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 재원 아트북 15
재원 편집부 엮음 / 재원 / 200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의 영화를 보면 세계적인 인물이나 천재를 지구인이 아닌, 외계에서 온 존재라고 설정하는 작품들이 많이 있다. 가령 맨 인 블랙이라는 영화를 보면, 엘비스 프레슬리나 마이클 잭슨등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필자도 충분히 공감하는 내용이다. 세상에는 정말 불가사의한 존재들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를 살다간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그렇다. 다빈치의 습작 스케치나 비례도 등을 보게 되면, 정말로 외계인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시대를 앞서간 천재다. 말년에 그는 아무것도 완성시켜 놓은 것이 없다라고 말을 했지만, 그가 후대에 남긴 영향력은 그의 작품 이상으로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여러 평론가들은 레오나르도의 작품 '모나리자의 미소' 을 매우 극찬하고 있는데, 필자는 안목이 좁아서 그런지 너무 과장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아마 이 주제를 다룬 책만해도 수백 권은 나왔을 것이다. 필자는 도대체 그 미소가 왜 그렇게 신비로운지 알수가 없다. 레오나르도 자산이 말했듯이 그것은 미완성 작품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해석이 분분해 질 수 밖에 없고 이것이 확대재생산 되면서 펼쳐나간 것일뿐 여기에 무슨 엄청난 비밀과 코드가 숨겨진 것은 아닌것으로 본다. 나머지 여타의 사람들은 전문가들이 그렇하고 하니까 그런줄 아는것이지 뭔가 심오한 것은 없다. 아마 이 얘기는 필자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사람이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실제로 가서 직접 보면 그렇게 신비로운 뭔가가 있지는 않다. 사람들이란 어느 정도 과장하게 마련이고 이것이 몇 단계를 거치면서 증폭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 보급판
고운기 지음, 양진 사진 / 현암사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삼국유사가 집필된 시기가 고려시대이지만, 조선시대에 500년 동안 그 존재를 몰랐었다고한다. 그런데 1904년 도쿄제국대학에서 우연히 어떤 학자가 이 책을 발견하고 번역을 하면서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단재 신채효 선생마저-- 알려졌다고 한다. 이렇게 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임진왜란 때 조선의 수많은 도서가 왜국으로 약탈되면서 쓸려간 것이 첫 번째고, 두번째는 너무 중국만 바라보면서 숭유억불 정책을 펼친 것도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삼국유사가 사료로서 갖는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신라, 백제, 고구려에 대한 내용만 나와 있는데 비해 --그래서 사대주의라고 비판받는다-- 삼국유사는 우리나라 땅과 그 주변에서 명멸했던 여러 나라를 담고 있다. 즉, 고조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바로 삼국유사라고 한다. 만약, 일연선사의 기록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 분의 대륙적인 사고가 없었다면...... 중국이나 일본의 허접스런 역사왜곡에 대해 반박할 자료가 없었을테니 정말 아찔해진다. 조선시대에는 명나라만 바라보다 일본에게 뒤통수를 맞았는데, 지금은 미국만 바라보면서 알아서 설설설 자세를 낮추고 있으니 죈장.....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하고 새시대를 열었어야 하는데,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서 100년이 넘게 진행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요 울화통이 터진다. 역사에 대해서 바로 알고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힘을 길러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표암 강세황 회화연구
변영섭 지음 / 일지사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표암은 강세황의 호다. 단원 김홍도를 길러낸 스승인데, 우리나라 그림의 역사에서 서양의 원근감을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시도에 거리낌이 없었으며, 열린 자세를 가졌던 선비다. 당시의 조선은 오로지 중국만이 대형이고 다른 여타의 나라는 오랑캐라고 취급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마음가짐은 정말로 본받아야 한다. 세계 정세를 등한시하다가 불행했던 근현대사를 보내고 있는 우리민족을 생각해보라. 아뭏든, 그는 당시 사람들이 가장 닮고 싶었던 인물이었다. 오늘날로 치자면 멘토였던 셈이다. 그러한 강세황의 작품과 일대기를 간략하게마나 알아보자.


한마디로 그는 천재였는데 시.서.화 3절에 모두 능했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조선 예술계의 거목, 총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가 영.정조 때였는데 그는 관직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서 거의 반 평생을 후학을 길러내는데 힘을썼으며 주로 평론가로서 활약했다. 그러나 말년인 60대에 이르러서야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중국으로 가서 새로운 문물을 직접 접할 수 있다는 판단때문이 아니었나 한다. 왜냐하면, 서양화 화법의 도입에서 보듯이 그는 진취적이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결코 꺼려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예로써 그는 72세에 노구를 이끌고 북경 사행길을 다녀왔는데, 그 와중에 많은 기록과 작품을 남겼다. 평소 그는 중국 학자들을 만나서 폭넓은 교류를 하기를 소원했었다고 한다. 앞선 문명과 문화에 대한 갈증은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바이니 강세황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원 장승업 - 상
민병삼 지음 / 이손(구 아세아미디어)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으로 대중에게도 친숙한 이름이 바로 오원 [장승업]이다. 필자의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는 한데, 어떤 유명한 조각가에게 한 기자가 질문을 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뛰어난 작품을 다듬어 낼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가 답하길, 나는 조각을 하는게 아니고 그 안에 담겨진 형성이 드러나도록 불필요한 부푼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장승업의 화풍도 이와 같다. 그는 자기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 문맹이었으나, 붓을 쥐기만 하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야말로 일필휘지로 걸작을 드러나게 만들었다.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적도 없는 이가 말이다. 달래 천재가 있는 것이 아니다. 뭐라고 비유를 할까? 포토샵의 마스크 툴과 같다. 가면을 벗으면 실체가 드러나듯이, 장승업은 하얀 도화지를 걷어내어 그 안에 담겨진 진실한 모습을 드러나게 만들었다.


한편, 장승업이 화가로서 이름을 떨칠 수 있게 된 것은, 이응헌이라는 재력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그는 역관 출신으로 중국의 많은 예술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조실부모하고 고아로 자라난 장승업이 이때 그의 집에서 하인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고 한다. 우연히 그의 재능을 알아본 이응헌이 장승업의 후원자가 되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그의 걸작들이 후대에 남게 된다. 이후 장승업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고종의 명령으로 궁궐에서 그림을 그리는 관직을 받았는데, 무엇에도 얽매이기 싫어하는 그가 이를 박차고 뛰어나가는 장면이 바로 취화선 포스터다. ㅎ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혜원 신윤복 -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명작 그리기
엘리북 편집부 지음 / 엘리북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 그림의 역사에 있어서 혜원 신윤복 만큼이나 색시한 작품을 남긴 화가는 없을 것이다. 유려한 선과 강렬한 채색, 그리고 묘한 상황이 주는 그의 스타일은 정말 탄복을 금할 수 없다. 어떤 한 연구자는 그의 작품이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의 우키요에라는 풍속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림의 스타일이나 화풍에서 그런 분위를 많이 느낄 수는 있으나,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아뭏든 김홍도와 더불어서 신윤복은 조선이 낳은 걸작이다. 당시의 에로티시즘이 궁금하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라.


필자가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감상한 그림은 '쌍검대무' 라는 작품이다. 이 걸작은 국보 135호로도 지정되어 있어서 그 가치를 알만하다 할 것이다. 넓은 마당 한 가운데에 쌍검을 들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기생 두 명이 검무를 추고 있고, 그 주변으로 악사와 구경꾼들이 원형으로 늘어서 있는 장면이다. 검을 든 기생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붉은색과 샛파란색으로 화려하게 채색을 했으며, 그 움직임이 나긋나긋하면서도 율동이 느껴지는 지라 한 폭의 양반춤을 보는것 같다. 그리고 그 주변인물들은 상대적으로 색감을 옅게 만들었다.


특히나 정중앙 보다는 그림 오른쪽에 있는 기생의 동작이 매우 다이나믹한데 필자는 자꾸만 그 여인네에게로 시선이 가고 만다. 오른손에는 노리개를 매단 장검을 머리쪽으로 들고 있고, 왼손은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로 넣어 또 하나의 검을 들고 있다. 그리고 모둠발을 띈 흰 버선 한 짝이 바람에 날리는 치맛살 아래로 살짝 드러나 있으며, 머리에도 화려한 관을 썼다. 이 모양이 왜 이렇게 눈에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뭔가 필자의 내면을 건드리는 것이 있는것이 분명하다. 설명이 장황했는데 누구나 한 번 보면 감탄이 저절로 나오게 될 것이다. 아하~ 과연 혜원 신윤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