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욜 저녁에 스쿼시 동호회 멤버들하고 간만에 방어를 안주삼아
시게 술한잔을 하고, 어제 아침에 쓰린 속을 부여잡고 헬스클럽에서
달리기하면서 술독을 빼낸 후 금욜 술친구와 해장한다고 해물탕 한그릇하다가
불현듯 골프나 한게임... 봉개프라자로 가서 9홀만 후딱치고 돌아왔다..
금욜,토욜을 무독서로 보낸게 아쉬워 오늘 아침 눈뜨자마자
한라도서관으로 차를 몰고 9시 문을 열자마자 열람실로 달려가 간만에 괜찮은 자리를 잡았다.
한 5분만 늦어도 로얄석은 빈자리가 없어 소파에 앉아서 책을 봐야하는데
그렇게 책보는 것은 30분이상 버티기 힘들기 때문에 책상이 있는 자리를 확보하려면
나름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며칠전부터 틈틈이 읽어오던 톨스토이 말년 작품인 <이반일리치의 죽음>을 오전 내내 읽었다.
중간중간에 다른 책으로 한눈을 팔기도 했지만,그래도 오늘 가장 집중해서 읽은 책이다.
이반 일리치는 요새 말로하면 잘나가는 법조인(법조 관료라고 해야하나? 우리랑 법조 직역체계가
좀 다른 듯하다)이다.
우리 사회도 그렇지만 1880년대 러시아 사회에서도 법조인은 상류 계층으로 분류된다.
이반 일리치는 법학교에 입학하고 윗사람들에게 잘 맞추고,아랫사람들한테도 친절하게
대하여 괜찮은 평판을 얻었고, 대체로 관운도 따라주어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집안도 무난하고 재산도 좀 있고, 미모도 그럭저럭 받쳐주는 여인을 부인으로 맞아 들이기도 한다.
삶의 여정에서 부인과 트러블도 있었고, 관운도 삐끗하는 곡절을 겪지만 행운도 작용하여
그는 더욱 많은 연봉과 권한을 가진 자리로 영전해 간다.
새로 옮겨갈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옆구리가 좀 다친 듯한데, 그게 조금씩 심해지면서
점점 견디기 힘들어지게 된다.
그리고는 어느덧 그의 곁에 또아리틀고 그를 응시하는 죽음을 인지하게 된다.
소설의 도입부에서는 그의 죽음을 놓고 그의 부인을 비롯한 가족들, 직장 동료들의
행태를 보여준다. 그리고는 이반 일리치의 인생을 반추하고, 죽음을 눈앞에 둔 시점부터
마치 옆에 붙어서 밀착 취재를 하듯이 세밀하게 죽음을 앞둔 이의 사유를 묘사하고 있다.
아직 40대초반에 불과한 나에게도 죽음은 마치 오지않을 것같은 전혀 딴세상의 일로
치부하고 살았던 듯하다.
그러나 죽음은 모든 이에게 불문가지로 찾아올 운명이고, 또한 모든 이들은 죽음이후에 펼쳐질
세계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불가지하다.
이러한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무시하고 살다가 금년 7월에 아버지의 죽음을 맞닥뜨리면서 죽음의
존재에 대하여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죽음이라는 거대 운명앞에서 선 나약한 인간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떤 미학책에서본 <메멘토 모리>라는 문구가 생각난다.
이 책을 통하여 최근 죽음에 대하여 한꺼번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하다보니 정리되지 않고 있었는데, 최소한 죽음을 앞둔 이들의 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수 있는 듯하다.
치매로 정상적인 생활을 수년간 못한채 단 한마디의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고 가신 아버지가
얼마나 두렵고 고통에 시달렸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