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이 되고 싶은 화가 장승업 - 한국편 3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한국편 3
조정육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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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업의 그림은 호쾌하면서도 푸근하다. 그의 여러 작품에서는 조선후기 민화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어서 기쁘기 한량없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으로 대중에게도 친숙한 이름이 바로 오원 [장승업]이다. 필자의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는 한데, 어떤 유명한 조각가에게 한 기자가 질문을 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뛰어난 작품을 다듬어 낼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가 답하길, 나는 조각을 하는게 아니고 그 안에 담겨진 형성이 드러나도록 불필요한 부푼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장승업의 화풍도 이와 같다. 그는 자기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 문맹이었으나, 붓을 쥐기만 하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야말로 일필휘지로 걸작을 드러나게 만들었다.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적도 없는 이가 말이다. 달래 천재가 있는 것이 아니다. 뭐라고 비유를 할까? 포토샵의 마스크 툴과 같다. 가면을 벗으면 실체가 드러나듯이, 장승업은 하얀 도화지를 걷어내어 그 안에 담겨진 진실한 모습을 드러나게 만들었다.


한편, 장승업이 화가로서 이름을 떨칠 수 있게 된 것은, 이응헌이라는 재력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그는 역관 출신으로 중국의 많은 예술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조실부모하고 고아로 자라난 장승업이 이때 그의 집에서 하인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고 한다. 우연히 그의 재능을 알아본 이응헌이 장승업의 후원자가 되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그의 걸작들이 후대에 남게 된다. 이후 장승업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고종의 명령으로 궁궐에서 그림을 그리는 관직을 받았는데, 무엇에도 얽매이기 싫어하는 그가 이를 박차고 뛰어나가는 장면이 바로 취화선 포스터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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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춘화의 품위와 매력 - Korean Erotic Painting
갤러리현대 지음 / 갤러리현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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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책이다. 대개 이런 보물이나 국보급 작품들을 평범한 사람들이 진품을 볼 수 있는 기회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나마 이렇게 사진으로 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반가울 따름이다.

우리나라 그림의 역사에 있어서 혜원 신윤복 만큼이나 색시한 작품을 남긴 화가는 없을 것이다. 유려한 선과 강렬한 채색, 그리고 묘한 상황이 주는 그의 스타일은 정말 탄복을 금할 수 없다. 어떤 한 연구자는 그의 작품이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의 우키요에라는 풍속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림의 스타일이나 화풍에서 그런 분위를 많이 느낄 수는 있으나,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아뭏든 김홍도와 더불어서 신윤복은 조선이 낳은 걸작이다. 당시의 에로티시즘이 궁금하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라.


필자가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감상한 그림은 '쌍검대무' 라는 작품이다. 이 걸작은 국보 135호로도 지정되어 있어서 그 가치를 알만하다 할 것이다. 넓은 마당 한 가운데에 쌍검을 들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기생 두 명이 검무를 추고 있고, 그 주변으로 악사와 구경꾼들이 원형으로 늘어서 있는 장면이다. 검을 든 기생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붉은색과 샛파란색으로 화려하게 채색을 했으며, 그 움직임이 나긋나긋하면서도 율동이 느껴지는 지라 한 폭의 양반춤을 보는것 같다. 그리고 그 주변인물들은 상대적으로 색감을 옅게 만들었다.


특히나 정중앙 보다는 그림 오른쪽에 있는 기생의 동작이 매우 다이나믹한데 필자는 자꾸만 그 여인네에게로 시선이 가고 만다. 오른손에는 노리개를 매단 장검을 머리쪽으로 들고 있고, 왼손은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로 넣어 또 하나의 검을 들고 있다. 그리고 모둠발을 띈 흰 버선 한 짝이 바람에 날리는 치맛살 아래로 살짝 드러나 있으며, 머리에도 화려한 관을 썼다. 이 모양이 왜 이렇게 눈에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뭔가 필자의 내면을 건드리는 것이 있는것이 분명하다. 설명이 장황했는데 누구나 한 번 보면 감탄이 저절로 나오게 될 것이다. 아하~ 과연 혜원 신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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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앵그르 명화로 보는 세계의 미술가 15
김진섭 지음 / 지경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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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그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고전주의를 대표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앵그르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바로 회화에 있어서 누구보다 더 선명한 캐츠아이를 구현했다는 점이다. (인물사진의 경우에 있어서 눈동자에 조금만 빛을 추가하는 캐츠 아이는, 그림에 있어서 화룡정점과 같다. 이 개츠아이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이미지가 확연히 달라진다. ) 인물에 대한 정밀한 묘사와 더불이 이러한 기법은 그야말로 그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당장 그의 작품을 검색해보라. 그리고 눈동자의 캐츠아이를 찾아보자. 한편, 그는 초상화 중에서도 귀부인들을 그린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음모론에 항상 등장하는 '로스차일드가의 공작부인 베티Baroness Betty de Rothschild' 라는 여성도 그중 한명이다. 당시 귀족여인들의 풍만한 몸체를 아름답게 그려냈다. 그러자 정작 자신은 이런 초상화를 그려내는 것을 그리 탐탁치않게 여겼다고 한다. ㅎㅎ.


몇년전에 터키 정부에서 우리나라에 항의를 하여, 터키탕 이라는 간판을 전부 없앴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터키탕이라는 단어는 매춘과 연결된 곳이므로, 터어키 정부의 이런 판단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할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와전된 것이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가령, 터키(오스만 투르크 제국)가 크게 세력을 확장했던 당시에는, 여러 나라에서 잡혀온 여인들을 모아놓고 황제(술탄)의 잠자리 시중을 들게 했다고 한다. 이런 장소를 할렘이라고 하였다. 말년에 이른 앵그르는 터키주재 영국대사의 부인이 남긴 '터키탕 견문기' 를 참고로해서 '터키 목욕탕(The Turkish Bath)' 이라는 작품을 남겼고, 이런 유럽인들의 편견과 오해가 그대로 후대에 전해지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을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왜, 팝그룹 런던보이스의 '할렘 디자이어' 라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한때 라디오를 틀면 이 노래가 거의 매일 흘러나왔었던 기억이 난다. 그 할렘과 이 할렘은 다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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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서와 배삼룡 열린시학 시인선 55
양병호 지음 / 고요아침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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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서와 배삼룡, 우리나라 코미디언 원로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지금은 구봉서님만 생존해 계시고 비실이 배삼룡님은 돌아가셨다. 이 두 분의 코미디 인생사를 짧막하게 다룬 책인데, 역시 고인이 되신 땅딸이 이기동과 가갈갈갈 서영춘을 함께 다루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 네 분이 70-80년대 웃음보 4인방이라고 불렸었는데, 당시로서는 최고의 인기프로그램인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었다. 권귀옥, 이주일, 이상해, 고춘자, 장소팔, 남철 남성남, 남보원, 백남봉, 임희춘, 배일집 등등 기억이 아스라한 코미디언 들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지금의 젊은 개그맨들이 많이 배출되었음은 누구나 알 것이다.

자. 희극인 말이 나와서 말인데 한 참 활동할 나이에 저세상을 떠난 분들이 있다. 바로 이주일과 이기동이다. 전자는 폐암으로 돌아가셨고 후자는 자동차 사고였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군사정권의 핍팍을 받아 한동안 방송출연을 하지 못했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주일은 나중에 화려하게 부활해서 코미디의 황제라는 별칭까지 받았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토크쇼도 진행했었고 국회의원에도 당선이 되었었다. 이기동은 너무나 젊은 나이에 이승을 하직하며 재기할 기회조차 없었다. 한편, 이주일의 마지막은 암투병중 2002년 월드컵 당시 경기장을 찾았을때였다. 그는 TV화면을 통해 간곡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여러분, 제발 담배는 피지마세요. 이렇게 좋은 날 축구장에 와서 경기를 보니 참......" 그게 생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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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평전
고은 지음 / 향연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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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화백의 증명사진을 볼때마다 연상되는 인물이 --두 사람은 아무런 연관이 없음-- 바로 쉬르레알리즘의 살바도르 달리다. 아마도 멋지게 카이젤 수염을 기르고, 부릅뜬 팔자 눈썹과 약간 처진 눈썰미 때문인 것 같다. 이중섭은 지금의  아이들 표현을 빌리자면 완소남이다. ㅎㅎ 그의 가장 대표작이 황소를 그린 유화인데, 역동적인 표현과 질감, 터치가 매우 강렬해서 한번 보면 도저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도화지 살 돈이 없어서 담배갑 속의 은박지위에 못으로 그렸다고 하는 아이들 그림도 수작임에 틀림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마도 시대상이 바뀌면-- 이 아이들 그림이 더욱더 그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 할지도 모르겠다. 아뭏든 이 천재화가의 삶과 인생을 살펴보게 하는 책이 바로 이 서적이다.


필자는 이중섭을 볼 때마다 쌍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이상이다. 일제강점기하에서 오감도라는 시로써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인물. 그의 인생살이가 어쩌면 이렇게 화가 이중섭과 오버랩이 되는지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둘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해서일까? 아니면 둘 다 미남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인지부조화의 결과일까? ㅎㅎㅎ '나의 아버지가 나의 곁에서 조을 적이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되고....그런데도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되는데......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 만 더 날자꾸나' 아다시피 앞 부분은 오감도이고 후반부는 날자라는 산문집의 한 귀절이다. 이중섭의 황소와 이상의 오감도는 그 누구나 한번만 보거나 읽게되면 그 속깊은 뜻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겨서 평생동안 영구기억으로 저장될 것이 틀림없다.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는 필자가 그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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