 사람처럼 행동하면 말투부터 걸음걸이까지 당당해지고, 똑똑한 사람처럼 행동하면 실제로 지적이고 교양이 넘치는 사람이 된다.

암시 효과는 믿기 힘들 만큼 대단한 힘을 지녔다. 싱거운 사람으로 오해를 받을까 봐 고백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사실 나는 최고의 심리학자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책을 쓰고 있다. 스스로 글재주가 뛰어난 천재라고 생각한다.

자기암시를 걸었기에 200쪽이 넘는 책을 어떻게든 완성할 수 있었다. 자기암시에 기대지 않았다면 ‘글재주도 없는 내가 감히 책을 쓸 수 있을까?’ 하고 불안해했을 것이다. 마음만큼은 대작가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집필해야 겨우겨우 책을 완성할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가난한 시절부터 부자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는 생글생글 웃으며 노력했다. 마음 놓고 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즐기기 바란다.

열등의식은 자기암시 효과가 있다. 이 암시 효과는 매우 강력해서 할 수 있는 일도 할 수 없게 만든다. 인간은 할 수 있다고 믿으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도 할 수 없다고 믿는 순간 할 수 없게 된다. 자기암시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선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열등의식을 떨쳐내자.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잘 못해’, ‘이성과 이야기할 땐 긴장돼’ 등 열등의식을 느끼면 대화가 능숙해지지 않는다

지나친 기대는 버리고 영어는 인사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헬로’나 ‘땡큐’ 같은 단어를 외우는 것만으로도 영어를 할 줄 안다며 만족해한다. 마음을 편히 먹어야 결국 영어도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

지나친 기대는 열등의식을 낳는다. 대화 나누는 일에 열등의식을 느끼는 사람 대부분이 아나운서나 방송 진행자 같은 전문가와 자신의 화법을 비교하는 탓에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 자신의 화법에 손색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부자에게서는 묵직한 품격이 느껴지는 것은 돈을 지녔다는 사실이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반면 가난한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위축된 분위기를 풍긴다.
 

"어서 오십시오"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사가 일방통행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상대와 말을 주고받지 않으면 우리는 자기중심적이고 무례하며 차가운 반응을 보이기 쉽다고 한다. 인사를 받고 싶다면 내가 먼저 상대에게 대답을 들을 만한 인사말을 건넬 필요가 있다.

상대와 캐치볼을 하고 싶다면 상대가 받기 쉬운 곳으로 공을 던져야 한다. 일부러 받기 힘든 곳으로 공을 던져서는 안 된다.

자신의 제안이 통과되지 않았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 제안이 통과되지 않는 일 따위는 빈번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핵심은 상대에게 거절당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다. 곧바로 꼬리를 내리지 말고 조금 더 매달려본다. 제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상대와 의견을 주고받으며 대화력과 교섭력을 키울 수 있다면 나에게는 득이 크다.

‘뻔뻔하다’는 말은 별로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지만, 심리학에서 뻔뻔한 사람이란 정신적으로 단단하며 작은 일에는 꺾이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자기소개는 길면 길수록 좋다. 그만큼 상대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리는 데 전력을 다해보자.

로마대학교의 안토니오 피에로Antonio Pierro 박사는 ‘데이비드 비안카트’라는 가공의 인물을 소개하는 50자 단문 소개서와 A4 한 장 분량의 장문 소개서를 작성해 각각의 문서를 대학생에게 읽게 한 뒤 신뢰도를 조사했다. 예상대로 장문의 소개서를 읽었을 때 신뢰도가 상승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소개를 길게 하면 그만큼 자신을 상대에게 알릴 수 있다.

자기소개의 첫 번째 목적이 자신을 알리는 것인데 이름만 알린다면 상대의 기억에 각인되지 않는다. 매우 특이한 이름이라면 이름 소개만으로 충분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을 기억할 만한 키워드를 끼워 넣어야 한다. 상대의 기억에 자신의 모습을 각인시키는 것이 자기소개의 첫 번째 목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모처럼 명함을 교환하는데 자신을 어필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막연하게 자신을 소개해오던 사람이라면 이 효과가 얼마나 대단하지 확인해보기 바란다.

대화 내내 겉도는 이야기만 하다 보면 서로 가까워질 기회를 얻지 못한다. 어딘가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자신을 소재 삼아 조금씩 접점을 찾아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사사로운 일이어도 좋으니 ‘나’라는 사람에게 흥미를 느낄 만한 이야기를 꺼내보자. 그러면 상대도 자신에 대한 정보를 알려줄 것이다.

텔레마케터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의 사진을 눈앞에 두고 그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는 마음으로 고객과 통화한다고 한다. 고객에게 건네는 목소리가 편안하고 친근해지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준비해두자
 
‘골든리트리버는 어쩜 이리 천사 같을까...’
‘너는 정말 행운의 마스코트야...’

이는 심리학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사진을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미소 짓게 된다. 웃는 모습 그대로 사람을 만나면 애써 웃는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가장 멋진 표정을 상대에게 보여줄 수 있다.

‘나는 이 사진을 보면 마구 힘이 솟는다.’
 
이렇게 용기를 얻을 만한 사진이 있다면 여러 장 준비해둔다. 사람을 만나면 긴장하는 탓에 멋진 미소를 짓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이 사진만 보면 단숨에 얼굴 근육의 긴장이 풀리는, 그러한 사진을 꼭 지니고 다니기 바란다.

참고로 반려동물을 예로 들었지만, 꼭 반려동물이 아니더라도 상대가 무심결에 말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할 만한 매개체라면 무엇이든지 상관없다. 색다른 다이어리나 독특한 휴대전화 장식품, 특이한 만년필 등 상대가 흥미를 끌 만한 소도구를 충분히 준비해두자. 그러면 상대는 좀 더 쉽게 말을 걸어올 것이며, 이 또한 대화력을 키우는 훈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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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장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

"살면서 두 번째로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

사랑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한 이가 있다. 바로 20세기 심리학자인에리히 프롬이다. 그는 『사랑의 기술』에서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다면이론을 습득하고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말한다. - P65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 빠지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주체적으로 관계에 참여하는 것이다.
- P66

철학하는 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니 남들 다 하는 사랑 이야기를 하긴 한다. 다만 사유의 바다에서 사랑을 찾는 이들이라 말이나 글로 사랑을 배웠고 가르치는 데 익숙하다는 점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 익숙함의 결과물이 바로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하나인 『향연(Symposion), 이다 - P67

신화, ‘사랑의 기원‘도 나온다. 신들의 노여움으로 두 쪽이 난 인간들이 잃어버린 자신의 반쪽을 찾아 헤매는 것에서 사랑이 시작되었다는이야기는, 사랑을 ‘나의 반쪽을 찾는 것이라말하는 이유일 것이다.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헤매는 것이 사랑이라면, 어딘가에 그 반쪽이 있어야 할 텐데 왜눈에 띄지 않는 것일까? 사랑 한 번 못해본 이들은정말 기술이 부족해서일까? 사랑도 ‘열공‘해야할 수 있는 것이라면, 참으로 두통 유발 과목이아닌가 싶다.
- P69

이다.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고, 지혜를 사랑하는 것은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들 철학, 철학 하는지도 모르겠다.
- P71

철학, 다들 머리 아프다고 한다. 특별한 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철학만큼 일상적인 것도 없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며, 모르는 것을 알려고 노력한다. 이는 소크라테스의 철학함이다.
- P71

다들 이렇게 살고 있고, 이렇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이것을 힘들다 함은 제대로 아는 것이 무엇이며,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기때문이다. 아는 척, 모르는 척하며 사는 것이 편하다고, 그저 편하게만살려고 하니 올바른 삶에서 한 걸음씩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 P71

쉽게 사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힘든 길 찾아갈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마음 한구석의 허전함을 지울 수가 없다. 생각의 곳간이 텅 비어 마음의 공허함이 메아리치니, 딱히 간절히 바라는 바도 없고 생기마저 사라진다. 조금 어렵고 힘들더라도 지혜를 사랑하면서 자신을 채워가는삶이야말로 좋은 삶이 아닐까? 내 삶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철학함이다.
- P71

하지만 자유가 말 그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일까? 모두가 자유를 내세워 제멋대로 한다면 잘살 수 있을까? 아마도 제 것 찾느라 다른사람과 싸우는 데 온 시간을 보낼지 모른다. 그 바람에 사람도 잃고 자유도 잃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유를 포기한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 P72

악당들로부터 지구를 지킨다는 어벤져스의 정의감이 달라진 것은아니다. 문제는 자신들의 행동에 제약이 걸리는 것, 즉 자유다. 부수적피해를 줄이기 위해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게 되면 요청이 있을 때만싸울 수 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는 깃이다. 씹년이 반대한 것은이것 때문이다. 정부의 간심을 받게 되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는것, 자유를 박탈당할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다. 대단한 능력의 어벤져스도 자유 때문에 서로 싸우는데, 하물며 평범한 우리들은 어떠하겠는가?
- P77

누군가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으면서 자기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린다면 최고의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곧그로 인해 생겨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 P77

어른들은 걱정한다. 청소년들에게 꿈이 없다고, 스스로 할 수 있는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어른들의 간섭이 너무심해서 청소년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자유란 스스로 자기 삶을 결정하고 스스로 행하는 것, 자신이 원하는 바를향해 나아가며 책임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길을 가도록 믿어주는 것, 그것이 어른들 몫의 자유가 아닐까 싶다.
- P77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 좋은 것일까? 누군가는 "배부른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말한다. 배고프게 사는 게 좋은 삶이라는 뜻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처럼 온전한 영혼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좋은 삶이라는 의미다.
- P78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좋을까? 사람마다 원하는 바가 다르니 한마디로 표현하긴 어렵다. 돈을 많이 벌면, 높은 자리에 오르면 행복하다고 한다. 반면 가난해도 가족이 화목하면 행복하다고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고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것이 행복하다고도 한다.
- P81

어느 쪽이 진정한 행복일까? 답하기는 어렵다. 각자 원하는 바를 얻었을 때 행복하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돈일 수도 있고 권력일수도 있다. 가족이나 친구일 수도, 따뜻한 물 한 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유는 서로 달라도 종착지는 행복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열심히 산다. 그러니 좋은 삶을 위한 궁극적 목적을 행복이라 하면 좋겠다.
- P81

예부터 지금껏 철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좋은 삶, 혹은 행복한 삶이가능할지 많은 생각을 했다.
- P81

소크라테스는 온전한 영혼의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포함한모든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말이다.
그의 질문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고, 결국 세상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 P81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위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행복(eudaimonia)이라 말한다. 행복은 자신이 가진 고유한 기능을 잘 발휘
하여 최선을 다했을 때 얻어지는 것으로, 수단이기보다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이다. - P82

행복해지면 무엇을 얻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했을 때마지막에 주어지는 것이 행복이다.
- P82

불행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열심히 해도 행복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최고는아니어도 자신의 모습에 만족한다면, 그것 또한 행복이 아닐까?
- P82

관중석이 텅 비어버린 운동장으로 마지막 마라톤 주자가 뛰어온다.
결승 지점에 도착한 그에게 아무도 손뼉을 쳐주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완주했고 그것에 만족한다면 그 자체로 행복하다. 그 행복을 우리는 자꾸 잊어버린다. 1등만 대접받는 사회의 인색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리에게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탁월함을 발휘하고자 노력했다면,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여도 행복하지않을까.
- P86

대표자에게 위임하는 방식이 나쁘지는 않다. 모두가 권력 행사를 하면이해충돌이 일어나 문제가 생기기 쉽기 때문이다. 서로서로 보호하기위해 권력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 없이 익숙해지다 보니권력은 대표자들끼리 서로 뺏고 빼앗는 것이지 국민인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P88

다시 헌법 제1조 2항으로 돌아가 보자. 모든 국민으로부터 권력이나오긴 하지만 권력을 위임한다는 점에서 모두가 권력의 주체이자 객체다. 지배하면서 지배받는 입장, 양쪽에 발을 딛고 서있는 것이 바로우리다. 권력을 어떻게 행사해야 옳은 것일까? 다시 말해 어떻게 지배하고 지배받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 P89

인민이 없으면 군주가 없고, 군주가 없으면 인민도 없다. 서로의 존재 이유가 되는 두 집단은 서로서로 이해하고 도와야 한다. 군주라면자신이 다스리는 사람을 이해해야 하며, 인민은 자신의 권력을 위임한군주가 어떠한지 알아야 한다.  - P91

군주의 권력을 이야기하면 자기 이야기는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있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무슨 정치권력을 논하랴 하고 생각하는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권력은 나랏일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자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결정하는것도 권력 행사다.
- P94

권력이란 사람이 둘 이상 모여 관계를 만들면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형성된다. 조금 근사하게 이야기해서, 의사결정을 하거나 자기의견을말하는 공적무대의 권력은 나랏일을 하는 군주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 P94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혹은 내외적인것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을 만큼 돈이 필요하다. 필요한 만큼 돈이 있으려면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일을 하다 보면 남의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 공적 활동은 물 건너간 이야기다.  - P95

금전적 이익을 줄 것인가 아닌가를 고민하기보다 공익을 위해 최선을다하는 사람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 P97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적 인간으로서, 다시 말해 시민으로서 탁월성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민으로서의 탁월함이 반드시 훌륭한 성품과 연결되지는 않는다. - P97

 착한 사람이 훌륭한 시민일 수는 있지만, 훌륭한 시민이 착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훌륭한시민으로서의 탁월함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사람을 가리킨다. 하지만 조건 없이 따르는 것이 시민으로서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것일까? - P97

‘철학을 한다‘는 것은 관조, 성찰, 소통과 같은 합당한 태도로 어떤 사안의 이치를 따지고 이유를 헤아려 보는 탐구방식을 통해 인간이 품는근원적인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하는 과정이다.  - P104

물음이 없다면 배움도 없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길로 가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이 생애를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이때 다음과 같은 물음이 중요한축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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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모두 자살 동기를 털어 놓았다. 그것은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내세우는 것, 즉 삶으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두 사람에게 인생이 그들로부터 여전히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으며, 미래에는 그들이 인생으로부터 무엇인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

각각의 개인을 구별하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런 독자성과 유일성은 인간에 대한 사랑처럼 창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버리지 못할 것이다

과학자였던 그 사람은 책을 써 왔고 아직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 일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또 다른 사람의 아이, 그 아이에게 애정을 베푸는 데 있어서 아버지 자리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 낼 수 있다.

나는 단순한 위로의 말부터 시작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고 여섯 번째 겨울을 맞았지만 지금 유럽 정세를 살펴보면 우리 처지는 그렇게 최악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시련을 겪어 오면서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을 잃은 적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의외로 그들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린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들은 희망의 이유를 갖고 있었다. 건강, 가족, 행복, 전문적인 능력, 재산, 사회적 지위 등은 모두 나중에 다시 가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때 나는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미래에 대해 얘기했다. 공정하게 얘기해서 미래가 가망 없어 보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얼마나 적은지에 대해서도 모두 생각을 같이했다. 우리 수용소에는 아직 발진 티푸스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살아남을 확률을 스무 명 중 한 명으로 점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잃거나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얘기를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심지어 바로 한 시간 후도 내다볼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미래에 대해서만 말한 것이 아니었다. 미래에 드리워져 있는 장막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또한 과거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과거에 있었던 모든 즐거운 일들과 그 빛이 현재 어둠 속에서도 얼마나 밝게 빛나고 있는지를

"그대의 경험, 이 세상 어떤 권력자도 빼앗지 못하리!"

경험뿐이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했던 모든 일, 우리가 했을지도 모르는 훌륭한 생각들, 우리가 겪었던 고통, 이 모든 것들은 비록 과거로 흘러갔지만 결코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 존재 안으로 가져왔다. 간직해 왔다는 것도 하나의 존재 방식일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가장 확실한 존재 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 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내 동료(꼼짝도 않고 누워 있다가 가끔 한숨을 쉬던)를 향해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삶은 의미를 갖는 일을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는 것, 삶의 무한한 의미에는 고통과 임종, 궁핍과 죽음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했다.

우리가 처한 가혹한 현실에 과감하게 직면하자고 했다.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되고, 우리들의 가망 없는 싸움이 삶의 존엄성과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확신 속에서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누군가가 ─ 친구나 아내, 산 사람, 혹은 죽은 사람, 혹은 하느님 ─ 각각 다른 시간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했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그 사람은 우리가 자기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의연하고 비굴하지 않게 시련을 이겨 내고, 어떤 태도로 죽어야 하는지 알기를 바란다고.

마지막으로 나는 우리의 희생에 대해서 얘기했다. 희생은 어떤 경우에나 다 의미가 있다. 우리의 희생은 그 특성상 정상적인 생활 속에서는, 혹은 물질적인 성공이 중요한 세계에서는 틀림없이 의미 없는 것으로 여겨질 희생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희생에는 의미가 있었다.

나는 진솔하게 말했다. 우리 중에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이 말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수용소에 처음 들어온 동료가 하늘에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을 들었다. 자신의 고난과 죽음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런 종말로부터 구원받도록 해 달라는 기도였다.

이런 사람에게 고난과 죽음은 의미 있는 것이다. 그의 희생은 아주 심오한 의미를 지닌 희생이다. 그는 헛되게 죽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실제로 가망이 없는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우리 삶이 갖고 있는 충만한 의미를 찾아보려고 이 말을 했다.

나는 어느 날 감독이 은밀히 불러 빵을 주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아침에 배급받은 빵을 아껴 둔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나를 눈물로 감동시킨, 빵의 의미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는 그러면서 나에게 인간적인 ‘그 무엇’도 함께 주었다. 그것은 따뜻한 말과 눈길이었다.

"저는 제 비좁은 감방에서 주님을 불렀나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자유로운 공간에서 저에게 응답하셨나이다."

그때 얼마나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이 말을 되풀이했는지 더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바로 그날, 바로 그 순간부터 새 삶이 시작됐다는 것을. 나는 다시 인간이 되고자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에게 더 이상 정신적 치료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생각이다. 그렇게 심한 정신적 압박을, 그렇게 오랜 시간 받았던 사람에게는 자유를 얻은 후에도 그전과 똑같은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내가 앞에서 수용소에 있는 사람에게 정신적으로 용기를 주려면 그가 미래에 기대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얘기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삶이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고, ‘사람’이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렇지만 정작 자유를 얻은 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어떤 사람은 자기를 기다리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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