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랑각시의 영험

<화성·홍법사>

『아니 중국 천자는 자기 나라에 여자가 없어서 조선으로 여자를 구하러 보냈나.


『다 속국인 탓이지요.

『아무리 속국이기로서니 조정에서 이렇게 쩔쩔매니 장차 나라꼴이 큰일이구려.

『자, 이렇게 모여 있을 것이 아니라 어서 여자들을 피신시킵시다.

『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누구네 집에 어떤 딸이 있는지 다 알고 있을 텐데.

신통한 묘책이 없어 수심에 잠겨 있는 마을 사람들 앞에 드디어 관원들이 나타났다. 욱모방망이를 든 포졸들을 앞세우고 외쳤다.

『얘들아, 마을을 샅샅이 뒤져 젊은 여자를 모조리 잡아 끌어내라.

포졸들에게 끌려 나오는 여인들의 치마는 땅에 끌렸으며, 강제로 허리를 껴안고 나오는 포졸들의 입은 헤벌려 있었다.

마을에서 자색이 뛰어난 홍만석의 딸 홍랑 역시 발버둥을 치며 끌려나왔다.

『오늘 우리는 중국 천자에게 진상할 처녀를 물색하러 조정의 명을 받고 나왔느니라. 우리 고을에선 홍만석의 딸 홍랑을 진상키로 하였다. 만약 이를 거절한다면 왕명을 어긴 죄로 3대를 멸할 것이며 우리 홍법리 마을은 마땅히 폐촌을 면치 못하리라.

관원은 득의양양하게 일장 연설한 다음 홍랑에게 말했다.

『홍랑아, 어서 분단장 곱게 하고 관아로 가자.

어찌할 바를 모르던 홍랑은 넋을 잃고 주저앉은 아버지 홍만석의 모습과 자기만을 주시하는 마은 사람들을 보고 결심을 했다.

『가겠습니다. 나으리. 그러나 명나라에 가게 되면 모래 서 말과 물서 말, 그리고 대추 서 말을 가져 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야 천자의 애첩이 될 몸인데 무슨 소원인들 못 들어주겠느냐. 어서 가자.

동헌 마루에 높이 앉은 명나라 사신은 곱게 차린 홍랑을 보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헤헤조선에 미녀가 많다더니 이거 참으로 선녀로다!

임진왜랄ㄴ의 상처가 채 아물기 전인 광해군 2(1610), 홍랑은 명나라로 떠났다.

『허- 참으로 아름답구나. 네 이름이 무엇인고?

『홍랑이라 하옵니다.

『홍랑이라. 이름도 곱구나. 참으로 조선에 천상의 미녀 못지않은 미인이 있었구나. 여봐라, 홍랑을 별궁에 거처토록 하고 매사에 불편이 없도록 하라.

천자는 명을 내렸다. 천자의후궁이 되면서부터 홍랑은 말을 잃었다.

가져온 모래를 뜰에 뿌리거 목이 마르면 가져온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대추로 연명했다.

홍랑의 아름다운 자태는 날로 수척해 갔다. 고향과 부모를 그리며 염불로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아씨, 오늘은 제발 저녁을 드십시오.

『아니 먹을 것이니라. 나는 명나라 후궁이 되었으나 오늘까지 명나라 음식은 커녕 물 한 모금 먹지 않았으며 명나라 흙도 밟짖 않았느니라.

『내일이면 물도 대추도 떨어집니다. 이제 무얼 잡수시겠습니까?

『내일이면 내 생명은 다할 것이나, 죽어 보살이 되어 천자를 회개시킬 것이다.

다음날 홍랑은 세상을 하직했다.

홍랑이 죽은 지 사흘째 되던 날. 천자는 우연히 병을 얻었으며 병세는 날로 악화돼 혼수상태에 빠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천자는 비몽사몽간에 홀연 어디선가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오, 너는 홍랑이 아니냐?

『그러하옵니다. 소첩이 폐하를 구하러 왔사오니 제 말을 잘 들어주십시오.

홍랑의 말소리는 허공에 울리고 천자는 두려움에 떨었다.

『폐하, 앞으로는 백성을 아끼고 불도를 닦는 착한 임금이 되십시오. 그리고 소첩을 고향으로 보내 주옵소서.

『내 착한 임금이 되도록 힘껏 노력은 하겠으나 너를 어떻게 고향으로 보낼 수 있겠느냐. 제발 짐을 살려다오.

『폐하, 소첩의 혼이 담긴 보살상을 조성하여 무쇠 사공과 함께 돌배에 태워 보내십시오.

『아니 그럼 홍랑은 보살님이시었던가.

천자는 석달 열흘에 걸쳐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며 천하유명한 석공과 철공을 모아 돌배와 무쇠 사공을 조성했다. 그러나 괴이하게도 홍랑의 보살상은 완성될 무렵이면 두쪽이 나곤 했다. 세번, 네번 다시 만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천자는 쉬지 않고 일심으로 기도했다. 어느 날 새벽 인시 북소리의 여음에 이어 인자한 음성이 들렸다.

『착하도다. 대왕은 홍랑의 마지막 모습을 보살상으로 새겨야 하느니라.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보니 천자는 불상 앞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정신을 차려 홍랑의 모습을 그려 봤으나 영 떠오르지를 않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 홀연 한줄기 바람이 일며 홍랑이 나타났다. 수척하면서도 인자한 모습 그대로.

이를 본 천자는 죄업을 뉘우치며 전신을 찌르는 아픔을 느꼈다.

『홍랑보살님, 짐의 죄를 용서하십시오.

다시 석공을 불러 보살상을 조성한 지 백일째 되던 날 홍랑보살상이 완성됐다. 천자는 크게 잔치를 베푼 후 홍랑보살상을 12명 쇠 사공과 함께 돌배에 태워서 물에 띄웠다. 돌배는 지금의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홍법리 홍랑의 고향 앞바다에 닿았다. 때는 광해군 3(1611)의 이른 봄. 마을에선 홍랑보살의 영험을 기리기 위해 절을 세우고 홍랑 보살상을 모신 후, 절 이름을 홍법사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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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arassed bunny 

올해가 토끼해라서 그런지 토끼 사진이 많이 눈에 보인다.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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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어로 된 육자진언 만다라입니다.
관세음보살 육자대명왕진언(
世音菩薩 六字大明王眞言), 육자대명왕다라니(六字大明王陀羅尼), 옴 마니 파드메 훔(산스크리트어: मणि पद्मे हूँ, 중국어: 麼抳鉢訥銘吽) 및 옴 마니 반메 훔은 불교의 천수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진언이다. 밀교를 비롯하여 불교에서 사용되는 주문 가운데 하나이다.
문자적인 뜻을 보면 ", 연꽃속에 있는 보석이여, 으로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주문이다. 티벳인들이 특히 많이 외운다. 보통 티벳인들은 이런 뜻과는 상관없이 그냥 많이 외우기만 하면 그 자체로 영험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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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오직
좋지 않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과
좋지 못한 음식을 먹는 사람을 공격한다.
병을 예방하고 내쫓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먹는 것에 달려 있다.
그 다음으로는 좋은 환경에서 사는 것이다.

- 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의《조화로운 삶》중에서 - 

침묵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침묵을 지키지만
마음속으로는 남을 판단한다.
그는 쉼없이 지껄이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또 어떤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을 하지만
침묵을 지킨다.
필요없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각신부님 글 중-

오늘 하루만이라도 '침묵'을 지키고 싶군요.
겉으로든 속으로든......   

 
달과 되새 떼  -박남준-

지리산 쌍계사 골짜기
10년만에 돌아왔다고 사람들의 얼굴에 희색이 돈다
되새 떼가 몰려왔다 수천수만 마리가
몰려가고 오무렸다 폈다
솟구치고 내리꽂히는데
그 사이 저녁잠을 찾아나선 매 한 마리 빙빙
휘오 휘오 맴을 돌며 입맛을 다신다
날은 벌써 어두워지는데
어쩐다지 이를 어째 구경나온 이들이 발을 동동 구른다
뒷동산에 이윽고 서를 푸른 초승달 스르릉
오르락내리락 안절부절 되새 떼들이
일제히 달 속으로 들어간다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와르르르
한순간 대숲으로 쏟아져 이내 잠잠하다
뭐라고 그랬을까
그러니까 이를테면 무슨 부탁을 하기는 한 모양인데
되새 떼가 잠든 늦겨울의 저녁하늘
달은 한껏 실눈을 치떠서 사위를 살피고
매 한 마리 점점이 되어 사라지고 있다
아하 그러니까 그게     출처 :  2007 불교문예 여름호 

  친구

친구 사이의 만남에는 서로 영혼의 울림을
주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너무 자주 만나게 되면 어느 쪽이나 그 무게를
축적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마음의 그림자처럼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좋은 친구이다.

만남에는 그리움이 따라야 한다.
그리움이 따르지 않는 만남은
이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진정한 친구란
두 개의 육체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란 말이 있다.
그런 친구 사이는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척에 살면서도 일체감을 함께
누릴 수 없다면 그건 진정한 친구일 수 없다.

진정한 만남은 상호간의 눈뜸이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한때의 마주침이다.
그런 만남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끝없이 가꾸고 다스려야 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좋은 친구감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란
내 부름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법정스님 잠언집 '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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