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가.춤.데생
폴 발레리 지음, 김현 옮김 / 열화당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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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생 외길만 파는 사람이 있다. 드가가 그렇다. 그는 오로지 발레리나만을 그렸다. 그것도 화려한 무대에서의 발레리나가 아니라, 무대 뒤편의 연습실을 주로 그렸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의 기질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보냈는데, 주된 이유는 인간에 대한 환멸 때문이다. 아마도 발레리나만을 그리려했던 것은 그의 이런 성격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필자는 이제 좋은 면만을 바라보고자 한다. 드가에 대한 해석을 달리 해 보자. 그가 발레리나를 주려 그렸던 것은 인간에 대한 혐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반대되는 것에 대한 동경 때문은 아니었을까? 예를  들어, 아마도 그가 경험해보지 못한 --드가는 부유한 집안을 가졌음-- 서민들의 삶 때문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가지 못한 길,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은 항상 동경으로 남을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사실 필자는 이렇게 외길을 가는 사람이 부럽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으면 목표가 생기고 거기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아직까지 정말로 뭔가 해보고 싶은 일을 발견하지 못했다. 내 정신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대상이 있었으면 좀더 행복한 삶을 살수 있지 않을까?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에드가 드가의 작품을 볼 때마다 발레리나가 생각나지는 않는다. 내 연상기억의 프로세스에는 미국의 영화배우 더스틴 호프만이 떠오른다? 왜냐고? 그가 출연한 영화 빠삐용에서의 이름이 바로 드가이기 때문이다. ㅎㅎ 머리가 히끗희끗해서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빠삐용은 코코넛 열매로 얽기섥기 엮은 엉성한 구조물을 험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닷속에 던진다. 그리고 절벽에서 다이빙하여 거기에 올라타고 자유를 향해 헤엄쳐 간다. 아마도 주인공 빠삐용은 스티브 매퀸이었던가? 이젠 기억도 안나네.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나온 더스티 호프만(드가 역)은 한쪽 다리가 부서지고 한쪽 알에는 금이 간 안경을 끼고 그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난 이제 삶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더 이상 탈출하려고 애를 쓰고 싶지 않다네. 그저 이 평화로운 감옥(섬)에서 일생을 마치길 원할 뿐이야~.
그리고 이 장면이 흐른뒤에 나레이션으로, 빠삐용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자유인으로 살았다고 나온다. 어떻게 하다보니 드가에 대한 서평이 아니고 영화의 줄거리 소개가 되어버렸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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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 색채와 형태의 미학 마로니에북스 Art Book 2
실비아 보르게시 지음, 김희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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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인상파를 이끈 세잔은 당대의 예술가들에게 그다지 인정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외길을 꿋꿋히 걸었으며, 후대의 입체파와 추상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사후에야 인정 받았던 화가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이 책은 그런 세잔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전반부는 그의 지인들이 나와서 세잔에 대해 추억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후반은 그의 친구였던 에밀 졸라와의 에피소드와 함께, 나중에 그와 결별하는 이야기로 꾸며져있다. 왜 헤어졌을까? 졸라가 그의 소설에서 세잔을 실패한 화가로 그렸기 때문에, 마음이 무척이나 상했기 때문이다. 친구나 동료, 가족들이 주는 상처는 매우 큰 상실감을 가져온다.


한편, 필자가 기억하는 세잔의 걸작은 목욕하는 남자들이다. 이와 쌍을 이루는 목욕하는 여인들도 있지만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것은 전자다. 세잔 스타일을 보여주는 평범한 그림이다. 정면의 두 남자는 뒷모습으로 그려지고 한 남자는 완전한 나체, 다른 사람은 흰팬츠만 입고 있다. 그 양 옆으로 한쪽 다리를 구부린 남자가 정면을 응시하며 --이 인물은 다른 사람에 비해 푸른색조가 상당히 짙게 드리워져 있음-- 흰 팬츠의 우측에는 이제 막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남자의 엉덩이와 발걸음이 경쾌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약간 멀리 있는 여러명의 사람들이 각각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경으로는 하늘색과 흰구름, 인체의 피부색과 녹색의 나무들이 있다. 왜 이렇게 이 그림에 시선이 가는줄 모르겠다. 흠. 아마도 한쪽 무릎을 기울인 남자의 바로 아래에 물속에서 얼굴만 드러낸 한 남자가 관찰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 장면에서 뭔가 코믹함을 느꼈기 때문일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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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견과 몽유도원도
안휘준 지음 / 사회평론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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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견을 대표하는 작품이 바로 몽유도원도다. 원래 이 작품은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이상향을 걸으면서 풍경에 취했는데, 깨고 나니 그 아쉬움이 커서 안견에게 청하여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필자는 이 일화를 볼때마다 놀랍기 그지없다.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안평대군의 말 만을 듣고 이러한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말이다. 완성된 작품을 보고 크게 만족하였는데 --어떤 경로로 그리되었는지는 불분명하고-- 현재는 일본에 그 진품이 있다. 아뭏든 이 책은 안견의 일대기와 여러 산수화 작품을 소개하고는 있는데, 그림이 품질이 썩 좋지는 않다. 도판도 작아서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도 원본을 보는 것이 제한적이라서  그런것이 아닐까 한다.


한편, 충남 서산에는 안견 박물관이 있다. 여기에서 그의 모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니 시간이 되면 한번 찾아가 볼 일이다. 아다시피 안평대군은 세종의 셋째 아들이며, 오늘날로 치자면 예술계를 후원하는 왕족이라서 그 주위에 여러 문인과 예술가들이 넘쳐났다고 한다. 그 또한 이름난 명필가로 유명한데, 안타깝게도 세조(수양대군)가 왕위를 찬탈하면서 목숨을 잃게된다. 이때 성상문과 박팽년, 정인지 등의 문인이 몽유도원도에 시를 적었는데 이들도 함께 저세상으로 가게된다. 이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 바로 서울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묘와 사육신 공원이다. 한편, 안견과 신숙주는 살아남는데 전자의 이후 기록은 남아 있지 않고, 후자는 숙주나물 이라는 비아냥을 받으면서 오늘날에도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아마도 안견은 수양대군에게 협조했다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은둔의 삶을 산 것이 아닐까? 이러한 비운 때문인지 그의 진품이 일본 천리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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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산 세트 - 전10권 - 승부사의 노래
방학기 글 그림 / 자음과모음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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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개봉한 설경구 주연의 역도산은 무술계의 최배달과 쌍벽을 이루는 인물이다. 본명은 김신락이며 일본 프로레슬링을 국민 스포츠로 이끈 영웅이다. 원래 그는 일본에서 스모 선수로 활약하려고 했으나 일본인의 차별로 꿈을 이루지 못했고, 이에 따라 방황을 거듭하다가 우연히 미국의 레슬러와 싸움을 하다가 맥없이 패배하고 만다. 힘쓰는 일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던 그는 대단한 충격을 받고, 미국으로 레슬링을 배우기 위해 떠난다. 그리고 약 1년 후에 일본으로 되돌아와 일본에 우리나라에 프로레슬링 붐을 이끌게 된다. 이 만화는 그의 일대기를 방학기 선생의 특유한 필치로 그려낸 작품이다. 당시 레슬링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역도산의 가라데 촙은 일본인들을 열광케 했는데, 그가 등장하여 거구의 외국 레슬러들을 쓰러뜨리는 장면은 커다란 카타르시스와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2차대전에 패배하여 미국인들을 우러러보던 시기라서 --항상 서양에 대해서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터라-- 그러한 열광은 더더욱 컸을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일본인은 민족개조론을 펼치면서 서양인들과의 결혼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극진가라데의 최배달과 역도산, 두사람 모두 방학기 화백이 극화로 그려낸 자랑스런 한국인들이다. 그리고 허영만의 오래된 작품 '질수 없다' 는 일본야구계에서 무려 3천안타를 쳐낸 재일동포 장훈의 일대기를 그려낸 것이다. 가장 최근에 기억나는 인물로는 기업인 손정의가 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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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 서문당 컬러백과 서양의 미술 21
임영방 엮음 / 서문당 /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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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예술사에 있어서 라파엘로와 미케란젤로, 다빈치의 삼각 관계는 매우 재미난 에피소드가 되고는 한다. 먼저 뒤의 두 인물은 나이가 아버지와 아들뻘인데, 말년의 다빈치는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높이 인정하면서, 한편으로는 질투의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리고 앞의 두 사람은 몹시나 대조적인 삶을 살았다. 가령, 라파엘로는 미남에 여성편력이 심했으나 미켈란젤로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준수한 미남자는 아니었다. 또한 전자가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한 반면 후자는 90세까지 장수했다.

으흠, 아마도 이 사실로 감안해 볼때, 인간의 수명이란 것은 정력과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런면에서 볼때 한방의 원리와 맞아떨어지는 듯도 하다. 한편, 라파엘로는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아기천사를 적재적소에 그려넣어, 상당히 코믹한 느낌으로 만들어버렸다. 당시의 시대상을 감안 해 볼때, 이는 매우 교묘한 화법임에 틀림없다. 독자여러분도 라파엘로가 그린 천사그림을 보면 필자의 말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ㅎㅎ 그래서 그럴까? 그는 기독교 문면을 주제로한 회화작품을 많이 남겼으며, 그에 비례해서 그들이 이단이라 칭하는 그리이스.로마 신화의 여러 신들을 상당수 그려서 후대에 남겼다. 특히나 삼미신이라는 작품이 그러하다. 아글라이아, 에우프로쉬네, 탈리아 라는 여신을 그린 그림인데, 그들이 각각의 손에 사과를 들고 있다. ㅋㅋㅋ. 이거 뭐야 과연 라파엘로 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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