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불어

항해를 돕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배가 가야할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바람이 불어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늘 순풍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인생의 방향과 비젼부터 정해야 합니다.
내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지.
그곳에 가면 무엇을 만날지,
그것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
목적지가 정확하면
어떤 바람도 순풍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폭풍이 불지만
유능한 선장은 그 폭풍마저도 목적지에
더 빨리 이르게 하는 순풍으로 이용합니다.

당신의목적지는 어디입니까?
목적지가 분명하면
어떤 바람도 순풍입니다.
오늘도 순풍을 타고
목적지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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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하는 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2. 진짜 하고싶은 일을 했더라면...

3. 겸손했더라면 ...

4.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5. 나쁜짖을 하지않았더라면...

6.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7. 감정에 휘두르지 않앗더라면...

8.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9.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10. 죽도록 일만 안 했더라면...

11. 가고싶은 곳으로 여행을 했더라면...

12. 내가 살아온 증거를 남겨놓았더라면...

13.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14. 고향을 찾아가 보았더라면...

15.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 보았더라면...

16. 결혼을 했더라면...

17. 자식이 있었더라면...

18. 자식을 혼인 시켯더라면...

19. 유산을 미리 염두해 두엇더라면....

20. 내 장례식을 생각했더라면...

21. 건강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22. 일찍 담배를 끊었더라면...

23. 건강할때 마지막의사를 밝혔더라면...

24. 치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25. 신의 가르침을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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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베트남넷]

(아주경제 온라인뉴스부) 지구상에 4마리만 존재하는 '전설의 거북이'가 지난 3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있는 호수에서 전격 포획돼 화제다.

지난 3일 하노이의 호안키엠 호수에서 '전설의 거북이'가 포획됐다. 이 거북이는 체중  200, 길이 약 180㎝에 현재 100세가 넘은 민물 거북이로 세상에 단 4마리만 존재하는 희귀종이다.

'전설의 거북이'는 베트남의 전설에 따르면 15세기 대월남국 초대 황제인 '레이로이'가 수세에 몰릴 때 이 호수의 거북이가 마법의 칼을 건네줘 중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유래됐다.

베트남 국영TV에 따르면 이 거북이는 수개월 동안 2번 모습을 보였는데 환경 오염과 낚시 바늘, 그리고 소형 붉은 귀 거북의 공격에 의해 치료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거북이의 생포를 담당한 업체 관계자는 "현재 거북이 등껍질의 상처가 낫고 있다"면서 "2주 안에 완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포획에는 거북이와 눈을 마주치려는 주민 수천 명이 몰렸다. 최고 영물로 알려진 이 거북이와 눈을 마주치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속설 때문으로 전해졌다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호수에서 치료를 위해 포획된 전설의 거북이. 100살이 넘고 200kg 이르는 전설의 거북이다.
이 거북이가 잡힌 것은치료를 위한 것으로 수천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특수부대원이 동원돼 포획했다. 100세가 넘은 것으로 알려진 거북이의 체중은 약 200kg에 달했다.
베트남 국영TV에 따르면 이 거북이는 수개월 동안 2번 모습을 보였는데, 등과 얼굴, 다리에 붉은 반점의 큰 상처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환경 오염과 낚시 바늘, 그리고 소형 붉은 귀 거북의 공격에 의한 상처들로서 치료가 시급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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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월정리의 기우제 풍습 

일죽면 월정리 마을에는 옛부터 특이한 기우제의 풍습이 지금까지 전하여 내려 오고있다. 가뭄이 심한 철에는 동리 아낙네들이 목욕 재계한 후에 키를 들고 마을 앞쪽다리 개울에 나가 춤을 덩실덩실 추며 개우물에 키질하는 광경은 마치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같으며 그 엄숙하고 장엄하기란 불교의 승무를 연상케 한다.

이런한 아낙네들의 정성이 하늘까지 닿은 듯 기우제가 끝나면 반드시 비가 오기 때문에 그 풍습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안성돌우물 

조선 말기 대원군 전성기에 "농악"이 성행하여 일년 사계절중 봄, 가을을 통하여 조선팔도 농악 경연대회가 한양에서 열였다. 대회 목적은 대원군 일생일대의 대역사였던 경복궁 중건에 너무 많은 재정투자와 노력이 투입되므로 민심이 소란해지고 "대원이대감"을 원망하는 소리가 높아짐에 민심 순화책의 한 방편으로 <경복궁타령>을 만들어 부르게 하는가 하면 노역자들을 위안하고자 전통 민속의 하나인 농악 경연대회를 열게 된 것이다.

경연 대회에서 제일 잘하는 농악대는 대원군으로부터 직접 관자기와 상좌, 두레, 농악이 유명했던 것이다.

있는 특권이 있었으므로 당시 대회의 세도가 당당 하였던 모양이다. 특히 상좌 농악대가 특별 출연할 때에는 인근 농악대는 일제히 관자기에 배려를 하며 상좌 농악대를 극진히 대접하였다고 하는 기록이 <<매천양록>>에 비치고 있는데, 세월이 흐르고 문화의 변천에 따라 찬란했던 이 고장 안성농악은 찾아 볼 길이 없고 다만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돌우물 두레패 : 현 안성시 석정동 농악대를 말함

태봉산 

안성시원곡면 성은리에 가면 태봉산이 있다. 영조 10년(1732) 1월 초1일에 탄생한 웅주이며 사도세자의 동생의 태실을 모시고저 명당자리를 찾기 위하여 유명한 풍수객을 전국에 풀어 찾던 중 한 풍수객이 이곳에 이르러 자리를 정하고 태실을 정중히 모시었다.

그로부터 이 산을 태봉산이라 부르게 된 바 왜정때 왜인들이 주민들에게 명산 꼭대기에 태실을 묻었기 때문에 이 마을 주민들이 궁핍하고 자손들도 잘 되지않으니 발굴해서 버리자고 수차의 감언이설로 협박과 공갈을 하였으나 주민들이 말을 듣지 아니하자 왜인들을 강권을 발동하여 인근 주민 수십명을 강제동원하여 태실을 파서 산기슭으로 굴려 버리고 비석도 묻어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후 40여년간 그대로 방치되었다가 1967년 3월에 주민들이 뜻을 모아 태실과비석을 찾아 통심마을어구에 정결하게 태전을 마련하고 태실을 안치하였으며 비석을 세워 수호하고 있으니 이 태실과 태봉산은 역사와 함께 한 없이 흘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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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듣지 못한 법륜 굴림은 중생들을 가엾게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을 받들어 섬기는 이 그에게 예배하고 세 세계를 초월한다. 법구경 도행품(道行品  

임진왜란 당시 청주를 공략한 왜장 가토 기요마사의 휘하에 있던 한 왜장이 청주로 들어 오다가 서쪽 동화산에서 황홀한 황금빛이 비치는 것을 보고 필경 산속에 보물이 있을 것이라 단정하고 부하 군졸들을 데리고 동화산으로 들어 왔다.
그 무렵 동화산에 자리잡고 있는 동화사 경내에 안치되어 있던 석불좌상 한 분이 왜장이 들어오기 3일 전부터 몸에 물방울이 맺히면서 가끔 한숨 소리가 절안에 들려 왔으므로, 주지 스님을 비롯한 여러 승려들이 모여서 불길한 징조라고 몹시 걱정을 하고 있었던 차에, 말발굽 소리도 요란하게 왜병 일당이 사찰 경내로 들이닥쳤다.
마침 법당에 앉아 있던 주지 스님이 나와,

“불전 앞에서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일갈(一喝)하자 왜장은 주춤하더니,
“이곳을 지나다 보니 절안에서 후광이 비쳐오기에 무슨 일인가 하고 들어 왔소.
하면서 불당문을 열었다.
왜장이 보았다는 후광은 석불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왜장이 법당문을 열자 석불에서 비치고 있던 후광이 사라지면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던 석불의 얼굴이 서서히 왼쪽으로 돌아 가면서 왜장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본 스님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숙여 합장배례를 했으나 왜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석불이 왜장이 보기 싫어 외면을 했기 때문이다.
화가 치민 왜장은 장검을 빼들어 석불의 목을 쳤다.
그러자 한 칼에 목이 베어진 석불 머리는 그대로 불전에 떨어지며, 목을 벤 왜장의 발등을 때려 발목을 분질러 놓고 말았다.
이에 놀란 왜병들이 황급히 발목이 부러진 왜장을 이끌고 밖으로 나와 고분터[高隱里]를 향해 나오는데,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끼면서 뇌성벽력과 함께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왜병들이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근처 고목나무 밑으로 들어가자 벼락이 고목을 때려 반수 이상의 왜병들이 현장에서 불타 죽었다.
이에 나머지 왜병들이 석불의 목을 쳤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라 여기고 전전긍긍하고 있던 차에 국사봉(國士峰)에 은신했던 의병장 조헌(趙憲)이 군사를 이끌고 기습을 가해 몰살을 해 버렸다.
그 뒤 동화사 주지는 떨어진 석불 머리를 다시 불당에 올려 놓고 공양예불을 계속하고 있었으나, 언제부터인가 머리는 사라지고 현재는 목없는 석불만이 법당에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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