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샤갈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1
인고 발터 지음, 최성욱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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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필자는 마르크 샤갈의 작품을 볼 때 마다 공중부양 샷이 떠오른다.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물이,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의 유연함 내지는 흐느적 거림을 가지고 현실과 꿈속의 모호한 경계를 넘나든다. 언뜻 보면 기괴한 상상이지만 색채와 화면 분할이 웬지모를 어우러져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여러가지 걸작이 있지만 그 중에서 필자의 시선을 끄는 것은 [에펠탑 앞의 부부] 라는 작품이다. 동화적인 상상력을 가미하여,  쉬르레알리즘(초현실주의)의 원형을 보여주고 잇기 때문이다.

까만옷을 입은 남자가 비스듬히 떠있는데, 그 오른손은 신부의 왼손을 감싸고 있다. 하얀옷을 입은 여성은 왼손에 작은 녹색의 부채를 들고 있으며 신랑의 품에 안겨있다. 이 둘은 그렇게 비스듬한 자세로 공중부양을 하고 있는데, 바로 그들을 합친 것 만큼이나 큰 새가(아마도 닭을 그린 것 같음)역시 비스듬히 떠있다. 이렇게 세 주제가 나란히 서있고 그 안에 또 작은 사람이 앉아 있는데 바이올린같은 악기를 들고 있다. 그 주변으로 서커스적인 요소들이 그려져있다. 배경의 에펠탑은 검푸른 색인데 탑이라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그 특유의 철제구조물은 보여지지 않고 그냥 희끄무레한 건축물 정도로 표현하고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염소, 첼로 등이 꿈속을 유영하는듯이 담겨져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따스함과 유머러스하고 아동틱하면서도 코믹하고 운치가 있어 보인다. 취학전 아이들이 보더라도 분명히 좋아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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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클레 마로니에북스 Taschen 포트폴리오 1
마로니에북스 편집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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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보다는 논객으로 더 많이 알려진 진중권은, 그의 미학에세이에서 파울 클레를 매우 극찬하고 있다. 그는 발터 벤야민의 시각을 통해서 본 클레의 그림, 그리고 그 작품이 주는 감동을 매우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알겔루스 노부스라고 하는 그림인데 이 걸작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도는 해괴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작품인지 필자도 한번 찾아봤다. 사진으로만 봐서 그런지? 필자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없었다. 아마도 내공이 부족한걸까? 그런 점도 상당히 있겠지만, 그 보다는 진품을 접할 수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직접 축구나 야구경기를 보는 것과 TV로 시청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 말이다. 한편, 그는 칸딘스키와 절친한 사이였으며 이에 따라 그의 초상화가 칸디스키의 작품에 등장하기도 한다.


일일우일신이라는 말이 있다. 클레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가? 그는 "하루에 선을 하나라도 긋지 않으면 손에 못이 돋는다" 라고 할 정도로 치열하게 창작활동에 몰두했었다. 아이 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안중근 의사가 말씀하신 "단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실상 두 사람은 아무 관련이 없지만, 반드시 또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일단 출생년도가 1879년으로 같다. 그리고 클레는 히틀러에게 핍박을 받고 그의 작품들이 몰수되는 경험을 겪었었다. 안중근의 의거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것이다. 독립운동가로서의 그의 일생은 널리 알려져있으니 말이다. 각설하고, 클레는 평생동안 9천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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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브레히트 뒤러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노르베르트 볼프 지음, 김병화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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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히트 뒤러에 대해 말할 때는, 그를 위해 헌신한 친구를 빼놓을 수 없다.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일화이기 때문이다.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던 뒤러는 미술공부를 위한 돈이 없었다. 그때 같은 처지에 있는 프란츠라는 친구가 이런 제안을 했다. 니가 미술공부를 할 수 있게 내가 학비를 벌겠다. 이후 졸업한 후에는 네가 나의 뒷바라지를 하면 될것이다. 라고 말이다. 이후 뒤러는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고 그 친구가 일하는 식당으로 찾아갔는데, 퉁퉁 불거진 거친 손으로 기도하고 있는 친구를 보게 된다. [제 친구 뒤러가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게 하소서, 저의 손은 이제 무뎌져서 붓을 잡을 수 없습니다]. 이 모습을 그린 것이 바로 그의 걸작 [기도하는 손]이다.


이 그림은 창백한 푸른색을 배경으로 말 그대로 맞잡고 기도하는 손을 화면 가득이 그려낸 것인데, 일체의 어떠한 사물도 담겨지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푸르른 벽을 뚫고 두손이 나오고 있느듯, 또 어찌보면 벽과 손이 합쳐진듯도 하다. 아뭏든 이 얘기는 정말 꾸며진 이야기가 아닐까? 할 정도로 매우 감동적인 스토리다. 만약, 뒤러가 화가로서 이름을 떨치지 못했다면 이 두사람의 우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가정이지만 분명히 흥미로운 요소가 있다. 프란츠의 사람 됨됨이를 보아서 짐작하건데, 그랬더라도 두 사람의 우정은 계속 되지 않았을까? 관포지교, 지음, 소꿉친구 등등이 생각난다. 이 두사람의 우정과 작품을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한번 들여다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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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벨라스케스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48
노르베르트 볼프 지음, 전예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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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추첨식 복권이 아닌 선택형 로또가 처음 등장하였던 당시, 가장 사람들의 마음을 후벼팠던 문구가 바로 [인생역전, 신분상승]이었다. ㅎㅎ 미술사에서도 이처럼 신분상승의 목적으로 그림을 그린 인물이 바로 디에고 벨라스케스였다. 그는 평생을 스페인 궁정화가로서 살면서 귀족들의 초상화를 전문적으로 그려내었다. 나중에는 어느 정도 명성도 얻고 기사 작위까지 받았지만, 뭐라고 할까? 외국사람이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하여 한국 사람으로 사는, 그 어떤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었다. 아뭏든 그는 후대에 피카소와 같은 화가들로부터 예술가로서 인정을 받았는데, 그의 대표작인 [시녀들] 이라는 걸작 때문이다. 그 외에도 많은 작품이 있지만 시녀들이야말로 명작 중의 명작이다.


이 작품은 후대에 피카소가 모방을 하여 남길정도였으니말이다. 그리고 바람둥이 클림트 마저도 이 그림을 보고서는 '이 세상에 화가는 단 둘 뿐이다. 벨라스케스와 나다.'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아니 그러고보면, 스페인 태생의 유명한 화가들이 엄청 많은 것 같다.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 호안 미로등등 말이다. 축구만 잘 하는 나라인줄 알았더니 이런 예술가들도 많이 배출을 했군. 그런데 공산품을 별로 못 본것 같다. made in spain? 아뭏든 각설하고, 소설중에 액자소설이라는 것이 있다. 시녀들이라는 그림은 그런 형식을 떠올리게 한다. 큰 화폭에 여러 액자에 담긴 그림들이 배경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목도가 매우 높다. 왜냐하면 화폭에 담긴 9명의 사람중에서 6명이 감상자를 쳐다보고 있기에 그러하다. 그리고 배경액자 속에 담겨진 두사람마저도 감상자를 주시하고 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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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그르 재원 아트북 46
정금희 지음 / 재원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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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진의 경우에 있어서 눈동자에 조금만 빛을 추가하는 캐츠 아이는, 그림에 있어서 화룡정점과 같다. 이 개츠아이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이미지가 확연히 달라진다. 앵그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고전주의를 대표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앵그르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바로 회화에 있어서 누구보다 더 선명한 캐츠아이를 구현했다는 점이다. 인물에 대한 정밀한 묘사와 더불이 이러한 기법은 그야말로 그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당장 그의 작품을 검색해보라. 그리고 눈동자의 캐츠아이를 찾아보자. 한편, 그는 초상화 중에서도 귀부인들을 그린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음모론에 항상 등장하는 '로스차일드가의 공작부인 베티Baroness Betty de Rothschild' 라는 여성도 그중 한명이다. 당시 귀족여인들의 풍만한 몸체를 아름답게 그려냈다. 그러자 정작 자신은 이런 초상화를 그려내는 것을 그리 탐탁치않게 여겼다고 한다. ㅎㅎ.


몇년전에 터키 정부에서 우리나라에 항의를 하여, 터키탕 이라는 간판을 전부 없앴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터키탕이라는 단어는 매춘과 연결된 곳이므로, 터어키 정부의 이런 판단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할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와전된 것이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가령, 터키(오스만 투르크 제국)가 크게 세력을 확장했던 당시에는, 여러 나라에서 잡혀온 여인들을 모아놓고 황제(술탄)의 잠자리 시중을 들게 했다고 한다. 이런 장소를 할렘이라고 하였다. 말년에 이른 앵그르는 터키주재 영국대사의 부인이 남긴 '터키탕 견문기' 를 참고로해서 '터키 목욕탕(The Turkish Bath)' 이라는 작품을 남겼고, 이런 유럽인들의 편견과 오해가 그대로 후대에 전해지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을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왜, 팝그룹 런던보이스의 '할렘 디자이어' 라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한때 라디오를 틀면 이 노래가 거의 매일 흘러나왔었던 기억이 난다. 그 할렘과 이 할렘은 다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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