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IMT - 구스타프 클림트 위대한 미술가의 얼굴 8
게르베르트 프로들 지음, 이은진 옮김 / 열화당 / 199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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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에 양쪽 주변머리는 부스스한 구스타프 클림트, 평범한 중년남자처럼 생겼지만 그가 일생동안 좋아했고 추구했던 것은 에로티시즘과 고양이였다. 특히나 전자의 경우 빌 클린턴 대통령이나 타이거 우즈는 저리가라 할 만큼 --특히 빨강머리에 대한 집착-- 통제하기 힘든 중독증세를 보였다. 어떻게 보면 본능에 충실한대로 살아갔다고 할 수 있으려나? ㅎㅎ 그런데 이와 같은 그의 성향은 당대의 오스트리아 시대상을 매우 민감하게 반영한 것이 아닐까 한다? 프로이트가 성과 리비도에 대해 정신분석학을 출판한 때가 바로 이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를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지게 한 그림이 바로 [키스]인데, 이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2006년에 존 말코비치가 열연한 [Klimt]라는 영화를 추천한다. 이 책과 함께 에로스에 빠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대중들이 기억하는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은 '유디트' 와 '다나' 일 것이다. 전자는 긴 얼굴의 아름다운 여성이 상반신을 반 정도 드러낸 상태로 화가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팜므 파탈적인 표정이다. 후자는 빨강머리의 여인이 드러누워 뭔가 신비한 느낌에 빠진듯이 눈을 감고 있는데, 허벅지와 둔부가 매우 크게 강조가 되어서 전체적으로 알에서 여인이 깨어나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알에서 병아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에로티시즘에 빠진 아낙네가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황색실인지? 오줌줄기인지? 야릇한 무엇인가가 흘러넘치고 있는데, 이또한 알 속의 난황을 의미한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ㅋㅋㅋ

그러나 이는 필자가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 것이지, 사실 그의 기질과 성품으로 미루어볼때 그의 성적인 환상과 취향을 오롯이 드러낸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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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자끄 라센느 지음, 이희숙 옮김 / 열화당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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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처음으로 본 마티스의 작품은 [춤]이라는 제목이 붙은 유화였다. 적색으로 채색된 나체의 사람들이 마치 강강수월래를 하듯이 손을 맞잡고 빙빙빙 춤을 추는 듯한 포즈였다. 그리고 보색인 녹색과 코발트 색이 배경으로 어우러지면서, 어찌보면 1980년대 학생운동이 활발할 때 구내에 붙여진 포스터를 보는 듯한, 일종의 데자뷰를 느끼게도 한다. 한편, 그는 색채의 마술사란 별명답게 모든 고유색을 부정했는데, 가령 토마토를 푸른색으로 그린다든가, 여인의 누드를 블루톤으로 단순화 시키는 것들이다. 왜 그랬을까? 그가 인터뷰에서 토마토를 파랗게 그린 이유를 다름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데, "내가 토마토를 파랗게 본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매우 유감스럽다." 라고 답했다고 한다. 같은 사물을 놓고도 이렇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알았던 마티스는 원색의 강렬함을 선호하여 중간톤의 회색은 사용하지를 않았다. 그에 의하면 "다양한 색체는 서로를 약화시키기 때문에 색깔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도록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원래 마티스의 직업은 법률 사무소의 서기였다. 그런데 맹장염이 발생하여 병원신세를 지게되고, 이때 아마추어 화가였던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 미술책을 보여주었다고한다. 이를 계기로 그의 잠자고 있던 화가로서의 재능이 깨어나고 --비록 미술사에서 야수파가 활동했던 시기는 얼마 안 되지만-- 결국 피카소와 함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역사에 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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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 - 붓으로 꿈의 세계를 그린 화가 내 손안의 미술관 10
안젤라 벤첼 지음, 노성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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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만성이라는 말이 딱 어우리는 화가가 바로 앙리 루소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세관으로 일하다가 무려, 49세의 늦은 나이에 화가로서의 첫 발을 디딘다. 그리고는 그 어떤 스승도 없이 오로지 독학으로서 --다른 유명한 화가를 닮고자 했지만 결국에는--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해 간다. 처음에 그는 비평가로부터 조소와 비웃음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러나 후배 격인 파블로 피카소의 찬사를 받으면서부터, 서양 미술사에서 한 획을 긋게 된다. 무엇보다 입체파와 야수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각각 파블로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가 이 조류를 대표하는 화가다.


특히, 루소는 숲, 그중에서도 원시림, 어떻게 보면 고생대나 중생대에 번성했던 것 같은 기묘한 식물그림을 많이 그렸다. 여기에 아름다운 여성이나 동물들이 곁들여져서 뭔가 시적이고 몽환적인 그림이다. 그면서도 대상을 단순화 한 것이 파스텔로 그린 애니메이션 작화처럼 보이기도해서 매우 독특한 풍취가 배어 나온다. 여기에다가 아프리카 미술의 대담성을 결합시켜서 보기만 해도 즐거운 상상이 그려진다. 필자는 그 중에서도 '땅꾼' 이라는 그림이 마음에 든다. 역시 원지 정글이 나오고 보아뱀으로 보이는 생명체가 서너 마리 흐느적 거리고 있다. 여기에 반 나체 상태의 땅꾼이 피리를 불고 있으며 그 목에는 역시 뱀이 한 마리 축 늘어져있다. 그리고 푸른빛을 선사하는 달빛과 이름모를 새가 등장하는 그림이다. 뱀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오묘하게 표현하면서도 혐오감이나 공포라는 감정을 희석시켜서 전혀 징그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사실과 환상을 교묘하게 연관시켜서 밝게 밝히고자 하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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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에른스트 - 열화당미술문고 203
베르너 슈피스 / 열화당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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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태생의 막스 에른스트는 매우 독톡한 인물이다. 원래 그는 프로이트와 융의 정신분석학을 접하고 그쪽 방면으로 길을 잡았다. 그리하여 실습에서 신경정신과 환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이 그린 그림을 보고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강렬한 감정에 이끌려 초현실주의를 살다간 화가다. 한 때는 미술의 한 조류인 다아이즘을 이끌기도 하였으며, 데칼코마니, 꼴라쥬나 프로타쥬 기법을 사용하여 명작을 남겼다. 특히나 [비온 후의 유럽] 이라는 작품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필자 개인적으로는 쉬르레알리즘을 좋아하므로 그의 후기작보다는 초기회화를 더욱 선호한다.

또한 군 복무 중에 두번이나 죽을뻔 한 경험이 더해져서, 그의 그림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기괴한 스타일을 갖고 있다. 원래 초현실주의 자체가 그러하므로 여기에 에른스트의 기질과 정신이 잘 맞아 떨어졌다고 해야 할까? 한편 그의 작품에는 새의 얼굴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이유는 여동생이 태어나던 날 그가 정성들여 키운 앵무새가 죽고말았다고 한다. 그래부터 사람과 새를 구분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볼때, Marlene 1941, The Robing of the Bride, Epiphany, The Eye of slinece, The anti-pope 등의 작품을 찾아보면 필자의 의견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1937년에 창작된 '초현실주의의 승리 혹은 난로옆의 천사' 라는 작품이 가장 시선을 잡아끈다. 피카소가 스페인 내전에 대한 영감으로 게르니카를 만들어냈듯이 에른스트는 이 작품을 통해서 2차대전을 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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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의 배꼽이다 - 살바도르 달리의 이상한 자서전
살바도르 달리 지음, 이은진 옮김 / 이마고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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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랩탑 바탕화면을 장식하고 있는 이미지가 바로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이다. 정확히는 [내란의 예감] 이라는 작품인데, 이 그림을 그리고나서 약 한달 후에 스페인 내란이 발발하였다고 한다. 아뭏든 그는 돈키호테적인 기행으로도 유명한데, 그 원인은 어린시절의 정체성 혼란에 기인한다. 달리에게는 죽은 형이 있는데, 그의 부모는 달리를 첫째 아들의 환생이라고 여겼었다. 그리하여 형의 아바타로써 살아야만 했다. 이러한 트라우마가 일종의 광기를 형성하여 그를 쉬르레알리즘의 대표 화가로 만든 원동력이다. 한편, 그는 알프레드 히치콕, 루이스 부뉴엘과 함께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스펠바운드, 안달루시아의 개가 바로 그 영화다.


필자가 달리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의 신선함이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여러 많은 회화작품을 남겼지만 그 중에서도 필자는 '기억의 영속성' 과 '폭발하는 라파엘로의 두상' 에 시선이 간다. 한편, 그는 지독한 자신감과 기행으로도 잘 알려져있는데, 그의 카이제 수염은 그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를 다룬 단독의 영화는 없지만, '미드나잇 인 파리' 라는 영화에서 조연으로 잠깐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예술과 대중문화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각종 기행을 하기도 했는데, 츄파춥스라는 사탕의 로고를 디자인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필자는 이게 그냥 흔하디 흔한 미국의 막대사탕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스페인 태생이라고 한다. 1958년에 첫 탄생하여 세계 각국에서 판매되고 있다고 하는데, 필자도 보기는 했지만 한 번도 먹어보지는 않았다. 아뭏든 이 츄파춥스의 꽃모양 그림을 주황색과 노랑색으로 멎지게 디자인 한 것이 달리라고 하니, 그의 평소 행동을 볼때 특별이 기이한 점은 아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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