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소원을 말해봐

한 여자가 대학 입시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눈앞에 남자가 나타나 말했다.
「당신의 소원은?
여자는 대학에 합격하고 싶다고 했다. 그 후, 여자는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몇 년 후, 여자는 취직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의 소원은?
여자는 취직하고 싶다고 했다. 그 후, 여자는 원하는 회사에 취직했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지났다. 여자는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자 남자가 나타나 말했다.
「당신의 소원은?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들리지 않는 것 같다. 남자는 말했다.
「이런, 순서가 잘못되었군…….

14.버스사고

어느 가족이 계곡으로 놀러가고 있었다.
휴가를 갈 형편은 전혀 아니었지만, 여름이니 무리해서라도 가는 것 같다.
가는 곳은 산 속 외진 곳이라 하루에 몇 대 없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산기슭 근처까지 오니 아이가 배고프다고 징징거린다.
덕분에 가족들만 내리게 해주기 위해 버스는 정차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내려서 정류장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몇 시간을 텔레비전을 보며 기다리는데,
속보로 아까 버스가 낙석 사고로 전원 사망이라는 뉴스가 흐르고 있었다.
아내는 「그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이라고 중얼거렸다.
남편은「바보같이 무슨 소리야!」 라고 고함쳤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아내 말이 맞기도 한 것 같다 .

15. 바람의 전학생

어느 날 전학생이 왔다. 자리는 바로 내 옆 자리.
처음에는 서먹했지만, 점점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졌다.
가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전학생에겐 죽은 누나가 있었다고 한다.
누나는 신경계의 난치병으로, 의식은 있지만 신체를 잘 움직이지 못하여,
죽기 전 몇 달 동안은 자주 죽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엄청 무거운 이야기를 초면에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만큼 나를 친구로 대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방과 후, 전학생 집에 놀러가기로 했다.
전학생의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시는데, 두 분 다 밤이 깊어야 돌아오신다고 한다.
방에서 게임하면서 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전 학교 혹은 지금 학교에 대해.
그러다가 문득,「아, 너네 돌아가신 누나 말인데…….」 라고 물어보려고 하는데,
전학생의 얼굴이 순간 바뀌면서 "그 이야기는 이제 됐고." 라며 화를 냈다.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왠지 분위기도 이상해지고 거북해져서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전학생에게 말을 건네자, 허물없이 대해주었다.
전학생도 어제 화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뭐 그리고는 친구로 사이좋게 지내자고 했다.
그런데 며칠 뒤. 전학생이 학교를 쉬었다. 선생님의 말씀으론,
어젯밤, 집에서 계속 투병생활 중이었던 누나가 건물 옥상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16. 벽에 씌여진 낙서 

내 친구가 학생시절에 방을 빌려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방의 벽 한쪽에 「엄마 아빠 최고」라는 아이의 낙서가 남아 있었다.
그 삐뚤빼뚤한 어린이 글씨의 그 낙서를 보고 절로 미소가 나온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몇 달간 거기에 살고 있었는데 역시 자취 보다 기숙사가 돈이 덜 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방을 비우면서 청소를 하고 가구를 움직이는 동안 문득 벽에 있던 낙서 아래에 또 다른 낙서가 보였다.
「엄마 아빠 최고」
친구는 신기한 생각이 들어 원래 있던 가구까지 완전히 밀어내고 벽을 보았다. 벽에는 빽빽하게 낙서가 가득했다.
「엄마 아빠 최고」
「아빠 최고」
「엄마 아빠 최고」
「아빠 최고」
「엄마 아빠 최고」
빽빽하게 수없이 가득 적혀 있는 낙서에 친구는 놀랐다.
가장 아래에 쓰다가 멈추게 된 글씨로 마지막 낙서가 있었다.

「엄마 엄마 제발 살려줘 엄마 엄마 엄마 엄마」

17. 무엇을 보는 걸까

나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편이다.
매일 아침 통근시간에 지하철 구내에서 뭔가 투덜투덜 말하고 있는 노숙자가 한 명 있었다.
그 남자와 가까운 벽에 기대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래 들어봤다.
아줌마가 눈앞을 통과한다. 그러면 그 남자는
「돼지」
하고 중얼거렸다.
뭐야 단순히 욕이었나. 동물에 비유하고 있을 뿐이잖아….
다음에는 평범한 비지니스맨이 통과한다. 그러면 그 남자는
「사람」
. 확실히 보편적인 인간이라는 느낌이다….
다음 날 심심풀이로 또 몰래 엿들어봤다.
여윈 남자가 통과한다. 그러자 그 남자는
「소」
하고 중얼거렸다.
소라고? 말라 비틀어진 나뭇가지 같은데…?
다음에 전형적인 비만남이 통과하자 그 남자는
「채소」
하고 중얼거렸다.
채소? 돼지로 말해야 하는데 실수한 거겠지?
나는 집으로 돌아가 곰곰히 생각했다.
어쩌면 전생을 알아 맞추는 것일지도!
그 후로 몇번이나 노숙자를 관찰하고 있다보니 의문도 확신으로 바뀌었다.
어느날 과감하게 노숙자에게 말을 걸고 능력을 몸에 익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간절히 애원했다.
노숙자는 묘한 빛이 감도는 눈으로 나를 응시하다가 나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다음날부터 노숙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도사나 초능력자 같은 거였을까? 아니면 신일지도?
아무튼 나는 능력을 몸에 익혔다.
하지만 그것은 기대하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났다.
단지 그냥 그 사람이 바로 직전에 먹은 것을 알아맞추는 능력이었다.
나는 너무 시시해서 웃어 버렸다.
                                                        - 출처 네이버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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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진명의 열녀 송씨의 순절

서해의 푸른 바다 파도는 모질고 물결은 거셌지만 그 끝이 멀다 않고성난 노도는 무차별 조선 땅을 휩쓸었다.

때는 1592(선조 25 4 14) 악독하고 교활한 일본 풍신수길이가 살기 좋은 우리강산을 탐내고 침범하기 시작하였으니 그 때의 난리가 임진왜란 이었다. 1441(세종 23) 도화 발포에 수군만호진이 설치됐고 그 후 한정록이 발포만호로 도임됐으며 부임 초부터 이순신 막하에서 많은 해전에 참전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천명의 수가 다했는지 칠천 양해전에서 혈전 끝에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

슬하에 1 2녀의 어린자식들을 두고 유명을 달리했으며 사랑하는 부인 송 여사는 세 어린 자식들을 양어깨에 업은 채 발포에 우뚝 서 있는 동영산 기슭 우암절벽에서 왜놈들에게 자식들까지 굴욕당하고 치욕적인 삶을 저주하는 것보다 차라리 낭군 따라 저세상으로 가는 것이 옮은 일이라 판단하고 그만 푸른 바다로 투신 자결했던 만고에 보기 드문 정렬이 있다.

이 사실이 널리 알려져 조선환여지승람이란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충무전서 난중일기 등에도 이 사실을 고증하고 있어 우리 고흥땅 발포는 역사적으로 깊은 유적지요 동남의 해상영역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받은 영광이 넘치는 유일무이의 관광명소가 아닐 수 없다. 그녀가 푸른 강물에 몸을 던졌다.

분명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우리 나라의 역사상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극심한 재난이었다. 그러한 국난을 당하여비겁하게 자기의 생명만을 지키려는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기꺼이 자기의 한 목숨을 구국의 길로 내던진 의로운 사람도 많았던 것이다. 이고장도화면 발포리 어귀에 있는 동영산 상봉에는 이끼 낀 비각과 먼지를 이고 우뚝 선 비석에 임진왜란때 구국의 길에 나선 남편의 뒤를 따른 열녀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져 있다.

임진왜란 때 임진 7월 발포만호 황정록이 유군장이 되어 발포 함대를 이끌고 나아가 한산도 해전에서 왜선 1척을 불태우고 적 수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안골포해전을 비롯하여 부산 해전에서도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 후 임진왜란의 상처가 채 가시기도 전에 1597
(정유년) 정유재란의 참혹한 불꽃이 타오르니 가엾은 백성들이 여기저기서 파리 목숨처럼 무수히 죽어갔다. 조상들이 남긴 값진 유물은 왜놈들의 더러운 손에 일그러지고 불타 없어졌으며 조정에서는 이러한 형편을 당하여 어찌 할 바를 모르고 갈팡질팡했던 판이었다.

또 나라의 기강이 문란한 때였으니 충무공은 몇몇 간신들의 시기와 모략 중상 등으로 파직된 뒤 그 해 7월 발포 함대를 이끌고 출동한 황정록 만호는 칠천량 싸움에서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남편이 출동한 후 가슴을 태우던 부인 송간의 손녀 여산 송씨는 이 비보를 듣고 "남편이 왜놈들 총탄에 맞고 죽음을 당하였는데 장차 우리도 더러운 왜적의 손에 죽음을 당할 것이거늘 어찌 우리만 살아서 무엇 하겠느냐?" 하며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큰 아이는 양팔에 끼고 마을 동쪽에 있는 우암 절벽에서 깊은 바다로 몸을 던져 남편의 두를 따라 순절하고 말았다.

지금도 우암 절벽에 오르면 후세 사람들은 그녀의 슬픔이 담긴 사연을 전하고 그 곳을 열녀절벽이라 일컬어 갸륵한 뜻을 가리고 있다.

임정양난 7년이 지난 후부터 발포의 동민들은 매년 흉년에다 질병이 겹쳐 마을은 평온을 찾을 길 없이 허덕이고 있었는데 어느 날 80된 노인의 꿈에 선몽을 하는 것이다. 내용인즉 발포만호 황정록 부인 송 여사와 어린자식과 더불어 5인 가족의 혼신이 나타나서 우리들은 구천을 헤매고 있으니 마을이 편안하려면 동영산 상봉에 제당을 짓고 동제를 지내줄 것을 간청하므로 동민들은 노인의 선몽을 받아들여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400여 년 동안 동제를 지낸 후부터 풍농과 풍어의 시절이 끊이지 않고 동네가 평온했다고 한다.

이 동제를 의열사에서 모신 5년 후부터 구천을 헤매는 황정록 가족이모두 왜가리로 환생하여 봄이면 남쪽에서 이곳까지 날아와 보금자리를 삼고 새끼를 번식하고 가을에 다시 남쪽으로 날아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 왜가리 떼가 1,000만에 달하여 백색으로 단장하고 창공을 나는 모습은 마치 백의민족이 자유를 얻어 평화롭게 훨훨 나는 듯 하며 자식들은 푸른 바다에 물귀신으로 만든 어머니의 천년만년의 한을 달래주는 듯이 이 왜가리 도래지는 지방기념물 제33호로 지정됐다.

오동나무여! 활개바위여! 발포여! 너는 알고 있다!(고흥의 관광명소)

이순신 장군이 이곳 발포만호로 1582년에 도임하여 1 6개월 재임하실 때 군기감 서박이 검열하고 간 후 동원 뜰에 서 있는 오동나무를 가야금 악기재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즉각 베어 올리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이 때 장군은 그 명령을 여지없이 일축하고 흙 한줌이나 돌 한 덩이라도 국가의 소유재산인데 베어 올릴 수 없다고 거부하고 말았다. 이때 서박은 거짓보고와 음해를 가하여 이순신은 초임지인 발포 만호직을 파직 당했다는 슬픔임난 10년 전 이야기가 오늘까지 전해오고 있다.

지난 1987년 신형식장관을 중심으로 도화 발포리의 유적지 성역화 사업이 전개되어 현재 내외삼문을 갖춘 충의사가 신축되어 각종 유물은 물론이요. 후세의 교육장으로 또한 고흥 유일의 관광명소로 인정받고 있으며 공원으로 지정받아 발포는 관광지의 관문이자 중심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발포 동북쪽에는 유명한 탕사장이 있어 옛날 젊은 남녀가 정렬적인 사랑이 넘쳐 뜻하지 않은 열병을 얻어 신음하게 됐다.

두 남녀는 피부가 부어터지고 종기 등이 나자 견딜 수 없어 모래를 파서 웅덩이를 만들고 그 곳에 알몸을 묻었다. 오동나무의 슬픈 사연을 연상하면서 이열치열 하리라하고 모래사장에 장작불을 피어 불에 달군 모래를 이불삼고 15일간 지낸 뒤 차차 쾌유되자 이곳을 탕사장이라 이름하고 하절부터 전국 각처에서 탕사 인파가 극성을 이룬다고 한다. 그리고 도화면 사덕리 덕흥마을이 옛날 선소로서 거북선을 건조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야말로 발포리는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곳으로 전해오고 있다. 그리고 발포 포구에서 1km 떨어진 남쪽 해변에 활개바위가 있어 지나가는 범선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활개바위는 발포선창 남서쪽에 위치하여 발포포구의 절경을 대표하고 있는 곳으로 자연석의 조화는 그 형태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신비의 기절 처라 아니할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이 당시 해저탐방의 기술 장비가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검푸른 바닷물 가운데 돌출한 활개바위 주위는 큰 군함도 접안할 수 있으며 접안과 동시에 전차, 장갑차, 기타 군용차량이 자유자재로 상륙할 수 있는 천연적인 요새지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임난 때 이곳 경비를 소홀이 한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 활개바위와 나란히 돌출한 바위는 모양이 마치 남자의 X처럼 생겨 그곳을 지나가는 여자들로 하여금 충열이 안되는 자 없다고 하며 이 활개바위 주위를 지나는 모든 범선은 마치 남국의 해변에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들 한다.

왼쪽에 돌출하여 날개를 펴고 있는 여자의 생식기를 노려보고 있는 형상이라고 하니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열이 오르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곳에서 다시 지죽 쪽으로 해안을 돌아보면 금강죽봉이 있어 경관이 수려하고 50m쯤 서쪽으로 가면 해중약수터가 있어 유명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장어(하모)가 많이 잡혀 일본으로 직수출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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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낙원에 살고 있던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아내 이브는 하느님이 먹으면 안 된다고 말한 무화과가 먹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신의 벌이 두려워 차마 따먹지를 못하고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뱀은 말했습니다.
"그 열매를 먹어 봐요, 참 맛있는 열매야. 하느님이 먹지 못하게 한 것은 다른 사람이 먹을 까봐 그런 거야. 벌은 무슨 벌이야."
뱀의 유혹에 넘어간 이브는 마침내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으며, 그 때부터 이 세상의 온갖 괴로움과 악을 알 게 되었고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살기 좋은 낙원에서 추방되어 세상의 괴로움을 알 게 된 이브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때 이브가 흘린 눈물이 땅 위에 떨어져 백합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이야기  

옛날 독일의 하르쓰 산촌에 아리스라는 예쁜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단 둘이 생활은 넉넉지 않았으나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 모녀는 신앙심이 매우 두터워 늘 하느님을 공경했습니다.
어느날 아리스가 여느때처럼 마른 풀을 모아 다발로 묶고 있으려니 우연히 말을 타고 그곳을 지나가던 라우엔베르크 성주가 아리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말을 걸었습니다.
성주는 승마를 즐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봐, 처녀! 나하고 같이 성으로 가세. 네 소원은 무엇이건 들어 줄 터이니까"  
"고맙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가장 소중한 어머니가 계십니다. 어머님한테 말 한마디 없이 따라갈 수 는 없습니다." 어쩐지 두려운 생각이 앞선 아리스는 간신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래? 그것 매우 기특하고나. 그렇다면 속히 어머니를 불러오너라"
성주는 관용을 베푸는 체했습니다.
아리스는집으로 뛰어가서 모친에게 성주의 말을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성주는 매우 거친 사람이었고, 마을의 예쁜 처녀는 모조리 데리고 가서 노리갯감으로 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모친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리스야! 네가 성주님을 만났으니 큰 일 났다. 속히 이곳을 도망치자. 그렇지 않으면 영락없이 붙잡혀 가게 된다." 모녀는 정든 집을 도망쳐 나와 산허리에 있는 사원으로 가서 스님에게 까닭을 말하고 숨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스님은 성주의 횡포에 의분을 느끼고 있던 판이어서 모녀를 쾌히 숨겨 주었습니다.
기다리다가 모녀가 도망친 사실을 알게 된 성주는 화를 내며 온 마을을 이잡듯이 뒤졌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절간까지 왔습니다. 졸개들은 외쳤습니다.
"문을 열어라! 성주님의 명령이다."  
"열 수 없소이다. 법왕님의 명령이요"
옥신각신 끝에 성주는 마침내 병졸을 시켜 문을 부수고 들어가 아리스를 잡자, 울부짖는 그녀를 성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성문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아리스가 그제서야 울음을 그치므로 성주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그녀를 말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성주의 팔에서 떨어진 아리스가 생긋 웃음을 띈 순간 그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두 개의 백합꽃이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피어 있었습니다.
놀란 성주는 자기의 잘못을 뉘우쳤으며, 그 뒤로는 마을처녀를 건드리지 않았고, 그 백합을 소중히 키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꽃말: 하얀백합 꽃말:순수한 사랑,순결,깨끗한사랑 분홍백합 꽃말:핑크빛 사랑 빨간백합 꽃말:열정적이고 깨끗함 주황백합 꽃말:명랑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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