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생관 최북
최북 지음 / 국립전주박물관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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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층민으로 태어난 최북은 조선시대 최초의 직업화가였다. 그렇기에 자신의 호를 호생관(호이라 칭했는데, 이는 붓으로 먹고 산다 라는 뜻이다. 그러한 최북은 일찍 부모님을 여의 그는 철이들자 한양으로 올라와 그림을 팔아 끼니를 해결하였다고 한다. 한편, 최북은 담대한 배짱과 기행으로 이름이 나 있는데, 어느날 그의 명성을 듣고 그림을 사러온 세도가가 있었다. 아무에게나 자신의 작품을 팔지 않았기에 그 청을 거절하자. 그 허접한 양반이 해꼬지를 하려 했다. 이에 분노한 최북은 [내 비록 환쟁이지만 너희 같이 임진왜란.병자호란으로 나라를 망친 놈들의 더러운 손길을 거부한다]라고 하며 옆에 있던 칼을 들어 자신의 눈을 푹 찔렀다. 붉은 피가 뚝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며, 그 허접한 인간은 더 이상 범접치 못하고 대경실색하여 물러갔다고 한다. 그리하여 조선후기의 화가 희원 이한철이 그린 최북의 초상화에는 한쪽눈이 없는 그가 담겨져있다.

작금의 한국 정치꾼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내용이다. 그 인간들이 꿈쩍이나 하겠냐마는.... 하여간 그는 여러 걸작들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필자는 [맹우도]라는 그림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황소를 그린 그림중에서는 이중섭의 황소가 많이 알려졌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북의 맹우도 또한 걸작중의 걸작이다. 단순히 털이 많은 황소를 그렸는데, 뿔을 강조하여 크게 화폭에 담았으며 그 체구도 조금 과장되게 그려넣었다. 그리고 그 위에 목동이 앉아 있는 간결한 구성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필자의 시선을 잡아끄는지 모르겠다. 한편  그는 조선통신사의 일행으로 일본을 방문하게되는데, 그의 명성이 일본에가지 알려져서 일본인들의 최북의 그림 한점을 얻기위해 줄을 섰다고도 한다. 그런 최북의 작품과 일생이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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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달빛 신사임당
안영 지음 / 위즈앤비즈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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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모자가 모두 지폐의 주인공이네? 아들인 율곡 이이는 5천원 권, 어머니 신사임당은 5만원 권, 무려 10배나 차이가 나는 내공이다. ㅎㅎ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현모양처라는 진부한 단어로 형용을 하나, 예술적 기질과 품성은 범인의 경지를 넘어선 인물이다. 특히나 올곧은 정신과 인격이라는 측면은 평범한 사내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이런 신사임당을 하늘이 시기해서 인지 48세 되는 나이에 돌연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가 만약 조선이 아닌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 태어났더라면,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이 좁아터진 한반도에 적을 둔 것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뭏든 신사임당은 초충도라는 명품을 세상에 남겼다.


한편, 그의 기개와 품격이 너무 뛰어나서 남편과의 사이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요즘식으로 하자면 빼어난 연예인 아내를 둔 평범한 남자들이, 혹은 그 반대로 유명인 남편을 둔 보통의 아내가 여러가지 이유로 이혼을 하는 사례가 많다. 한쪽이 너무 특출나다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각설하고 최근에 보니 조폐공사가 적자에 빠졌다고 한다. 주된 원인이 5만원 도입으로 지폐 발행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시중에는 5만원권이 그렇게 많이 나돌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니 이것은 그야말로 지하경제로 유입되어 쌓이고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또한 위조지폐로서는 5천원권이 가장 많다고 한다. ㅎㅎㅎ 이래저래 율곡과 신사임당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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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신의 문학론과 문학세계
신범식 지음 / 박문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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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가 백곡 김득신은, 정조의 어진을 그리는데 김홍도와 함께 작업한 역사가 있으며, 그의 화풍을 계승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야묘도추]라는 걸작을 보면, 단원이 그린것인줄 착각할 정도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다 세밀하고 정겹게 파고들어간 면모를 보인다. 그리하여 후대의 미술사가들은 그를 김홍도 못지 않은 조선의 명화가로서 평가하고 있다. 이 작품을 보게 되면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오게 될 것이다. 마당의 병아리를 채어가는 고양이를 향해, 곰방대를 높이 쳐들고 달려가는 장면이 공중부양을 하듯이 그려져있다. 그리고 그 뒤로 안방마님의 놀란 제스쳐가 어우러져있는데, 참으로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작품이다. 이런 작품은 그야말로 진품을 봐야만 그 진정한 감흥을 느낄 수 있는데, 필자와 같은 보통사람들에게는 언감생심이다. ㅎㅎㅎ 돈벌어서 부자가 되어서 이런 걸작을 소장한 뒤에 혼자만 감상하고 싶다.

그리고 포대흠신이라는 작품에서는 절로 미소가 벌어지게된다. 이 그림은 중국의 승려 포대화상을 그린 것인데, 이 인물은 말 그대로 포대속에 탁발로 받은 음식이나 기타 일상생활에서 유용한 물건들을 넣고 다니면서 보통사람들에게 보시를 했다고한다. 가령, 아이들에게는 장난감이라든가 과자 엿등을 꺼내서 아이들과 함께 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신통력을 발휘하여 길흉을 예측하기도 하였다. 가령, 포대화상이 나막신을 신으면 곧이어 비가 내렸고 장마철이라도 짚신으로 갈아신으면 신기하게도 해가 쨍쨍하고 나왔다고 한다. 일부 허접한 인간들에게는 광인취급을 받았지만, 그의 도력과 공부가 매우 높았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한편, 김득신이라는 이름만큼이나 그의 호인 긍재는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김홍도 하면 단원, 신윤복 하면 혜원인데 김득신 하면 딱히 떠오르지를 않는다. 왜 그럴까? 아마도 긍재라는 한자가 잘 쓰여지지 않는 것이 한 이유가 될까나? 주의할 점이 있다. 백곡 김득신과 긍재 김득신은 이름만 같지 전혀 다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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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 창해ABC북 1
기욤 카스그랭 외 지음, 이승신 옮김 / 창해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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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렛 요한슨이라는 헐리우드 배우를 세상이 확실히 각인 시킨 영화가 있는데, 바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라는 작품이다. 여기서 스칼렛은 청순미를 드러내어 호평을 받았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파란 두건으로 머리를 묶고 화가를 지긋이 바라보는 컷으로 끝난다. 바로 이 작품의 화가가 바로 요하네스 얀 베르메르다. 생전에 그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였으나, 후대에 이르러 나찌가 눈에 불을 켜고 그의 작품을 수집했다고 할 정도로 인정을 받게 된다. 예술가로서는 수준이하의 히틀러였지만 걸작을 보는 눈 만은 확실했던 모양이다. 그의 똘마니 괴링은 돈을 주고서라도 베르메르의 작품을 소장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그의 화풍은 간결하고 소박하다. 그리하며 마치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부엌의 하녀The Kitchen Maid)' 와 'Delft의 거리 풍경' 이라는 작품을 보면 필자의 말을 납득할 수 있을것이다. 빵의 질감과 벽에 나 있는 못자국까지 섬세가게 그려넣어서 마치 핀홀 카메라로 찍은 듯한 느낌이 든다. 사실, 베르메르가 활동했던 당시는 카메라가 발명되기 이전이었는데, 옵스큐라라고 하는 카메라의 전신 같은 기계가 있었다고 한다. 이를 작품에 활용했던 인물이 바로 베르메르 이기도 하다. 이와같이 빛에 대한 탐구는 베르메르 회화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기도하다. 그는 다작을 그린 화가는 아니었다. 43년의 생애동안 겨우 40여 점의 작품을 제작하였다고 하니 1년에 하나 꼴인 셈이다. 아니 20세부터 창작을 하였다고 치면 1년에 두점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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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크 서문당 컬러백과 서양의 미술 40
정문규 지음 / 서문당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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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파의 특징이 무엇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한면에 표현한다는 점이다. 가령, 인물의 우측 옆 모습을 그린후에 정면이나 좌측 얼굴까지 한 화면에 담아내는 것이다. 즉, 피사체를 해체 한 후에 다시 재구성하는 작업이 바로 큐비즘이다. 이러한 작업의 원류를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보여주는 이가 바로 조르쥬 브라크이다. 피카소가 대략 3번의 화풍 변화가 있었던 것에 비해, 브라크는 일생을 입체파 화가로 살았다. 그의 초기작은 피카소와 매우 유사하며 색감에 있어서는 세잔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그러나 브라크는 점점 자신만의 색깔을 화폭에 그려내기 시작하다가 후기에 가서 빠삐에 꼴레라는 기법을 만들어 만들어내게 된다. 이는 캔버스에 종이를 붙여서 새로운 표현을 하는 것인데, 그 이전에 파울 클레와 함께 유화물감에 모래를 섞는 등의 작업을 하였었다. 한편,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 꼴라주기법인데, 이는 종이뿐만 천조각, 기타 다른 이질적인 것을을 함께 섞는 미술의 한 표현법이다.

한편, 미술품 경매로 유명한 소더비에서는 매녀 봄가을에 근대미술 작품 경매를 진행하고 있는데, 조르쥬 브라크의 작품은 최근에 150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환율 1300원을 적용하면 무려 200억에 가까운 돈이다. 소더비에 의하면 연간 6조원 정도가 세계 경매시장의 크기라고 하며, 크리스티라는 경매사와 함께 가장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이런 세계적인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미술품 경매회사가 탄생을 했는데, 바로 서울 옥션이다. 온라인 마켓 플레이스인 옥션과는 전혀 다르니 오해하지 말것. 우리나라 경매와 미술품 시장의 투명성과 선진화를 위해서 이러한 경매사가 잘 조직되고 발전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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